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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과의 인연

1967년 해남 4-H회장으로 활동했던 양용승 씨는 1973년 이동조합이 면단위 단위조합으로 통합되었을 때 초대조합장의 권유로 상호금융 업무담당으로 채 용되었다. 양 조합장은 자신은 협동조합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운 바도 없고 또 운동가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1974~75년 고구마 파동을 겪으면서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며, 1978년 단위조합 연수원 에서 받은 진흥복 교수의 강의, 서기원 조사부장의 책과 글 등을 통해서 협동 조합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가르침은 현장에서 농민들과 부딪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그는 옥천농협의 직원으로 들어와 평생 해남지역에서만 근무한 토박이 농 협맨이다. 1990년대 초 RPC를 도입하면서부터 쌀사업의 실무책임자로 옥천 농협의 경제사업을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직원으로 입사해 전무, 상임이 사를 거치고 조합장이 되었다. 그는 “오랜 협동조합맨으로서 농협이 가야 할 길은 알겠는 데 월급쟁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조합장이 되고 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1월 조합장이 되었다.

쌀브랜드화사업으로 유명해진 옥천농협

양용승조합장은 ‘한눈에 반한 쌀’ 등 쌀브랜드화사업을 성공시켜 벽지 농협 을 전국 최고의 RPC조합으로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옥천농협 RPC의 생산 성은 워낙 뛰어나서 일반 RPC 그룹에서 크게 벗어나 통계분석을 할 때 예외적 인 조합(outlier)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옥천농협이 쌀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2년 해남지역 14개 농협이 공동으로 RPC를 건설하면서부터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경주 안강, 당진 합덕 등 세 곳에 최초의 RPC가 도입된 것이 1991년이었다. 같은 해 해남의 14개 조합은 정부 지원 없이 공동출자한 총 2억 5천만 원의 자금으로 옥천에 RPC 공사를 착공했 다. 양용승 씨는 옥천농협의 상무로 이 사업을 총괄책임을 맡았다. 전국 최초로 정부 지원 없이 RPC를 도입했지만 실제 운영에 들어가자 사업이 잘 돌아가지 않았고 참여조합들도 소극적으로 임했다. 옥천농협은 다른 조합 지분을 인수해 서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양상무는 이 일을 마치고 1994년 북일농협 전 무로 승진해서 자리를 옮겼다가 1998년에 다시 옥천농협으로 돌아왔다.

1995년 양용승 전무는 북일농협에서 쌀판매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해에 김일성이 사망했었는데 쌀이 부족해서 가격이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시장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쌀구입 문의가 쇄도했다. 북일농협은 도 정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위탁가공을 해서 사방의 수요처로 보냈다. 하루에 20Kg 포대 12,000개를 보내기도 했다. 쌀 대금은 하루 만에 입금되었다. 그해 북일농협은 7억 원의 쌀판매수익을 올렸다. 이때 양 전무는 쌀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옥천농협은 1996년에 쌀브랜드화사업에 착수하여 1997년부터 이를 본격화 하였다. 옥천농협을 유명하게 만든 ‘한눈에 반한 쌀’은 김재식 전 전남지사가 일본에서 들여와 키우고 있는 종자를 구해 관내 조합원에게 공급했다. 이 쌀은 밥맛이 좋아 대표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마케팅은 소포장 고가격전략을 택했 다. 백화점에만 납품한다고 홍보하고 높은 가격을 매겼다. 최상위 1% 소비자를 목표그룹으로 정해 홍보를 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쌀

을 공급하자 시장은 곧 반응을 했다. 처음에는 여러 곳에 공급했지만 이마트를 협력업체로 지정하면서 사업이 안정되었다.

옥천농협의 쌀브랜드화사업은 ‘한눈에 반한 쌀’, ‘꿈의 쌀’, ‘춘하추동’, ‘첫사 랑’ 등 10여종의 쌀브랜드를 갖고 있다. 3kg의 소포장에서 20kg까지 다양한 포 장단위와 고가와 중저가 브랜드로 다양한 소비자 계층에 맞춘 공급체계를 갖 추고 있다. 그 중 한눈에 반한 쌀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쌀로 소문이 났으며, 미질 콘테스트에서도 상위 브랜드로 뽑혀 유명한 쌀이 되었다. 지금은 국내에 서 가장 규모가 크고 최신 시설을 갖춘 RPC를 운영하고 있으며, 옥천농협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조합이 되었다.

인사관리와 동기부여

양용승 조합장은 부하직원을 잘 이끄는 리더로 알려졌다. 공적인 관계에서는 엄격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제나 친구처럼 격의가 없다. 업무를 추진할 때는 직원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어서 높은 성과를 이끌어내었다.

