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반세기전 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전세계가 하나의 마을’(global village)로 통합될 것 으로 예견한 마샬 맥클루언(McLuhan, 1964)은 테크놀로지를 “인간 능력의 확장”(extension of man)이라 정의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기술은 과거 인류가 할 수 없었던 수 많은 일들을 실현시키고 있다. 광범위한 상상의 현재화(present-oriented) 속 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또 다른 부분은 정보통신기술의 가파른 발전 속도일 것이다. 우 리 부모세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상을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이른 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native)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을 영 위할 것이다.
세대가 반복될수록 인간의 기술은 진화를 거듭한다. 기술의 진화만큼 인간의 능력 또 한 확장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사회 역시 끊임없이 발전한다면, 인간과 인간의 집 합으로 이루어진 사회에 대한 이해는 곧 기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능해 질 것이다. 반 면 인문학 등을 통해 고대로부터 이어지던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현 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인문학 그 자체는 우리가 현실에서 직 면하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인 효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 다. 숙련된 정비사는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자동차의 기계적 결함을 찾아내고 적절한 부품으로 교체할 뿐이지, 뉴턴의 운동 법칙이나 열역학 제2법칙(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을 되뇌이며 통합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과의 논리적인 모순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는다.
5) 이하의 논의는 본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심홍진(2013)의 논의를 정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왜 다시금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킨다면 인간은 그 기술의 발전 방향 과 범위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기술의 관계는 결코 일방향적일 수 없으 며 필연적으로 상호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 기술의 상호 역동적 관계는 현대 이론 물리학에서 말하는 창발성 (emergence),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임계성(criticality) 등 부분에 대한 이해만으로 는 결코 설명 혹은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형태의 집합체를 만들어 낸다. 이는 곧 기술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사회에 대한 이해는 더욱 어렵다 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비정형적, 불규칙적, 맥락적 상황 을 따른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이러한 관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과 기술 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 해하기 위한 관점 정립의 일환으로 기술 생태학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ICT 와 인문사회 지식간의 융합을 새롭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그림 2-1] 기술 생태계(Technological Ecology)
자료: 심홍진(2013)
기술의 발전이라는 말에는 종종 ‘기하급수적’(exponential)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수학적으로 기하급수적 증가(exponential growth)란 일정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현재의 수
량이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최근 사이언스 지(Science magazine)에 게재 된 한 연구(Hilbert & López, 2011)는 최근 25년간 전세계적으로 정보 저장, 처리, 전송 능 력은 매 30~40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해왔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정보통 신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또 그로 인해, 인간의 능력도 ‘기하급수 적’으로 확장될 것인가? 사실, ‘기하급수적’ 기술 발전의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번 세포분열을 하는, 즉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단세포 생물을 가정해보자. 첫날 한 마리였던 그 개체는 이튿 날 두 마리로, 셋째 날에는 네 마리로 늘어나며, 열흘 후에는 ‘개체수6)’가 1,024마리에 이른 다. 이와 같은 증식이 계속된다면 일년 후 생물의 개체수는 약 1.47×10,107마리에 이른다.
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분자 수보다 많은 수이며, 이와 같은 증식에 대해 대부분의 연 구자들은 이론적 ․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그런 점에서 인구 생태학(population ecology)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마스 맬서스(T. Malthus, 1798)가 ‘기학급수적 성장 모형’
(exponential growth model)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로지스틱 성장(logistic growth) 모형7) 은 주목할 만하다. 로지스틱 성장 모형은 개체 증식과 증식된 개체의 부양을 위해서는 상 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주어진 생태환경이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개체일지라도 그 개체수는 일정 한계, 즉 최대 환경 수용력(maximal carrying capacity)을 넘어 설 수 없다([그림 2-2]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지라도 최대 환경 수용력으로 인해 일정 시간 경과한 후 성장률(growth rate)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논의는 기술의 성장 및 확산과 관련된 사회과학 연구 분야에서도 발견된다.
