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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 및 실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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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9> 화훼도

작가가 처음부터 멋진 꽃문양 패턴을 만들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짜고짜 꽃을 늘어놓아 패턴을 이루게 한 것은 아니다. <그림 2-19>에서 화훼도를 보면 나무와 가지는 지나치게 가늘고 허약하게 그려져 있고 화려하고 풍성하기 이를 데 없는 꽃에 가려 존재감마저 없어 보인다. 3폭 모두 화면에는 온통 꽃으로 가득하다. 흡사 꽃무늬 포장지나 벽지 같은 느낌을 준다.

꽃의 모양도 사실적 표현보다 기하학적 형태나 평면적 표현으로 장식성이 돋보 인 창의성이 민초들의 그림이라고 하기엔 너무 세련된 반복과 조화로움이다.

결국, 민화에서 나타나는 반복성은 두드러진 조형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민화에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의 의지로 작용한다. 하나의 주술적 행위로서의 반복성이다. 즉, 같은 형상을 반복적으로 그 림으로써 주술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의 고유 특징이 나타난다. 생활화·실용화로서 대중의 기호와 필요에 맞게 제작된 대중문화였다.

민화가 고유한 역사와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담긴 대중문화(mass culture /Popular Culture)로 작동한 것이며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소통의 도구로 다른 어떤 미술 장르 보다도 실용적 가치가 높은 장르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77) 민화는 대중의 욕구 충당 의 목적으로 생활관습에 따라 제작된 민중예술이다. 지배계층의 유교적 가치관을 담은 화풍인 문인화와 달리 민화는 민초들의 생활 정서와 사상을 가식 없이 표 현한 그림으로 민초들은 민화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였다. 이러한 민화의 표현이 정통 회화 관념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속화(俗畵)로 폄하되었지만, 지배계층의 문인화가 군림한 회화사의 특수성 위에서 피지배계층은 문인화의 형식을 활용하면서 도 사회풍자의 비판적 요소나 구복의 원초적 욕구 표현은 민중의식의 변화를 일으켰 고 다른 관점에서 피지배계층은 민화를 통해 민중의식을 미의식으로 승화시킨 과정이 면서 지배계층에 대한 문화적 공격으로도 확대 해석할 수 있는 민화의 사회적 가치이 기도 하다.78)

민화는 본그림이다. 궁중회화에서 전문 화가들의 그림인 선비의 그림, 돈 있는 중인이나 상공인들의 그림, 다시 일반 백성의 그림으로 연결되고 발전하는 과정 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본그림이다. 본그림은 완성된 원본을 빠르게 모방, 복제하여 확산하는 역할을 했다. 모방, 복제가 가능한 본그림이 있었기에 궁중 회화의 핵심적인 미학과 조형 원리가 끊어지지 않고 떠돌이 환쟁이의 그림에까 지 다다를 수 있었다.

본그림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고 열려 있었다. 도화서의 ‘사습생도’들은 본그 림으로 미술교육을 받았고 화원이나 전문 화가의 제자들도 모두 본그림을 베껴 그리면서 수업을 받았다. 따라서 본그림에는 ‘지적재산권’이 없었다. 독립된 화가 들은 서로 교류하면서 은밀하게 본그림을 소통하기도 했다. 지전이나 표구사에 소속된 전문 화공들도 마찬가지였다. 떠돌이 환쟁이 역시 자신이 만든 본그림을 가지고 전국을 떠돌면서 그림을 그렸다. 명작을 베껴 본그림을 만들어도 마찬가 지였으며, 아류라고 욕하거나 독창성이 없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본그림은 재 생산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77) 신진희. 이승권. 앞의 논문. 28. 2020 78) 신진희. 이승권. 앞의 논문. 29. 2020

본그림의 자유로운 소통과 쉽고 직접적인 모방과 복제형식이 없었다면 민화의 대중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말 조선이 망하기까지 근 100여 년 동안 수십 만점 이상의 그림들이 창작되고 유통되었다. 우리나라 그림 의 교과서 역할을 한 궁중 회화, 양반들이나 지식인들이 선호했던 문인화, 백성들 의 원초적 욕망을 담고 실용성을 겸비한 민화까지 각 계층의 요구와 취향에 충실 한 다양한 형식의 미술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 미술사에서 한 나라의 미 술이 이렇게 대중화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특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민화는 본그림이란 것 외에도 대중들의 시선과 마음을 끄는 여러 요소를 갖 추고 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색채, 탄탄한 선묘,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내용과 상징, 다양한 크기, 여러 계층의 가치나 취향에 부합하는 형식 따위는 대중화를 이루는데 탁월한 조건들이었다.

2) 실용성

민화는 생활공간에서 실용화로서 역할을 하였다. 가리개와 병풍, 문방구 등 생 활소품, 대문의 문배도, 가마 창문의 장식으로 주거공간 곳곳에서 밝고 환한 분위 기로 장식하여 공간인테리어 역할과 함께 길상벽사의 부적같은 기능을 겸비한 것 이다. 민화가 실용화로 불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활공간과 밀접하 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민화는 생활화, 실용화로서 한국인의 주거공간에서의 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했던 생활필수품으로 모든 사람의 그림이었다. 민화는 대 부분 실용화 내지는 생활화로서 일상의 생활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위로는 왕가로부터 서민 아낙네의 규방, 그리고 절, 서당, 혼례식장 등 생활공간에 맞는 그림을 장식하는 것이 관례였다. 구체적인 그림의 내용을 보면 전각과 절 등의 벽화, 예배용의 신화, 부처그림, 교훈적 고사와 인물, 벽사기원의 세화 등 특정의 실용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민화를 실용미술이라고 칭했던 것은 민화가 실생활에서 각양 각색의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따라서 실용미술이라 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는 은연중 병풍이나 부채 등 생활 도구들에 그려진 그림을 떠올리기 일쑤다. 아니면 정초에 대문에 붙이던 호랑이나 용 같은 방패막이나 부 적류의 그림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민화에 실용미술이라는 평가 의미를 부여하는 범위에는 벽화, 공간 장식화, 즉 감상용 민화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제3절 한류문화콘텐츠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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