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辛壬獄事와 戚臣勢力의 분열
2. 壬寅獄事와 戚臣勢力의 분열
壬寅獄事는 睦虎龍이 上變한 내용에 대해 조사하는 것으로서 진행되는데, 그
132) 黨議通略 景宗朝, 換局之初 金一鏡引南人沈檀爲吏判 多用己巳後廢錮者 欲令南人 攻 殺老論 然後幷逐南人
133) 黨議通略 景宗朝, 趙泰耉以爲 此詭道不可 134) 景宗實錄 卷5, 景宗 元年 12月 丙寅, 戊辰.
135) 李鍾範, 1728年 戊申亂의 性格 , 朝鮮時代 政治史의 再照明 , 汎潮社, 1985, 188쪽. 李 眞儒와 尹聖時 등은 남인계의 수용문제에서는 견해를 달리하였으므로, 이는 急少 자체의 지지기반의 약화로서 살펴볼 수 있다.
136) 景宗實錄 卷5, 景宗 元年 12月 辛巳, 兩司合辭條.
내용은 鄭麟重・金龍澤・李器之・李喜之・沈尙吉・洪義人・洪哲人・趙洽・金 民澤・白望・金省行・吳瑞鍾・柳慶裕 등이 三手 의 방법137)으로 경종을 제거하 고 王位를 찬탈하려 하였다는 것이다.138) 이기지, 이희지, 김성행은 대리청정 건 의시에 聯箚를 주동한 대신 이이명과 김창집의 子姪이고, 또한 김용택과 이천기 는 숙종말 丁酉獨對 때에 연잉군의 보호를 위하여 이이명이 숙종에게 천거하였 던 인물이었다.139) 王世弟에 관련된 일은 이 옥사를 더욱 복잡하게 얽히도록 하 였는데, 조태구와 최석항이 경종에게 이를 아뢰어 供案에는 일체 王世弟에게 해 로운 일은 싣지 않도록 하였다.140) 그러므로 대부분 옥사는 三手 에 초점을 맞 추어 진행되었다.
삼수와 관련된 공초의 내용을 살펴보면, 김용택은 백망에게 寶劍을 주어서 숙 종 國喪을 맞이하여 宮中에 들어가 즉위 직전의 세자인 경종을 살해하려 했다는 방법이 나왔으며, 정인중・김용택・이천기・이기지・이희지 등은 백망을 시켜서 宮人 二英에게 藥을 주어 毒殺하려 했다는 방법과, 이희지는 숙종의 僞造 敎旨 를 만들어서 宦官 張世相을 시켜 숙종의 국상 때 발표하여 세자인 경종을 廢黜 하려 했다는 역모의 내용도 나왔다. 이로서 고변을 통한 옥사는 연루된자만도 60여명이나 되어 형신에 불복하다가 杖殺되는 자도 많았고 자복한 자도 20여인 이나 되는 등 그 기간도 7, 8개월이나 소요되었다.141) 결국 옥사를 통해 노론 4 대신을 비롯한 다수의 인물들이 被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모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김용택・이천기・이기지・김성행・백망 등이 모두 심한 刑訊에도 不服하고 죽음을 당하므로, 그 역모의 실상은 관련인 물들의 供招를 토대로 한 것이어서 그 진위에 대한 판단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
137) 고변의 주요내용은 三急手로 말하여진다. 이 삼급수 중 大急手는 자객을 보내어 암살한 다는 것이고, 小急手는 음식에 독약을 넣게 하여 독살한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平地手는 숙종의 遺詔를 위조하여 경종을 폐출한다는 내용이다.( 景宗實錄 卷6, 2年 3月 壬子, 4月 丁卯)
138) 景宗實錄 卷6, 景宗 2年 3月 壬子, 睦虎龍者 上變告 賊有謀弑上者 或以刃以藥 又謀黜 有國以來 未有之賊 請急討 以安宗社
139) 英祖實錄 卷55, 英祖 18年 2月 壬辰, 右議政趙顯命上疏.
140) 景宗實錄 卷6, 景宗 2年 3月 甲寅.
141) 景宗實錄 卷9, 景宗 2年 9月 癸卯, 告討逆于太廟條, 前後承 者 二十餘人 次第按問者 七八箇月
실이었다. 즉 대급수에 사용되었다는 劍과 관련되어서도 銀으로 장식한 短劒으 로 그 길이가 두 자(尺)로서 그 날카로움은 보물이 될 만한 것이었다 142) 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영조대의 기록에는 이 검이 자루가 부러지고 이끼가 낀 작 은 칼이었다 143) 라고 하였다. 이처럼 옥사의 중요 내용인 三手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던 것은 결국 역모사건 자체에 대한 진위여부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데, 이와 관련해서 다음의 기록이 참고된다.
金一鏡은 당시 守禦使가 되어 은밀히 일을 엿보아 알고서 드디어 목호룡을 불러 사귀 면서 군문의 돈과 재물 수천 貫을 내어 그에게 주었고 백방으로 꼬이고 위협하였다. 이 때 白望이란자 역시 동궁의 宮屬 下人으로 李天紀 등과 서로 친하여 백망도 능히 時輩 들의 흉악한 모의를 엿보아 알았다. 이천기 등이 백망으로 하여금 고변하게 하였는데 時輩들이 먼저 알았으므로 백망을 다른 일로 金吾에 가두었다. 또 이건명이 연경으로 부터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時輩들은 다만 주청한 일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 궁을 폐하고 건저시의 여러 신하들을 屠戮하고자 하였다. 사행의 일이 순조롭게 이루 어져 도모한 바가 실패하자 先來가 온 다음날 마침내 목호룡에게 명하여 고변하게 하 였는데, 이천기 등이 역모를 도모하였으며 역모의 情狀에 三手가 있다고 하였다.144)
이는 목호룡의 고변이 있던 이전의 상황을 짐작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이다.
