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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식량난 이후 북한의 농정

◦ 북한은 식량난에 직면하여 농업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다각도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 노력은 주로 이모작과 감자재배 확대를 중심으로 한 작물재배 다양화, 우량종자 확보를 위한 종자혁명, 초식가축 사육 장려, 농 업기반정비사업 추진 등에 집중되었다.

◦ 작물 다양화 사업을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

- 옥수수 재배를 70만 ha에서 40만 ha 수준으로 감소시키고, 감자 재배 면 적은 4만5천 ha에서 20만 ha 수준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함.

- 단위면적당 식량생산을 늘리기 위해 이모작 면적을 확대함.

- 종자혁명도 강조함. 옥수수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고 맥류는 조생 품종 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함. 특히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감자를 대상으 로 우량종자 공급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추진함.

◦ 식량곡물이 부족해짐에 따라 북한은 초식가축 사육을 장려

- 장려 대상이 된 초식가축은 염소, 토끼, 오리 등임. 이들 가축은 농후사료 (곡물) 조달 부담이 적어 북한 실정에 적합한 축종으로 인식됨.

◦ 1998년부터 북한은 주요 농업지대에 대한 토지정리사업을 추진

- 토지정리사업의 주요 목적이 농작업의 효율화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북 한의 토지정리사업은 남한의 경지정리사업에 해당됨.

- 1998년 강원도를 시작으로 평안북도, 황해남도, 평안남도, 평양, 남포 순 으로 총 27만여 ha에 달하는 토지정리사업을 실시함.

- 토지정리사업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변화는 중대형 농기계의 이용을 가

능하게 하여 농업노동 수요를 감소시키는 것임.

- 그러나 농기계, 부품, 연료의 부족으로 농기계 가동이 제한적인 북한 농 업의 현실에서 단기적으로 볼 때 토지정리사업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 로 추정됨.

◦ 1990년대 말부터 관개수로 건설 공사도 추진

- 국제기구의 차관사업으로 관개체계를 자연흐름식으로 전환

- 2002년에는 「개천-태성호 물길(평안남도)」 공사를, 2005년에는 「백마-철 산 물길(평안북도)」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2009년에는 「미루벌 물길(황 해도)」 공사를 완료

그림 2-1. 식량난 이후 북한의 주요 농정시책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기조 기술

주체농법, 알곡생산 농업은 주공전선

종자혁명, 이모작, 초식가축

농업혁명방침(종자혁명, 이모작, 감자 농사, 콩농사)

중점 품목

감자농사

콩농사 현대적 축산기지, 닭공장

양어 과수

농업 기반

토지정리사업

개천-태성호 백마-철산

산림조성, 국토관리사업

비료, 농약, 기계화 농업농촌지원

2.2. 경제 및 농업부문 개혁 실험

◦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농정시책의 특징과 성과

- 1990년대의 농정시책들은 과거의 구호성 농정과는 달리 실천적 농정이 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

- 북한 당국은 이들 농정시책들을 추진함에 있어 국내에서 동원 가능한 자 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해 왔으나 그것만으로 불충분하였음.

- 이에 북한은 농정시책 추진과 함께 농업생산부문에서의 동기유발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외부지원의 유치에 적극적인 자 세를 취함.

2.2.1. 새로운 분조관리제, 1996

◦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농업생산을 관리하는 동시에 농산물의 농장 내 분배를 관리하기 위해 협동농장에서 「분조관리제」를 시행해 왔다. 이는 작 업반을 수 개의 작업분조로 구분하고 농지와 생산수단을 할당해 농작업을 수행토록 하는 농업생산조직체계인 동시에 동기유발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한 협동농장의 분배체계이다.

◦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심각해지자 북한은 「새로운 분조관리제(1996년)」

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였다. 새로운 분조관리 제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개혁적 요소는 개별 작업분조가 달성한 초과생산 분을 수매가가 아닌 현물로 지급한다는 점에 있다. 1990년대 중후반 곡물의 농민시장가격이 정부수매가격의 65〜350배에 달하였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분조관리제」는 당시 획기적인 동기유발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표 2-9. 분조관리제의 비교(1966/1996)

◦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구성하고 있는 세부 조치들 중에서 농업부문과

◦ 쌀을 사례로 볼 때 7・1 조치에 따른 정부 수매가격 인상률은 임금과 생필품 가격 인상률보다는 높다. 그러나 농장이 구매해야 하는 원자재(전력, 에너 지) 가격 상승률과 비교한다면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농업부문의 대표적 원자재는 비료, 종자, 농약, 농기구, 비닐 등이지만 이 들 품목의 수급이나 가격자료가 없기 때문에 전력과 에너지 가격을 원자 재의 대표가격으로 사용

◦ 생산물 가격 인상률이 생산요소 가격 인상률을 상회하지 않는다면 생산요 소 투입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며, 기술혁신 등 다른 요인의 변화가 없는 한 생산은 증대되기 어렵다. 요컨대 농업생산에 있어 가격인상 효과는 중립적 이다.4

◦ 7.1조치 시행에 따라 농민시장 가격과 국정가격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 국정 가격을 현실화 하였지만 농민시장의 가격은 다시 국정가격을 빠른 속도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농산물 자체 처분권 확대, 생산요소시장 개설 등 의 계획 또한 당초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함에 따라 농업관련 부문의 7.1 조치는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였다.

