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경숙의 『외딴방』과 충동의 글쓰기
3.3. 히스테리적 몸의 구현
『새의 선물』에 나타난 은희경의 글쓰기는 사회적으로 통용된 남성성과 여성성이 몸을 구성하며, 몸은 그 과정에서 초월하여 벗어날 수 없음을 보 여준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여성은 자신의 여성적인 몸에 사회적인 규율 과 제약을 옭아맨 채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한 진실을 전달하는 목소리는 여성으로 자라는 과정에 있는 어린 소 녀의 목소리지만, 분열되어 존재하며 어른이 아니고서는 전달할 수 없는 냉소적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러한 문체 적 특징은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성별을 자각하며 여성이 되어 가는 것이 피 할 수 없는 몸의 물질화 과정이며, 자신의 몸에 주체가 될 수 없는 여성 몸의 사회적 강제가 존재한다. 여성은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초월할 수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태 속에서 히스테리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밖에 없었음을 소설의 외관으로부터 구현한 것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 는, 둘로 분열된 목소리를 내세우는 은희경식 글쓰기의 모순은 주체의 자 기보존을 위한 가면, 즉 자아의 분리가 가능해져야만 겨우 자기 몸의 주인 이 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탄생한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획득한 자기 몸의 주인됨은 몸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성 중심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인식적인 주인은 통일되고 일관된 자 기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적 주체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남성적 주체로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데, 은희경의 글쓰기가 여성 이 주체될 수 없는 사회적 환경과 인식론적 세태를 미시적인 일상 속에서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면, 여성성이라는 정체성이 거주한다
고 여겨지는 ‘몸’은 성별로 인해 애초에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인간 에게 실존적 조건으로 주어져 있는 몸일 뿐이라는, 몸의 유연성을 일깨워 주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엄마의 죽음이라는, 무의미 하고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때, 희생된 인간 몸에 대한 하나의 반응적 태도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서도 아쉬운 점은, 삭제된 몸을 기입하지 않고 엄마의 죽음을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사 건으로만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처리함으로써, 은희경 소설은 글쓰기됨을 숨기고 지극히 허구적인 소설로 보이게 만들면서 글쓰기의 힘 을 잠재적인 것으로만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경 소설이 성취한 것은 분명하다. 소설 속 진희의 인식은 남녀 몸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성적인 것으로 명명하고 금기시하는 그 권력을 통찰하기에 이른다. 진희가 말한 ‘금기의 위력’을 살펴보자. 일찍부터 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으며 삼촌의 책들을 통해 문 학 속의 성적인 표현에 탐닉했던 자신을 떠올리는 진희는, 자신의 호기심 이 ‘성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 ‘금기에 대한 번민’이었음을 토로한다. 금 기와 성의 관계를 예민하게 지각하는 진희는 이러한 금기가 만들어낸 성 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한동안 나는 남자들에게 성기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서 불편을 겪었다. …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남자들의 성기에 내포된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바지 안에 감춰져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나에게는 그것의 존재함(존재 자체가 아니라) 을 의식하는 것이 지나치게 의식되었다. - 새의 선물 , 113면
성에 대한 금기는 그것이 가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무엇을 자연적인 질서 로 만들며 환상을 부추긴다. 그런 점에서 성기는, 특히 돌출되어 있는 남 성의 성기는 남자에게 있고 여자에게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진희에 게 남성성에 대한 환상을 주조한다. 남성성은 그것이 담보로 삼고 있는 생 물학적 남근이 없어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만 유일하고 우월한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다.99) 즉 결여나 부재로서 인식되는 여성 신체 기관의 짝을 99) 남근이라는 성기의 지각은 주체에게 충격적인 사건이다. 특히 성기가 거세될
