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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세

문서에서 파푸아뉴기니 개황 (페이지 13-17)

Ⅱ. 정치․외교․국방

2. 정치정세

가. 개관

ㅇ 파푸아뉴기니는 1975년 독립과 함께 Michael Somare 초대총리가 집 권한 이후, 총 10번의 총선을 실시하였으나 총리불신임안통과가 잦아 정권교체가 빈번히 이루어져옴.

※ 역대 총리 연혁(1972-현재)

총리 주요 연도

Michael Somare

1972 호주 통치 하에 제1회 총선 실시 1975 초대총리 취임

1977 재선(제2회 총선) Julius Chan 1980 취임

Michael Somare 1982 취임(제3회 총선)

Paias Wingti 1985 전임총리 불신임안 통과로 취임 1987 재선(제4회 총선)

Rabbie Namaliu 1988 전임총리 불신임안 통과로 취임 Paias Wingti 1992 취임(제5회 총선)

Julius Chan 1994 전임총리 선출 무효로 취임 Bill Skate 1997 취임(제6회 총선)

Mekere Morauta 1999 전임총리 사임으로 취임 Michael Somare 2002 취임(제7회 총선)

Michael Somare 2007 취임(제8회 총선) Peter O' Neil 2012 취임(제9회 총선) Peter O' Neil 2017 취임(제10대 총선)

나. 최근 정치 동향

ㅇ 2012년 당시 집권한 Peter O'Neil-Leo Dion 정부는 지속적인 경제발전, 법과 질서 확보, 사회 인프라 확충, 교육기회 확대, 국민보건 향상, 정부 조직 개선 등을 국정 주요 목표로 설정하여 추진함.

ㅇ 인도네시아 Joko Widodo 대통령과의 정상회의(2015.5.)를 통해 초국경범 죄예방에 대한 MOU를 체결하는 등 현안인 인도네시아와의 국경지역의 안정을 도모하였음.

ㅇ 또한 역내 최대 문화행사인 Pacific Games(2015.7. 제15회)를 포함, 아프 리카카리브해태평양연안지역 정상회의(2016.5.), FIFA 20세 미만 여자축 구 월드컵(2016.11.) 등을 개최하여 국가 역량을 결집하였으며, 2018 APEC 정상회의를 유치함에 따라 인프라 개선 및 치안확보에 더욱 주력 하고 있음.

ㅇ 그러나 Peter O' Neil 총리 및 집권여당에 대한 불신이 증가한 바 있음.

UBS 해외차관 관련 의혹, 정부의 법률자문 수수료 부당지급 의혹, 전력 계약 문제 및 지방정부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 등에 해명을 요구하는 파푸아뉴기니 국립대학교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2016.5)가 발생, 이를 계 기로 야당대표의 주도로 총리불신임투표가 실시(2016.7)됨.

- 2016년 5월 대학생들이 오닐정부의 부정부패 의혹과 관련하여, 총 리의 명확한 해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수업거부 사태가 있었으며, 국회의사당으로 평화행진을 하려던 대학생들과 저지하는 경찰간 충돌이 발생하고 사태가 악화된 바 있음.

- 이에 야권 정치인인 Don Polye는 국회조기집회 및 총리에 대한 불 신임투표 실시를 대법원에 요청하였고, 2016.7월 실시된 총리불신 임투표 결과, 2017년 총선까지 현 정부를 유지(집권찬성 85, 반대 21)하게 되었으나, 이후 각종 파업이 발생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일반의 불신이 다수 남아 있음.

ㅇ 오닐총리는 내각 구성 후 18개월이 지나야 제출할 수 있는 기존의 불신임 안 제출 유예기간(grace period)을 30개월로 연장하는 법안을 2013.2에 개정하였으나, 주재국 대법원은 2015.9.4.월에 이를 무효화시킨 바 있음.

ㅇ 한편 1997년의 부겐빌 사태 종전 후 자치권을 획득한 부겐빌 자치주는 2019.6.15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파푸아뉴기니로부터 독립여부를 결정함.

ㅇ 최근 총선이 2017.6.24-7.8간 진행되었으며, 총선 결과 2012 총선에 이 어 오닐 총리의 국민의회당(PNC)이 다시 다수당으로 등극하고, 그 결과 오닐 총리가 재집권하였음.