2.3. 해외로부터 농업지원 유치

2.3.1. 유엔합동호소를 통한 대북 농업개발지원

◦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1995

4 이론적으로 이 관계는 노동, 토지, 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가 서로 대체되지 않고 보완 적인 관계에 있을 경우에 해당된다. 토지가 고정되어 있고 자본재의 공급이 최소한도 이하로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 농업의 경우 노동력 투입 증가로 자본과 토지를 대체 하기 어려우므로 이 관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년부터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개시하였다. 처음에는 개별 기구 단위로 이루 합계 2,242,460 287,479 12.0 1,470,033 26,383 2.0 자료: United Nations, Consolidated Inter-Agency Appeal for the DPRK, New York and Geneva,

1997~2004.

◦ 북한당국은 1996년 농업부문의 제도개선 실패 경험을 통해 식량위기 상황 해결에 자본제약 극복이 필요조건임을 인식하고, 국제사회의 물적 지원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유엔개발계획(UNDP) 과 함께 1998년부터 ‘농업복구 및 환경보호(AREP) 계획’을 입안하여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 AREP프로그램의 목표와 단계

- 단기목표 : 식량원조를 병행하며 복구사업 추진

- 중기목표 : 생산요소 공급, 현재 활용 가능한 기술을 이용하여 농업 생산 을 식량 위기 이전으로 회복

- 장기목표 : 부문별 정책, 기술, 인프라의 현대화, 외부 충격에 대한 유연 성 제고, 시장반응 제고

◦ AREP 프로그램 요약

- 투입물 프로그램 : 중기적 관점에서 곡물 생산을 6백만 톤으로 회복 - 농촌분야 복구 계획 : 수로나 토양 개선 등의 인프라 복구, 이 분야의 장

기적 투자를 위한 기반 조성

표 2-13. 북한 AREP 프로그램의 구성요소와 지원수요

하위프로그램 지원수요

투입요소조달 화학 및 유기비료, 농기구, 농기계, 농기계 부품, 에너지, 기타 농업용 자재 지원, 비료공장 재건

농업기반복구 재해피해 농지, 방조제 복구 지원

관개용 파이프 교체, 간이양수기세트 지원 산림·환경보호

재해피해 양묘장 복구 및 운영 지원, 산림복구 및 보호 지원 임산연료 관련 조사·연구·훈련 지원

자연자원관리 및 재해방지를 위한 지리정보시스템 능력제고

종자, 생물농약, 유기비료 생산 지원

기계화 서비스 능력 제고 지원, 농업연구개발 지원 농업관리, 농장관리 등 관리능력 제고 지원

기 타 목표생산량 도달까지 식량지원

- 산림과 환경보호 계획 : 천연 자원의 심각한 훼손을 경감, 지속 가능한

◦ 1998년에서 2000년 초까지 2년간 농업복구계획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 FAO는 독자적으로 기술협력부 식량안보 특별프로그램(SPFA)이 추진한 신

◦ 이외에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민간지원단체들이 인도지원 중심으로 대북지 원에 참여해 왔으나 농업개발지원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식량지원중 개단(Food Aid Liaison Unit, FALU)을 통해 구호활동을 하는 국제 민간단 체는 Caritas Internationalis 등 5개 단체이고, 북한과 양자 접촉에 의해 직접 지원하는 국제민간단체는 Concern Worldwide 등 13개 단체에 달한다.

3

남북 농업교류협력의 전개

1. 정부의 식량 및 비료 지원

◦ 1990년대 들어 경제침체와 계속된 자연재해 등의 요인으로 농업생산이 감 소하고 식량 사정이 악화되자 북한은 1995년 국제사회에 식량 지원을 요청 하였다. 이 요청에 따라 우리 정부는 1995년 6월부터 10월까지 국내산 쌀 15만 톤을 처음으로 북한에 지원하였다.

◦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식량지원은 늘어나게 되었다. 새 정부는 2000년 들어 50만 톤의 식량차관지원을 시작으로 매년 40〜50만 톤 을 꾸준히 지원하였다.5 이와는 별도로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인도적 지원도 병행하였다.

5 2001년과 2006년에는 식량차관지원이 없었다.

표 3-1.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해 정부는 화학비료 지원도 추진하였다. 1999년 처음 으로 비료 15만5천 톤을 북한에 직접 지원한 이래 2007년까지 총 255만 톤 지원하였다. 우리 정부가 지원한 비료는 최근 북한의 연간 화학비료 총 공 급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 지금까지 지원 비료의 증수 효과를 시산해 보면 30만톤 이상 지원한 연도의 경우 연평균 55만 톤 이상의 식량 증수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그만 큼 북한의 농업생산 증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지금까지 지원 비료의 증수 효과를 시산해 보면 30만톤 이상 지원한 연도의 경우 연평균 55만 톤 이상의 식량 증수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그만 큼 북한의 농업생산 증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