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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표상은 서양 근대 철학에서 핵심적인 용어들이다. 니까야 번역자들은 별 다 른 설명 없이 그 두 말을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번역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인상은 경험론, 표상은 합리론에서 쓰는 용어이다.

서양 근대 철학은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이성론)으로 나뉜다. 이 둘의 차이 는 감각 지각의 경우 ‘인상과 표상’으로, 사유의 경우 ‘오성悟性과 이성理性’이라는 말 로 대표된다. 경험론은 ‘인상과 오성’이라는 말을 쓰는 반면, 합리론은 ‘표상과 이성’

이라는 말을 쓴다.

‘사물=실체+속성’이라 하면, 속성→주관으로 들어옴, 즉 감각 지각되면, 마음에 정 보가 생긴다. 이를 경험론은 ‘인상印象’, 합리론은 표상表象이라 한다.

인상印象은 impression의 번역어이다. im+press, 안으로 누름, 즉 찍기이다. 인쇄, 도장 찍기를 뜻한다. 또한 내 마음에 눌려서 찍힌 것, 즉 인상 느낌을 의미한다. 印象 은 ‘도장 찍힌 모습’이라는 뜻이다. 인상은 대상의 속성이 내 마음에 찍히는 것이다.

인상은 대상의 속성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내 마음은 빈 서판(타 블라 라사)여야 한다. 대상은 능동적이고, 주관(마음)은 수동적이다. 대상이 마음에 도장 을 찍기 때문이다.

표상表象은 독일어 Vor·stellung, 영어의 representation의 번역어이다. Vor- stellung은 ‘앞에 내세움’이다. 자기소개, 군대의 열병식, 영화의 상연 등이 그런 것이 다. re·present는 “다시 주는 것, 다시 내세우는 것”이다. 나아가 다시 대표한다. 원 래 있던 것을 모아서 (대표해서) 다시 내세움이다. 국민의 대표자는 국회의원이고, 내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 초상화이다.

表象 - ‘겉으로 나온 모습’이다. 말이 약간 이상하다. 주관이 대상으로 가서, 대상 의 대표자를 ‘앞에 내세운’ 것이다. 대상 안에서 대표적인 것을 끌어낸다. 표상은 대 상의 속성을 내가 가서 가져온다. 속성들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을 앞에 세운 뒤에 그것을 가져온다. 주관이 능동적, 대상은 수동적이다.

표상과 인상의 차이는 다음 두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표상 ㈁ 인상

㈀은 두 사람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트로피이다. ㈁은 한 여자의 열굴이다.

이 둘은 표상과 인상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 이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의 마음, 의지에 달려 있다. 얼굴을 볼 수도 있고, 표상을 볼 수도 있다. 표상이란 대상의 속성 가운데 내가 ‘가져온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대상의 ‘대리인’(representation)이다. 혹은 그것은 내가 대상 가운데에서 뽑아 ‘앞에 세운 것’(Vorstellung)이다. - 이것이 표상表象이다.

㈁ 이 여자의 그림은 누가 보아도 똑같이 보인다. 대상의 속성이 그대로 내 마음에 찍히기(impression) 때문이다. 주관은 수동적으로 대상을 받아들인다. 주관은 텅 비어

있고, 빈 서판(tabula rassa)이다. - 이렇게 받아들인 것을 인상印象이라 한다. 도장처럼 내 마음에 찍힌 것이다.

인상일 경우 두 가지로 보이면 안 된다. 표상일 경우는 둘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인상은 대상의 모습·속성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온다. 마치 도장이 찍히는 것과 같 다. 논리적으로 볼 때, 도장이 찍힌다면, 내 마음은 비어 있어야 한다. 빈 서판이다.

그래야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게 찍힌다.

인상은 영어로 impression이다. 이 경우 주관은 수동적이다. 반면 표상은 주관이 능동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왜 그런가? 내 마음에 이미 이성이 있다. 이성은 대상을 능동적으로 포착한다. 그래서 대상에서 내 뜻에 따라 내가 가져오는 것이다. 사람 얼 굴을 가져올지, 트로피를 가져올지는 내가 결정한다.

*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y, 1685-1753),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등의 경험론자들은 ‘인상’이라는 말을 쓴다. 대상의 속성이, 정보가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와서 도장 찍히듯이 찍힌다. 내 마음은 대상의 속성들 이 찍혀서 정보가 늘어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등 합리론자들은 이에 반발해 서 ‘표상表象’이라는 말을 쓴다. 주관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의지로 차 있다. 적극 적으로 대상의 속성들 가운데 선택해서 받아들인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 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를 쓴다.

이렇게 주관의 능력을 처음 강조한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이다. 감성의 형식, 오성의 12 범주, 이성의 안티노미가 그것이다.

* 사과나 나무 같은 작은 대상들의 경우 우리는 대상의 속성들을 ‘인상’으로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세계의 평화’ ‘우주의 구조’와 같은 큰 대상들은 ‘표상’

을 할 수 밖에 없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대상의 속성들을 선택하고, 그것을 기 반으로 대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 용수의 중관이나, 유식은 모두 이런 식의 인식론이 없다.

따라서 유식의 법상(法相, 사물의 속성)은 표상이 아니라, 인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사물의 속성은 8식 알라야식의 씨앗이 드러난 것(現行)이다. 그 속성이 내 마음에 지각 되면서 욕망을 일으킨다. 법상이 내 마음을 훈습한다. 유루식有漏識이 그것이다. 이는 경험론과 비슷하다. 그러나 유루식은 내 마음의 욕망 감정이 흘러나가서 대상을 색칠 하고, 그것을 인식함이다. 내 마음이 대상을 훈습한 것이다. - 어느 쪽인지 명확하지 않다. 크게 보자면, 붓다가 경험론이고, 대승의 중관 유식은 합리론이다. 붓다의 경우 는 인상, 용수·유식의 경우는 표상이 될 것이다. - 이 역시 명확하지 않다.

Ⅲ. 아비달마 논서에 나타난 상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