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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체 유부의 아비달마 문헌

이 논서는 설일체유부의 7론 중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것으로, 저자는 지혜 제일 사리불 존자로 되어 있고, 현존하는 한역은 현장의 번역이다.130)

130) 이 논서는 총 20권 전체 12품에서 대략 205 가지 법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서술 형식은 1법, 2 법, 3법 등 10법에 이르기까지 각 법수(法數)에 따라서 용어를 제시한 뒤, 그에 대한 정의와 해설을 덧붙이는 문답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제1 연기품(緣起品)에 따르면 본 논서의 내용은 부처님의 재세(在世) 시에 사리자(舍利子)가 설한 것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족론足論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교법의 전모를 체계적으로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다룬 것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붓다 사후에 그의 말을 풀어 설명하고 연구한 많은 서적이 나온다. 그 대표적인 것 이 “아비달마 Α 족론”이라 이름 붙은 여섯 책이다. ‘Α’에는“集異門, 法蘊, 施設, 界 身, 識身, 品類”가 들어간다. ‘足論’은 ‘발이 되는 논의’이다. 앞의 여섯 가지가 발이 되는 족론足論이라면, 발지론發智論 Abhidharma jñānaprasthāna-śāstra 은 몸이 되는 논 의, 즉 신론身論이다. 족론은 부분적 주제를 다루었다면, 발지론은 그 모든 것을 모아 서 다 다룬 것이다.

아비달마 논서에 ‘족론足論’ ‘신론身論’이 붙은 것은 설일체 유부 계열의 것이다. 스 리랑카에 전해진 아비달마 논서는 상좌부의 것이다. 따라서 ‘足論, 身論’ 같은 말을 붙이지 않는다.

아비달마 집이문 족론Abhidharma-saṅgītī-paryāya-pāda-śāstra : 본문의 내용 구성은 법수法數의 형식에 따라 숫자 1에서 10까지 하나씩 차례대로 늘려가면서 「일법품一法 」에서 「십법품十法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품에서 200여 개가 넘는 항목을 정하 여 각각 설명하였는데, 교의에 대한 갖가지 설명을 취합하고 있다는 뜻으로 ‘집이문 異門(다른 부분들을 수집함)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설일체 유부의 사상을 수 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서의 효시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헌이다.

이 책에서는 초기 불전에서 말한 니미타를 어떻게 해설하고 있는가에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⑵ 6근 수호 이론

‘육근六根’(감각 지각의) ‘여섯 뿌리’이다. 이는 우리의 몸에 뿌리를 박고 있다. ‘눈 귀 코 혀 몸 의식’이 바로 그 여섯이다. 이는 외부 사물의 정보가 들어오는 통로이다.

대상 사물은 ‘모습과 속성’(相 니미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여섯 뿌리’를 통해서 들 어오면, 내 마음에 ‘표상·인상’(相 니미타)이 된다. 바로 이 드나드는 통로인 ‘여섯 뿌리’

를 우리는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6근 수호 이론이다.

본문의 10법 가운데 2법으로 분류한 항목에서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감관[根門]

을 수호하지 않는 것과 음식에 대해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한다. 초 기 불전과 남전 아비달마인 청정도론 등에서 서술했던 ‘6근 수호’ 교설이 여기 북 전 아비달마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이라 한다. 각 품에서 다루고 있는 법수의 예로서는, 단식(段食), 촉식(觸食), 의사식(意思食), 식식(識 食) 등의 4식(食)과, 명(名)과 색(色)의 2법이 있다. 명(名)은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 (識薀), 허공(虛空), 택멸(擇滅), 비택멸(非擇滅) 등이며, 색(色)은 4대종(大種)이다.

