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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경제 개념과 추진구도의 정책적 준거

가. 평화경제의 개념과 범위

‘평화경제’의 정의에 대한 학술적인 컨센서스(academic consensus)는 아직 마련되지 못했지만, 잠정적으로 ‘군사적 갈등 및 분쟁관계에 있는 국가 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 및 평화체제가 구축된 이후의 경제적 특성과 효과’를 총칭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먼저 평화경제의 경제적 효용에 초점을 맞춘 정의로는 ‘군사적 갈등 및 분쟁이 초래하는 제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포함하여, 이런 군사적 갈등과 분쟁이 해소된 이후, 평화체제가 구축된 이후에 도래하는 추가적인 효용(benefits)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평화경제란 평화체제가 구축된 이후의 효과뿐만 아니라,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도 기간의 경제적 효과도 포함 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즉 평화경제란 i) 갈등과 군사적 대립에 직면하던 국가들 간에 평화가 정착된 이후의 경제적 효용뿐만 아니라, ii) 그 과도기간에 국가 간 갈등과 군사적 대립을 최소화하고 평화체제로 이행시키는 제반 경제적 노력과 정책 과정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평화경제(Peace Economy)’와 관련성을 가지는 기존의 개념 으로는 ‘평화경제학(Peace Economics)’, ‘전쟁경제학(War Economics)’

등이 있다. 전쟁경제학은 전쟁 상황에서 자원의 최적 배분원칙을 규명 하는 분야로 정의될 수 있다. 반면에 평화경제학은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을 해소 또는 현상유지(status quo)하거나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평화 상태로 진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자원배분원칙을 규명하는 분야로 정의할 수 있다.2) 평화경제란 갈등과 분쟁상황을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원재배분의 정책노력 과정 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3)

나. 평화경제 국제 레짐

갈등 및 분쟁상태, 혹은 전쟁의 상태를 지속가능한 정책조정과 협력의 상태인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평화경제의 대표적 사례로는 i) 실패한 평화경제의 사례로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및 종전 이후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평화경제로서의

‘1919년 파리평화회의(Peace Conference at Paris)와 베르사이유 협정(Versailles Treaty)’4)과 ii) 성공한 평화경제의 사례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설계한 ‘브레턴우즈체제 (Bretton Woods System)와 마셜플랜(Marshall Plan)’5)을 들 수 있다.

2) 김영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 가운데 평화경제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 (통일부‧통일연구원 주최 2019 한반도 평화경제 국제포럼, 2019.10.22.), p. 8.

3) 위의 글, p. 8.

4) P. M. H. Bell,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2nd edition (New York: Pearson Longman, 1997); Richard Bessel, Germany After the First World Wa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Manfred F. Boemeke, Gerald D. Feldman, and Elisabeth Glaser eds., The Treaty of Versailles: A Reassessment after 75 Years (Washington, D.C.: German Historical Institute wi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5) Martin Schain ed., The Marshall Plan: Fifty Years After (New York: Palgrave, 2001); Edward S. Mason and Robert E. Asher, The World Bank Since Bretton Woods: The Origins, Policies, Operations and Impact of 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and the Other Member of the World Bank Group: The 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The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The 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1973), p. 29; Fred Block, The Origins of International Economic Disorder: A Study of United States International Monetary Policy from WW II to the Present (Berkeley: UC Press, 1977); Marc Uzan ed., Bretton Woods: The Next 70 Years (New York: Reinventing Bretton Woods Committee, 2015); G. John Ikenberry, “A World Economy Restored:

Expert Consensus and the Anglo-American Postwar Settlement,”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 46, no. 1 (1992), pp. 289~321.

1919년 파리평화회의와 베르사이유 협정을 통하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던 ‘평화경제’의 노력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초래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국에 대하여 다시는 전쟁을 꿈꿀 수 없도록 혹독한 조건의 화평조약을 통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던 노력이었다. 즉,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동맹국들에 대하여, 다시금 전쟁을 야기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 한다는 차원에서,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전쟁배상금을 지불 하도록 한 베르사이유 협정이 평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오판한, 실패 한 평화경제의 시도였다.

결국 1919년 베르사이유 협정 이래 20여 년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전쟁배상금 부담의 악순환에 시달렸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 동안 누적된 독일민족의 좌절감은 결국 히틀러의 집권 및 또 다른 세계 대전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즉 베르사이유 협정은 포용적 평화체제가 아니라, 징벌적 평화체제의 형태를 갖춘 결과,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고,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징벌적 평화체제’의 실패를 경험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한 브레턴우즈체제에서는 패전국 들에 대한 징벌보다는 패전국들의 또 다른 전쟁도발의 유인(incentives to initiate another war)을 제거하기 위하여, 패전국들의 경제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포용적 평화체제를 추구했다는 특징을 보였다.

