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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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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자

1997년 세계는 끔찍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났다: 영원히 모 든 것을 백럽(검색)하다.

어이, 금요일 밤 영화 시간 백럽(검색)해줄래?

저기, 버락 오바마 백럽(검색)해주라.

자, 여러분 컴퓨터 켜서 최초의 추수감사절에 대해 백럽(검색)해봅시다.

와. 래리와 세르게이가 추악한 진실을 마주한 사실에 대해 잠시나마 감사의 마음 을 가져보자. 백럽이란 단어는 최악의 단어이다. 래리는 백럽이 야후나 엑사이트와 같은 다른 웹 회사 이름처럼 딱 맞지도 않을 뿐더러 생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럽은 입에 붙지도 신선하지도 최첨단도 아니었다. 또한 동사로써 쓰기엔 이상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동료 대학원생과 사무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브레인스토밍 시간은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대학원 친구 숀 앤더슨이 '구 골플렉스'라는 말을 하자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래리는 바로 그 단어의 줄임말인 구골을 생각해냈다. 우리는 구글이 아닌 구골이 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골은 10의 100제곱이다, 혹은 1 뒤에 100개의 0이 뒤따른다.

숫자 구골은 9살 소년 밀턴 시로타(Milton Sirotta)가 지은 이름이다. 밀턴의 삼촌은 뛰 어난 수학자였고 밀턴에게 그렇게 많은 수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었다. 밀턴은 구골 이 엉뚱함을 나타내는 방면에서 가장 알맞은 단어라고 생각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엄청나게 큰 숫자를 나타내는 구글이 페이지 랭크의 엄청난 가능성을 어떤 말보다 구골이 가장 잘 표현 될 수 있는 단어라 느꼈다. 웹이 커질 수록, 검색 결과는 더 커지게 될 테니 말이다. 웹에 추가된 모든 링크는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인용문을 추가하게 만든다. 구글의 데이터베이스가 클수록, 각 웹 사이트의 실용성 및 사회적 적용가능성의 순위를 매기기 쉬웠다.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같은 새로운 재료를 위해 암석을 채굴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보를 찾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커다란 데이터베이스를 채굴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발견 되지 않 은 정보를 찾는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발견되지 않은 정보는 데이터 채굴의 다이아 몬드 격이다. 이 경우, 데이터는 링크를 의미한다. 다이아몬드는 어떤 사이트의 중요성이 나 신뢰성에 대한 정보인 백링크를 의미한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백럽이 갖고 있지 않은 신선하고, 재미있고, 잊을 수 없는 무 언가를 구골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구골은 타자를 치는 것이 쉽고 심 지어 기억하기도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7년 9월 15일 래리와 세르게이는 재 빨리 도메인 이름을 등록했다. 문제 해결! 사소한 문제 하나 빼고는 말이다.사실 중요한 문제였다.

그들은 그 단어의 철자를 잘못 쓴 것이다! 구 글.

사무실 동료 타마라 문즈너가 다음날 그 실수를 지적했다. 아이고!

하지만 그들을 너무 가혹하게 평가하지는 말자. 분명히, 우리도 철자를 제대로 쓸 수 없 었다. 2000년에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는 그녀의 히트곡 "Oops! I did it again."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람들은 구글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이름에 관한 수십 개의 오타가 있었다. 이런! 그 데이터, 즉 오타의 긴 리스트는 구글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관심 있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이 름을 제대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구글의 첫 번째 직원, 크레이그 실버스테 인(Craig Silverstein)이 말했다. 그 깨달음이 구글을 확장하게 만들었다. 구글은 검색 결 과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철자 자동 수정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칠판에 구글을 써보며 래리와 세르게이는 실제로 구골을 실수로 쓴 구글이란 단 어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이제 맘에 쏙 드는 이름과 많은 사용자들을 가지고 있다. 게 다가, 과제로부터 시작된 구글을 기리며 기술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주제에 대한 인

과제로 보자면, 그들은 엄청나게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의문이 남아 있었다. 구글이 과제에서 사업으로 가는 문턱을 넘었는가? 구글은 회사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진정한 돈벌이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스탠포드의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전례가 없는 질문이 아니었다. 대학 안에서 많은 사업이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글의 성장과 열광적인 인기는 빠른 해답을 요구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구글이 정말로 사업체라면 학교를 중퇴해서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리고 구글을 운영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는 것은 그들의 첫 번째 선택이 절 대 아니었다.

대학원을 중퇴하다

당신의 가계도가 교수, 수학자, 연구원, 과학자로 채워져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무엇보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학교를 중퇴한다고 발표할 수 있겠는가?

