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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계녀가의 창작 및 향유의 계기를 제공하는 ‘신행(新行)’을 제목으로 사용한 규방가사 I 소재 <신​​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건곤이 초판​고 일월이 광명하야 사람이 ​​겨시니 만물즁​실녕​ 인황시 분​​후​복희시 법을지어

​​가시집 마련​니 인간​​경이라 남혼녀취 예절노셔 륙녜랄 가츄오고 오륜이 온졀하니 만고​황 졔일이라

규방가사 I 소재 <계여가>가 “아​야 드러바라 내일이 신​​이라”로,  규방가사집 소재 <권실보아라>가 “가련다 귄실권실라 니말삼 드러바 라”로, 교녀가 소재 <교녀가>가 “오홉다 녀아들과 세상 녀들아 훈

계 드러보라”로 시작하는 것처럼 앞 절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대부분 화자 가 청자를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설령 청자를 분명하게 호명하지 않 더라도 청자의 존재는 서사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화자는 청 자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거기에 표현된 감 정이나 서술된 사연 등을 통해서 우리는 이들 작품들에서 화자와 청자가 매우 가깝고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규방가사 I 소 재 <신​​가>에서는 청자를 호명하기는커녕 교훈가사의 담론 구성에 필수 적인 청자의 존재는 생략된 채 화자의 목소리만 제시되고 있다. 주지하다 시피 계녀가류 규방가사와 같이 기존의 이념에 바탕을 둔 당위적 명제를 영향력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가사에서는 진리를 전달하는 화자의 발 화를 들어주고 그것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현상적 청자가 설정되는 경우 가 많다는 점에서30) <신​​가>의 서사는 무척이나 독특해 보인다. 거기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모두 추상적인 성격을 가진 것들로, 유교 이념의 구성 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1행에서는 “건곤이 초판​고 일월이 광명하야”라며 하늘과 땅이 처음 갈라지고 해와 달이 밝게 빛나고 있음을 말한다. 이어지는 제2행에서는

“사람이 ​​겨시니 만물즁​실녕​다”라며 사람의 탄생과 더불어 사람이 신령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제1행이 시공간적 배경에 관한 것이라면 제 2행은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인간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제 3행에서는 이른바 삼황(三皇)이라고 하는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임금인 인황씨(人皇氏)와 복희씨(伏羲氏)가 언급된다. 인황씨는 구주(九州)를 다스 렸고, 복희씨는 혼인 제도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들이다. 여기서 중국 고 대의 제왕을 언급한 것은 이어지는 “​​가시집 마련​니 인간​​경이라”

라는 구절이 앞서 복희씨가 만든 혼인 제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전설 속 존재이지만 복희씨가 법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화자는 장가 와 시집이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 즉 대경(大經)으로서의 가치 와 당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제1행부터 제4행 까지의 내용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화자는 제5행과 제6 행에서 납채·문명·납길·납징·청기·친영의 육례(六禮)를 갖춘 예절인 혼인이

30) 조세형, 「가사 장르의 담론 특성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41-45면 참 조.

야말로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의 오륜(五倫)을 온 전히 하는, 제일(第一)의 일이 될 수 있다면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청자 를 가르친다.31) 이어서 화자는 신미년(辛未年) 시월 보름에 있었던 신행에 관해서 진술한다.

신미년 십월지망 은구시​​신​​이라

㉡텬기는 쳥명​고 풍일이 온화​ 단풍엽 불거잇고 국화​​난만​ 조화옹 단쳥필노 좌우산쳔 길여잇고 욱일옹옹 기려기​​샹텬​놋피날아 압길을 지도​니 혼일이 기이​ 광공도 기졀​다 ㉢유​​유소 놉흔집​

유구거지 ​​을바다 ​​냥아지 치​​​ 군​호구 ​​을만나 종고락지 ​​년은약 요조숙녀 뉘니른고

녹의홍상 갓촤입고 칠보단​​​며​ 진초누​발근달​션텨​도 완연​ 사인교 화초가마 구샬주렴 반만것고 공쥬갓치 고은신부 신부귀츈 화​로셔 은근이 들여안​

“신미년 십월지망 은구시​​신​​이라”라는 구절을 통해서 화자가 마주한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에 나타난 것처럼 혼인을 대하는 화자의 인식이나 신행길에 관한 작품 속 분위기는 앞 절에서 살펴본 작품 들과는 무척 다르다. 예컨대 규방가사 I 소재 <권실보아라>는 “가련다 여뉴 가련다 / 원부모 니형제말 옛마도 엿사”라며 화자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이별에 대한 슬픔을 토로한다. 반면 <신​​가>에서는

31) 여기에서 “만고​황”은 만고(萬古)와 자황(子黃)의 합성어로 보인다. 만고는 아주 먼 옛날이고, 자황은 지지(地支)의 첫 번째인 자(子)와 십이율(十二律)의 첫 번째인 황종 (黃鍾)을 합친 말로 추측된다. 율려(律呂)에 관한 여러 기록에서 십이율의 순서를 지 지의 순서에 따라 설명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따르면 십이율의 첫 번째 음인 황종에는 십이 지지의 첫 번째인 자를 병기해 두었다. 이만부, 「율려추보(律呂推 步)」, 식산집(息山集)권 10; 유중교, 「현가궤범(絃歌軌範)」, 성재집(省齋集)별집 권3.