브레턴우즈체제의 축은 i)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무역전쟁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국제무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ITO), ii) 금본위제도를 통하여, 자유무역의 뒷받침이 될 안정적 국제 외환시장을 보장할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iii) 패전국과 저개발국가의 경제개발을 지원할 국제부흥개발 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IBRD, World Bank)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다자주의 평화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패전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의 경제적 안정화를 통하여, 또 다른 전쟁도발의 유인을 제거하겠다는 포용적 평화체제를 추구한 브레턴우즈체제의 성공 덕분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근까지 세계 역사상 최장기의 평화 및 경제성장의 평화경제가 가능하였다.

특히 1948년부터 미국의 일방적인 재정지원에 기반하여, 패전국인 독일을 포함하여 전후 유럽경제의 복구를 위한 대규모 경제부흥 프로 젝트였던 마셜플랜은 성공적인 평화경제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세계 역사상 최장기의 평화경제체제의 근간이었던 브레턴우즈 체제와 글로벌가치사슬 구조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무역 전쟁을 통해 붕괴시키고 있는 근본 원인은 미국에서의 ‘포용적 경제 (inclusive economy)’의 부재 및 실패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즉, 기술혁신에 의한 자동화와 세계화의 확산 과정에서 신흥개발 도상국들에 비하여 비교열위 부문으로 전락한 미국의 노동집약적 단순제조업 부문의 노동자들에 대한 포용적 정책과 배려가 거의 전무하였던 미국 시스템의 한계로, 단순노동자들의 실업과 실질소득 감소가 꾸준히 이어져왔었다. 그 결과 누적되어왔던 백인 단순노동자 들의 분노가,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보호무역정책을 통하여 노동집약적 산업에서의 일자리를 찾아주겠다는 터무니없는 공약을 통하여, 이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정치적 기반을 넓혀주는 기형적 상황이 확산되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평화경제 구축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시장경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 하는 비교열위부문 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자와 같은 경쟁에서의 패자(losers)들을 수출산업과 같은 비교우위부문으로 재고용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포용적 경제정책 및 포용적 무역정책을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필두로 모든 주요국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이다. 이처럼 대다수 국가들이 국내적으로 포용적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경우, 이러한 포용적 민주국가들은 당연히 북한과 같은 체제 위기에 직면 하여 다양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불안정한 국가들이 평화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포용적 접근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북한과 미국 간의 비핵화협상이 한발치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미국의 사회, 정치, 경제 체제 자체가 포용적 지속가능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다양한 사회적 균열과 파열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같은 불안정체제를 포용할 수 있는 접근보다는 북한의 일방적 양보를 힘의 논리로 얻어내려는 시도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다. 평화경제정책의 선결요건

한반도 통일 및 평화경제정책 성공의 선결요건으로는 i) 북한 정권이 체제 위기를 느끼지 않고 자발적, 적극적으로 평화 및 협력 프로세스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며, 그 첫 번째 조치가

‘북한에 대한 UN 안보리 제재 해제’일 것이다. 한편 이러한 대외적인 요건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요인은 ii) 남북한 간 평화경제체제 도출 을 위한 정책 기본방향과 그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한 남한 내에서 의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 못지않게 남한 내에서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이념적 갈등과 대립구조가 평화경제의 주요 장애요인으로 작동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평화경제를 둘러싼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최소화를 위해서, 평화경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

해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서 평화경제의 체계적 개념정립 및 평화 경제가 남북한 분단구조하에서 남한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최적의 성장전략임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라. 당면 국제 경제위기 대안으로서의 평화경제의 역할

남북 분단 이래, 한국 경제에 있어서 최대의 경제적 비용요인은 군사적 대치관계에 있는 북한발 위험요인이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최근의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북한에 의한 추가적인 군사적 위협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큰 기여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중장기적인 ‘평화경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i) 평화경제 실현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북한에 대한 UN 제재를 철회하는 과정과 ii) ‘체제붕괴위협으로 해방된 북한 당국이 핵개발과 군사위협을 멈추고, 적극적인 남북경협에의 참여결정’이라는 매우 어렵고 지난한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위의 매우 지난한 두 가지 전제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이 마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평화경제접근’이 이루어질 경우, 오히려 대북 국제협력체계의 혼선 등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북한발 군사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개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군사도발감소와 북‧미 간 회담의 진전’이 북한에 대한 UN 제제 완화 및 철회로 이어질 경우, 평화경제의 실현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즉 미‧중 간 무역전쟁에 의한 불안정성이 커지더라도, 북한에 대한 UN 제재철회로 남북 간 경협이 가능해진다면, 한반도 에서의 북한발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효과와 함께, ‘남북경협프로 젝트에 대한 막대한 투자수요’가 창출되어, 경색된 세계 경제에서 새로운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