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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시장경제와 시민사회

(1)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시장이라는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고 그 종류도 많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란 교환 또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수요와 공 급이 만나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을 장시(場市)․장(場)․장문(場門)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장(市場)이라는 말은 일본인이 만든 용어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시장이라는 용어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떻게 보면 공동체 혹은 사회라고 하는 의미에 가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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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모른다. 사회 혹은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개인을 포괄하는 구성체가 곧 시 장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산출물 을 만들어 그것을 시장에 내놓고, 그 산출물(상품, 서비스, 지식 등)에 대한 평가 를 시장으로부터 받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여기서 각 개인이 어떤 산출물 을 만들려고 할 때, 단순히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을 상정하기보다는, 자신 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자신이 만들어 제공하려고 하는 산출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 줄 것인지를 고려한다. 예를 들면, 국가 혹은 정부의 기능을 고려해 보 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 혹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을 통제하게 되면 많은 부작용이 초래되고, 시장이 왜곡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국가 혹은 정부는 시 장에서 수요가 이미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산출물의 미래적 가치를 예견하 여 미리 높은 대가를 지불하고 산출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 는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60~70년대의 한국 시장은 사실상 국가에 의해 창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60~70년대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시장은 크게 다음과 같은 3가 지 특성을 가졌다.

첫째, 국가가 경제의 성장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민간기업을 동원하여 자 원의 할당과 분배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한 국가주도성을 가졌다.

둘째,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육성된 소수의 거대기업이 국가의 거시경제 정책의 성장목표를 대리 추진하면서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재벌 경제체제를 이 룩하였다.

셋째, 생산적 자원의 할당과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서 혹은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사회의 대표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이 배제되 기도 하였다.

따라서 시장을 중심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자유화 혹은 민주화는 기존의 권위주의 시장구조, 국가에 의해 창출된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국가․

재벌 연합이 주도하는 시장구조는 재벌․중소기업간, 지역 간, 부문간,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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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불균등 성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동의 배제는 갈등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일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의와 헌신의 저하를 초래 하고 공익정신의 함양을 어렵게 하였다.

이상과 같은 구조를 해체하고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자유주의 경제개혁의 핵심 내용이었다. IMF 이후 세계화도 권위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세계화는 세계의 보편적 기 준에 따른 개방화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주의의 정책내용을 수용하는 것이 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자유화, 민영화, 탈규제, 긴축재정 등이 그 내용이고, 이 것은 기업투명성과 노동유연성 양자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자유주의와 시민사회

시민사회에 대해 ‘국가와 개인(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자율적인 결사체의 활 동영역’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때, 시민사회는 첫째 이익집단, 둘째 이익집단 이 아닌 비정부적 제도와 기구, 즉 언론, 종교, 교육, 청소년 등과 관련한 사회 단체, 셋째 시민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상과 같은 시민사회의 출현은 민주화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적 맥락에서 시민사회의 개념은 적극적 시민에 의해 창출된 공적 성격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이익집단은 국가주도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형성되고 발전하였 고, 이익집단의 존재와 활동도 경제발전 및 정치안정의 목표와 부합하는 방향 에서 수직적․위계적으로 통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크고 강력한 이익집단은 국가의 후원을 받는 대가로써 국가의 통제를 수용했고, 작은 이익집단들은 이 들의 하위 구성요소로 통합되었다. 예컨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 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농업협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은 국가에 의 한 통제를 수용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특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은 서구와는 달리 사적 이익집단과 그에 기초를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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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이념이 시민 사회적 질서와 공적 합의를 만들어내면서 전개되지 못하고, 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한 민주화 운동에 의해서 창출되었다. 민간부문 이 국가 코포라티즘(조합주의)으로 통제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민주화 운동과 민중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시민운동은 민주주의의 대의와 시민적 가치․규범 을 실현하는 공적 영역을 창출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주․민중 운동은 국가 혹은 정부에 대한 반대운동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회단 체와 시민운동은 국가 혹은 정부와 분리된 영역에 형성되는 경향을 초래하였 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그 양상이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가 혹 은 정부에 대하여 반대적 성향을 지닌 시민운동과 종래 정부와의 협력 관계 속에서 생성된 거대 이익집단 사이에 헤게모니 다툼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여 기에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주의 및 글로벌리즘을 옹호하며 새롭게 형성된 시민운동이 한국 시민사회의 또 한 부분을 차지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 다.

80년대 후반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냉전반공주의 성격을 가졌던 권위주의 체제가 민주․민중․민족운동의 민주화 운동에 의해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반공자유주의 세력이 승리하였다. 이 점이 거대 이익집단들에게 재생 혹은 복고의 여지를 형성하여 시민운동세력과의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 다. 또한 민주화의 선봉에 선 시민운동과 사회단체는 반공자유주의와 권위주 의조차도 구분하지 못한 채 권력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욱 시야를 혼미하게 만드는 요인은 민족주의의 만연이다. 민주화 와 거의 동시에 갑자기 밀어닥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에 빠져 IMF의 일시적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IMF의 권고로 강제된 글로벌 스탠더드, 즉 기업투명성과 노동유연성을 위한 개혁이 추진되었다. 이 때 국가 전체적으로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족주의적 경향의 강화는 북한에 대한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북한체 제는 폐쇄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그 폐쇄성이 유례없는 독재와 기아를 지속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독재와 반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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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행태를 비판하면 ‘수구-적인 행태’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조차 형성되어 있 다. 특히 북한이 핵 위기를 조장하여 우리의 안전과 미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 는 현실 앞에서도 북한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세계화의 기조 위에서 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소외되었던 계층과 부문에 대한 사회적 보장체제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개방 과 개혁을 통해 항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자 유주의 그리고 세계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시민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