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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신도시 수리산로

문서에서 국제개발협력, (페이지 58-66)

방승환 「닮은 도시 다른 공간」 저자 (archur@naver.com) 2020 UrbAN ODYSSeY•12

470호 2020 December

오래된 신도시

아이가 태어난 후 세 식구가 살 집을 찾기 위해 경기도 외곽을 돌아다녔다. 적정한 가격 에 적절한 출퇴근 시간이 균형을 이루는 곳. 그렇게 몇 곳을 둘러보던 중 어머니가 전화 를 하셨다.

“혹시 ‘산본’이라는 곳 가봤어? 엄마 친구가 거기 사는데, 한 번 가봤거든. 깨끗하고 좋 던데. 한 번 알아봐.”

‘깨끗하고 좋다’라는 표현보다 ‘산본’이라는 지명이 귀에 들어왔다. 대학 다닐 때 ‘수도 권 1기 신도시’ 중 하나로 배웠던 곳이었다. 그 주 토요일 아내와 난 산본신도시 내 몇 군 데를 돌아봤고 그해 가을 이사를 했다.

산본신도시를 포함한 수도권 제1기 신도시의 준공 연도는 1995~1996년으로, 올해 기 준 25년 정도 됐다. 그 사이 수도권에는 2기 신도시와 크고 작은 택지개발 및 도시개발사 업이 진행됐고, 2018년에는 3기 신도시도 발표됐다. 신도시 발표와 개발이 거듭되면서 이제 1기 신도시는 신도시로서의 이미지보다는 ‘노후배관’, ‘아파트 리모델링’ 등 노후시설 에 대한 개선 이야기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래된 신도시’라는 조금은 모순적인 표현이 1기 신도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도 몇 해 전 승 강기와 온수배관 교체공사를 했는데, 덕분에 하루에 몇 차례나 유산소 운동과 냉수마찰 을 해야 했다.

산본으로 이사한 후 처음 내가 느꼈던 건 ‘북적거림’이었다. 출퇴근 때문에 오가며 지나

<그림 1> 소형평수 아파트 복도가 만들어내는 풍경

사진제공: 경기도 멀티미디어 자료실

다니는 산본역 일대에 유일한 상업지역이 조 성돼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 구밀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국토교통부가 발 간한 「신도시개발 편람 · 매뉴얼(2010)」에 따 르면 산본의 인구밀도는 5개 1기 신도시 중 가장 높다(산본: 399인/ha, 5개 평균: 233 인/ha). 순밀도(총인구/주택면적)도 마찬가 지다(산본: 927인/ha, 평균: 678인/ha). 밀 도가 높다는 건 소형아파트들이 많다는 얘기 이기도 한데, 그래서 산본에는 소형아파트들 의 외부 복도가 만들어내는 수평 줄무늬가 도시의 주요 경관을 이룬다.

지도를 보면서 발견한 특이한 점 중 하나는 공원이다. 일반적으로 신도시 내 공원의 형 태는 길과 블록을 따라 반듯하다. 위치도 보행자 전용도로가 만나는 모퉁이나 학교에 인 접한 블록 한쪽 귀퉁이에 있다. 하지만 산본 내 근린 공원과 어린이공원은 부정형(不定形) 에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삽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배치된 어린이공원도 있다. 설계회사나 건설사 입장에서는 난감한 조건일 것이고, 계획적 인 측면에서도 분명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양호한 자연환 경을 보존하기 위함이라면 설득력을 얻는다. 산본은 수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기슭에 조 성됐다. 그래서 신도시 조성 전에도 산이 시작되는 영역과 사람이 사는 영역이 점점이 섞

2020 UrbAN ODYSSeY•12

<그림 2> 아파트 단지 가운데 배치된 어린이공원

<그림 3> 산본신도시 위성사진

470호 2020 December

여 있었다. 산본의 공원들은 과거 수리산의 자연이 취락지 내에서 시작되는 흔적이다.

걷기 편한 동네

다른 신도시처럼 산본에도 넓은 보도와 아파 트 단지 사이로 보행자 전용도로가 설치돼 있 어서 전반적으로 보행환경이 좋다. 몇 년 전 에는 육교를 허물고 횡단보도도 설치했다. 하 지만 조금 다른 점도 있다. 첫 번째는 블록의 크기가 다른 신도시들에 비해 작다. 실제 산본신도시 도시설계를 맡은 김진애(2007) 박사 는 아파트 단지를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의 블록을 구성하는 단지의 수도 다른 1기 신 도시 대비 적다. 분당과 일산이 田자 형태로 4개의 단지가 블록을 구성하는 데 반해, 산본 은 曰자 형태로 2개의 단지가 대부분의 블록을 이루고 있다. 두 번째는 아파트 단지 가운 데 설치된 보행자 전용도로보다는 차로 옆에 설치된 보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다.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보도와 나란히 지나가는 차도의 폭도 넓지 않아서, 대부분의 도 로가 왕복 5차로 이하다. 세 번째는 보도와 보행자 전용도로에 대응하는 상점의 배치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단지 상가는 단지 입구에 배치된다. 산본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보도 가 주민들의 주요 보행 동선이 되면서 단지 상가가 나름 활성화되어 있다. 그리고 단지 사 이로 난 보행자 전용도로에는 2~3개 단층 상가가 별도로 배치되어 있어서 ‘모퉁이 가게 (Corner Shop)’ 역할을 한다. 여기에 커피문화가 접목되어 몇 년 전부터는 특색 있는 카 페가 꽤 생겼다.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길을 꼽으라면 7단지 가운데를 지나가는 보행자 전용도로 와 수리산 경계를 따라 조성된 수리산로를 들 수 있다. 7단지 보행자 전용도로는 산본 도 시 패턴(Urban Pattern)에서도 꽤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산본 도시 패턴은 산본역을 중 심으로 한 격자 패턴과 수리산 아래의 부채꼴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두 패턴 은 중심상가 북서쪽 모서리인 한숲사거리에서 만나는데, 이 지점에서 보행자는 차와 달리 다섯 개의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보행자 전용도로가 7단지를 대각선으로 가르며 지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이로 인해 7단지 블록 내 두 아파트 단지는 직각삼각형 형태가 되어 건물 을 배치하기에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7단지 보행 전용도로가 있어서 산본역 일대의 도심 과 수리산 기슭에 배치된 아파트 단지 간에 접근성이 좋아졌다.

