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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체계: 제도와 행정

1. 식량 체계

북한은 ‘식량정치(food politics)’를 하나의 체제 작동 메커니즘으로

활용한다. 식량정치란 식량의 생산, 소비, 통제, 배분을 정치적 측면에서 포괄하는 개념이다. 식량이 경제적 성격을 가진다는 기존의 인식에 정치 적 수단의 기능을 더한 것이다(김양희, 2013).

북한은 의식주를 식의주라고 부를 정도로 식량 문제를 중시하고 있다.

김일성은 1985년 10월 22일 정무원 책임일군과 한 담화에서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데서 먹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옷이나 집 같은 것은 부족하여도 좀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픈 것과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먹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의식주라는 말 을 식의주라고 고쳐 쓰도록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김일성은 또 “쌀은 사 회주의다.”라고 하면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면 쌀이 없이는 안 된다.”라 고 하며 ‘알곡증산’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북한 「헌법」 제25조는 ‘국가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마련하여준다.’고 명시하고 있다. 식의주 문제가 기 본적으로 국가사회의 보장인 보편적 복지체계인 것이다. 「사회주의로동 법」 제70조에서는 ‘국가는 로동자, 사무원들과 그들의 부양가족들에게 눅은 값으로 식량을 공급한다.’고 하여, 식량배급이 완전 무상제도가 아 님을 밝히고 있다. 북한은 2002년 7・1조치 이후 쌀 가격을 ‘전반적 가격 제정’에서 ‘기준물자’로 정하며 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북한 이 가격 사업에서 석탄이나 전력 같은 것을 가격제정의 출발점으로 삼아 왔으나 이를 식량으로 대체했음을 의미한다(한국개발연구원, 2003, p.41).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급제도는 체제 출범 초기에 국가가 부족한 물자 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통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이후 일정한 생산력을 갖추게 되면 가격에 의한 물자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폐 지되는 수순을 밟는다. 북한 역시 정권 수립 초기 한시적으로 전면 배급

제를 도입했으나 1957년 이후 양곡을 제외한 일체의 소비품은 배급제를 폐지하였고, 식량배급제는 식량공급제로 전환하였다.

1946년 12월 26일 발표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 제141호는 ‘식 량배급에 관한 건’을 최초로 명문화한 문건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분배 방식은 노동자, 사무원에 대한 것으로 차등적 분배 방식이다.

1947년 5월 1일부터 후속 조치로 실시된 차등적 분배 방식에 따르면 식량배급 기준에서 제1급은 탄광, 특수광산, 화학공장, 유색금속공장, 세 멘트공장, 조선소, 제염소, 기계제작소, 목재산업, 해상운수, 청도운수 등 주로 국가 중요 산업기관에서 근무하는 중노동자들이다. 제2급은 제1급 에 해당하지 않는 노동자 및 기술자와 임시인민위원회서 승인한 개인 기 업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다. 또한 제3급은 국가행정기관, 각 정당, 각 사회단체, 각급소비조합,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무원들이며, 제4급은 1,2,3등급에 의해 부양받는 노동자, 사무원들의 부양가족이다.

〈표 2-2〉 북한의 식량배급 기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 141호

4급 3급 2급 1급 등급

300와(瓦) 500와(瓦) 600와(瓦) 700와(瓦) 수량 180와(瓦) 300와(瓦) 360와(瓦) 420와(瓦) 미곡 비잡곡 120와(瓦) 200와(瓦) 240와(瓦) 280와(瓦) 잡곡 비율

자료: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김양희(2013, p.39)에서 재인용.

이어 1947년 1월 6일 발표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량정부 포고 제5 호’는 식량배급을 시행하기 위한 시행 세칙이다. 여기에는 식량배급 대상 과 배급 기준, 대상자 결정 절차, 배급 사무 절차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 어 있다. 이 포고 제5호는 식량배급 대상을 “북조선 지방에 있어서의 국 가기관, 국영공장, 국가기업소 및 기타 주요 생산기업소에서 근무하는 노

