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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경숙의 『외딴방』과 충동의 글쓰기

3.1. 성장에의 조롱과 환멸의 정서

『새의 선물』은 1969년을 배경으로, 지나치게 조숙한 열두 살의 소녀 진 희가 조모 밑에서 고모와 삼촌과 함께 작은 마을에서 약 일 년 간 지내며 겪었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삽입하여 1995년의 서른여덟 살 어른 진희의 목소리로 시작과 끝을 맺는데, 소설의 주된 사건을 전달하는 어린 진희는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깊은 통 찰력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특별한 지점이 생겨난다. 어린 아이 의 세상에 대한 냉소적 가치판단이라는 이 특이한 지점은 기존 연구들이 문제시하였으나 성장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진희의 성장여부를 놓고 좀처 럼 합의하지 못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82) 한편에서는 화자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을 뿐 실질적 성장이 소설의 서사와 함께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거 나,83) 다른 한편에서는 신체적 성장과는 달리 화자의 정신은 성장하지 않 으며 그런 의미에서 반 성장 혹은 성장 장애의 소설이라고 명명하고 있기 때문이다.84) 그런 점에서 이전의 해석들은 진희의 성장여부만을 의문시하 며, 성장을 신체적 정신적 성장으로 나누어 이해함으로써 성장에 뒤따르는 간극을 봉합하고자 시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서른여덟 여자의 시점에서 열두 살 ‘나’라고 지칭되는 소녀의 일인칭 시점의 서술은 분명한 시간적 거리가 존재함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이를 단순히 조숙하다는 말로 설 명할 수 있을까. 기존 연구가 견지한 성장소설의 문법에서는 화자가 직접 적으로 성장을 마쳤다고 표현하는 시간적 좌표와, 성장소설의 문법을 따르 자면 응당 감지되어야 할 성숙의 지점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설명하는 데 에 부족하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와 같이 『새의 선물』에 드러난 성장의 모순된 지점은 그것이 82) 김화영, 「숨은 그림찾기로서의 소설-은희경의 ‘새의 선물’」 『소설의 꽃과 뿌

리』, 문학동네, 1998; 최현주, 『한국 현대 성장소설의 서사 시학 연구』 전남대 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김병희 『한국 현대 성장소설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류보선, 『경이로운 차이들』, 문학동네, 2002.

83) 김화영, 위의 논문, 308-333면. 이 논문에서는 소설 속 화자가 자신의 성장 이 이미 끝나버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경증에 기인한다고 간주한다.

84) 나병철 「여성 성장소설과 아버지의 부재」, 여성문학연구 10, 2003.

성장에 얽힌 사회적 질서를 부정하는 양상임을 이해하지 않고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즉, 성장이 아니라 성인으로서 사회를 살아가게끔 주어진 자리를 마주하는 하나의 포즈가 『새의 선물』을 관통하는 주요한 실마리인 것이다. 이 글의 출발점은, 이 소설이 취하는 철저한 성장의 가장(假裝)성 을 파헤치는 데 있다. 이는 곧 성장이 필요 없었다는 부정과 연결되어 있 으며, 그럼으로써 드러나는 여성의 사회적 자리는 이 소설이 일관되게 내 장하고 있는 환멸의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성인된 진희와, 나머지 소설 전체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열두 살 진희의 목 소리를 비교해보자.

나의 분방한 남성편력은 물론 사랑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언제라 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나의 열정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 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85) (진희, 38살, 1995년) - 새 의 선물 , 11면

사랑이 아무리 집요해도 그것이 스러진 뒤에는 그 자리에 오는 다른 사랑에 의해 완전히 배척당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배타적인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랑, 새로운 사랑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 삶도 마찬가지다. 냉 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 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진희, 12살, 1969년) - 새의 선물 , 224면

첫 번째 인용문과 두 번째 인용문은 소설의 구성상 이십년 이상의 차이 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체나 내용 간 거리감이 전혀 없기는 물론이 거니와, 특히 두 번째 인용문은 열두 살 초등학생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

85) 이 논문에서 다룰 은희경 소설의 판본은 다음을 따르며, 앞으로 인용되는 같 은 책은 제목과 쪽수만 표기한다. 은희경, 새의 선물 , 문학동네, 1996.

