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 다루는 연구 대상 중 필사 시기가 가장 이른 자료는 언문고시 (諺文古詩)다. 이 자료는 19세기 한양을 중심으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
32) 18세기 여성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을 검토한 김경미는 당시 여성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를 가(家)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김경미의 논의에 따르면 종법의 준수나 가문 의식으로, 효나 열로, 가족경제의 형태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는 단순히 거주공 간과 가족관계에 국한된, 공적 공간에 대응하는 사적 공간이 아니라 가정 경제를 이 끌어가는 생산 공간이자 여러 지역과 가문에 온 다양한 관계들이 만나는 네트워크 공 간으로서 역동적 성격을 갖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본고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다. 김경미, 家와 여성 - 18세기 여성 생활과 문학 -, 여이연, 2012, 40면 참조.
33) 김종헌·주남철, 앞의 논문, 88면.
다. 여기에는 가사를 비롯한 다양한 성격의 글이 실려 있다.34) 그 중 <규 즁감응편>은 <복선화음가>의 이본 중에서 상당히 이른 시기의 작품이라 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언문목녹」에 계녀가 작품인 “귀녀가”가 기 재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 자료의 필사 시기는 중국 당나라 시 인 이백의 이력을 적은 「니젹션화음옥즁긔록」의 필사기인 “셰임신 삼월 염사일 입동 필셔”를 통해 1872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35) “귀녀가”가 기재 된 「언문목녹」은 언문으로 된 222종의 책 목록으로, 이 목록을 ‘개인의 장서 목록’36) 또는 ‘세책집의 목록’37)으로 보기도 하고 ‘당시 언문책들의 제 목을 정리해 놓은 것’38)이라고 보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이 목록의 성격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거기에 수록된 소설의 성격상 언문고시(諺文古 詩)는 한양에서 유통된 자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실들은 <규즁감 응편>과 <귀녀가> 등의 계녀가가 19세기 후반 한양에서 책의 형태로 유 통되었음을 시사한다.39)
34) 여기에 수록된 글은 다음과 같다. <고시 무명씨십구슈>, <두음(白頭吟)>, <화츙 가>, <탄우가>, <탄노가>, <삼국가>, 「니젹션화음옥즁긔록」, <쳔푸리>, <산즁풍 경>, <발가>, <규즁감응편>, <뵈틀가>, 「바라니드리법」, 「복의 무든 것
는법」, <언문목녹>.
35) 언문고시(諺文古詩)를 학계에 최초로 보고한 강전섭은 “寫本의 筆寫年代는 「셰
임신 삼월 염사일 입동 필셔」(歲在壬申 三月 念四日 笠洞 畢書)라는 筆寫記에 의하면 高宗 9年 壬申(1872)에 筆寫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原典을 蒐集한 가람先生이 젊어서 蒐集하였을 것이므로 1932年(壬申)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필사 시 기를 추정했다. 강전섭, 「「언문목녹」(諺文冊目錄) 소고」, 사재동 편, 한국서사문학 사의 연구 V, 중앙문화사, 1995, 2110면.
36) 강전섭은 ‘언문목녹’을 ‘개인장서목록’일 가능성이 짙다고 보고, “「언문목녹」(諺文 冊目錄)은 目錄作成時期인 純祖以後 哲宗·高宗年間에 접어들면서 (다시 말하면 19世 紀初 以後에 이르러서) 國文本小說 또는 國譯本 漢文小說(이야기책·諺文小說)들이 閭 閻집 閨房(內房·안방)에서 얼마나 많이 널리 읽혀지고 있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가 있 는 매우 귀중한 文獻記錄임에 틀림없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강전섭, 위의 논문, 1995, 2125면.
37) 정병설은 당시에 개인이 취미 목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장서를 갖기 어렵다고 보고 이 목록을 영리 목적의 세책집의 목록으로 추정했다. 이후 여기에 수록된 금향정기, 취미삼선록, 유효공선행록, 김씨효행록 등이 세책본으로 유통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 목록이 1872년 서울 종로 입동 부근의 세책집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정병설, 「세 책 소설 연구의 쟁점과 방향」, 국문학연구 10, 국문학회, 2003; 정병설,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218-220면 참조.
38) 류준경, 「조선시대 소설유통의 ‘혁명성’」, 인문논총 74-4,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506면 참조.
39) 언문고시(諺文古詩)처럼 다양한 성격이 글이 실려 있는 녀계약언경계한말이라 도 1906년 한양에서 유통된 자료인데 여기에도 <귀녀가>가 수록되어 있다. 유통된 지역을 알 수 없지만 고대본 귀여가에는 <귀여가> 가사 한 편과 궁합법에 관한 여
귀녀가(귀노라)는 19세기 경북 경주 지역과 관련된 자료다. 여기 에는 <귀녀가라>와 <화젼가라>와 <효셩가라> 3편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 다. 맨 마지막 작품으로 교훈가사인 <효성가라> 말미에 적힌 “갑슐 시월 칠일 셔”를 통해 필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갑술년(甲戌年) 은 1874년 또는 1934년으로 추정된다. <귀녀가라>의 본문에서 1895년 경 주군으로 개칭되기 이전의 명칭인 경주부(慶州府)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갑술년은 1874년일 가능성이 높다. <화젼가라>에서도 경주가 언급되는 것 으로 보아 귀녀가(귀노라)는 19세기 경주를 중심으로 유통된 자료 라고 추정된다.