동자, 사무원, 기술자, 교원, 의사, 예술인들과 그의 처, 60세 이상의 직계 비속과 노동능력을 상실한 직계가족(불구자), 실지부양하는 동거종조의 백,(伯), 숙(叔), 제(弟), 매(妹), 질(姪, 60세이상 14세 미만), 중학교 이상 의 학생자녀들에게만 이 식량을 배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1967년부터 성분 조사 사업을 벌여 주민을 3계층 51개 부류로 분류하여 적대계층, 동요계층, 핵심계층으로 분류하고, 식량의 차등 지급 도 국가에 대한 업무의 중요성, 정치적 지위, 사회계급이 서로 결합하여 결정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기준 등을 종합하여 북한의 식량배급 체계는 김일성 가계를 최 상층으로 하여 총 12개 서열로 구축되었다. 먼저 김일성 가계와 당 간부, 보위부를 포함한 상위 5개의 서열은 하루 850g 기준이며, 하위 7개의 배 급 서열 가운데 최하위에 위치한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은 하루 200g, 광 부, 국가방위 일꾼, 산업노동자, 어부는 하루 900g, 비무장지대에 근무하 는 군인들은 하루 850g, 군에 종사하는 관리들, 경공업에 종사하는 산업 일꾼, 교직자, 기술자, 대학생, 평양 주민은 하루 700g, 평양 이외의 주민 들은 700g 보다 적은 양을 배급받으며, 고등중학생, 장애인, 55세 이상 의 여성, 61세 이상의 남성들은 하루 400g, 2~4세에 해당하는 유치원 어 린이들은 200~300g을 지급 받는다(김양희, 2013).

한편 북한은 1996년부터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감량 배급도 어려 워지자 서열 분류를 3개로 축소했다. 북한의 식량배급은 15일에 1번씩 배급소에서 ‘량권’ 교환을 통한 정량 배급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러한 배급 제에 따라 식량을 배급받은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70%이며, 나머지는 농민 등 협동농장 소속의 가구들로 1년에 한 번, 수확기인 9~10월에 결 산 분배를 받는다.

북한의 식량배급 체계는 평양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적용되

지만 해당 지역의 생산 작물과 가용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배급품은 쌀, 옥수수, 보리, 밀, 콩, 감자 등이다. 아울러 식량공급 부족에 대비, 다음과 같은 식량공급 계획을 갖고 있다.

〈표 2-3〉 북한의 식량배급제 현황

연령(세) 보통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 6단계

<1 100 67 65 63 62 61 60

1~4 200 135 130 128 126 125 120

5~6 300 200 195 192 190 185 180

7~10 400 270 265 256 253 250 240

11~16 500 340 330 320 315 310 300

17~59 700 475 460 450 440 435 425

+60 600 400 395 385 380 375 365

모든 연령의 평균 573 400 390 380 375 370 360 자료: WFP et al.(2011.3.24., p.19). 김양희(2013, p.42)에서 재인용.

한편 북한은 1997년 「량정법」을 제정하고 2009년까지 3차에 걸쳐 수 정・보충하였다. 이 법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공급체계는 ‘중앙양정지도기 관’이 기획 통제하며, 도민위원회량정국, 시군구역량정부, 량정사업소와 식량공급소로 전달체계가 구성된다. 「양정법」 제43조는 양곡 공급기준량 에 관해 명시하고 있는데, “로동자, 사무원의 식량은 로동의 힘든 정도와 직종, 대상에 따라 공급기준량과 곡종을 정하여 공급한다. 이 경우 식량 을 정해진 식량공급기준량과 곡종을 다르게 공급하거나 2중으로 공급할 수 없다. 식량공급 기준량과 곡종을 정하는 사업은 중앙로동행정지도기 관과 량정지도기관이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제44조에서 “중앙량정지도기관과 지방정권기관은 식량공급대상 을 정기적으로 정확히 등록하고 식량을 공급하여야 한다. 기관, 기업소,

단체는 식량공급대상 변동정형을 정상적으로 장악하여 해당 량정기관에 재등록하여야 한다.” 규정하고 있다.

〔그림 2-8〕 북한의 식량 전달체계

내각

수매량정성

도 인민위원회 량정국

시, 군, 구역 량정부

량곡중계소 량정사업소

식량공급소

자료: 김양희(2013, p.44)에서 인용.

그러나 「양정법」 등 식량 관련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선 현장 공장기업소, 작업반 등에는 통계원이 배치되어 작업반장과 함께 직 장원들의 출근 상황 등을 파악해서 공장노동과에 보고하고 공장노동과에 서는 정량원이 상주하며 작업정량에 비례하여 배급량을 산정하고 배급카 드를 관리하고 있다(좋은벗들, 2000, p.73).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식량배급 체계는 「헌법」 등에서 무 상주의의 원칙 등 공공부조 형태의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 지만 단순한 사회보장제도가 아니라 노동력을 보상하는 북한식 보상체계

임을 알 수 있다. 생존의 필수 수단인 식량의 배급통제를 통하여 일원적 지배관리체제를 강화하고, 주민들은 이에 대한 순응 기제로서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