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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과의 인연

황금영 전 순천축협 조합장은 건국대 축산대를 졸업하고 1973년부터 양돈을 하다, 1983년 주위의 권유로 순천축협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결과 에 대한 실망도 컸지만, 선거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 다시는 선거에 나서지 않 겠다고 작심했다. 하지만 1990년 조합이 부실로 경영위기에 처하자 주위에서 또 구원투수로 나서달라는 강권을 뿌리치지 못하여 나가게 된 것이 18년 동안 조합장을 역임하게 된 동기였다.

무자격 조합원 정리와 주간 목표제 도입

황금영 씨는 조합장에 당선되자 조직을 일신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협동조 합을 살리기 위해서는 진짜 조합원들만의 조합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선거 기간 중에 손만 잡아도 조합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손바닥에 굳 은살이 박이지 않은 부드러운 손을 가진 사람들은 조합원 자격이 없는 사람들 이었다. 선거 때보니 축산인은 돈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비축산인은 돈을 요구 하고 성가시게 했다. 금리가 싼 정책자금을 받아다 예금을 한 조합원도 있었다.

가축 한 마리 기르지 않으면서 정치, 친목, 자금 이용을 목적으로 조합원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990년 순천축협의 조합원은 2,200 명 정도 되었으나 이 중 1,200명 정도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황 조합장 은 이들을 정리하여 정조합원 1,000명의 조합으로 출발하였다.

조합 경영 쇄신을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주간목표제를 도입했다. 조 합의 업무를 5개 분야로 나누고 주간 목표를 정한 다음 매일 분야별 회의를 통 해 점검하였다. 월요일엔 총괄회의를 갖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분야별 점

검회의를 가졌다. 월요일 총괄회의에는 조합의 이사도 참여토록 하여 조합 상 황을 이해하고 이사회 의제를 발굴토록 하였다.

황 조합장은 6시 기상해서 7시까지 출근했으며 아침을 거르기가 다반사였 다. 각 업무분야와 지점별 평가에서 성적이 나쁜 팀은 일요일 아침에 전원 소 집하여 인근 조계산의 계곡에서 냉수마찰을 시키는 등 극기훈련을 시켰다. 비 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을 거르지 않았다. 또 한 달에 한 번씩은 전 직원 단합 대회로 지리산 천황봉 일출 등산대회를 하였다.

이 같은 비상경영은 바로 성과로 나타났다. 조합장 취임 시 상호금융 예수금 이 겨우 40억 원 정도에 불과한 적자조합이었으나 1년 만에 적자를 벗어났고 예수금은 100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하지만 황 조합장의 비상경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조합장 취임 8년만에는 예수금은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조합과 조합원의 접촉면을 확대

황 조합장이 본 농협의 문제는 농민조합원과 조합의 연결이 잘 안되고 있다 는 점이었다. 조합과 조합원과의 거리를 없애고 자주 접촉함으로써 조합의 단 결과 성장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그는 조합원 경영컨설팅사업과 5호 담당제를 도입했다.

축산농 경영컨설팅사업은 조합원이 경영기록을 하면 조합의 담당 직원이 이 를 분석해서 지도하는 사업이다. 우리나라 농가들은 기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 문제를 잘 모른다. 사료효율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싼 것만 찾는다. 부채 부담 능력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빌려다 투자를 하는 농가가 대부분이어서 부채문제로 고생을 한다. 황 조합장은 평소부터 농가가 상황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게 하고 기술을 향상시켜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 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경영컨설팅제를 도입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품종별로 조합원 교육을 실시했다. 이 사업을 농림부 축정과장에게 건의하여 1992년경부터 농림부 정책사업으로 채택되었다.

조합과 조합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요구에 대한 상시 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했다. 조합원 농가 5호를 한 단위로 하고 그 대표가 조 합과의 소통을 채널이 되는 5호 담당제를 실시하였다. 조합의 직원은 1명이 4개의 조직을 담당하도록 하고, 자기 담당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조합원의 요 구를 듣고 상담해주었으며 면단위별 간담회를 열어 조합원 간 소통을 촉진토 록 했다. 직원 50명이 각자 4개의 조직(20호)을 담당하여 1000명의 조합원과 의 소통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황 조합장은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대규모 이벤트성 파티를 싫어했다. 이러한 모임은 소통보다는 소모적이고, 사전 선거운동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다. 그는 18년 재직 동안 이런 모임은 조합장 초기에 딱 한 번 가졌다고 했다.

그 이후 어떠한 경우도 이런 모임을 갖지 않고 지역간담회를 조합원과의 소통 의 기회로 사용하였다.