종사규측(鐘謝閨則)은 1874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규측(閨則)’
이라는 서명에서 여성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겹육갑」, <복션화음녹>, <옥경옥누년가>가 수록되어 있다.
궁합법에 관한 「겹육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가사로 <복션화음녹>은
<복선화음가>의 이본이고, <옥경옥누년가>는 조선과 중국의 역대 사적 을 읊은 <옥루연가>40)의 이본이다. <복션화음녹> 말미와 <옥경옥누년 가> 말미에 각각의 필사기가 있다. <복션화음녹>이 끝나고 줄을 바꾸어 다음과 같은 190자 분량의 필사기가 이어진다.
갑슐 듕츈 초슌의 서산 츄학동 창하의 필셔노라 ㉠이 이
을 며리 쥬게 벗겨달나 여서나 ㉡ 슈뉵십의 안혼은 극심
고 셔녁이 극난기 아조 헤여러니 다시 걱니 만치도 아니
거시 글이 반이라 벗겨서나 손들 작난듕 겨유 그려시나 낙
도 더러닛고 칠도 마니여 뎡치가 못니 고 ㉢너어미 슈젹이니 타일 반기려니와 시속 아희들이 면치도 아닌 싀외할미 필젹이라 그리 앗길넌지 모겟다 잣란게 시슬여 됴희를 다듬지 도 아녀것츨 슈통라
러 글들이 실려 있다.
40) 이상원은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소장된 옥루연가라는 제목의 필사본 가집이 아사 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가 소장했던 가사육종의 원본임을 실증하면서 거기에 수록된 <옥루연가>를 검토하면서 관련 이본이 7종이라고 보고했다. 거기에 종사규측(鐘謝閨則) 소재 <옥경옥누년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옥경 옥누년가>는 <옥루연가>의 새로운 이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원, 앞의 논문, 2009, 115-117면 참조.
㉠을 통해 어느 부인이 자신의 며느리에게 주고자 친정어머니에게 부탁 해 이 자료를 필사했음을 알 수 있다. ㉡에서 필사자는 육십이 된 자신에 게 이 일이 굉장히 버거운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눈도 어둡고 글씨 쓰는 일도 몹시 어려웠지만 마음을 다잡고 손아(孫兒)들을 돌보는 중에 겨우 글 을 베꼈다면서 그간의 수고를 말하는 한편, 낙자(落字)와 개칠(改漆)이 많 다면서 이 책을 정서(正書)하지 못해서 애달프다고 자신의 심사를 솔직하 게 말한다. 이어서 필사자는 ㉢에서 딸을 향해 너는 어미의 수적(手蹟)이라 훗날에도 반기겠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시외할머니의 필적을 “시속 아희 들” 즉 독자인 손자며느리가 아낄지 모르겠다면서 걱정을 내비친다. 필사 자는 필사 전후에 자신이 느꼈던 힘들고 어려웠던 심정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한다. 필사자가 이러한 태도를 보인 것은 ‘생면(生面)’하지 않았다는 말 처럼 이들의 관계가 실제적으로 먼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둘 사이 에서 특별한 친밀감도 찾기 어려우며 심리적 거리도 멀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옥경옥누년가>를 다 필사한 다음, 장을 바꾸어 “이 만치 아니나 우리 어마님 뉵십지년의 벗기신 것시니 셜화가 죠코 비록 노필이 시나 숀의게 젼코여 벗겨쥬쇼셔 녓더니 벗겨쥬시니 부앗겨보 고 혹 모번도 고 보니 로 젼보아라”는 필사기가 있다. 앞 의 필사기와 비교해 서체가 크게 다르지만 내용상 앞의 필사기를 쓴 여성 의 딸이 작성한 필사기로 판단된다. “서산 츄학동”이라는 필사 장소는 미 상이다. 갑술년(甲戌年)은 1874년 또는 1934년에 해당하는데, 함께 수록된
<옥경옥누년가>가 조선과 중국의 역대 사적을 읊은 <옥루연가>의 이본 이라는 점에서 이 자료의 필사는 1874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크 다. 종사규측(鐘謝閨則)은 19세기 후반 계녀가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에서, 세대를 초월하여 전승되었음을 보여 준다.
기슈가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자료로, 연작형 규방가사로 유명 한 합천 화양동 파평 윤씨가 규방가사의 이본이다.41) 합천 화양동 파평
41) 이 작품이 소개된 이후 여러 방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그 이본은 아직 보고되 지 않았다. 이 작품을 최초로 소개한 이신성에 따르면 <합천 화양동 파평윤씨가 규방 가사>는 <기슈가>, <답기슈가>, <됴가>, <위유가>, <반기슈가>, <소가>, <긔 소가>, <게승위귀여 경게>, <권호가> 모두 9편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