•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시민운동조직의 거대화와 지연된 소통

VIII. 결론

4. 시민운동조직의 거대화와 지연된 소통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가장 적극적 정치형태이다. 1990년대 들어 정치․경제개혁운동의 주기 동안 시민운동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운 동단체들은 크게 성장했다. 특히 주요 시민운동단체의 경우 거대화됨으로써 새로운 운동주 기를 주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의 소통의 정치를 제약하는 요소로 간주되 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 성장해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주요시민단체들의 경우는 회원수나 상근자 규모, 예산 등에 있어서 다른 단체에 비해 월등히 확장되어 거대 조직화하는 경향을 보였 다. 우선, 경실련의 경우 1989년 출범 당시 500명의 발기인으로 시작하여 1995년 1만 명 정도의 회원을 확보했다. 표 11에서 알 수 있듯이, 1999년에 경실련의 회원규모는 약 2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2003년 집계로는 약 3만 5천명에 이르는 거대단체로 성장했다. 또한 2005년 현재 전국적으로 34개의 지역경실련이 설립되어 있으며 조직의 실제규모를 보여주 는 상근자수도 56명, 연간예산도 약 14억으로 크게 늘어났던 것이다(시민의 신문, 2000;

2003). 참여연대 역시 출범 초기인 1995년 임원과 일반회원을 합해서 약 490명 규모이던 것이 1999년 회원규모는 1만 명으로 대폭 늘어났고 2003년 집계로는 약 1만 2,700에 이 르고 있다. 참여연대의 상근자 규모도 크게 늘어나 1999년 48명, 2003년에는 54명으로 확 충되었으며 연간 예산규모도 이미 2001년에 약 17억원으로 늘어났다(시민의 신문, 2000;

2003).

환경운동연합은 규모에 있어서 경실련이나 참여연대에 비해 더욱 거대화하는 경향을 보인 다. 1993년에 8개 환경운동조직이 결합되어 설립된 환경운동연합은 1999년에는 회원규모 5만 3천 명, 상근관리자 50명, 연간예산 35억의 거대단체가 되었으며, 2003년에는 회원 수 8만 5천명, 상근자 73명으로 늘어났다. 2005년 현재 환경운동연합은 전국적으로 49개 지 역지부를 가진 가장 강력한 환경운동단체로 성장한 것이다(시민의 신문, 2000; 2003; 환경 운동연합, 2005).

주요 시민단체의 이 같은 거대조직화 경향은 시민단체의 활동들이 시민적 욕구의 ‘표출’

그 자체라기보다는 시민적 욕구를 대변하여 이슈화하는 역할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 체가 시민의 ‘대의기구’적 의의를 갖도록 했다(조희연, 1999a). 이러한 점은 1980년대 말 이후 지속된 권위주의정권 아래 제도정당들이 민주적 기능을 담당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민 단체가 ‘유사정당’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종합적 시 민단체로 불리는 주요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이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이 제한적 수준에서나마 전문화된 활동기구들에서 생산하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광범한 영역의 정책이슈들은 국민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의 정책을 연상시킬 정도로 포괄적이다.

주요 시민단체들이 서울에 있는 중앙조직중심으로 거대 조직화되고 유사정당화된 것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연속성으로부터 크게 규정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된 중앙집중적 정치권력과 행정구조에 대한 제도화된 저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민단 체 역시 중앙조직중심으로 비대해지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거대한 조직규모와 그로 인한