<그림 4> 7단지 보행자 전용도로

모두의 길, 수리산로

수리산로는 왕복 2차로와 차도만큼 넓은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6개의 아파트 단지와 7개 의 학교를 연결하는 이 길은 시간대를 달리하며 주민들이 이용하는 ‘모두의 둘레길’이다.

일단 아침에는 길에 면한 7개 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이 된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길을 한낮부터는 노인들이 천천히 산책하거나, 주부들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오간다.

정오 이후부터는 다시 학생들의 하굣길이 된다. 학생들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거나 학원버스를 기다리기도 한다. 많은 학교가 수리산로에 면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인근 학원에서는 이 길을 따라 셔틀버스 동선을 정한다. 나도 야근하지 않은 날에는 아이를 데

2020 UrbAN ODYSSeY•12

<그림 5> 아파트 단지와 학교를 나누는 수리산로

<그림 6> 수리산로에 면한 시설(좌: 군포 시립중앙도서관, 우: 수리산성당)

사진: 군포시청

470호 2020 December

리러 학원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간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둘만의 대화가 오가는 시간이다. 늦은 오후 이후부터는 산책로와 조 깅 코스가 되어 그 어느 시간대보다 붐빈다.

주말이 되면 교회와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 과 도서관을 비롯한 문화시설 이용객들 그리 고 수리산 등산객까지 합세한다.

수리산로를 중심으로 최초 토지이용계획과 현재 이용 상황을 비교해 보면 ‘모두의 둘레 길’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가 장 큰 변화는 수리산로를 따라 들어서는 시 설들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최초 토지이용계획에서는 수리산로를 따라 신학교를 포함 해 학교용지만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류장 용지로 계획됐던 부지에는 군포 시립 중앙도서관(2008)이 들어섰고, 신학교 용지에는 수리동 성당(2006)과 순복음엘림 교회 (2014), 수리산 상상마을(2018)이 생겼다. 이 외 2016년에는 56만 1500㎡ 규모의 초막골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길을 따라 다양한 시설만 배치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각 시설을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 이용을 활성화하는 시도도 있었다. 특히, 군포 시립중앙도서관은 입지만 보면 시가지와 수리산이 만나는 경계에 있기 때문에 이름과 달리 ‘중앙’이 아니라

‘가장자리’다. 도서관이 지어진 부지가 정류장 용지로 계획됐었다는 건 그만큼 주민들이 오기에 외지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연간 130만 명이 이용한다. 전국 1096개 공공도서관 중 이용객 수가 15번째로 많다(2019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 문화체육관광부). 군포시가 작은 지자체이고 6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는 점, 그리고 산본신도시 내 또 다른 공공도 서관인 산본도서관도 연간 107만 명이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도서관의 이용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실 처음 이 동네를 둘러봤을 때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산본도서관 과 중앙공원이 있다는 점은 큰 매력 요소였다. 출퇴근 중에 도서관에 들를 수도 있고 아이 가 조금 더 크면 도서관을 자기 방처럼 여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아이가 4살 때쯤 도서관에 데리고 갔었는데, 늘 그렇듯 어린이 열람실로 뛰어 들어가다 가 계단에 붙은 “뛰지 마세요. 조용히 걸어요”라는 안내문을 읽었다. 순간 아이가 벌써 한 글을 다 배운 줄 알고 놀랐다. 그러자 아내가 “외운 거야. 괜히 설레지 마”라며 초를 쳤다.

몇 년 후 같은 안내문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이 얘기를 하자, “왜요?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그림 7> 수리산로와 연결되는 초막골 생태공원

사진: 군포시청

실망했어요?”라며 슬쩍 쳐다보길래 뜨끔 했던 기억이 있다.

부침도 있었다. 수리산 상상마을 의 경우 처음 조성은 군포 국제교 육센터와 군포 영어마을이었다. 하

부침도 있었다. 수리산 상상마을 의 경우 처음 조성은 군포 국제교 육센터와 군포 영어마을이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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