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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혁(謝赫)의 기운생동(氣韻生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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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란 일종의 조형정신이다. 기운은 형식적으로 필묵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정 신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만물의 이 치가 속살처럼 드러나는 필획과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의 종합적인 관조를 통해서, 그

170) 劉熙載, 전게서, “學書通於學仙, 鍊神最上, 鍊氣次之, 鍊形又次之.”

171) 상게서, “學書者務益不如務損, 其實損卽是益.”

172) 상게서,“揚子以書心畵, 故書也者, 心學也. 心不若人而欲書之過人, 其勤而無所宜矣. 寫字者 寫志 也.”

안에 숨어있는 생명의 율동과 질서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율동과 질서라고 하는 것은 바로 '리(理)'자이고 이는 이치 (理致)를 의미한다.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거나 지식을 통해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일을 유추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고 지식을 섭렵하여 다른 유사 한 것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氣)’의 문제는 예술의 역동성과 관련된 중요한 논제인데, 이는 서예의 필획 (筆劃)이 지닌 살아있는 유기적 생명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 력 (living form)'173)이어야 말로 서예의 필획이 지닌 최상의 예술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기(氣)는 한자문화권의 자연관, 인간관, 그리고 예술관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기본적인 관념이다. 동양의 기(氣)사상은 우주의 만물을 구성하는 근원으로서 물질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생명력과 정신력의 근거가 되며, 나아가 서예의 필획이 지닌

‘생동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생동(生動)은 본래 기(氣) 특유의 본성으로 기의 운동변화로 생겨나는 것이며, 기가 없다면 모두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생동적인 표현이 있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생동은 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움직이는 만물의 존 재와 그 생명의 표현이며, 예술작품의 표현에 있어서도 예외 일 수는 없다.”174) 기운생동은 사혁(謝赫)의 『고화품록』, 「육법」에 나오는 말이다.

육법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요, 둘째는 골법용필(骨法用筆)이 요, 셋째는 응물상형 (應物象形)이요, 넷째는 수류부채(隨類賦彩)요, 다섯째는 경영 위치(經營位置)요, 여섯째는 전이모사(轉移模寫)이다.175)

기운생동은 역대로 서화를 품평하는 최고의 기준이자 동시에 회화창작의 최고의 경 지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사혁은 회화에 관한 육법(六法)을 말할 때 기운생동을 제일 위에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제시하고, 화가는 내적 생명력과 기운을 일정한 필묵 형식 을 통하여 생동적으로 화면에 표현할 것을 요구하는 동양 최고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갈로(葛路)는

173) 김인환, 『동양예술이론』(안그라픽스, 2003), p. 34.

174) 상게서, p. 35.

175) 謝赫,『古畵品綠』, 「古畵品錄序」, “六法者何, 一氣韻生動是也. 二骨法用筆是也. 三應物象形是也. 四 隨類賦彩是也. 五徑營位置是也. 六傳移模寫是也.”

사혁이 기운생동을 육법의 맨 위에 놓은 데서 우리는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기운 이라는 말은 우리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사실 기운이란 고개지가 말한 神이니, 사혁 자신도 기운을 신운(神韻)이라고 칭했다. 사혁이 활동하던 시대의 회화 는 주로 초상화와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였기 때문에 기운의 본의는 인물의 정신적 인 기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후 기운생동의 범위가 산수나 화조 같은 여러 그림 에 확대되었고, 또한 전체적인 회화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것이 되어 필묵의 효과도 포함하게 되었는데, 이는 기운생동에 내포된 의미가 발전된 것이다.’176)

라고 하였다.

그럼 무엇을 '기(氣)'라고 부르는 것일까? 노자는‘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품고 있 다. 충하는 두 기운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고 하여 유 물혼성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음양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세를 포용하 고 조화하는 모든 것이 본래 시작된 원기이다. 기는 형태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 는 오히려 천지 사이에서 채워지고 없어진다. ‘면면히 존재하고 쓰여 짐이 불근하다 (綿綿若存, 用之不勤).’는 말처럼 기는 서(書)라고 하는 구체적이고 미묘한 작은 천 지에서도 역시 무형의 존재로서 한 작품 전체 평면공간에서 채워지고 없어지는 것이 다.

서로 조화되고 서로 연관 지어지는 감각을 바로 '기'라고 한다. 서로 조화되고 연관 지어지는 구체적인 필치 및 그 모양의 구체적인 변화로 생겨나는 리듬감을 바로 '운 (韻)'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와 운은 본래 둘이 아니다. 기운생동이라고 불리어 지는 것은 회화형세가 갖추고 있는 기지유창(氣志流暢) 및 율동(律動)의 미감(美感)일 따름이다.

기운은 곧 생명력의 승화라고 할 수 있다. 도가적 관점에서 보자면 생명의 본질이라 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운은 곧 생동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단지 생동함이 있는 것만으로 기운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운생동의 주체는 기운에 있다.177)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경우 전신필사(傳神筆寫)나 전신사조(傳神寫照), 그리고 천상 묘득(遷想妙得)도 결국은 화가의 정신 상태를 중요시하여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 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에는 스스로 무의식 상태에 들어 무위무아(無爲無 我)의 경지에 임해야 하고 붓을 들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어 야 한다. 화가가 붓을 사용하기 전에 그는 그의 정신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림이 다 완 성되었을 때 그의 그림 그리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그러한 신기 176) 갈로, 전게서, p. 87.

177) 徐復觀, 『中國藝術精神』, 權德周 譯(東文選,1990), p. 220.

(神氣 곧 신바람)에 의해 그림을 그려야 한다. 기운(氣韻)의 근본적인 의미 중에 하나 는 자발성과 자연성이다. 서예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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