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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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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이론은 동한(東漢)시기와 육조(六朝)시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논저가 집필되었 고 특히 당대(唐代)에 이르러 당태종의 왕희지 숭상과 관리 채용에까지 서예술을 도입 함으로써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발달을 가져오게 된다.

그 최고의 자리에 손과정(孫過庭)86)의 『서보(書譜)』가 위치한다 해도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손과정(孫過庭)은 ‘골기를 보존하도록 노력하다(務存骨氣).’라고 말하여 골기론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손과정은 당나라 초기 우세남(虞世南)과 이세민(李世民) 등이 체계를 세운 서예 미 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손과정의 역대 서예가에 대한 인식은 왕희지를 표준으로 하고 있으며 종요와 장지 그리고 왕헌지를 함께 비교하며 그들을 서예 비평의 대상으

피해 오다가 낙마해 죽었으니 진나라가 남천한 동진(317-420) 이후 과부로서 글씨에 더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종요(鍾繇)의 법을 얻어 예서를 특히 잘 쓰고 정서(正書)도 오묘한 경지에 들었으며, 왕 희지도 어려서 그녀를 배웠다고 한다. 갈로著, 강관식 譯, 『중국회화이론사』( 돌베게, 2010), p. 90참 조.

85) 王羲之,『筆勢論十二章』, “放縱宜存氣力, 視筆取勢.”

86) 손과정(孫過庭 648?~703?)의 자는 건례(虔禮)이며 부양(富陽 , 절강성) 사람이다. 고전을 좋아하고 문학 적 명성이 높았으며 더불어 이왕(二王)을 천착하여 이론과 실기를 겸한 초서의 대가였다. 당(唐)의 장회 관(張懷瓘)은 『서단』에서 손과정의 글씨를 "儁拔剛斷 尙異好奇"라고 평하고 신(神)·묘(妙)·능(能) 3 품 가운데 능품에 배열하였다.『서보』의 글씨에 대하여 당대에는 천편일률적이라서 변화가 적고 운필이 너무 빠른 단점이 있다고 평가절하 되었으나, 북송 이후에는 초서의 전범으로 숭상 되었다. 40세에 벼슬 하여 우위주조참군과 솔부록사참군(率府錄事參軍)에까지 이르렀으나 참언으로 물러나 빈곤하게 살다가 낙 양 식업리(植業里)의 객사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로 삼았다.『서보』에서 손과정이 논술한 다양한 서예 이론과 미학은 바로 왕희지의 서예를 이상으로 하는 미학 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왕희지의 서예 속에서 손과정은

‘중화(中和)’의 심미적 표준을 탐색하였고 그것을 서예 미학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주역(周易)』을 비롯하여 『논어(論語)』, 『예기(禮記)』, 「악기(樂記)」, 『노자 (老子)』, 『장자(莊子)』,『회남자(淮南子)』등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혼융하여 자 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청나라의 유희재는 일찍이 평론을 통하여 “왕희지의 <낙의론(樂毅論)>·<동방삭화 찬(東方朔畵讚)>·<황정경(黃庭經)>·<태사잠(太師箴)>·<蘭亭序(난정서)>·<고서문 (告誓文)> 등과 손과정의 <서보(書譜)>를 논하면서, 정감과 의미, 정신과 사상의 정미 함을 극도로 추출하였다. 왕희지는 사물로 인하여 깨달았고 손과정 또한 근본을 알았 던 사람이다.”87) 손과정을 말하면서 정감과 의미 그리고 정신과 사상의 정미함을 극 도로 추출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는 손과정이 이미 왕희지의 내재적인 정감 의식 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88)

[도 4 ] 손과정, <서보(書譜)>, 당, 서첩, 종이에 먹, 대만고궁박물원.