교육을 중시하는 조합장

황 조합장은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조합원 교육은 경영컨설팅, 지역별 간담 회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직원들에게는 세상의 변화를 읽고 들을 수 있도록 자기계발 노력을 독려하고 교육비를 지원했다. ‘성공하는 7가지 법칙’, ‘동사 섭’ 등 교양과 전문 소양교육을 받도록 권장하였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연 6천만 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였다. 그 자신도 조합경영 등 필요할 때마다 각 대학의 특수대학원에 등록하여 배웠다.

황 조합장이 조합장으로 있으면서 다닌 대학 및 대학원은 서울대, 고대, 성 대, 농협대, 전남대, 순천대, 진주산업대, 벤처대 등 11개나 된다. 1주일에 1회 정도 강의를 들었는 데, 서울에서 강의를 들을 경우는 오후에 상경해서 야간 강 의를 듣고 귀가하면 새벽이 되는 식이었다. 외식산업에 대해서 알고 싶어 서울 대에, 노동조합 문제로 고민을 하다 고대에 등록하여 강의를 들었다. 조합경영 의 필요에 의해서 교육을 받았고 그것은 바로 조합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이러

한 학습 패턴은 18년 동안 내내 계속되었다.

조합의 업무도 바쁜데 어떻게 시간을 어떻게 낼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그 는 ‘우선순위를 바꾸면 가능하다’고 했다. 교육은 아무리 힘들어도 받아야만 된다는 생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교육을 받으라 했다. 그가 직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이해하고 이해시켜라. 경청하 고 공감해주어라!”였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서는 이 말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 에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흔히 교육받는 시간에 하지 못한 일로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준다고 하는데, 이 문제는 서로 교대로 교육 을 받으면 해결되는 문제라 하였다.

회의는 1시간 내에 끝내라

황 조합장은 업무회의는 물론 이사회, 대의원 총회 등 어떠한 회의도 1시간 내외에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이사회는 사전에 이사간담회를 열어서 안건을 충 분하게 설명하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별도의 회의시간을 잡 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마다 갖는 총괄회의에 이사들을 참석시키는 것이다. 이 사들을 8시에 출근시켜 간부회의에 참여토록 하여 이사회 안건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발굴하였다. 대의원회의도 대의원 간담회를 통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소통을 강화했다. 그 결과 이사회는 50분 이내, 총회는 1시간 10분 정도면 다 끝났다. 조합장의 인사말도 어떠한 경우에라도 2분을 넘지 않게 했으며, 모든 회의는 5분 전에 전원 참석해서 정각에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독특한 직원 선발 원칙

조합장 재직 18년 동안에 약 100명 정도의 직원을 채용했는 데 전원 공채를 통해서 선발했다. 필기시험으로 3배수로 1차 선발한 다음 면접시험을 통해 최

종 선발을 했는데, 면접시험 방식이 독특했다. 선발대상자를 회식에 참석시켜 술을 마시게 하고, 등산으로 체력 테스트하고, 찬 계곡물에 들어가게 하여 인내 심 테스트를 한 다음에 전체 소감을 써내게 하여 합격자를 골랐다. 어느 정도 술을 마실 줄 모르거나, 등산에서 조합장에게 뒤쳐지거나, 시험 때인 11월의 찬 기온의 조계산 계곡물에서 조합장보다 먼저 나올 경우는 그만큼 탈락 가능성 이 높았다. 협동조합 직원은 다른 직장보다도 사람과 잘 어울리고, 강인한 체력 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인척이거나 선거 시 지원해 준 사람들의 자녀들을 모두 떨어뜨렸다. 의도 적인 역차별을 당한 것이다. 친척들과 지인들은 당연히 서운해 했지만 나중엔

“인사는 자네처럼 해야 돼”라며 오히려 격려를 해주었다. 계약직을 뽑더라도 컴퓨터 시험, 논술 등을 반드시 시행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객관적이고 엄격한 평가를 통해 직원을 선발했으며 예외가 없었다.

그가 직원을 선발할 때 적용한 관점이 대학 은사님의 가르침인 ‘관점이 논리 적이냐 합리적이냐 실용적이냐’였다. 이 사람이 ‘우리 조합에 맞느냐, 정신적으 로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조합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라 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선발되었다.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라도 직원으로 채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이러한 원칙 을 친척이나 지인들도 알았기 때문에 원망을 듣지 않았다 한다.

노조의 결성과 조합장의 고민

황 조합장은 평소에 협동조합에 노조가 있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보 았다. 조합의 주인인 농민은 모두가 영세소농으로 약자인데 이들에게 대항하는

황 조합장은 평소에 협동조합에 노조가 있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보 았다. 조합의 주인인 농민은 모두가 영세소농으로 약자인데 이들에게 대항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