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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와 서법(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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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술과 수묵화는 필묵이 조형하는 예술이다. 필묵이 그리는 점과 선, 농담의 색조 는 자유로운 흐름과 물결, 정감어린 정서의 스며듦을 가지기 때문에 인간 마음의 움직 임, 생명의 감동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묘법은 유럽 의 회화예술에서의 도찰법(塗擦法)과 크게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48) 서법은 물상을 반영할 때 회화와 달리 직접적으로 물상의 외형을 본뜨는 것이 아니 라 물상을 제련하고 간략화한 후 추상적으로 표현해낸다.49) 이처럼 서예가들은 모두 자연을 배우고 모방하며 물상을 개괄한 후 점과 획으로 표현하는데, 획은 서예의 예술

47)『中國書藝論文選』, 郭魯鳳 譯(東文選,2000), pp. 47~49.

48) 조민환, 전게서, p. 156.

49) 동병종, 전게서, p. 48.

적 매개이다. 그림과는 달리 서예에서의 획은 한번 그으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석 도는 그의 『화어록(畵語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번 그음이라하는 것은 서예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손을 대기 시작하는 최초의 기본 훈련이요, 그 그음의 변화는 붓을 쓰고 먹을 쓰는 가장 기초적인 법칙이 며 질서다.50)

서예는 상형적 도화 문자를 점차적으로 정화 내지는 순수화시켜 추상적인 획과 결구 로 변화시킨 것이다. 정화된 획이 바로 서예의 미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도안 무늬의 형식미나 장식미와는 다른 것으로 진정한 의의는 의미가 있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일 반적 형식미는 항상 정지되어 있고 형식화·규격화되어 현실적인 생명감과 역량감을 잃고 있다. 그러나 의미 있는 형식은 유동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풍부한 생명의 암시와 표현력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획을 위주로 하는 서예는 전자가 아닌 바로 후자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대칭을 이 루는 형식미가 아니라,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인 자유로운 아름다움이다. 이는 마치 구 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는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고, 골력(滑力)이 바람을 따르는 것 같아 부드러움도 있고 강함도 있으면서 모나고 둥근 것이 법도에 맞는 것과 같다.

따라서 서예의 한 글자 또는 한 행 나아가서 하나의 작품은 모두 창조와 변혁이 있으 며, 심지어 개성이 있는 것으로 기계적인 중복과 딱딱한 법도에만 얽매여서 쓴 것이 아니다.51)

서예와 수묵화는 주로 붓․ 먹․ 종이와 물을 도구와 재료로 사용한다. 서법은 흰 종이 위에 검은 획으로 쓰는 예술이고, 회화의 화면도 우선 흑색과 백색이며, 색채의 중요 성은 점점 경시되어 심지어 물과 먹으로만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서법과 회화에서 중요한 것도 흑과 백 두 색이다. 서법과 회화에서 흑과 백은 주체이 자 배경이며, 여백의 흰색은 경우에 따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두 색의 결합은 서화에서 먹색으로 그려진 흑과 백의 화면을 구성했다.

서법 가운데 「영자팔법(永字八法)」 은 필법 가운데 여덟 개의 가장 기본적인 필법 인 측(側) ‧ 노(努) ‧ 적(趯) ‧ 책(策) ‧ 약(掠) ‧ 탁(啄) ‧ 책(磔)으로 개괄화된 이론의 총결이다. 이러한 기본 필법이 바로 ‘법식’이다.52)

50) 石濤, 전게서,「運腕章」, "一畫者, 字畫下手之淺近功夫也. 變畫者, 用筆用墨之淺近法度也."

51) 송민, 전게서, p. 236.

52) 동병종, 전게서, p. 48.

서법은 물상형태의 속박을 철저하게 떨쳐버렸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게 물상의 본질 을 표현할 수가 있었고 더더욱 작가 내면에서 동요하는 정감을 펼쳐낼 수 있었다. 이 렇기 때문에 가장 집중적이고 두드러지게 동양 예술의 특징을 나타내었다. 서법을 감 상하는 지식 없이는 동양의 미학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중국의 건축을 예 로 들면 그 조화와 형식의 아름다움도 서법의 풍격에서 기원하지 않은 것이 없다.