의사결정과정의 편중성은 시민운동조직의 대중성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물론 시민운동조 직의 제도화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거대조직화 는 시민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짐으로써 소통을 제약하기 마련이다. 이와 동시에 정치․경제개 혁운동의 주기 동안 한국의 시민운동은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쟁점들을 다루고 해 결하기 보다는 정치사회적이고 여론지향적인 개혁적 쟁점을 중심으로 이슈화하는 과정에서 조직자체의 전문성이 제약되는 특성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시민운동은 정치․경제개혁운동의 주기에 조직의 거대화와 전문성의 한계 로 인해 소통의 질서를 구축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립과 균열의 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새로운 운동주기를 맞아 주요 시민단체들은 조직의 유연화와 전문화를 위한 과감한 혁신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직혁신은 대중성과 주민중심성, 지역중심성, 사회개혁중심성 을 반영하는 소통의 질서를 겨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 권력의 민주화와 합리화를 지향 하는 시민사회의 정치는 일상적 삶과 관련된 법률의 개정을 위한 압력을 주도하면서도 동시 에 사회권력의 현실적 기반이 되는 다양한 제도 내에서 현장 중심적 소통을 확산시키는 전 략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정치경제개혁운동의 시기 동안 시민운동은 비록 사회적 균열의 구조를 만들기는 했지만 미완성된 정치민주화와 경제권력의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적어도 도덕적 권위는 뚜렷이 구축 되었다. 그러나 소통의 전략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전략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권위 뿐 아니라 기술적 권위의 원천이 되는 전문성이 특히 강화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운동주기에서 시민운동조직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할 것이 요구된 다. 정치․경제 개혁운동의 주기에 시민운동조직들은 시민사회 보다는 국가영역과 시장영역의 문제에 치중함으로써 오히려 이 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새로운 운 동주기에서 시민운동단체의 권위는 ‘시민사회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 데서 확보될 수 있다. 아울러 시민운동이 갖춘 전문지식체계는 시민단체의 도덕적 권위를 보증해 줄 수 있 는 기반이다. 일반적으로 전문지식 및 전문기술체계는 개방화와 대중화를 꺼리는 독점적이 고 배타적인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시민단체에서 전문지식의 가용성을 높이고 전문지식의 확보를 통해 소통의 질서를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사회를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노무현 정부에 들어 시민운동단체들 간에도 이념적 균열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 였다.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같은 보수우파 단체들이 새롭게 생겨나 이념의 균열이 확대되 는가 하면 1990년대부터 시민운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들 간에도 진보와 보수를 구획함으 로써 균열을 조장하는 경향 또한 있었다. 새로운 운동주기를 맞아 소통의 전략과 사회개혁 으로의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오히려 폐쇄적 대립과 균열의 구도를 만들었던 것이 다. 말하자면 사회권력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과 시민운동단체들 마저도 소통을 가로막는 극 단적 ‘주관주의의 덫’을 만드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이 같은 조직의 비대화와 전문성의 결여, 나아가 시민사회 내부의 이념적 균열은 정치․경 제개혁운동이 만들어낸 효과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시민운동의 효과는 저항의 전략을 추구 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경제개혁운동의 시효가 만료된 후 시민운동의 이러한 요소들은 새로운 사회개혁운동을 주도하는데 명백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5. ‘시민공동체 패러다임’의 전망

우리사회에 가로놓인 극단적 주관주의의 갈등문화는 참여정부에 들어 훨씬 더 크게 부각 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향후 어떤 정권에서나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로 재생산될 것이 분 명하다. 사회권력의 개방과 시민사회의 민주화를 통해 소통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장애를 넘어서기 위한 실질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이 새로운 운동주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참여정부 이래의 정치변동과 그로 인 한 사회균열이 소통과 통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정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부각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새로운 주기는 훨씬 더 근원적인 사회구성의 변화와 결부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근대 사회구성의 주요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 는 거대한 구조변동의 효과가 시민운동의 새로운 주기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대 사회구성의 핵심적 질서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영역이 최근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의 거대경향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영역은 상호배타적인 질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협치의 제도에 따라 영역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아울러 근대적 질서에서 사회통합과 공 동성을 지탱하는 기반이었던 국가의 공공성이 크게 약화됨으로써 공적 질서와 통합의 기능 이 시민사회와 시장영역에 할당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강제적 공공성과 시민사회의 자율적 공공성의 요소는 근대적 질서에서 이미 강조되는 바이지만, 시장영역이 공공성을 획득함으로써 ‘시장공공성’을 확보하게 된 것은 최근의 사회변동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시장공공성은 기업 활동에 시민사회의 공적 가치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이른바 사 회공헌활동을 전략적이고도 기업 내화된 방식으로 추구하는 데에 주목할 수 있다. 시민운동 단체 또한 이 같은 공적 활동의 확대를 위해 기업과 다양한 연계를 확대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공공활동을 위해 연계를 이루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 되었다. 동시 에 정부영역이 다양한 민영화정책을 통해 시장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최근 기업과 시민단체의 파트너십 강화현상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 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 같은 공 공성의 재구성 과정은 정부와 시장의 연계, 정부와 시민사회의 연계에 이어 ‘시장의 시민사 회화’ 와 ‘시민사회의 시장화’라는 새로운 사회구성방식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무엇보다도 근대 사회구성의 구분되는 질서로서의 시민사회영역과 이러한 영역구분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기존의 시민사회론에 대해 전면적인 재인식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근대적 사회구성방식에서 시민사회는 다양한 이론적 흐름을 거쳐 국가 및 시장에 대립적이거나 자율적인 질서로 설정됨으로써 이른바 시민사회론이 사회과학의 주요 논점으로 부활한 바 있다. 목적 합리적 행위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 국가 및 시장의 질서와 구분되는 시민사회는 의사소통의 질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 및 시장체계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대립적 진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공공성의 재구성이 확대되고 국가와 시 장, 시민사회 간의 기능적 호환성이 증대된다면 뚜렷이 구분되는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시 민사회’가 강조되기 보다는 영역의 구분을 뛰어 넘어 보편적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 공동체’를 전망할 수도 있다.

시민공동체 패러다임은 국가공공성과 시장공공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공공성이 결합된 사 회구성을 지향하는 일종의 이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각 영역이 협치적 공동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