그는 북일조합을 합병하고 나서 전 북일조합 직원의 업무와 근무지를 모두 바꾸어버렸다. 그들에게 당신들의 수준이 형편없어서 조합이 합병 당하는 결과 를 가져왔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합원들이 자신과 친하게 지내 던 직원들이 모두 바뀌자 업무의 전문성을 무시한 인사라 비판을 했다. 1년 후 평가를 했더니 이들이 성적이 월등히 좋았다. 자존심이 상한 직원들이 자신들 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다시 이들의 근무지를 또 바꾸려고 했더니 조합원들이 ‘이처럼 우수한 직원의 서비스를 받 고 싶다’고 하면서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양 조합장은 인사는 동기부여를 해서 그 결과가 재무제표에 반영되어야 한 다고 했다. 북일조합을 합병한 지 12년이 되었는데 두 번을 전부 교체를 했다.

각 직원의 업무는 지소 내에서 알아서 배분하도록 했다. 총괄적인 조정은 본부

가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지소에 자율성을 보장하여 그들에게 맞는 업무분 장을 하게 한 것이다.

2010년 12월에 북평조합과 합병했다. 인원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줄 여야할 직원을 해고시키지 않고 인접조합으로 전출을 보냈다. 양 조합장은 신 규 직원을 뽑으려는 조합에게 신규 직원이 일을 익히려면 2~3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잘 훈련된 기존 직원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인사라고 설득했다. 그는 직원을 내보내지 않는 것은 경영방침이라 하였다.

공제사업 성공은 허상이었다

옥천농협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한 때는 공제사업 전국 최우수 조 합이었다는 사실이다. 쌀브랜드사업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제료 수입 은 2009년 기준으로 전국 지역농협 평균보다 183%나 많았다. 옥천농협은 해남 에서도 작은 면에 위치해 있지만 공제사업 규모는 읍조합보다도 월등히 컸다. 이 같은 공제사업 성공 비결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양 조합장은 전혀 엉 뚱한 대답을 하였다. 공제사업 성공은 허상이었고, 단기적인 안목에 치우친 나 쁜 전략을 선택했었다고 후회했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활용했는 데 이것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였다. 직원들은 처음 3~4년은 멋모르고 열심히 뛰었으나 피로가 누적이 되자 활동력이 저하되고 그 이후에 움직이지 않았다. 계약해지 등 부작용도 따랐다. 일정기간 일을 하면 피로를 풀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고, 어느 사업이나 수직상승하면 일정기간 후에는 반드시 뚝 떨어지는 일이 있게 마련이란다. 그는 상임이사 8년 동안 4~5년은 인센티브가 작동을 잘 했지만 이후에는 부작용 때문에 후회를 했다고 한다.

새로운 사업 구상

양 조합장은 진흥복 선생 강의를 듣고 농협이 해야 할 일이 엄청 많다고 생

각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농촌의 노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농협이 경제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판매사업 외에는 사업다운 사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품목별 전 문조합을 비전으로 말하지만 현재 농촌 실정으로 보면 막연하긴 마찬가지다. 1960~70년대처럼 구매조합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아직 판매 조합으로서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양 조합장은 농협이 구매사업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한 것을 협동조합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과거 구매사업은 비료 농약에 의지해서 유지되었는데 이것을 시장자율로 풀어버린 이후 농협은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농협 직원들은 할 일이 없어지면서 나태해졌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 을 하게 되었다. 신용사업 수익에 안주하면서 자리는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협 직원이 공무원과 같은 직업으로 여겨졌고 조직문화는 관료화되어 간 것 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양 조합장은 조합을 살리는 길은 매출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원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여 추진하려고 한다. 첫째는 구매사업을 새롭게 혁신하여 활성화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판매사업의 혁신이다. 이를 위해서 조합원의 영농형태, 연령 등 을 감안하여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에 맞는 사업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구매사업은 실제 농업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추진하기 로 하였다. 조합원 중에서 50마지기(10,000평) 이상을 경영하는 젊은 조합원을 뽑았더니, 3개면에서 257명이었다. 구매사업은 이들을 중심으로 추진하라고 지 시했다. 다음 달(2011. 4월)부터 이들을 모아 교육을 할 예정이다. 이들에게 왜

양 조합장은 조합을 살리는 길은 매출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원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여 추진하려고 한다. 첫째는 구매사업을 새롭게 혁신하여 활성화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판매사업의 혁신이다. 이를 위해서 조합원의 영농형태, 연령 등 을 감안하여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에 맞는 사업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구매사업은 실제 농업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추진하기 로 하였다. 조합원 중에서 50마지기(10,000평) 이상을 경영하는 젊은 조합원을 뽑았더니, 3개면에서 257명이었다. 구매사업은 이들을 중심으로 추진하라고 지 시했다. 다음 달(2011. 4월)부터 이들을 모아 교육을 할 예정이다. 이들에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