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4 공동선언과 1992년 기본합의서의 정신에 바탕을 둔 2000년 6․15 공동선 언은 방송교류와 통합의 대원칙을 마련하였다. 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조 치가 정치, 경제, 군사 분야 등 다방면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특히 사회, 문화 분야의 교 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 문화예술 체육 분야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교류는 음악과 체육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었다.
2000년 5월과 6월 북한 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의 서울공연을 시작으로 2000년 8월 조 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KBS), 2002년 9월 KBS교향악단의 평양공연, 같은 해 9월 MBC의 이미자 평양공연, 2003년 8월 KBS의 평양노래자랑, 2005년 8월 SBS의 조용필 평 양공연, 그리고 2002년 9월과 2005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된 통일축구경 기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 가운데 2002년 9월 평양봉화극장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합 동연주회는 공연실황이 최초로 남북 전역에 동시 생중계됨으로써 다시 한 번 민족동질
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며칠 뒤 동평양 예술극장에서 열린 MBC의
『오! 필승코리아』가 북한 전역에 생중계 된 것도 공연내용이 요란하다고 느낄 수 있 는 록밴드가 포함된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 프로그램 제작 및 뉴스 생방송 분야
방송현업의 기자, PD, 기술인들이 추진해온 북한 현지취재 제작 및 생방송도 시작되 었다. KBS는 2000년 9월 추석에 ‘백두에서 한라까지’ 3원 생방송을 4시간 동안 진행하였 다. SBS는 2000년 10월 8시 뉴스 시간대에 서울과 평양을 위성으로 연결, 북한소식을 전달했다. 2002년 9월에는 MBC가 뉴스데스크 시간에 평양소식을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방송 3사가 이 시기에 생방송을 진행할 수 있었던 점은 당시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 협력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방송 3사의 프로그램 및 뉴스 생방송 연결을 시작으로 2001년 KBS의 ‘백두고원을 가 다’, 2004년 MBC의 ‘개마고원’등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이 이어졌으며 현재까지 주로 관 광과 역사물, 경제협력현장, 개성공단 관련 프로그램 제작이 계속되고 있다. 장르면에서 는 미흡한 점이 있으나 취재대상이 확대되고 취재영역도 평양 일원과 개성, 백두산 부 근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이 시작되면 이 지역에 대한 취재활동도 활발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에서의 취재 제작, 생방송에는 남한의 전문 인력과 장비는 물론 북한의 전문 인 력과 장비도 상당수 투입되었다. 아직은 실질적 공동제작 단계에 이르지 못했으나 일정 부분 긴밀한 협력체계 아래 추진된 점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3) 남북 방송인 토론회 및 프로그램 시사회
2003년 10월 한국 방송위원회와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 방 송인 토론회 및 프로그램 전시회는 방송교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 다. 토론회에서 약 200여명에 이르는 남북 방송인들은 제작 편성분야, 방송언어 및 기술 분야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으며 남한과 북한에서 제작한 프로그
램(텔레비전 편집물)에 대한 시사회를 가졌다. 시사회를 통해 남한은 북한 프로그램 66 편을, 북한은 남한 프로그램 14편을 구매했다. 특히 EBS가 구매한 애니메이션『영리한 너구리』는 정규편성을 통해 방송되었으며 일부 방송사들도 방송계획을 갖고 있다. 남 북 방송인들은 이 토론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상호 관 심사를 논의하고 향후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4) 남북 방송프로그램 교류 및 공동제작
남북 방송교류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간략히 그간의 남북방송교류의 의미 와 특징을 정리하여 본다. 초기에는 남북 축구경기 등의 스포츠나 남북공동행사를 중계 하는 등의 교류를 시작으로 전개되었는데 점차 북한지역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하거 나 북한이 제작한 방송영상물을 구매하여 남한방송에 편성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남북이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발전하면서 제작방식 역시 다양 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KBS가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외주형식으로 드라마 ‘사육신’을 제작 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흔히 <사육신>이 남북 방송 교류에 첫 공동제작 의 의의는 있지만, 방송의 문화적 격차와 이질감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 스타일'로 일관 함으로써 남북공동제작의 의의를 반감시킨 것은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남 한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 방송합작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서 ‘사육신’의 시행착오가 오히려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일반대중에게는 남북한 문화의 정서적 괴리감만을 확인시키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의 방송교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남북간에 핵문제 등의 첨예한 정 치적 긴장상황으로 말미암아 남북간 이질적 문화를 해소하고 민족동질성 회복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프로그램의 제작 방영이 빈약하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 간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성격은 대부분 일회적이고 감상적인 이벤트성 프로그 램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방송사가 북한 공연물 위주의 단순
연도 방송사 프로그램 제목 방송일
‘게으른 딩가’를 필두로 ‘뽀롱뽀롱 뽀로로’, ‘황후 심청’ 등이 제작되었다. 영화 및 영상 물 교류협력에서 많은 영화인과 영화제작사들이 임꺽정, 장길산, 아리랑, 명성황후, 월광 무 등 민족적인 소재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남북 영화합작을 구상해 왔으나 수십 건의 접촉신청 중에 성사된 것은 서너 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방송교류에서 전두환 정권 시기 이후의 남한 정부는 적극성과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북한방송의 개방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 왔다. 노태우 정권 시기에는 남북한이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하 고, 정부는 각종 남북교류 관련 입법을 추진한 시기로서 남북방송교류의 기본 틀을 마련 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정권의 출범이후 정부는 남북교류협력을 더욱 본격적으 로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100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북 한방송개방’과 ‘남북 언론교류’를 공표하였으며, 북한 위성TV방송의 국내시청이 허용되 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방송교류 및 실제적 방송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상당 한 영향을 미쳤다.
이상과 같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남북한의 문화콘텐츠산업 교류협력 활성화방안을 제시하였다. 먼저 남북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한 기본방향으로 문화예술부문에 중점을 두어 남북간 교류․협력사업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5가지 중요한 정책적 과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정․문(政․文) 분리를 통한 안정적으로 추진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교류․협력사업 관련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정부․민간부문 간 역할분 담 및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남북협력기금 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
다섯째, 사업 성사에 대한 사후 보장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남북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한 세부 추진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 문화콘텐츠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문화콘텐츠산업 과 문화자원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남북 문화콘텐츠와 관련하여 학술, 인력, 기술 교류의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넷째, 남북 콘텐츠 교류 증진을 꾀하고 북한콘 텐츠 전시회 개최를 추진한다. 다섯째, 남북 문화콘텐츠의 공동제작사업을 추진하고 교 류협력 환경을 조성한다. 여섯째, 남북문화콘텐츠산업 해외전시회에 공동으로 참가하고 공동으로 전시한다. 일곱째, 북한 문화콘텐츠 산업 클러스터(Cluster)를 조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