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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모습, 특징’으로서의 니미타

니미타를 ‘모습’이라는 말로 옮기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니미타의 뜻이라 할 수 있 다. ‘모습’은 ‘모양, 특징, 특성, 현상’, ‘표상’ 등의 개념들과 연관되는 말로서 경전에 서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뜻이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남자가 젊으면, 여인이 치장하기를 좋아하여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말하고,

점이 없는 것은 점이 없다고 아는 것과 같습니다.28)

인용문은 디가니까야 제2 「사문과경沙門果經 Sāmañña-phala-sutta」에 나온다. 여기 에는 마가다Magadha국의 왕인 아자따사뚜Ajātasattu가 부처님께서 인근에 있는 망고 숲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뵙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자따 사뚜는 육사 외도를 차례로 만난 경험을 말하며 부처님께도 출가 생활의 결실에 대해 서 질문하게 되고 이에 따라 부처님이 수행도를 차례로 설명하는 내용이 이 경전의 줄거리를 이룬다. 이 중에서 타심통他心通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유로써 제시한 것이 바로 위 내용이다. 여기서 얼굴 모습에서의 ‘모습’이 니미타를 옮긴 말이다. 곧 거울 등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점이 있거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니미타는 얼굴의 점처럼 눈에 띄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모습’이 니미타의 뜻 가운데 가장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해 당하는 사례29)는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catunnam ariyasaccānaṃ yathābhūtam abhisamayāya etam pubbaṅgamam etam pubbanimittaṃ yad idaṃ sammādiṭṭhi.”

28) 각묵 역, 디가 니까야 권1, p.254.; DN.Ⅰ,p.80; “seyyathāpi, mahārāja,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ṃ vā ‘sakaṇikan’ti jāneyya, akaṇikaṃ vā

‘akaṇikan’ti jāneyya.”

니미타를 ‘모습’의 뜻으로 옮기지만 그 대상이 외관에만 국한된 경우와 신체뿐만 아 니라 행동거지가 포함되는 넓은 의미의 모습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또 사람이 아 닌 자연의 모습을 언급하는 경우도 모두 ‘모습’의 뜻으로 옮길 수 있는 니미타의 용 례이다.

통찰지를 얻게 되는 [그런] 업에 의해서 인간이 되어서는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자가 되었다.

생겨나는 징표에 능한 자들이 말하였나니, 섬세한 이치에 분명히 능통할 것이라고.30)

이 구절은 디가 니까야 제30 「32상경三十二相經」에 나온다. 경전의 제목 그대로 부처님에게 갖추어진 신체적 특징인 32개의 상(相 모습)이 주제인데 이 중에서 12번째 인 ‘살과 피부가 부드러워서 더러운 것이 몸에 붙지 않는 상’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생겨나는 징표에 능한 자들” 중에 ‘징표’가 니미타를 옮긴 말이다. 곧 부드러 운 살과 피부가 부처님의 신체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징표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이 때의 징표는 ‘부드럽게 보이는 피부’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사실상 신체의 외관(모습)에 해당한다. 몸의 특정한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징표나 특징으로 여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말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원인’의 항목에서 살펴 본 것과 마찬가지로 ‘모습’을 보고 징표나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므로 외관의 국한된 모습의 의미를 가리키는 사례31)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의 특징(lakkhaṇa 모습)과 표상(nimitta)과 행동(apadāna)은 세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29) 각묵 역, 디가 니까야 권1, 제10 「수바 경 Subha sutta」: 디가 니까야 , p.526.; DN.Ⅰ,p.209.;

AN.Ⅴ, p.92. 앙굿따라 니까야 제10집 「열의 모음」 제6장 「자신의 마음 품 Sacitta-Vagga」 제51

「생각경(Sacitta sutta)」 p.203. ; 비구가 자신의 마음 길에 능숙하게 되는 길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 로써 든 것이 다음 넷이다.

AN.Ⅴ, p.94. 제52 「사리뿟따 경(Sāriputta sutta)」 p.205.

AN.Ⅴ, p.97. 제53 「정체 경(Thiti sutta)」 p.208.

AN.Ⅴ, p.98. 제54 「사마타 경(Samatha sutta)」 p.210.

AN.Ⅴ, p.103. 제55 「퇴보 경(Parihāna sutta)」 p.217.

30) 각묵 역, 디가 니까야 제3권, p.282.; DN.Ⅲ,p.158; “Paññā-paṭilābha-katena kammunā manussa-bhūto sukhuma-cchavī ahu. Vyākaṃsu uppāda-nimitta-kovidā, Sukhumāni atthāni avecca dakkhiti.”