“혼일이 기이​고 / 광공도 기졀​다”라며 그 날에 대한 분위기를 환상적 으로 서술한다. 이 같은 화자의 태도는 앞 절에서 살핀 작품들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에서 화자는 시경(詩經)의 ‘유작유소 유구거지 (維鵲有巢 維鳩居之)’32), ‘요조숙녀 군자호구(窈窕淑女 君子好逑)’33), ‘종고락 지(鍾鼓樂之)’34), ‘백량장지(百兩將之)’35) 등의 어구를 엮어서 전아한 분위 기를 연출한 다음, ‘녹의홍상’과 ‘칠보단장’, ‘공주’와 ‘선녀’ 등의 관습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신부의 형용을 화려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이들 대상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래 부분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원부모 형뎌회포 녀​탄식 그아닌가 부모슬​잠간​나 ​​면강​​​자가니 녀​인​​어엿버라 ㉣​​슈모친 거동보소 가마압​달여셔셔 슈근쥬며 손을잡고 말​​소​나젹나젹 못늬못늬 당부​ 쳔​​만​​훈계로​모친훈계 ​샹​ 말​​마자 법이로다

㉤건근곤슉 남녀성질

부챵부슈 ​필되야 젹인종부 오날이라 쥬옥갓치 너를길너 이팔방년 조흔시졀 명문셰족 효우​​명망잇고 놉흔문호 슌못​​구시​​을 앙망​야 ​​니산쳔 먼먼길​옥인군​​​셔​니 흔흔장부 일등가장 풍​조흔 두목지요 탄복동샹 왕희지라

원부모 원형뎨난 녀​유​​옛법이라 예로부터 잇​​예절 녀​의계 영화로다

㉥​​둔 어미마​​남의집 보​올​

일단조심 안니른가

32) 시경국풍(國風) 소남(召南) <작소(鵲巢)>.

33) 시경국풍 주남(周南) <관저(關雎)>.

34) 위의 책.

35) 시경국풍 소남 <작소>.

인물이 남못할가 언어동​​남못​​ 치흔결속 남봇​​가 일심​​​친걱졍 어난​​이 다알손냐

“원부모 형뎌회포 녀​탄식 그아닌가 / 부모슬​잠간​나 ​​면강​​​

자가니 / 녀​인​​어엿버라”와 관련하여 화자는 앞서 <권실보아라>에서 언급된 원부모이형제(遠父母離兄弟)로 상징되는 여성들의 처지와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화자는 당사자가 아 닌 관찰자로서 이 사건을 대하고 있다. ㉣은 화자가 관찰자로서 이들을 바 라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앞서 살펴본 <계여가라>, <여아​​펴라>, <권 실보아라>와 비교해 혼인을 대하는 화자의 인식과 신행길에 관한 작품 속 분위기가 다른 것은 화자가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36) 이러 한 태도는 공히 ㉥에서도 나타난다. 화자가 ‘너’ 대신 ‘딸’로 청자를 부르고 있지만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받아들이기에는 어색 한 감이 없지 않다. “어난​​이 다알손냐”라는 구절처럼 여전히 관찰자의 시선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관찰자로 존재하는 화자는 ㉤에서 신행을 앞둔 딸을 둔 모친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모친의 당부와 훈계는 앞 절에서 살펴본 작품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유교 규범을 강조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예컨대 “부챵부슈 ​필되야 젹인종부 오날이라”는 화자가 청자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창 부수(夫唱婦隨)와 적인종부(適人從夫) 모두 남자를 우위에 두었던 전근대 시기의 대표적인 유교 이념이다. 특히 적인종부는 전근대 시기 여성이 따 라야 할 세 가지 도리인 삼종지도(三從之道) 중 하나로, 남편에 대한 아내 의 도리를 뜻한다.37) 화자는 신행을 앞둔 딸의 상황이나 심정이 아니라 기

36) 이는 이 작품의 창작 환경이 다른 작품들과 다른 데에서 발생한 결과일 수 있다. 이 작품의 해제에 따르면 이 작품의 작자는 채병소라고 한다. 규방가사I에 수록된 계 녀교훈가류 중에서 작자의 성명을 구체적으로 밝힌 작품은 <신​​가>가 유일하다.

<복선화음가(福善禍淫歌)>에서는 김한림(金翰林)의 증손부(曾孫婦) 이씨부인(李氏夫 人)으로, <훈민가>는 거동댁으로, <경계사라>는 동래정씨로 되어 있다. <신​​가>의 작자인 채병소의 생몰이나 성별을 비롯한 추가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기에 자세한 논의는 불가능하지만 화자가 관찰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권영철 편, 위의 책, 1979, 37면.

37) “부인은 남에게 복종하는 존재이다. 이 때문에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없고 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