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경험이 현실의 삶에서 중요하고 또 그것을 강조하여 재생함으 로 어떤 해방을 얻는 것은 회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하지만 회 화는 때로 현실이라는 경험의 세계를 허정한 마음69)으로 바라보고 인생 을 관조하는 사유의 방식 자체가 됨으로 철학적 차원에 이른다. 장학적 초월, 즉 물화(物化)는 무(無)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보기 위
67) “색과 형태의 미는(순수한 유미주의자의 주장이나 또는 미를 목적으로 하는 자연주 의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예술에서 충분한 목적이 되지 않는다.”
칸딘스키는 당시 예술계의 상황이 새로운 매너리즘만 추구 하며 경쟁적으로 물질화해 간다고 비판하고, 이런 물질주의에 빠진 예술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만 남고, 예술 의 내용, 곧 예술의 정신(Seele)인 무엇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Kandinsky, 앞의 책, pp. 26-31
68) 서복관은 미적관조에서 환기와 고립은 필연적인데 물화된 이후의 고립된 지각이 장 학적 주객합일의 경지를 만들고 이것이 현실의 지각과는 다른 인식의 앎이고 이지의 앎이라고 말한다. 본인은 이런 관조적 태도를 예술로부터 기대하기에 현실에 대한 지 각의 연장을 이끌기 보다는 내면으로 향하는 구심적인 깨달음을 전달하는 예술양식을 찾고자 한다.
徐復觀, 앞의 책, pp. 129-33
69) “허정한 마음은 사회와 자연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고, 인의 도덕이 자유로이 출 입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송․명의 이학가들은 거의 모두 허정한 마음에서 ‘천 리’(天理)로 전향하였다.”
徐復觀, 앞의 책, p. 166
함’이다.70) 이런 의미에서 형이상학도 ‘보기 위한’ 도구이다. 회화의 이런 차원이 궁극적으로 본인의 삶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감당해야하는 기능 이 아닐까? 본인, 그리고 인간의 삶, 그리고 생명에 대한 통찰을 기대하 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인이 작업실에서 어느 정도 시각적 어휘를 습득 하는 단계를 거친 다음에 찾아온 질문이다. ‘생기를 들이마신 화가는 … 시지각을 몸짓으로 만들며 그림으로 사유’71)하기에, 회화에서는 만듦이 의미를 낳는다. 이제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를 발생하는 색채와 대상의 상징성, 그리고 구도와 구성이라는 습득된 어휘들을 종합하여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수준으로의 전이(轉移)이다. 회화는 이런 질문 앞에서 다시 시각적 양식과 조형적인 변화로 대답하여야 한다.72) 다시 말해서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예술의 양면이며, 합목적성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야 할 것이다. ‘의미 전달(communication)과 형식(form)’73)이 하나의 예 술로 완결될 때는 어떤 이견도 없어야 한다. 이는 예술의 보편적 기준에 서 수직적 성취를 만드는 중요한 일이다. 오페라에서 아름다운 선율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모차르트의 예술적 우수함에 우리는 어떤 이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작곡한 종교음악에서는 그 판단이 다를 수 있 다. 그가 작곡한 미사곡의 선율이 아름다운만큼이나 형식이 갖는 표상적
70) 서복관은 장자의 초월적 경지인 물화(物化)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위 즉자적 초월이란 매순간마다 감각세계 중에서의 사물 자체에 나아가 그 초월의 의미를 보는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바로 사물 본체 속에서 제2의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徐復觀, 앞의 책, pp. 133-42 71) Merlleau-Ponty, 앞의 책 p. 100
72) 프란시스 쉐퍼는 ‘예술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어울리는 표현 수단을 얼마나 잘 사용하였는지’를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로 삼고 있다.
Schaeffer, Francis, 권혁봉 옮김, 『프란시스 쉐퍼 전집 II.기독교 성경관』, 생명의말 씀사, 1994, pp. 549-55
73) 한스 로크마커는 ‘의미 전달(communication)과 형식(form)은 예술의 두 명, 혹은 두 가지 특질이며, 의미 전달은 항상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형식은 항상 가치관과 의미를 전달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이 우리가 관찰하고 이해한 외부 세계의 실재를 그려내고 그 실재라는 것은 경험한 사랑, 믿음과 같은 무형의 것도 있는가하면 시각 으로 볼 수 있는 실체도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다.