리가 있다. 아무리 조숙하고 영민하다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장소가 가지 는 배타적인 속성’과 같은 어휘의 선택은 초등학생의 것이라고 볼 수 없으 며,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와 같은 통찰력은 그 나이의 것이 아니 다. 이와 같이 성인 화자와 어린 화자간의 시각의 일치는 1995년 당시 문 학동네 소설상 심사위원에게도 이해하기에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소설가 오정희는 “『새의 선물』, 열두 살 여자아이가 화자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을 읽어가며 처음에는 적지않이 당혹해했다. 자연적 성장연령인 열두 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볼 것인가, 전지적인 시선으로 볼 것인가, 이 소설은 우선 대단히 재미있다.”라며 심사평에서 당혹감을 드러내었으며, 오정희와 더불 어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윤흥길 또한 “때로 이 심리 묘사는 열두 살 소 녀의 정신연령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어 흠이 되긴 하지만”86)이라며 노골 적으로 초등학생 화자가 가지는 목소리의 적실성을 문제 삼았다. 그런 점 에서 이 소설은 윤흥길의 「황혼의 집(1970)」이나 오정희의 「유년의 뜰 (1980)」에서와 같은 이전 세대의 성장 소설의 문법과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윤흥길과 오정희의 소설에서 유년 화자가 이따금씩 어른의 목 소리와 교차되며 산업화시대를 거친 어른 화자에게 불쑥 찾아와 각성시키 는 무의식에 의해 가라앉아있던 ‘유년의 나’로 읽힐 수 있다면87), 1990년 대에 이르러 은희경에게 유년은 환상적인 ‘나’의 더 이상 기원이 아닌 것 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소설 속에서 자신의 나이를 직접적으로 명시하며 어린아이임을 드러내지만, 그 나이 또래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의 일반적 통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구현해 보이면서 어린아이임을 가장한다. 소설을 통 해 드러나는 열두 살의 진희의 머릿속은 서른여덟의 진희와 전혀 다를 것 이 없다. 생각의 내용이 삶을 충분히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장년의 것에 어 울린다고 할 때, 열두 살의 진희는 서른여덟의 진희가 뒤에서 거짓말을 하 고 있거나, 혹은 열두 살 아이가 서른여덟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창작자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일반적인 독자에게 전자의 86) 오정희·윤흥길, 문학동네 본심 심사평, 새의 선물 , 문학동네, 1995.

394-395면.

87) 손유경, 「유년의 기억과 각성의 순간」, 한국현대문학연구 , 2012.

경우가 그럴듯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는 성장소설의 문법에 천착했던 기존 해석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린아이라는 가 면 뒤에 누가 존재하거나 혹은 어른스러운 표현 뒤에 누가 존재한다는 식 으로 이성적인 납득을 위한 해석이 아니라, 가면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며 그 가면을 통해 양산되는 일련의 효과다. 이는 달리 말하면 소설 이 표면상 배경으로 내세우는 시간은 1969년이지만 소설의 시각이 1995 년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전 세대와 자신의 세대를 내려다보면서 나타내고 있는 태도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반성이나 후회, 혹은 향수 의 어느 범주에도 넣을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이 여기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르지 않다’는 주관적인 평가 위에 놓여 있다.

90년대지만 지금도 세상은 나의 유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 새의 선물 , 384, 387면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다르지 않음에 대한 고백은 소설의 말미에 서른여덟의 진희의 목소리로 전달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다르지 않은가.

이전 세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거쳐 형식상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후 그 원 심력이 사라진 시대, 냉혹한 정글과 같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기를 종용하던 시대, 비약적으로 발전한 대중문화와 넘쳐나는 상 품과 광고의 시대인 1990년대는 그 이전 세대와 같을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진희의 고백은 이전과 같을 수밖에 없는 무엇이, 화려한 유행과 선진 기술에 의해 더욱 교묘하게 가려져 존재하고, 그것은 환멸이 라는 독특한 감각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서른여덟 진희 가 느끼는 ‘다르지 않다’는 고백은 1990년대에서 이전을 돌아보며 느끼게 되는 환멸의 감각, 그 사전적 의미상 기대나 환상이 깨어진 채 속절없이 헤매는 마음을 토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어린 화자의 성숙한 목소리는 우선적으로 지독한 환멸의 감각을 소설의 육체에 해당하 는 스타일에서 구축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