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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론(寄情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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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는데 이것들은 모두 작품이 지니고 있는 활발한 정신적 자질로, 그것은 서예의 아 름다움을 이루는 하나의 기본요소이다.

채옹(蔡邕)은 “음양이 모두 살아 있어야 형세가 나온다.”185)라고 하였다. 서예의 아름다움은 기(氣)와 운(韻)의 화합물이다. 기가 직관적인 형체의 미에 편중되어 있다 면, 운은 반대로 그것이 포용하고 있는 의취, 정감, 풍채(風神),격조 등의 내재하는 아름다움에 편중되어 있다. 만약 기가 강조하는 것이 형식상 변화의 풍부함이라면, 운 이 강조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의 깊고 넓음이다. 기와 운은 실제로 도우며 분리될 수 없다.186)

유희재는 “고상한 운치와 깊은 정서, 굳센 성질과 호방함 이 중 하나라도 서예에서 없어서는 안된다.”187) 라고 하였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 당시의 기사상(氣思想)은 생성론적(生成論的)인 일면과 양생론적(養生論的)인 일면과의 두 가지 시각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자를 해석함에 있어 하상공(河上公)은 적극적으로 기사상을 통하여, 그것도 생성론적(生成論的) 기(氣)와 양생론적(養生論的) 기(氣)의 관련성에 서 도(道)를 이해하려 했다,

성정을 나타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작가의 정감과 내용이 충만되어 있는 글씨라야만 진정으로 예술의 가치와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서예에 있어 내재적인 주관과 주체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예의 서정 표현의 본질적 공능을 강조한 대 표적 인물은 당나라 한유(韓愈)로서 ‘유정설(有情說)’의 원조가 되었으며 이후 송나 라의 소식(蘇軾)이 이러한 시대사조를 선도하였다. 서예에 있어 성정표현을 주된 미학 관점으로 본 시대는 송나라이며 정감과 주관, 개성을 중시하는 미학 사조를 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신채론’에서 작가의 성정과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과 유사하 다 할 수 있다.

서예사를 보면 중국 문자의 서사는 오랜 변천 과정을 거친 후 동한 말에 이르러 특 별한 전환을 하게 하게 된다. 이 전환을 간단히 소개하면 첫 째, 과거의 서사는 실용 서사와 심미적 서사에 대한 구분이 모호했으나, 동한에 이르러 실용 서사 계통과 심미 서사 계통 사이에 분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둘 째,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에서 의 서예가가 처음 출현하며, 세 째, 이 시대에 전문 서예 이론이 처음 나타나는 것이 다. 이는 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미적 추구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러 나타난 당연한 결과로서 본격적인 중국 서예사는 이 때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빛낸 대표적 서가로 두도(杜度), 최원(崔瑗), 장지(張芝), 채옹(132~192) 등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이들을 서예사의 제 1 세대 인물로 분류한다. 중국 최초로 서예를 논한 글은 최원(78~143)의 『초서세(草書勢)』이지만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이론적 색채가 분명한 서학 사상은 채옹189)의 서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채 옹의 서론은 현재 『필부(筆賦)』, 『필론(筆論)』, 『전세(篆勢)』, 『구세(九勢)』

의 네 편이 전해 오는데 형이하학적인 기교는 물론이고 서 예술의 형이상학적인 본질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도 심도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후대의 서론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채옹이 쓴 『필론』은 글 쓰는 자가 응당 가져야 할 정신 상태를 논술하였고, 『구 세』는 운필하는 규칙을 논술한 것이다. 이 중 『필론』과『구세』는 다른 두 편에 비 해 서 예술의 본질적 특성을 한층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필론』과

189) 채옹(蔡邕,133∼192년)은 동한의 문학가이며 서법가이다. 자는 백개이며 진유 어(지금의 하남 기현의 남 쪽) 사람이다. 영제 때에 의랑 등의 벼슬을 하였는데 동탁이 죽임을 당한 후에 왕 윤에게 체포되어 감옥 안에서 죽었다. 경적과 역사, 음률, 천문에 능통하였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전서, 예서에 능하였다. 또 전하는 말에 일찍이 홍도문에 장인이 글씨를 쓰는 것을 보고 능히 (서체를) 계발함에 이르러 「비백서」

를 창조하니 원래 <채중랑집>이 있었는데 이미 잃어버렸으나 후세 사람들이 수집한 책이 있다.

『구세』를 중심으로 채옹의 미학 사상을 검토하기로 한다.

채옹(蔡邕)은 ‘글씨는 마음을 풀어낸 것이다(書者散也).’라고 말했다. 여기서

‘산(散)’이 뜻하는 의미는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곧 글 씨를 쓰는 사람은 정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190)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書)는 내면의 정감을 토로하는 활동이다. 서작에 들어가기 전 가슴 속에 있는 각 종 번거로운 생각들을 내려놓고 마음이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여러 일로 인해 마음이 초조하다면 저 유명한 중산의 토끼 털 붓이 있다 해도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서작시엔 먼저 조용히 앉아 생각을 가라앉혀 기분이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옆 사람과 이야기 한다든지 호흡이 고르지 못해도 안 된 다. 마치 임금을 대하듯 정신을 집중한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191)

위의 말이 뜻하는 것은 한 서예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그의 정신 상태가 어떠한가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성공 하는가 실패하는가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에 임 박하여 정서에 영향을 준다면 아무리 좋은 도구를 사용할지라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의 미이다.192) 마음과 정신이 고요하지 않고 일에 시달린 상태에서 글씨를 쓰게 되면, 글 씨 또한 분망하고 피로한 기색이 드러나게 된다.

중국에서 서론은 출현하자마자 서예술의 본질적 특성을 이렇게 단 한 글자로 규정했 다. 이는 현대 예술의 관점에서도 손색이 없는 이론으로 우리는 채옹의 천재성에 감탄 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채옹은 필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글씨를 쓰려고 할 때에는 먼저 마음속에 있는 것을 풀어야 한다. ……대저 글씨라는 것은 먼저 조용히 앉아서 생각을 가라앉히고, 뜻의 적당한 바를 따라야 한다. 이 때 말을 입에서 내지 말고, 기가 숨이 차지 않게 하면서 정신을 가라앉히고, 조밀한 생 각으로 신채를 발하게 되면 마치 지존을 대하는 것 같아 좋지 않은 것이 없다.193)

190) 갈로, 전게서, p. 35.

191) 蔡邕,『筆論』, "書者, 散也. 欲書先散懷抱, 任情恣性, 然後書之. 若迫于事,雖中山兎豪, 不能佳也. 夫書 先默坐静思, 随意所适, 言不出口, 氣不盈息, 沈密神彩, 如對至尊, 則無不善矣."

192) 吳明南,『書論選讀』, (美術文化院, 2004), p. 14.

193) 蔡邕, 상게서, "欲書先散懷抱,···, 夫書, 先默坐靜思, 隨意所適, 言不出口, 氣不盈息, 沉密神 采, 如對至尊, 則無不善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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