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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의 이념과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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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도시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지금 계층 과 영역간의 문화적 단절과 함께 전통예술의 뿌리가 잘려나가고 매몰되는 현장의 중심 에 서 있다. 모든 삶의 가치가 물질을 지향하고, 소비와 향락을 미덕으로 규정하는 신자유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 오염된 대중문화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시대에 살고 있 다.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문화에 열광하는 대중이 시대를 견인하고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대중문화시대’라 하고, 이런 시대의 대중은 예술의 정신적 가 치보다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손재주를 예술로 포장한 ‘상품화’에 더 큰 관심을 보 이는 속성이 있다. 이 때문에 예술에 대한 자기 확신과 철학도 없고, 자기정체성마저 도 불분명한 사람들이 대중에 영합하는 대중문화상품으로 명리와 부를 얻게 되면서 그 331) 董逌,『黃川畵跋』, 卷 6, 「書崔白蟬雀圖」, "物各有神明也. 但患未知求於此耳."

단맛에 취해 영혼까지 팔아버리는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오직 돈벌이에만 몰입하고 타 락해버리는 현상들에 의해, 순수 예술가들이 최하위의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이 대중 문화시대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전통사회에서의 예술은 대중과의 영합을 금기(禁忌)하여 ‘향수권’을 인정하지 않 으려고 하였지만, 대중의 힘과 영향력이 극대화된 지금의 시대에는 ‘창출권’보다 오 히려 ‘향수권’에 대한 요구가 더 강하다. 따라서 향수권이 확보되지 않는 예술은 현 대예술로 살아남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이한 것은 향수권에 창출자의 창의성과 독자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대의 향수자들은 창의성과 독자성이 확보되 는 않는 작가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도 자기만의 곡해석이나 편곡을 바탕으로 한 독자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내치는 것이 오늘의 대중인 것이다.

흔히들 대중은 무식하고 천박한 집단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대중은 전통 사회에서의 대중처럼 무지한 집단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창출자의 무식과 대중의 무지를 희석시킴으로서 공생을 모색하려는 작가와 대중의 묵시적 담합 이다. 서예는 이지적감성에 의존하는 예술이다. 이러한 관점은 서예술의 표현이 창출 자의 지적수준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특히 문사철(文史哲)은 서예술표현 의 기반이고 원천이다. 따라서 서예가의 지적 수준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의 학식과 교양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평생을 명리만 쫓는 속서가(俗書家)들의 한계 를 극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술과 대중은 창출자와 향수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보완적이고 의존적인 관 계로 발전해 왔다. 예술은 물질문명에 찌들고 오염된 대중의 어두운 영혼을 정화(淨 化)하고, 삶에 대한 열정을 재충전하는 정신에너지로 기능한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불문하고 예술이 향수자의 욕구와 갈증을 외면할 수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고급문화인 예술의 향수자는 예술의 존립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들 대 중은 언제나 예술창작의 변화를 갈망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요구한다. 정서적 안락을 희구하는 본능적 욕구, 즉 정서적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종교와 예술에 관심을 가지 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가수는 가창력 하나로 향수자인 대중으로부터 대중예술가로 인정을 받았지 만, 지금의 시대는 가창력 못지않게 자기표현능력과 음색과 창법의 독자성을 강요받고 있으며, 이는 곧 대중음악의 다양성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가창력은 모창으로부터 비롯되지만 모창이 곧 가창력으로 귀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서예도 필력이 서예술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고, 그 필력은 임서로부터 얻어진다고 굳게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서예가들이 임서능력이 곧 필력으로 직결된 다고 믿고 있을 때, 대중은 음악에서의 모창이 가창력과 상관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처 럼, 서예에 있어서도 임서와 필력이 상호 의존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은 인정하 지만 그것이상의 불가분의 관계 즉 절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 다. 필력은 획을 긋고 글씨를 쓰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본질을 읽고 해석하면서 자 기만의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표현능력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예의 전시장에 가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대형 공모전 이나 그룹전에 출품된 수 백 명의 작품이 동질성으로 복제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서예에서의 창신은 전통을 자기 자신의 감성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직접 편곡 하여 자기만의 음색과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 도 모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정통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한국서예의 흐름은 언제나 가난한 중심세력보다는, 명리에 오염된 변방세력의 패거리 문화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그것이다. 풍요로운 물질사회의 문화혜택으로 문맹자가 없 는 세상을 열고 있으면서 모든 사람이 글자는 알아도 글을 아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문자를 모르는 서예가는 없어도, 생성과 소멸이라고 하는 생명의 순환질서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를 아는 서예가는 많지 않은 것은 서단의 불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위자연의 도법(道法)을 모르고 서법을 안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다. 무위의 도법이 곧 서법이기 때문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대중처럼 무지하지 않은 지금의 대중은 향수자로서의 권리인 다양성과 독자성을 요구하고 변화를 갈구하지만, 서단의 기득권자들은 이를 이해하고 수용할 지적능력이 없었다. 도제교육에 의존하는 서예가들의 지적수준과 사고영역이 현대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대중보다 뒤떨어진 상태에서 한 시대와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창출능력은 이미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론의 전통적 수구사상과 서법의 고정관념에 빠진 그들만의 이기적이 고 독선적인 사유체계는 편견과 아집, 그리고 오만의 틀 속에 갇힌 채, 변화하는 시 대의 흐름과 새로운 사회의 문화적 갈증을 읽어내지 못함으로서 향수자의 이반과 함 께 서예술의 몰락을 자초한 배경이 된 것이다.

