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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의 원칙과 방향

(1) 농지 전용 허가제 폐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농지전용허가제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전국의 농지를 농 업진흥지역과 아닌 지역으로 나누고, 농업진흥지역의 양을 관리하는 식의 정책은 농민과 도시민 모두에게 해롭다. 그것은 농민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도시용지의 공급을 제한해서 도시 주택가격을 높여 놓기도 한다.

농지는 농지이기에 앞서 하나의 토지이다. 따라서 농지의 용도는 기본적으로 농지 의 소유자가 결정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농지를 누구에게 팔지를 결정하는 것도 농민 자신이어야 한다. 자신의 농지를 팔기 위해 구매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네 이장과 군청 시청의 허가를 받게 하는 것은 결국 농지소유자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 이다. 지금은 동네 이장이 농지의 거래를 감시해야 할 정도로 안보가 문제되는 시 기가 아니다. 농지취득자격제도나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것은 폐기해야 한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식량 증산은 농지 규제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농산물에 대 한 수요가 있는 한, 그리고 한국의 농민이 외국 농산물보다 싸고 좋은 것을 공급할 수 있는 한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저절로 농지는 유지된다. 수요가 있는 곳에 음 식점이 들어서듯이 농산물에 대해서도 충분한 수요가 있는 한, 정부가 말하지 않아 도 농지는 유지된다.

정부가 대가도 없이 농지의 전용을 규제한다는 것은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다.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농지의 전용을 규제하 는 것은 국가가 농민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입장에서 농 지가 필요하다면 (사주지는 못하더라도) 규제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해주어야 한 다.

보상을 전제로 해서 농지규제를 하더라도 그 주체는 지방정부여야 한다. 중앙정부 는 농지 규제의 적절한 당사자가 아니다. 농지로부터의 이득을 직접 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득을 직접 느끼는 것은 동네주민들이며 따라서 그들을 대표하는 지 방정부가 규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 농지를 농업에 묶어 두든, 도시용지로의 사용을 허가하든, 또 사용밀도를 어떻게 하든 그건 지방정부의 관할에 두어서 지역 주민들의 대표가 결정하게 해 주어야 한다. 전라도 지방의 농지 보전에 대해서 서 울 주민이 간섭할 이유가 없고, 수도권의 농지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서 경상 도 주민들이 간여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중앙정부가 관여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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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지이용규제권의 온전한 지방화

토지문제만큼 지방적인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규제에 관한 권한은 지방 주민의 것으로 해야 한다. 묶는 것도 지방이 하고 푸는 것 역시 지방의 몫이어야 한다. 지금은 토지에 관한 중요한 규제권이 대부분 중앙정부에 있다. 그린벨트이든 농지이든, 택지개발이든 대부분 중앙정부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놓여 있다. 지방 정부는 집행권 정도의 권한이 있을 뿐이다.

토지이용규제는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결정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 고 해당 시군구 내의 모든 토지를 도시계획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 다. 지금은 중앙정부가 정해준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농지는 농지법에 따라야하 고, 산지는 산지관리법에 따라야 한다. 농지법과 산지관리법은 지방의회가 아니라 국회가 정한 것이다. 지방 토지에 대한 규제권을 지방정부에게 준다는 것은 농지법 과 산지관리법 대신 지방정부가 원한다면 농지조례, 또는 산림조례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이 만들기 싫어한다면 그것도 자신들이 알아서 할 문제 다.

지방이 제멋대로 해서 세상이 무질서해질 거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 방정부가 무질서한 토지이용을 원할 리는 없다. 무작정 토지이용규제를 풀어 버리 면 주택 옆에 홍등가가 들어설 수도 있고, 학교 옆에 도박장이 들어설 수도 있다.

경관이 수려한 숲 속에 공해공장이 들어서서 숲을 황폐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주민들이라고 해서 그것을 좋아할 리 없고, 주민들로부터 표를 얻어내 야 하는 지방정치인도 그런 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만들어 놓은 지금까지의 규제와는 그 모습과 강도가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지역에서의 질서 있는 토지이용을 위해 필요한 규제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 규 제는 자기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 될 것이다.

선진국들을 보면 지방정부가 자기 지역 내의 집의 색깔까지도 규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처지와 비교해 본다면 분명 지나친 규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제인 한 문제는 없다. 자기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규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규제의 주체가 되 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이상적인 답은 자생적인 정부를 인정하는 것이다. 즉 가족들 이 자기 집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주민들이 자기 동네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규제를 만들고 규제를 당 하는 체제이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한 주택단지의 주민들에게 스스로의 주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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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만들고 보호할 자치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나 선입 관 같은 것들 때문에 그런 단계까지 가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 면 차선의 대안은 지방자치단체에게 토지이용에 관한 법령제정권을 주는 것이다.