손과정의 『서보(書譜)』는 서(書)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많은 부분 주역의 이론을 통해 규정하고 있다. 중국 미학에서 서예술의 원천은 역의 팔괘에 근본하고, 팔괘는

87) 劉熙載, 전게서, “右軍樂毅論, 畵象贊, 黃庭經, 太師箴, 蘭亭序, 告誓文, 孫過庭書譜論之, 推極情意神思 之微. 在右軍爲因物, 在過庭亦爲知本也已.”

88) 송민, 전게서, p. 114.

모든 조형의 시원이 된다고 본다. 나아가 서예술은 천지의 도, 천지의 마음의 철학을 그 형이상학적 근거로 삼는다고 본다. 손과정은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정이 일어나 언어로 표현된 것은 시경이나 초사의 뜻을 모아 체득한 것이고, 양이 펼쳐지고 음이 움추려든 것은 하늘과 땅의 마음에 근본 하였음을 어찌 알겠는가?89)

이 문장은 크게 두 가지를 말해 준다. 하나는 서예술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서예술은 천지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다.90)

손과정은‘서법에는 많은 표현이 있으나, 골기(骨氣)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골기가 가리키는 것은 붓을 사용할 때 내재하는 힘과 종이 위에 점 획이 바깥으로 나타나는 힘이다. 마음대로 종이위에 먹 점을 뿌리는 것은 골기가 없는 것으로 필력은 말할 것도 없다. 붓글씨를 못 쓰는 사람이 마치 솔을 가지고 페인트를 칠하는 것처럼 멋대로 종이 위에 끄적거리는 것 역시 골기가 없는 것이다.91) 손과정 은 골기(骨氣)에 대하여 서보(書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여러 서예가의 정미한 장점들을 모두 취하고자 한다면 역시 골기(骨氣)를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다.92)

또 자연의 오묘함이 있는 것과 같고,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93)

손과정은 골기가 있은 다음에 힘과 윤택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더해야 한다고 말한 다. 혹여 어느 작품에 골력이 너무 지나치면 수려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고, 반대 로 수려함이 우세해지면 골기는 부족해지므로 어느 한 방면에 뛰어나기는 쉬우나 진 선진미(盡善盡美)는 그야말로 이루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94)

그는 또 서예를 다양한 변화와 기운이 생동하는 예술로 인식하였다.『서보』에서 손 과정이 서예를 ‘표정달성(表情達性)’의 예술임을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논증한 것은 중국 서예 미학 이론사에서 서예를 예술로서 완전하게 자각한 최초의 이론가로 평가받 고 있다. 손과정이 서예의 학습과 창작, 감상과 비평 등의 이론에서 요구한 미학 사상 89) 孫過庭,『書譜』, “豈知情動形言, 取會風騷之意, 陽舒陰慘, 本乎天地之心.”

90) 조민환, 전게서, p. 425.

91) 천팅여우. 『중국문화-서예』, 최지선 譯(도서출판 대가, 2008), p. 54.

92) 孫過庭, 전게서, “假令衆妙攸歸, 務存骨氣, 骨旣存矣.”

93) 상게서, “同自然之妙有, 非力运所能成.”

94) 손과정, 『손과정 서보 역해』, 임태승 譯(미술문화, 2008), p. 90 참조.

은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까닭은 그가 ‘화이부동 (和而不同)’의 철학을 미학 사상의 튼튼한 바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논 어(論語)』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고 한 철학적 명제를 ‘필획이 서로 위배되지만 침범하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 지만 일률적으로 똑 같지는 않다.(違而不犯. 和而不同.)’의 미학적 명제로 발전 승화 시켰다. ‘옛것은 시대에 어긋나지 않고, 지금의 폐단을 함께하지 않는다(古不乖時, 今不同弊).’고 한 미학 관점은 역사에 대한 변증적 사유를 ‘중화(中和)’의 미학 사 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면 ‘위이불범, 화이부동(違而不犯. 和而不同).’의 관점은 서 예의 형식미에 대한 변증적 사유를 ‘중화’의 미학 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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