통해 남성성의 완전성은 유지되며, 이에 따라 두 성은 남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성의 짝패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성적 정체성’은, 오이디푸스기 이후 이분법적 성 별에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남성은 여성을 가짐으로써, 여성은 그런 남성 이 가지고 싶은 대상이 됨으로써 확인받게 되는 상호간의 합의된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남성으로 규정짓고 여성이라고 규정짓 는 출발점은 아무것도 아닌 신체 기관의 표지에 성적인 의미망을 씌워 그 것의 유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100) 개인의 성 정체성은 신체 기관의 표지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자연스럽게 나눠진다 고 인식되지만, 사실은 그 이분법적인 구분 자체로 인해 부자연스럽게 여 성은 성적인 기관으로서의 몸이자 재생산의 토대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 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는 냉소가 가리키는 바는 이분법적으로 나뉜 성별 질서와, 그로 인해 수동적이고 질료적인 의미의 몸으로서만 인식되는 여성 존재다. 이러한 인식론적 고정성은 현대에서 로 맨스라는 이름으로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확산된다. ‘로맨틱한 이성간의 사랑’이 성적인 개인의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 며 이분법적 성의 허구성을 가리고 있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희경식 글쓰기의 모순은 이러한 진실을 견디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그 모순을 통해 성적 질서를 조롱하기까지 나아간다. 소설 속 다음과 같은 부
수 있다는 사실, 즉 어머니가 거세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기관은 욕망 의 기표가 된다. 바로 남근이 타자의 욕망이며 이를 통해 주이상스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연유로 대상 a로서의 팔루스는 생 물학 기관인 남근을 중심으로 주체와 관련을 맺게 된다. 팔루스가 신체기관인 남근의 이미지를 통해 기능한다고 본다면, 생물학적 남근은 그것이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해야만 완전한 남성성이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 즉, 그것은 결여나 부재로서 인식되는 여성 이미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상징 계에서의 팔루스의 기능은 남근을 가시적인 남성적 특권의 하나로 격상시키며, 이를 바탕으로 남성중심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100) 라캉은 상징계의 성적 주체를 ‘남성적 구조’ 아래 있는 주체들로 일컫는데, 이는 이와 같이 팔루스의 효과에 따라 남근을 대상a로 여기고 그것을 욕망하 는 주체이며, 남자는 자신을 남근을 가진 것으로, 여성은 남근이 되는 것으로 여기며 서로를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 오인의 주체이다.
분을 보자.
내가 요새 세상을 군인의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교에서 운동장 조회 때마다 군인처럼 구령을 붙이고 강재구 소령이 얼마나 훌륭하며 그의 신조인 ‘굵고 짧게 살자’가 얼마나 좋은 말인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맹호부대 용사들아’하는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하고 라디오에서 “신병 훈련 육 개월에 작대기 두 개,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신나는 김일병”하는 노래를 틀어 대서도 아니다. 장군이 엄마가 걸핏하면 자기 아들의 장래가 장군으로 결정된 것 을 공언하는 은유적 선포로서 우리나라에 장군 이상 가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물론 더 높은 사람으로 대통령이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만 보더라도 어쨌든 장군 을 거쳐야 대통령으로 올라가는 것이니까) 입버릇처럼 강조해서도 아니다. 내가 결정적으로 군인의 힘을 통감한 것은 언젠가 군용트럭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뒤부터였다. - 새의 선물 , 57면
남성성-군인, 여성성-처녀의 짝패 구도가 소설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앞에서 지적한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군인이라는 상징을 대하는 진희의 태도는 허무하리만치 가벼운 농담을 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군인으 로 표상되는 남성다움의 질서는 학교라는 공공기관에서부터, 고무줄놀이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와 같은 문화적인 일상에까지 만연해 있다. 성별 구분에 따른 기대 수준은 정해져 있으며 사회에서 종용하고 개인이 적극 적으로 내면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력에 대하여, 군용트럭이 지나가 흙 탕물을 뒤집어썼다는 사소한 개인적 체험밖에는 군인의 힘을 통감한 적 없었다는 서술은 군인 남성이라는 상징적 힘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 린다. 교육과 문화를 통해 보전되는 남성성 여성성의 내용은 실제로 그러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적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허 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어법적인 재치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진희와 동급생이며 조용한 성정을 지니고 있으나 군인을 우상시하는 드 센 엄마를 둔 ‘장군이’가 삼국지를 읽으며 남성다움을 강요받는 사건에서 도 진희의 성 구분의 질서에 대한 냉소적 조롱이 뚜렷이 드러난다. 장군이 의 남성다움을 함양하기 위해 삼국지를 읽히는 장군이 엄마는 진희를 향 해 “아무리 똑똑해도 계집애는 계집애”라는 말로 진희를 무시한다. 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