주민들 스스로 자기들이 원하는 바대로 토지이용규제를 만들고 지키게 하는 것이 다.

많이 위임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중요한 토지이용규제권은 중앙정부의 수중에 놓여 있다. 토지이용규제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린벨트와 농 업진흥지역은 거의 지방정부의 손을 떠나 있다. 또 기타의 농지나 임야들도 도시용 지로의 전용요건은 모두 중앙정부가 정해 놓고 있다. 도시계획을 비롯한 도시 내의 밀도규제, 택지개발, 공단개발 등 대부분의 토지이용규제는 중요한 골격을 모두 중 앙정부가 정한다. 지방정부에게 부여되는 자율권이란 그렇게 중앙정부가 정한 기준 에 맞추어서 집행하는 정도의 자율권에 불과하다. 이제 기준 제정권까지도 지방화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토지와 관련된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면서 그 보완책으 로 만들어 놓은 지침들, 예를들어 도시기본계획수립지침, 지구단위계획수립지침, 토지의 적성평가에 관한 지침 등도 강제성을 없애고 지방이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권한을 지방에 넘기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지방 정부 안에서 누 가 규칙을 만들고 누가 감시할 것인지의 문제다. 지금은 대개 집행기관장인 시도지 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계획/집행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상급기관의 장에게 지 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주민의 대표인 지방의회는 소외된 존재가 되어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의 원리에 어긋난다. 지방주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규제들 은 주민의 대표인 지방의회에서 결정하고 그 집행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 이 해야 한다. 집행 결과에 대한 감시는 상급 기관이 아니라 해당 지방의회의 몫으 로 해 주어야 한다. 각종 조례의 제정은 물론이려니와 도시기본계획이든 관리계획 이든 지구단위계획구역의 지정이든 주민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기 때 문에 지방의회의 결정사항으로 해서 지방 토지의 문제에 주민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게 해야 한다.

물론 지방정부에 토지이용에 관한 입법권을 넘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광역적 대기오염, 강물의 수질관리 등 지방정부 의 경계를 넘어서는 광역적 성격의 문제들이다. 논리적으로만 말한다면 이런 문제 들도 지방정부간의 협상에 맡기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러나 과연 그런 협상이 쉽 게 성사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현재의 법령들 중에서 지방정부간의 협상 가능성을 막는 법령들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것이 먼저이다. 중앙정부의 개입이라는 수단은 가장 나중에 고려되어야 할 대안이다. 독점된 권력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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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방정부의 토지이용규제가 비효율적이 될 가능성은 있 다. 이미 토지를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주민들과 앞으로 토지를 쓰려고 하는 주민 들, 또는 앞으로 이 자치단체의 주민이 될 사람들간의 이해를 조정할 정치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간의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방자치단체 내의 정치과정 은 가장 효율적인 토지이용규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스스로도 자신 이 그런 처지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주택을 구입해서, 해당 자치단체에 입주하기 전 까지는 본인조차도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 분이다. 그래서 미래주민들과 기존 주민들간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기존의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것이 지방정부라면, 미래 주민들의 이해관 계를 대표하는 것은 주택건축업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건축 업자가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려고 신청을 했다고 해 보자. 이 업자는 실질 적으로 앞으로 그 아파트에 들어와 살 미래의 주민들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 아파 트 단지가 생기면 인근의 교통이 혼잡해지고, 학교도 이부제 수업을 해야 할지 모 른다. 그래서 기존의 주민들을 대표하는 지방정부는 새 아파트를 허가해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협상이 가능해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업자가 인근의 도로를 확장해 주고, 학교 도 새로 설치해 주며, 덤으로 기존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까지 하나 설치 해 줄 경우, 기존의 주민들도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기존 주민도 좋고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도 좋아지게 된다.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없다면) 그 비용은 아파트의 분양가에 포함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는 기존 주민들간에 협상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 협상은 기존 주민들과 미래의 입주자들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간섭이 없다면 이런 협상은 개발업자와 지방정부간에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개발업자와 지방정부간의 협상이 불가능하다면 지방정부의 토지이용규제는 과도해 지기 십상이다. 지방주민들은 개발의 비용만을 부담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 발업자와 지방정부간의 협상이 허용될 때에야 비로소 개발의 이익이 기존의 주민들 에게 분배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이런 종류의 협상을 가로막는다. 분양가 규제, 지방정부에 대한 예산 통제,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 기반시설 설치비 부담에 대한 각종 규정들, 개발업자와의 협상을 백안시하는 태도, 부정부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등. 이런 요소들이 사라진다면 시민들 스스로의 협상 과정을 통해서 살기 좋은 동 네들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토지에 관한 법령제정권을 행사해 온 국회의원들과 중앙정부의 공무원들이 기득권 상실로 인한 아픔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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