ㅇ 동 총선에서 투개표가 3차례 지연됨에 따라, 여러 잡음이 발생하였고, 엔 가州에서는 경합자간 대립 및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반발로 선거 결과 발 표 후 소요사태가 발생, 인명 및 재산피해가 있었음. 또한, 7.28 기준, 총 111의석 중 80석의 당선 결과만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원장이 당일 기준 최대 다수당인 국민의회당(27석)의 오닐총리와 함께 총독을 방문, 총리선출권을 부여받은 것 등의 절차 및 정당성 관련 문제가 발생 하였음.

※ 2017.8.9 신임각료 명단이 발표된 시점에서도 남하일랜드주 주지사 개표 결과 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임.

다. 부겐빌 사태

(1) 개요

ㅇ 세계 제2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부겐빌 Panguna 동광에서 발생한 수 익을 중앙정부가 미진하게 분배하자, 부겐빌 주민들이 이에 불만을 품어 1987년 동광을 폐쇄하고 중앙정부에 반란을 일으켜 촉발됨

(2) 부겐빌 평화협상 경위

ㅇ 부겐빌 정전협정(1994.10)

- BRA반군과 파푸아뉴기니 정부군 간 파괴, 살해 및 학대금지, 주요 경제시설 및 보건․교육시설 복구, 인권조사관 파견 촉구하는 유엔인권위 결의안을 수용하는 정전협정을 체결하여 사태의 평화적, 정치적 해결 을 모색

- 하지만 BRA의 강경파 지도자 Sam Kauona, Francis Ona, Joseph Kabui 등은 부겐빌의 즉각적 완전독립을 요구하며 동 협정을 무시 ㅇ Mirigini 헌장(1994.11)

- BRA 강경파에 회의를 갖고 있던 대부분의 부겐빌 원주민부락 추장 들과 역시 환멸을 느끼고 이탈한 일부 BRA 간부들은 ‘North Nasioi Village Council of Chiefs’를 조직하고 파푸아뉴기니정부 측과의 Mirigini 헌장에 서명

- 동 헌장은 1995.3까지 부겐빌 지방정부(BTG: Bougainville

Transitional Government)를 조직하고 부겐빌의 정상상태로의 복귀 및 BRA측과의 평화적, 정치적 해결노력 계속 등을 천명

ㅇ 정전협정 취소(1996.3)

- 사태는 대체적으로 소강상태를 유지하며 호주정부와 UN사무총장 이 파견한 대표들의 공동주재 하에 호주 케인즈에서 BTG측과 BRA의 정치조직 BIG(Bougainville Interim Government)간 평화회 담이 개최되는 데에 이르렀으나

ㅇ 의회구성 총선 실시(1999.5)

- 직접선거에 의해 69개 각 선거구에서 선출된 69명을 비롯하여 총 114명의 의원 선출

ㅇ Loloata 양해각서 서명(2000.3)

- PNG정부 대표 Michael Somare 부겐빌 장관과 Joseph Kabui 부겐빌 국민회의 의장간에 부겐빌 평화정착을 위한 Loloata 양해각서 서명 - 동 양해각서는 중앙정부 헌법에 의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부겐빌

지방정부에 전면적인 자치권을 부여한다고 명시

ㅇ 자치부여를 위한 헌법수정안 및 자치정부 조직법안 의결(2002.3)

ㅇ 부겐빌주 자치권부여를 위한 총선 (2005.5)

- 부겐빌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에서 부겐빌국민의회(BPC)의 Joseph Kabui가 초대 부겐빌 자치 정부 대통령에 당선

- 이로써 부겐빌 자치정부는 금후 사법·경찰권을 위시한 광범위한 자치권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최종 독립여부를 결정하게 될 국민 투표를 실시 예정.

(3) 향후 전망

ㅇ 2019.6.15 부겐빌자치주는 독립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 예정임.

ㅇ 일각에서는 2015년 부겐빌자치주 제3대 총선에서 온건 성향의 John Momis가 대통령으로 재선되면서, 부겐빌이 파푸아뉴기니의 자치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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