에버렛 로저스(E. Rogers, 1962)는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수용되고, 나아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한다. 그는 새로운 기술의 저변 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기술들이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실제 전세계적으로 매년 수
6) 여기서 단세포 생물의 개체수 증가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속도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7) 로지스틱 성장 모형은 인구 생태학과 진화 생물학에서는 물론, 경제학, 조직사회학, 이 론 물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응용되고 있다.
백만건의 특허가 출허되지만 그 중 실용화 ․ 상품화 단계를 거쳐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기 술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대중적 관심을 획득한 기술일지라도 또 다른 기 술의 등장으로 머지않아 잊혀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기술 생태계에서 기술의 발전과 확산 을 제한하는 “최대 환경 수용력”을 결정짓는 요인을 파악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림 2-2] 기하급수적 성장 모형과 로지스틱 성장 모형의 비교
자료: 심홍진(2013)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영문자판의 첫 번째 열은 알파벳 Q, W, E, R, T, Y로 시작된다. 이 자판배열은 1870년대 초, 미국 지역 신문사의 편집장이었던 크리스토퍼 숄스 (Sholes, 1819~1890)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되었다. 이후, 1880년대 레밍턴 & 선스(Remington
& Sons) 社에 의해 대량 생산, 보급되었으며, 지금은 쿼티 자판(qwerty keyboard)이라고 불린다. 기술발전의 역사에서 쿼티자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먼저, 쿼티 자판은 흥미롭게도 타자 속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개발되었다. 즉, 인간의 능력을 “제한”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19세기 당시 타자기는 자판을 누르면 활자판이 탄소 리본을 때 려 종이에 글자를 찍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두 자판이 동시에 눌려지거나 혹은 연이 어 눌려질 경우, 활자들이 뒤엉켜 쉽게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둘째, 더욱 흥미로운 사 실은 이 후에 개발된 전자식 타자기 혹은 컴퓨터 키보드는 활자가 엉킬 염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쿼티 배열방식을 따른다는 점이다. 실제 1950년대 이후 다양한 방식의
자판배열이 제안되었고, 그 중 일부는 퀴티 배열보다 최대 90% 이상의 효율성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능력을 “제한”시키는 쿼티 자판이 세계적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 다. 왜 더 좋은 대안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고대 로마군의 마차는 말 두 마리가 끌었다. 유럽을 정복한 로 마군은 이내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 맞춰 유럽의 도로를 정비했다. 이후 이 도로가 마 차선로로 발전했고, 열차가 발명되자 마차선로는 열차선로가 되었다. 결국 로마군의 마차 의 폭이 열차 선로의 세계적 표준이 된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이 열차의 폭은 현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로켓의 지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켓이 종종 열차를 통해 발 사대로 운반되기 때문에 로켓의 지름이 터널의 폭보다 넓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 시 로마군의 마차를 말 한 마리가 끌었다면, 최근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 로켓의 지름이 지 금보다 더욱 좁아졌을까?
쿼티 자판을 고안한 숄스와 말 두 마리의 폭으로 유럽의 도로를 구축한 고대 로마는 분 명 당시에 맞닥뜨린 여러 상황 가운데, 특히 기술적 상황을 고려하여 최상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관습이나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뿐더러, 이후 선택의 폭을 더욱 좁힌다. 이와 같은 현상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부르며,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부시스템 간의 상호역동적 관계(epistatic relations)는 경로 의존성을 증가시키 는 충분조건으로 지적된다(Kauffman, 1993). 경로 의존성은 특정 서비스로부터 다른 기술, 혹은 서비스로 전환하는데 상당한 전환비용(switching costs)이 소요됨에 따라 새로운 서비 스나 기술이 출현하더라도 현재 사용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을 의미하는 잠금효과(lock-in effect)의 기제로도 알려져 있다.
한 사회의 기술체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 환경의 요구에 대응하며 점진적으로 발
한 사회의 기술체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 환경의 요구에 대응하며 점진적으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