중국의 현대서법가 심윤묵(沈尹黙)은 일찍이 이렇게 말하였다. ‘서법은 항상 외국 의 인사들로부터 가장 미묘하게 인류의 고상한 품성과 시대의 발전정신을 표현하고 전 달할 수 있는 고급예술로 공인되었다.’ 임어당(林語堂)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만약 중국 서법과 그 예술적 영감을 알지 못한다면 중국의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현대미학가 종백화도 ‘중국의 음악은 쇠락했지만 서법은 도리어 음악을 대신해서 최고 경계와 지조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민족예술이 되었다.’라고 말하였 다.53) 종백화(宗白華)는『미학산보(美學散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허신은 《설문해자》 서문에서 문자의 정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창힐이 처음 글자 를 만듦에 대개 형상의 형태에 의거하였기 때문에 이를 文이라고 하였다. 그 뒤에 형 태와 소리가 서로 더해지면서 이를 字라고 하였는데, 字라는 것은 불어나서 점차로 많아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문과 자는 서로 상대적인 것이다. 간단한 글자 예를 들어 水木과 같은 것이 문이다. 복잡한 글자 예를 들어 江河杞柳와 같은 것은 자로 서, 이는 형태와 소리가 서로 더해지고 불어나서 점차로 많아진 글자들이다. 이러한 글자를 쓰는 것을 고대에는 정확하게 書라고 불렀다. 서라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 에[書者如也] 글씨의 임무는 바로 같게 하는 것이므로, 쓰여져 나온 글씨는 모름지기 같아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심중에서 사물의 형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추 상적인 점과 획으로 사물 형상의 근본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또한 사물의 형상에 있 는 文으로 하나의 사물 안에서, 또는 물상과 물상이 서로 관계를 갖는 속에서 이루어 진 조리로, 즉 장단·대소·소밀·조읍·응접·향배·천삽 등의 규율과 결구로 이루 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文을 파악할 수 있으며, 동시에 또한 사람에게 그들의 정감의 반응을 반영할 수 있다. 이렇게 정감에서 문이 생기고, 문에서 정감이 생기는 문자는 곧 예술의 경지를 승화할 수 있으며, 또한 예술의 가치를 갖추고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54)

석도는 일획(一劃)의 법을 세워 전 책의 18장(章)을 일관하는 중심 사상으로 삼아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추었다. 이 일획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현대 학

53)『中國書藝論文選』, 郭魯鳳 譯(東文選,2000), p. 56.

54) 宗白華,『美學散步』,「中國書法美學思想」, 宋民. 郭魯鳳 譯『中國書藝美學』(東文選, 1998), p. 234 재 인용.

자들의 해석이 서로 다르다. 일획이란 곧 필도(筆道)라고 말할 수 있는데, 혹자는 이 를 선조(線條)라고 말하기도 한다. 석도는 화법이 형성되는 시초에 대해 이야기하며 태고 적에는 천지의 만물이 아직 혼연일체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법이 없었다고 말 했다. 그 모습을 반영하는 회화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후 자연의 만물이 각각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 그 형태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수단이 곧 일획이다.

천지에 있는 사물의 만상(萬象)은 산천과 인물의 수려함과 뒤섞임, 새나 짐승 또는 초목의 성정(性情), 못가의 정자나 누각의 법식 55) 등등 수 없이 많은데, 이를 묘사하 려면 결국 윤곽을 그리는 필도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필도에서 시작해 어느 하나의 필도에서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일획의 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중국과 외국의 고대 회화는 모두 윤곽선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후 서양화는 면 조 형 위주로 발전하고, 중국화는 선 조형 위주로 발전했다. 일획의 작용은 중국의 서예 에도 적용된다. 석도는 글씨와 그림이 그 두 끝을 갖추고 있지만 그 공(功)은 일체이 다.56)라고 말했다. 선은 회화와 서예의 매우 중요한 표현 수단의 하나이다. 석도의 일획론은 회화에서 선 조형의 작용과 선의 표현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관계된 운완법 (運睕法:붓 잡은 팔을 운용하는 법)등과 같은 이론을 주로 제시한 것으로서 이러한 측 면에서는 마땅히 긍정해야 한다.57)

