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약 70여 년 동안 반복되어 오던 대립과 갈등, 대화와 협력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평화 우선’의 한반도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함으로써 2018년 남북관계는 대화와 협력 국면으로 전환되었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부터 현재까지 북‧미 협상은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고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 역시 중단되어 있다.62) 2020년 11월 미국 대선 결과 2021년 1월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국내 문제 해결이 집중해야 하는 상황 에서 북‧미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에 대북제재의 지속과 코로나19 및 자연재해 등과 같은 ‘삼중고’를 겪은 북한이 우리 정부의 방역 협력을 포함한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1년에 남북 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인 모멘텀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의 재개 혹은 진전 역시 더욱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62) 신종호 외, 한반도 평화번영의 비전과 전략(세종: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9), pp. 11~23.
하지만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지속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한국 주도’의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제기한 ‘신한반도체제’의 핵심전략인 한반도 평화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 사례에서 나타난 함의와 시사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가. 중국 ‧ 대만 경제협력의 남북관계 시사점
남북관계와 양안관계는 분단국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사례가 처해 있는 대‧내외적 여건과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비교 하기는 어렵지만, 양안 간 경제협력 사례는 남북한 관계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양안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남북한 모두가 교류협력의 재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안의 교류협력은 1979년 중국 정부가 대만에 대해 조속한 ‘통항(通航)’과 ‘통상(通商)’
을 요구하고 우편업무(通郵)를 시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노력은 대만 외성인(外省人)에 속하는 중국 대륙 출신 노병 (老兵)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鄉愁)를 자극했다. 중국의 적극적인 대만 정책에 대해 당시 대만 정부는 ‘불접촉, 불타협, 불담판’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대만 사회의 자유민주 의식이 고양되면서 개방 의 요구가 많아졌고, 결국 1987년에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대만 주민 들의 중국 친척 방문을 허용했다. 이와 같이 양안의 사례에서처럼 통일을 위한 것이든 협력을 위한 것이든, 공영과 공존이라는 비전하에 남북 양측이 교류협력 재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정치‧군사적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간 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 양안관계의 성과는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도 교류협력이 단절 되지 않고 민간 교류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안 간 인적 교류는 상호 신뢰와 이해를 증진시켰고, 이는 곧 경제협력과 사회‧
문화 교류의 확대로 이어졌으며, 양안 간 평화를 유지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를 남북관계에 적용할 경우 북한이 호응하고, 남한이 경제, 사회‧문화 교류를 확대해 남북한 간 이질성을 극복하고, 이는 다시 정치‧경제통합으로 연계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셋째, 종합국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방의 상대방에 대한 포용 및 협력적 자세가 필요하다. 2010년 ECFA 체결 과정에서 나타나 듯이 경제적 우위를 가진 중국은 대만에 대한 막대한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양안 경제교류가 정치통합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여 손해를 감수하였다. 따라서 종합국력 차원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에 대한 포용 및 협력적 자세를 통해 과감하고 창의적인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넷째, 상호 호혜인 교류협력 구조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양안 교류 협력 초기 중국 정부의 적극적 교류협력 의지와는 달리, 대만은 중국에 대한 정치적 신뢰의 부족으로 인해 중국 기업의 대만에 대한 투자를 일정 기간 제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안 경제협력이 비교적 활발하게 지속된 것은 상호 호혜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 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역시 그동안 교류협력 초기 단계에서 남측의 양보로 이루어진 측면도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모두의 이익(WIN-WIN)을 추구하는 교류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민간 주도의 교류협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양안 교류 협력의 특징 중의 하나는 중앙정부 간 공식적인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관반민 기구를 중심으로 하는 대화
