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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부키의 역사

가부키라는 한자 표기는 취음자로 가(노래), 무(춤), 기(기예)를 각각 뜻한다. 가부키라는 말은 원래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다’는 뜻을 가진 가타부쿠라는 동사를 명사화한 것이다. 이는 보기 좋고 유별난 행동 이라는 어원적 의미로 독특한 양식적 연극인 가부키의 특질을 잘 표현하 고 있다.

가부키는 에도시대에 등장하는 도시의 상인층과 시민층을 상대로 성 장한 공연 예술의 한 갈래이다. 교토 시마네현의 이즈모 지방에서 태어난 오쿠니라는 무녀에 의해서 시작된 본래의 가부키는 네부츠오도리라는 불 교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주 단순한 무용극이었다. 원래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춤이었으나, 독특한 연출로 인기를 얻었다. 오쿠니의 춤은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 춤은 특히 유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오쿠니가부키는 우리나라의 여사당패처럼 여배우들에 의해서 공 연되었고, 주로 교토지방에서 인기를 차지했다. 유녀들이 오쿠니가부키 의 춤을 모방하여 만든 가부키단을 사람들은 온나가부키라고 불렀다. 하 지만 온나가부키는 관능적인 춤과 풍기문란 등의 이유로 1629년 바쿠후 에 의해 금지되었다.

이후, 온나가부키의 여배우 대신에 미소년들이 연기하는 와카슈가부 키가 생겨났다. 이것은 남배우에 의해서만 연주되는 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소년들의 나이는 12세에서 15세 정도였다. 연기하 는 배우가 여성에서 미소년으로 바뀌었을 뿐 그 외의 형태는 종래의 온나 가부키와 차이가 없었다. 결국 와카슈가부키도 남색이라는 사회문제로 1652년 금지되었다.

56 창극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연구

와카슈가부키의 금지령 이후 가부키는 당분간 사회에서 모습을 감추 게 된다. 그러나 시민들의 가부키 부활운동과 잇따른 탄원으로 1653년 부활하게 된다. 대신 조건이 붙었는데, 여성과 소년이 출연해서는 안 되고 성인 남자만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야로가부키가 탄생 하게 되었다. 야로가부키 이전의 가부키는 무용과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쇼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노의 극적인 요소를 도입하면서 대사 가 생기게 되었고 연극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온나가타라는 가부키만 의 특징이 만들어졌다. 성인 남배우에 의한 야로 가부키는 도시의 상인층 과 상인층의 호응을 얻어 발전의 기틀을 잡게 된다. 에도․오사카․교토에 상설 가부키극장이 설립되었으며, 이즈음 오사카 지방에서 생겨난 분라 쿠라는 인형극은 가부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1688년에는 교토와 에도 지방만의 독자적인 가부키 양식이 만들 어졌다. 교토지방의 사카다 토주로가 창시한 와고토와 에도지방의 이치 카와 단주로가 창시한 아라고토가 그것이다. 와고토는 감미롭고 부드러 운 연기로서 주로 도시의 상인층을 위한 것이었고, 아라고토는 사무라이 계층을 위한 화려하지만 딱딱한 느낌을 주는 연기이다. 이것은 오늘까지 가부키의 대표적인 연기양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부키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걸친 겐로쿠시대에 이르러서 성숙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가부키가 용색 본위인데 비해서 겐 로쿠가부키는 사실적인 대사극을 확립하였다. 이로 인해 에도인의 용맹 한 기풍을 반영한 내용의 극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720년에서 1730년대에 걸쳐 단행된 바쿠후의 탄압으로 인해 가부키는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닌교 조루리19)가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가부키는 닌교조루리의 장점을 소화 흡수하여 부활을 꾀하였고 1740년대에 들어서 다시 성행의 길을 걷게

19) 조루리라고 하는 이야기에 맞추어 인형을 놀리는 인형극을 말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연극 중 하나이다.

역할 보관유지자

58 창극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연구

3월까지 17기 14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총 300여명의 가부키 배우드

60 창극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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