여러 종류의 필획을 같이 쓰면 그 형상이 다르고, 여러 점을 함께 늘어놓으면 그 모양이 서로 다르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한 점은 곧 한 글자의 규칙이 된다. 또 한 글자를 잘 쓰는 것은 전체 글씨의 준칙이 된다.58)

글씨에 점이나 획, 글자의 짜임, 장법(章法)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도 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법의 한계를 떨쳐 버릴 수 있음이 서예의 진정한 맛이 다. 필(運筆)할 때의 심경과 생리가 우주의 기운에 부합될 적에 자연스럽게 흘러간 획, 짜임, 운 등이 격조 있는 품(品)을 이루는데, 이것은 자신도 다시 흉내 낼 수 없 으며 서예의 자랑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서예의 특유성을 몇 가지만 들어 보면 문자를 가지고 하는 예술, 문자의 모양과 뜻 55) 石濤, 전게서,「一畫章 」, "山川人物之秀錯, 鳥獸草木之性情, 池榭樓臺之矩度, 未能深入其理, 曲盡其態

終未得一畫之洪規也."

56) 상게서,「兼字章 」, "字與畵者, 其具兩端, 其功一體."

57) 갈로, 『중국회화이론사』, 강관식 譯( 돌베게, 2010), p. 476.

58) 孫過庭,『書譜』, "至若數畵幷施, 其形各異, 衆點齊列, 爲體互乖, 一點成一字之規, 一字乃終篇之準."

에서 생겨난 추상 개념을 표현하는 것, 한번 지나간 획은 다시 덧칠하지 않는 일회성, 생체 리듬이나 음악의 리듬과 같은 율동성 그리고 한 작품을 할 때 쉬었다가 다시 하 지 못하는 순간성 등을 들 수 있다.

먹이 붓을 적시는 데는 그 영험스러움이 중요한 것이요, 붓이 먹을 움직이는 데는 그 신묘함이 중요한 것이다. 먹이란 화가가 기나긴 수련을 축적하여 몽매함에서 벗어 나지 않으면 영험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요, 붓이란 화가 자신의 살아 생동하는 체험 의 축적이 없이는 신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수련에 의해서 먹의 영험함을 감지한다 할지라도 그 삶의 산체험이의 신령한 깊이를 체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단지 먹만 있고 붓은 없는 화가의 꼴이 될 것이요, 삶의 체험의 깊이는 감지하고 있다 해도 축적된 기술의 영험스러움을 자유자재로 변조 해 나갈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붓만 있고 먹 은 없는 화가의 꼴이 될 것이다.59)

서예 작품을 보면 흑 속에 백이 있고 백 속에 흑이 있다. 우리들은 종종 서예 작품 에 두 갈래의 길이 있음을 느끼는데, 하나는 검은 점과 선으로 구성된 것이고 다른 하 나는 크고 작은 형상의 상이한 공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두 갈래의 길은 서로 얽히고 맞물려 작품이 유동하는 느낌을 주며 생기가 있게 한다. 흑과 백 속에 동양 철 학의 관념과 심미정취가 포함되어 있다.60)

서예가는 글씨를 쓸 때 자연계의 각종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흡수하는데 그는 점과 선으로 공간에서 글자모양을 만드는 동시에 자기의 주관적 정감과 형상에 대한 완전미 를 추구하여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리듬감을 드러내고 정태적(情態的) 시각 예술을 동 태적(動態的) 표현예술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서법가의 작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 을 본 후에 글자모양 이외에 더욱 심오한 것을 상상하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의경이 있게 된다. 서법의 의경은 세 가지 측면으로 표현된다. 즉 필묵과 선의 형상안의 상 (象內之象), 서법가의 사상과 정감, 심미(審美), 취미 등의 상 밖의 상(象外之象), 그 리고 예술정신의 최고 체현(體現)인 무형의 상이다. 감상자는 종횡의 점과 획이 교차 한 공간의 안배에 풍부한 연상과 상상을 부여할 수 있다. 61)

59) 石濤, 전게서,「筆墨章」, "墨之濺筆也以靈, 筆之運墨也以神, 墨非蒙養不靈, 筆非生活不神, 能受蒙養之靈, 而不解生活之神, 是有墨無筆也. 能受生活之神, 而不變蒙養不靈, 是有筆無墨也."

60) 동병종, 전게서, p. 75.

61) 상게서, p.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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