공능(功能)으로서의 기능적인 필력이 아무리 빼어난 기량을 발휘한다고 할지라도

[도 25 ] 전종주,

<자연의 노래 - 가림토 III>, 종이에 먹, 140 × 165, 2010.

자기성찰과 자기 확신을 토대로 한 자기표현능력과 획의 독자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의 시대는 예술표현의 차별성과 독자성 을 작가의 기능적인 공능(功能)보다는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이후 인류가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면서 인간다운 삶과 그 가치에 대한 수 많은 담론이 있어왔고, 그것을 실행하는 의미 로서의 정치적 이념이 수없이 진보하고 진화 하면서 정신문화가 발전해 왔다. 고도로 발달 된 과학기술과 산업사회의 메카니즘에 대하여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는 인류학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가장 큰 인문 학적 가치와 덕목은 ‘자유’와 ‘인권’이 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성과 독자성을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정신 인 것이다.

예술가의 영혼이 항상 자유로워야 하고, 그 감성이 물처럼 맑아야하는 것은 어디에 도 걸림이 없고 멈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상상의 바 다에서 비상할 때 창의력이 발현되고, 그 창의력은 예술가의 생명으로 기능하는 것이 다. 장자의 『소요편』에 ‘곤어(鯤魚)가 붕새로 변하여 남쪽바다로 날아가는’상상 의 세계는 예술가에게 있어서 필요한 ‘절대자유’에의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처 럼, 새롭게 솟아오르는 맑은 물결로 출렁이는 상상의 바다야말로 예술가에게 있어서 는 창작의 근원이고 원천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배제된 예술은 궁극적으로 예술일 수가 없다. 모든 예술은 상상력 의 발로(發露)이고, 그 소산(所産)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전개되고 있는 서예술이 어떤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출되고, 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연상(聯想)의 날개 를 펼치게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세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언급한 내용은 서예가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내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교육(書藝敎育) 기관이었 다고 생각한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쓰여진 아름다운 서예(書藝)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정규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서체(書體)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예과목을 듣 기 시작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서체를 만드는지 에 대해 배웠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 묘함을 갖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다.

당시 나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 움이 되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다.

내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Windows)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 지 않았고, 서예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332)

스티브 잡스는 과학기술과 예술이 접맥하는 디지털문화시대의 산업생산품은 제조에 앞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처럼 인문학적 통찰력과 예술적 감수성 이 없는 제품은 시장에서 호응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곧 예술적 창의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서적 연대감과 심리적 안정감은 과학기술과 예술 이 융합한 첨단 산업의 상품가치에 독자적 아우라(Aura)로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서예는 처음부터 끝까지 획일적인 필획만으로 완성된다. 이는 필묵으로 문자를

332)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의 2005년 6월 12일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연설문 부분.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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