나 같아도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래리와 세르게이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구글은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과제’라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구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빨 리 정규직 직원을 채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학교나 구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자문가와 조언자로부터 조언을 구 한 후, 래리와 세르게이는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구글을 팔고 학교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스탠포드 학생으로서, 실리콘 밸리의 중심부에서, 그들은 기술계의 거장 과 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미 구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구 글을 팔고 학교에 남는 전략은 윈윈 전략 같지 않은가? 그렇지도 않았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금방 알아차렸듯이 아무도 구글을 사고 싶어 하지 않았다.

1997년 검색 업체 알타비스타(AltaVista)는 잘나가는 업체였다. 그리고 래리는 만약 그 회사가 구글을 매입한다면 알타비스타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그것을 100만 달러에 그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알타비스타는 회사 외주로부터 기술을 구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구글을 매입하지 않았고 오늘날, 알타비 스타는 폐업했다.

잠깐! 기업들이 구글을 오늘날의 구글 가치의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단돈 100만 달러에 살 기회가 있었다고? 근데 그걸 그냥 넘겼다고?

그렇다. 그것은 어색한 대화 중 하나인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그렇게 끌리지 않아서 그래.’ 대화였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인기 있는 웹 검색 엔진 익사이트에 접촉했을 때, 협상은 진행되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약 18억 5천만 원(160만 달러)를 원했다. 익사이트의 경영진들은 약 4 억 5백만 원(35만 달러)짜리 제안서를 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익사이트 팀은 그 들이 정말로 구글을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은 마침내 익사이트(Excite)에게 마지막 제안인 이메일을 보냈다. 세르게이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어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짧은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강당에서 매혹된 청중들 앞에서 말했다. “저희들은 정말 팔고 싶지 않지만, 18억 원(160만 달러)이면 정당한 대가 였죠.”

세르게이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할 때 웃었다. “몇 분 후에 우리는 ‘가격이 높긴 하지만 좋습니다. 우리가 매입하겠어요.’ 라는 대답을 받았죠.” 그러나 10분 후 그 들의 대학원 조수 중 한 명인 스캇 하산(Scott Hassan)이 웃으면서 방으로 뛰어 들어왔 다. “그는 함박웃음을 띠며 자신이 익사이트인 척 회신을 보낸 것이라 했죠!” 진정한 거 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르게이와 래리는 여전히 그 장난에서 큰 즐거움 을 얻었다.

그 당시의 대형 검색 엔진들은 사람들을 위한 웹 허브나 오락 역할을 더 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바쁜 "웹 포털"은 검색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뉴스, 이메일, 날씨, 별자리 운세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회사들의 우두머리들은 만약 사람들 이 당신의 포털에 접속해있다면, 그들은 배너 광고를 보게 될 테고 그 배너 광고가 돈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포털로 거듭나고 있는 검색 업체 CEO들과의 대화로 아무도 검색 엔진을 개발하 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CEO는 '검색 엔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죠. 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사업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무도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래리 페이지

반면에 래리와 세르게이는 웹 검색을 개선할 방법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들이 검 색을 개선하면 사람들의 삶이 더 편해지고 웹 포털을 빠르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을 배너 광고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구글을 믿었다.

그러나 회사로부터 거듭해서 거절당하다 보니 래리와 세르게이의 좌절감은 점점 커졌다.

구매자가 없는 상황에서 래리와 세르게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만약 그 들이 진정으로 구글을 믿고, 웹을 조직하고, 누구나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면, 그 두 사람은 구글을 직접 운영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부모님께 학교를 중퇴한다고 말하기 위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세르게이의 엄마인 유제니아 브린(Eugenia Brin)은 전기 작가에게 “우리는 엄청 화가 났었죠.”고 말했다. “제정신이라면 박사학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르게이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장차 그 아들의 직업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 었다. “나는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을 것이라 기대했죠. 아마도 교수가 되리라 믿었 죠.”라고 마이클 브린이 말했다.

래리는 학교를 그만 두기로 한 결정에 특히 힘들어했다. 래리의 백럽, 페이지 랭 크, 구글을 개발하려는 추진력이 기업가적, 학문적, 혁신적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가 슬픔에 차오르게 하는 이유기도 했다.

래리가 스탠포드에 있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예상치 못하게 쉰여덟 세에 돌아가 셨다. 래리와 그의 아버지는 가까운 사이였다. 그들은 토론, 그레이트풀 데드 (Grateful Dead) 콘서트, 그리고 혁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그가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그의 아버지를 기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르게이가 한 전기 작가에게 말했듯이 그가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은 학 교 자문가의 조언덕분이었다. 자문가는 구글운영이 잘 안되면 래리와 세르게이는 언제든지 돌아와 학위를 마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학교는 기다릴 수 있지만 구글은 기다릴 수 없었다. 지금이 적기였다.

래리는 그 자문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설명했듯이, “만약 회사가 망했다면, 안되긴 했지만 중요한 일을 했다는 만족감은 가질 수 있었을 거예요.”

결정이 내려졌다. 그들의 부모들도 허락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넘어야 할 장애 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돈. 더 많은 컴퓨터, 부품, 그리고 저장소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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