Rookmaaker, Hans R.(Art needs no justification, 1978), 김헌수 옮김, 『예술과 기독 교』, IVP, 2002, p. 56
인 의미로부터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회화에서는 미세한 조형적 특성에 따라서 세말한 장르로 나눠진다. 이제는 예술관이라는 큰 도안을 펼치고 색채와 형태, 그리고 양식적 요소들을 맞추어 가보는 정교한 작업을 시 작하려한다.
회화의 대상은 우리가 현실의 사물을 관조함으로 우리 자신의 세계관 과 가치관이 담긴 무형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해내기 위한 매개체 이다. 사유로 이른 대상의 본질은 사실 우리의 내면에 대한 것이다.74) 이런 구심적인 지향을 하는 회화처럼 폭넓은 의미의 양, 혹은 고의(高意) 를 담아내려면 장식적인 오브젝트나 정교한 묘사의 쾌적함을 고의적으로 피해야한다. 왜냐하면 이미지에서 대상의 감각적인 환기가 너무 강할 때 감정적인 쾌감은 커지는 반면, 사유의 공간은 좁아진다. 즉 감각의 고립
74) 맑스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개괄하며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대상은 첫째로, 직접적인 존재 내지는 사물 일반이며, 이것은 직접적인 의식에 대응한다. 둘째로, 대상은 자신의 타자(他者)가 되는 것, 즉 타자에 관계하여 타자와 마주보고 존재하는 것임과 동시에, 자기를 마주보고 존재하는 것이며, 규정된 존재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지각에 대응한다.”
Marx, Karl Heinrich, 김문현 옮김,『경제학․철학초고/자본론/공산당선언/철학의 빈 곤』, 동서문화사, 1994, p. 160
[도판 15]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March Heath>, Oil, acrylic, and shellac on burlap, 118 x 254 cm, Eindhoven: Van Abbemuseum
이 사유를 돕는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도판 15])은 그의 심원한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관을 담기 위해, 재현적인 구상회화임에도 고도의 단순한 표현에 초점으로 모으고 있다. 헤르난 바스(Hernan Bas)의 작품 ([도판 16])에서처럼 표현 대상과 사용된 색채의 범위가 폭넓은 것에 비 하면 안젤름 키퍼의 작품([도판 15])에서 보이는 조형적 특징은 무척이나 단조롭다. 그러나 안젤름 키퍼의 이미지에서 ‘묘사적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에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즉 ‘표상적 가치’가 돋보인다. 회화에서는 조형양식의 차이가 담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헤 르난 바스의 작품 속에서 그려진 대상의 의미-성상(聖像)적 위치에서 정 면을 응시하는 인물-, 그리고 색채와 형태가 만드는 감정의 과잉이 종교 화의 형식이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때 오는 부조리가 당혹감을 준다.
반면 조형적 어휘의 양이 훨씬 적은 안젤름 키퍼의 작품은 ‘길’이라는 대 상이 갖는 표상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마치 그가 먼저 관조해 보았던 관 념적이고 영적인 길로 우리를 초대하는 듯하다.75)
75) 한스 로크마커는 예술은 예술적 가치가 반드시 표상적 가치와 장식적 가치의 차이로 등급이 나눠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적 표현에는 ‘장소의 문제와 형식 적 법칙, 그리고 그 기능과 관련된 예술품의 내재적 의미’를 고려해야하며 ‘예술품의 표현이 예술적 형식 그 자체에 있는 것처럼, 양식도 내용의 일부’이기에 아무렇게나 스타일을 설정하고 작품에 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술가 자신이 바로 하 나의 양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은 헤르난 바스의 작품이 담고 있는 예술적 가 [도판 16] 헤르난 바스 Hernan Bas, <The Guru>, Acrylic on linen, 213.4 x 548.6 cm,
2013-2014
이 둘의 작품을 비교함으로 후자의 예술적 성취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헤르난 바스가 빛바랜 현실의 세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 한 현란한 노력들로 조형된 회화세계에 대한 열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본인이 설정한 예술관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양식으로 전자의 방향 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있다. 헤르난 바스에 비하자면, 안젤름 키퍼 는 대상을 재현하면서도 표현을 절제함으로 물질이 만드는 강력한 추상 적 인상과 대상의 상징성이 결함하며 관념의 세계로 이끈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가 본인이 당면한 질문 앞에 선구자가 되기에 개인적인 존경을 보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숙이란 고도의 단순성과 직접성을 의미한 다.’76)는 말이 직면한 거대한 질문 앞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심오한 세계에 접근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으 로, 색채와 화면구성, 그리고 평면성에 대해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