채널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며, 특히 경제협력의 대부분을 대만의 민간 기업들이 주도했다. 따라서 향후 남북관계도 정부 주도형에서 민간 주도형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함으로써 민감한 정치‧군사적 요인의 영향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상호 인식 차이를 해소하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체제 경쟁에서 상대적 열세에 처해 있는 대만의 경우 중국으로부터의 흡수 통일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유지 정책을 선호하거나 분리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남북한 역시 상대방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경우 남한이 여전히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양안관계의 대립과 협력이 반복 되고 있지만, 차이잉원 정권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의 중국’ 원칙 이라는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양안 간 합의점을 찾지 못 하고 있고, 시진핑 지도부의 대만에 대한 강경정책과 미국과 대만의 관계 개선 노력에 따른 미‧중 갈등으로 인해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남북관계 역시 2018년 이후 긴장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류협력을 재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기합의한 상호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나. 양안 평화경제 사례의 한반도 시사점
양안 경제협력을 통한 상호의존성 증대가 정치적 통합 혹은 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를 평가하기에는 양안이 처한 현실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대만의 한 전문가는 경제 협력이 평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과구조 - 경제적 상호
의존 심화,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교류 확대, 경제협력 확대에 따른 국내 문제에 대한 영향 등 - 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데, 양안의 경우 이러한 인과구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63) 즉, 양안 간 경제 협력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적대적 감정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양안 간 교류 협력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영역에서는 소득 재분배 문제가 발생했으며, 경제협력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적 체제에서는 정책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회 세력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안 간 평화는 여전히 요원하다는 것이다.
2010년 양안 간 ECFA 체결 당시 대만에서는 실업률 증가와 빈부 격차 확대 등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표출되었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진당 역시 ECFA 체결이 대만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높힘으로써 궁극적으로 대만의 주권을 훼손할 수 있다며 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등 대만 내부에서 국론 분열 양상이 나타난 바 있다.64) 그리고 ECFA가 체결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본다면 경제협력만으로는 양안관계의 발전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남북한 평화경제 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동 구상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공동체적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양안의 사례를 살펴보면, 양안의 경제협력이 결과적으로 자본과 권력만
63) 周嘉辰, “從和平經濟觀點出發,評價兩岸交流合作及對韓半島的意義,” 평화로 보는 양안관계와 한반도(통일연구원 주최 2020 KINU 한국-대만 국제학술회의 자료집, 2020.9.3.), pp. 37~44.
64) 2010년 ECFA 협정 체결 당시 대만 내부에서의 반대 여론에 대한 분석 및 평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劉性仁, “論兩岸經濟合作架構協議(ECFA)對臺灣發展之效益 評估,” 展望與探索, 第8卷 7期 (2010), pp. 90~107.
배부르게 만드는 효과만 있었지 그 과실이 양안의 주민들에게 직접적 으로 혜택이 가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평화경제 구상도 자본이나 권력에게만 그 과실이 돌아가는 경제적 이익이 되어서는 안 되고 남북한의 주민들에게 혜택이 부여될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나 미국 국적의 이북 출신 기업가들이 평화경제 지대에 투자하고 평화경제의 선구자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와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
중국과 대만의 지방정부 경제협력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평화경제 구상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계 기업만이 북한에 진출해서는 안 되고 외국계 기업도 함께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도 국제적인 책임감을 가질 수 있고, 남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북한이 정치적으로 경제특구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된다. 중국 샤먼 경제특구의 특징은 대만 자본의 유입을 목표로 했지만, 대만 자본과 기업만 진출할 것이 아니라, 다른 외국계 자본과 기업이 함께 진출하는 모델이었다. 이처럼 다자주의적(multilateralism) 성격을 갖는 평화경제 지대를 만들어야, 양자관계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남북한 평화경제와 관련된 논의 구조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바로 남북한 청년 간의 교류와 협력이다. 중국 샤먼 모델에서는 청년 간의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민난(閩南) 문화 여름 캠프, 민난어 노래 창작 대회 등의 형식으로 교류하고 있는데, 남북한 평화경제 실현 과정에서도 청년 간의 교류의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특히, 한국의 청년들 사이에 스타트업 기업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하는 글로벌 지향의 스타트업 기업을 함께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샤먼 경제특구 현지에서 대만 기업인의 이미지 악화 현상이 있었음 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65) 저렴한 인건비만을 생각하고 진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