즉 이천기 등이 백망을 통해서 고변하려고 했는데, 이를 미리 감지한 김일경이 뇌물로서 매수에 성공한 목호룡을 사주하여 역모의 고변을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일경은 이건명의 使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행의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비로소 고변케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이천기 등이 고변하고자 했던 내용은 왕세제에 대한 謀害 사건이었다. 이는 목호룡의 고변 이후 鞫獄이 진행되던 중 백망의 供招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145) 그들은 이를 통해서 신축환국으로 인한 소론의 정국 장악
142) 景宗實錄 卷7, 景宗 2年 4月 丁卯, 逆龍澤物故條.
143) 景宗修正實錄 卷3, 景宗 2年 3月 甲寅, 史臣曰條.
144) 丹巖漫錄 景宗朝, 金一鏡時爲守禦使 密事 察 而知之 遂招虎龍 而結交出軍門錢財穀 千貫 以給之 百般誘脅 時白望者亦東宮宮屬下人 而與天紀等相親 白望能 知 時輩凶謀 天紀 等欲使白望上變 時輩先覺之 故引他事 囚之金吾 又李相(健命)自燕京 竣事而歸 時輩只望奏 請之事不諧 則仍廢東宮 而屠戮建儲時諸臣矣 使事順成 大失所圖 先來入來之翌日 遂令虎龍 上變言 天紀等謀逆 而逆節有三手
145) 景宗實錄 卷6, 景宗 2年 3月 甲寅, 白望供招.
이라는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일경의 지속적인 염탐으로 인하여 이 고변은 사전에 감지되었고, 이에 백망을 의금부에 가두어 버린 것이 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주목하고 있는 것은 使行과 관련된 기록이다. 이건명이 使 行을 통해 주청한 일은 다름 아닌 世弟冊封에 관한 일이었다.146) 김일경은 이건 명이 淸國에 奏請한 세제책봉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이를 명분삼아 세제를 폐하 고 건저를 요청했던 척신세력의 핵심인물인 노론 4대신들을 治罪하고자 했던 것 이다. 하지만 세제책봉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계획이 수포 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세제책봉의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 김일경은 목호룡 을 사주하여 고변하였던 것이다.147) 즉 목호룡의 고변을 통한 임인옥사는 김일 경이 노론에 대한 치죄와 세제를 무함하기 위한 계책으로 이루어진 것이었 다.148) 하지만 이 고변의 내용은 노론이 정국을 장악하기 위하여 국왕을 弑害하 고자 한 역모사건이었으므로, 急少가 추진하였던 노론의 치죄에 적극적이지 않 았던 준론 및 완론 마저도 그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獄事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급수・소급수・평지수라는 三手의 실상과, 고변을 통해서 急少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급수의 경우 劍을 통해서 경종을 직접 시해하려 했다는 것인데, 검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지만 일단 급소 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역모에 대해서 경종 및 소론 대신들의 관심을 집중시켰 다는데에서 그 의도가 엿보인다. 노론 또한 이러한 혐의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 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는 김용택과 이천기 등으로 인해서였다. 즉 앞서 살펴보 았듯이 김용택과 이천기는 정유독대시 연잉군의 보호를 부탁받은 이이명이 숙종 에게 천거하였던 인물이었으며, 이들은 독대 이후 結黨하여 銀貨를 거두어 資金 을 마련하면서 武士를 길러 비상 사태를 예비하고 있었다. 또한 이천기의 경우
146) 景宗實錄 卷5, 景宗 元年 10月 乙酉.
147) 비록 이 기록이 노론측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逆謀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명 이 불확실하고, 당시 김일경 등 급소가 시급히 해결하고자 하였던 노론에 대한 治罪가 遙 遠하였던 상황에서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역모를 조작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내용 을 일부 신뢰할 수 있다고 보았다.
148) 景宗修正實錄 卷3, 景宗 2年 3月 壬子, 睦虎龍上變條.
에는 스스로 계략이 있다고 하면서 정국을 번복시키려고 도모한 일도 있었 다.149) 이에 대해 민진원 등의 노론은 이천기 등의 음모는 세제 모해를 대비하 기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무력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자체로서 역모의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종 2년 通 明殿의 화재사건 또한 대급수의 한 방법으로서 파악되고 있다.150)
다음으로 평지수의 경우에는 숙종의 僞造 敎旨를 통해 숙종의 국상시 왕세자인 경종을 廢黜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노론의 혐의가 있는 사실로 서 결부시킨 것이 바로 노론 대신의 代理聽政에 대한 건의였다.151) 즉 대리청정
다음으로 평지수의 경우에는 숙종의 僞造 敎旨를 통해 숙종의 국상시 왕세자인 경종을 廢黜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노론의 혐의가 있는 사실로 서 결부시킨 것이 바로 노론 대신의 代理聽政에 대한 건의였다.151) 즉 대리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