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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인력에 대한 직간접교류 방안

과학기술 인력교류는 비이념적, 비정치적 성격이 강하여 남북 상호 신뢰회복의 기틀 을 마련할 수 있는 핵심수단이며, 타 분야로의 파급효과가 크다. 그간 추진된 남북한 과 학분야의 기술 인력교류는 주로 제 3국을 통한 국제학술행사나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 등 현안문제 해결을 위해 남한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교류가 많았었다.

정부차원의 남북과학기술인력교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 한 슈퍼 옥수수 지원의 전단계로서 북한의 토양과 기후 등 농업실태 파악을 위해 1998 년 북한의 아태 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의 초청으로 방북한 것을 들 수 있다. 김순권 교수는 북한 내각의 농업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농업과학자들과 옥수수 육종개발과 남북 농업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것을 계기로 1998년부터 옥수수 품종육성 과 도입을 위한 공동시험연구와 정부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평양시 미림지역 등 10여 곳에서의 옥수수 시험재배, 옥수수 종자, 비료 등농자재가 지원되었다.

대학차원의 남북과학기술인력교류를 위한 시도는 20000년에 당시 한국과학기술원에 서 북한의 김책공대에 로봇축구대회 , 남북공동 심포지움 및 워크샾 개최 , 원격 영상강 의 사업 등을 제안하였으나 북한측의 무반응으로 진전되지 못한바 있다.

이에 비해 민간차원의 과학기술 인력교류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민간 차 원의 과학기술 인력교류 현황으로는 공식적으로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이며 초창기에 는 주로 제 3국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 사례로는 중 국 연길시에서 과총이 주관하여 1991년 8월 조선족 과학자협회와 연변주 과학기술협회 가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과학기술 학술대회 (1991. 8. 19∼24, 북한 45명, 남한 101명 참 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프랑스 파리에서 1992년 6월 16일에 주최한 기계화를 위한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회의, 1992년 7월 2일 중국 연길시에서 중화의학회가 주최한 중화 의학회 연변분회학술대회 , 1994년, 1995년, 1996년에 중국 연길에서 Korean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 (남한의 국어정보학회, 북한과학기술총동맹, 연변과학기술협회 주최)가 개

최되었고, 1996년 8월에는 한글 컴퓨터 처리에 필수적인 기술적 차원의 공동안을 채택 하여 합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1999년에는 제 4차대회가 3년만에 재개되어 컴퓨 터 용어 통일사전을 마무리, 연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지기도 하였다.69)

이 외에도 대학별 총학생회·학과·동아리 등 학생차원에서도 남북한 과학기술인력교류 에 대한 추진이 활발하게 시도되었으며, 일례로 전남대가 북한의 김책 공업대학을 파트 너로 학술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이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 방문이후 정보 통신분야의 남북 교류가 보다 활발하게 진척되었으며, 당시 비트컴퓨터 의 조현정 사장 을 비롯한 하나비즈닷컴의 문광승 사장,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송관호 사무총장 등 정 보통신 관련 CEO를 포함한 여러 명이 북한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 후 동북아교육문화 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이 주관하여 건립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도 기술인력 교류 를 기대했으나, 그간 남북간의 긴장국면에서 교류협력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은 찾아보 기가 힘든 실정이다.

동서독의 경우 통일되기 전 민간차원에서의 활발한 과학기술 교류가 이루어졌고 있었 으며, 정부차원에서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전반적인 과학기술협력이 중앙통제형 이 아닌 분권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을 뒤돌아 볼 때, 남북간 기술인력교류도 민 간주도형으로 추진하고 이에 국제기구 및 지방자치단체도 활발하게 참여하며, 정부는 관련 법 및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고 과학기술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수 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북은 68년간 한민족이면서 상호 적대관계에 있었다는 상황이 양측간에 상당한 이질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고, 북한의 과학기술 교류협력의 의지 부족을 들 수 있다. 남북한은 동서독에 비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심화뿐만 아니라 문화 및 언어 등 의 전 분야에 걸쳐 이질성을 보이고 있다. 남북은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독일 통일시점은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동구권에 대한 구소련 의 장악력이 약화된 시기이다. 따라서 독일은 자주적인 통일을 쉽게 이룰 수 있었다. 하

69)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남북한 과학기술인력교류 효율화 방안(2001).

지만 남북한의 경우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국제환경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기술인력 교류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사항을 열거하면, 북한은 과학기술에 있어서 도 정치·사상적인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향후 과학기술 및 인력을 교류할 경우 관 련인력의 정치·사상적인 변화로 인한 체제붕괴의 가능성에 대해 매우 우려할 것이다. 이 러한 점에 대비하여 남북한 간의 과학기술인력교류는 초기에는 중국동북3성, 러시아 연 해주, 일본 등 제 3국의 특정지역을 통한 간접인력교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 다.

북한의 과학기술체제는 중앙집권식이며, 노동당에 의한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즉, 북한은 지금까지 철저한 중앙정부의 통제에 의한 과학기술정책과 관 리체제 하에서 계획적인 기술개발을 추구해오고 있다. 반면에 남한은 산·학·연·관이 각 각 자기이익과 이윤추구를 위해 기술개발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남북 과학기술 및 인력교류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본 업무를 총괄해 줄 수 있는 창구 및 기구가 없 고, 남북 또는 대외 교류협력, 공동연구, 기술협력 및 투자 등에 대한 책임부서 및 기관 이 모호한 실정이다.

북한에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를 거점화하여 협력 추진체계를 구성하고, 방송통신 분야의 기술인력 파견 및 남북한 교환 교수제도 등의 직접교류 방안도 있겠으나, 이는 현 상황으로는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으며, 중국, 러시아, 몽골 지역을 통한 간접 교류방 안이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중국 동북3성, 러시아 연해주, 몽골지역에 북한의 기 술 인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현지 투자법인 혹은 그와 유사한 조건으로 남북이 연 결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통신 기술과 관련된 각종 국제 학술대회 및 경시대회에 남북이 공동 참여 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고, 또한 남북이 동시 가입한 국제기구에서의 적극적인 교류 활동이다. 북한 방송통신 관련 국제기구 중에 ITU, ISO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이 러한 활동에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남북 교류를 유도해 나가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