그 밖에 3불선근(不善根), 3선근(善根), 3행(行), 3심(心), 4염주(念住), 4성제(聖諦), 4무색(無色), 4사 문과(沙門果), 4처(處), 5온(蘊), 5해탈처(解脫處), 6내처(內處), 6수신(受身), 6계(界), 7등각지(等覺支), 8도지(道支), 8해탈(解脫), 8승처(勝處), 9결(結), 9유정거(有情居), 10무학법(無學法) 등 수많은 교법들 이 분석된다. 특히 교법의 해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수행법을 제시하기 때 문에, 대승 불교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논서이다. - 불교 학술원 아르카이브.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필추苾芻들아,131)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견문이 없는 이생(異生, 凡夫)은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서, 눈의 감관으로 말미암아 상과 수호隨好를 취한다. 곧 그것에 대하여, 눈의 감관을 수호守護하지 않으면, 수호守護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탐애貪愛를 일으키어,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마음을 따라 생기고 자란다.

그는 눈의 감관을 방어하지 않고 수호守護하지 않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눈의 감관 을 수호守護하지 않는다고 하며, 눈의 감관을 수호守護하지 않기 때문에 탐냄과 성냄 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자란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그와 같다.

우선 뜻의 감관을 말해 본다면,

뜻이 법(法)을 알고 나서, 뜻의 감관으로 말미암아 상과 수호隨好를 취한다. 곧 그 것에 대하여, 뜻의 감관을 수호守護하지 않으면, 수호隨好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세 간의 탐애를 일으키어, 나쁘고 착하지 않은 법이 마음을 따라 생기고 자란다.

그는 뜻의 감관을 방어하지 않고 수호守護하지 않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뜻의 감관 을 수호守護하지 않기 때문에,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자란다.132)

과 수호隨好 ; 相은 니미타이다. 대상의 ‘모습’이며, 동시에 마음의 ‘표상’이다.

눈의 감관으로 대상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표상이 생긴 것이다. / 隨好는 (대상에) ‘따 르는 좋음’이다. 예컨대 붓다의 응신(應身 수양의 결과로 받은 몸)이 갖춘 바 80종의 미묘 한 좋은 신체적 특징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相과 隨好는 서로 연결된다. 相은 대 상의 ‘모습, 속성’이고,‘ 隨好’는 대상의 모습 가운데 ‘좋은 것’(好)이다. 隨는 모습·속 성이 대상을 따르는 것, 대상에 속해 있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모습·속성 전체를 ‘相’이라 한다. 相 역시 대상을 따르는() 속성·모습이 다. 隨相과 隨好라고 하면 뜻이 명확해진다.

앞의 번역문에서 그 뒤에 나오는 ‘수호’는 모두 ‘守護’이며, ‘지킨다, 보호한다’는 뜻 이다. 隨好로 오해하면 안 된다. 이런 무성의한 번역이 독자를 완전히 오도한다.

이 경문은 니카야 「깐다라까의 경 MN.51」 「사문과경 DN.2」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 이미 살펴본 적이 있다. 인용문에서는 2법으로 ‘감관[根門]을 수호守護하지 않는 것’과

‘음식에 대해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을 다루고 있는데, 다음 단락에서는 연속해서 감관 수호守護와 음식량 헤아리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본문의 ‘상과 수호隨好’에서 ‘수 호隨好’는 니카야 경문의 ‘아누비얀쟈나(anuvyañjana)’를 번역한 말로 ‘세상細相(미세한 모습, 미묘한 모양)과 같은 용어이다. 감각 기관을 지키지 않으면 탐·진·치가 생겨서 자라 난다는 설정은 동일하게 나온다.

그러나 이 구절 바로 뒤에 나오는 내용은 이전과 달리 육근 수호의 의미를 밝히는

131) 필추苾芻는 pilchu이다. 비구比丘는 산스크리트어로는 bhiksu, 팔리어로는 bhikhu이다. 둘 다 구 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를 뜻한다. pilchu는 bhiksu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아마 여기에서 유래된 것 같다. 주로 ‘비구’라고 한다.