31) 각묵 역, 디가 니까야 제3권; 제30 「삼십이상경三十二相經」;

“많은 다양한 징표와 상을 아는 아주 현명한 사람들은 말하였다.” p.288; DN.Ⅲ,p.163,

“Bahu-vividha-nimitta-lakkhaṇaññū abhinipuṇā manujā vyākariṃsu.”;

“전생에 잘 쌓고 지은 업에 의해서 그런 징표는 부족함이 없다.” p.291; DN.Ⅲ,p.165,

“Pubbe suciṇṇena katena kammunā ahāniyā pubba-nimittamassataṃ.”

“수행하고 현명한 상에 능통한 많은 자들은” ; p.294.; DN.Ⅲ,p.168;

“Abhiyogino ca nipuṇā bahū pana nimitta-kovidā.”

“예언에 능통한 자들은 설명하였나니 많은 사람들이 앞에 서서 가는 자가 될 것이라고”; p.296.;

DN.Ⅲ,p.170; “byākaṃsu byañjana-nimitta-dharā, Pubbaaṅgamo bahunnassa h’essati.”

“상을 아는 자들이 많이 모여서 생겨나는 징표에 능통한 자들은 말하였다.”; p.298; DN.Ⅲ,p.171;

“Taṃ lakkhaṇaññū bahavo samāgatā byākaṃsu uppāda-nimitta-kovidā.”

비구들이여, 여기 어리석은 자는 나쁜 것을 생각하고 나쁜 말을 하고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비구들이여,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현명한 자가 그를 ‘이 사람은 어 리석고 나쁜 사람이다’ 라고 알겠는가?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나쁜 것을 생각하고 나쁜 말을 하고 나쁜 행위를 저지 른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현명한 자가 그를 ‘이 사람은 어리석고 나쁜 사람이다.’

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세 가지 특징과 표상과 행동이다.32)

이 인용문은 앙굿따라니까야 제3집 셋의 모음 「생각경 Cinti-sutta A3:3」이다. 여 기서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특징, 표상, 행동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지만 경문의 내용 에서 실제로 구분되지는 않는다. 나쁜 말과 생각과 행동을 저지르는 모습을 특징, 표상, 행동의 세 가지로 나눈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로 판단할 수 있는 모습이나 표시 및 특징을 가리키는 낱말이 셋이 쓰였지만 실제로는 어리석게 말하거나 생각하 거나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을 표현한 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넓 은 의미에서 이때의 니미타는 행동거지를 하나의 사태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앞의 세 인용문에서 ‘니미타’를 ‘모습, 징표, 표상’으로 번역했다. 모습과 징표는 대략 같은 뜻이다. 그러나 ‘표상’은 전혀 다른 뜻이다. 어떻게 해서 ‘니미타’를 ‘모습’

과 ‘표상’이라는 다른 두 말로 번역하는가?

대상 사물은 ‘모습·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물=실체+속성’이다. 여기에서는 ‘속성’이 라는 말 대신 ‘모습’이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대상의 모습을 마음이 지각하면, 마음이 그것의 ‘표상·인상’을 가지게 된다. 마음이 담은 ‘모습’을 일반적으로 ‘표상’이라 번역 한다. (‘표상’과 ‘인상’의 차이는 뒤의 47쪽을 보라.)

붓다는 경험론자이므로, ‘인상’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마음이 담은 대상의 ‘모습’을 ‘표상’으로 번역한다.

* 앞의 인용문에서 lakkhaṇa를 특징(모습)으로, nimitta 표상으로 번역한다. 이는 사물의 ‘모습’과 이를 지각한 마음속의 ‘표상·인상’이 결국은 같은 것임을 뜻한다. ‘니 미타’라고 해도 대상의 모습을 포함한다. 반면 ‘락샤나’라고 하면 꼭 마음이 담은 ‘표 상·인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냥 대상의 ‘모습’이다. 이래서 대승 불교는 ‘락샤나’ 개 념에 주로 근거한다.

32) 대림 역, 앙굿따라 니까야 제3집 제1장 「어리석은 자 품(Bāla-Vagga)」 「생각경Cinti sutta A3:3;

앙굿따라 니까야 1권, p.306; AN.Ⅰ, p.102; “Tīṇ’ imāni bhikkhave bālassa bālalakkhaṇāni bālanimittāni bālāpadānāni. katamāni tīṇi Idha bhikkhave bālo duccintitacintī ca hoti dubbhāsitabhāsī dukkaṭakammakārī. No cedaṃ bhikkhave bālo duccintitacintī ca abhavissa dubbhāsitabhāsī dukkaṭakammakārī kena naṃ paṇḍitā jāneyyuṃ bālo ayaṃ bhavaṃ asappuriso ti. Yasmā ca kho bhikkhave bālo duccintitacintī ca hoti dubbhāsitabhāsī dukkaṭakammakārī tasmā naṃ paṇḍitā jānanti bālo ayaṃ bhavaṃ asappuriso ti. Imāni kho bhikkhave tīṇi bālassa bālalakkhaṇāni bālanimittāni bālāpadānā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