132) 阿毘達磨集異門足論 권2(T26,372b16-25). “如世尊說:苾芻當知,無聞異生眼見色已,由眼根故 取相隨好,卽於是處不護眼根,由住不護起世貪憂,惡不善法隨心生長。彼於眼根不防不守,由斯故說 不護眼根。以不護眼根貪瞋癡生長,耳鼻舌身意根亦爾。且說意根者,謂意了法已,由意根故取相隨 好,卽於是處不護意根,由住不護起世貪憂,惡不善法隨心生長,彼於意根不防不守,由斯故說不護意 根,以不護意根貪瞋癡生長.”

데 단서가 되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어서 매우 주목된다.

그는 도리가 아닌 것[非理]을 생각하여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눈으로는 모든 빛깔을 보고,

귀로는 모든 소리를 들으며, 코로는 모든 냄새를 맡고, 혀로는 모든 맛을 보며, 몸으로는 모든 감촉을 느끼고, 뜻으로는 모든 법을 알되,

여섯 가지 감관(六根)을 방어하지 않고, 평등하게 방어하지 않고,

두루 방어하지 않으며, 감추지 않고, 덮지 않고, 가리지 않으며,

고요하게 하지 않고, 굴복(調伏)시키지 않고, 수호하지 않나니, 이것을 일러서 곧 “감관을 수호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133)

여기서 ‘調伏’은 ‘伏하여 調하다’는 뜻이다. “굴복시켜서 조절함”이다. 붓다가 악마 를 항복시키는 것이 그런 것이다. 調伏은 항복과 거의 같은 뜻이다. 여섯 감각 기관

(六根)을 고요하게(寂靜) 만들고, 굴복시키고, 지켜야(守護) 한다.

“도리가 아닌 것을 생각하여 선택함”이라고 한 것은 ‘非理思擇’을 번역한 말이다.

다음 단락에서 이어지는 감관 수호 설명의 끝부분에 나오는 “이치대로 생각하여 선택 함(如理思擇)”과 반대의 뜻이다. 따라서 ‘不守護=非理思擇’과 ‘能守護=如理思擇’이라는 구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킴’(護)이란 남전 아비달마의 청정도론 의 설명처럼 계율의 항 목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이치에 맞게’, ‘사유하여’, ‘선택하다’는 세 가지가 육근 수호를 실천하는 조건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는 마음이 담은 ‘모습’인 니미타에 욕심 이나 집착을 개입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계율적 성격과는 달리, 사유를 중시하여 수행의 동력으로 삼는 방식이 있었음을 나타내어 주는 하나의 단서라고 생각된다.

⒫ 왜 6근을 수호해야 하는가? 불교의 목표는 고통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의 방법이 수행론이다. 수행론의 핵심이 6근의 수호이다. 왜 그러한가?

붓다는 경험론자이다. 경험론적 분석 ; 사물의 속성·모습 → 마음에 지각되면, 표상·

인상 (정보) → 욕망 감정 → 집착 번뇌 → 고통이 된다.

이 가운데 ‘속성·모습’과 ‘표상·인상’을 ‘니미타’이며, ‘상(相)’이라 한다. 속성이 들어 가서 표상이 되는 통로가 6근이다. 바로 이렇게 표상이 성립하면서, 고통이 시작된다.

따라서 6근을 잘 수호해야 한다. 무상(無相) 삼매도 결국 ‘6근 수호’와 같아진다.

133) 阿毘達磨集異門足論 권2(T26,372b25-28). “彼由發起非理思擇。眼見諸色、耳聞諸聲、鼻嗅諸香, 舌嘗諸味、身覺諸觸、意了諸法,於六根門不防、不等防、不遍防、不藏、不覆、不蔽、不寂靜、不調 伏、不守護,是謂不護根門.”

대상의 모습·속성을 없앨 수 없으며, 동시에 주관에 생긴 ‘표상 인상’도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無相’(相을 없앰)이란 무엇인가? 다르게 말하자면, 6근을 수호한다는 것이 문들 닫는다는 것인가? 감각의 문을 닫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한 다는 것인가?

⒬ 이에 대해서 아래의 ‘출리出離’의 수행법에서 어느 정도 답을 하고 있다. 아래 ⑶ 항목의 끝 부분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