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는 경계 위반으로서의 글쓰기와 꿈꾸기에 대해 생각한다. 국외입 양은 입양아들이 입양되지 않고 출생국에 남았더라면 ‘상징적으로 죽었다’고 유추되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로 보인다. 이러 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입양아들은 출생국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입양국에 동화하는 데 만전을 기하라는 충고를 양부모 등에게 들으며 성장한다. 하지 만 일부 입양인들은 입양되기 전 삶에 주목하며 역량을 쌓는 아이러니를 체 험한다. 본 장에서는 입양인 문학에서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상실과 획득 사이의 이분법적 경계가 해체되며 합일되는 양상을 탐색한다. 입양인 문학에 서 삶과 죽음은 밀접하게 엇갈려서 길항한다. 살기 위해 갔지만 입양국에서
‘죽어버린’ 영혼과 출생국에 ‘죽기 위해’ 돌아갔지만 뜻밖에 살아서 숨 쉬게 되는 입양인 문학의 주제의식을 통해, 삶과 죽음을 횡단하며 죽음과 삶이 혼 재하는 여행의 양상을 추체험할 수 있다. 입양인 문학에서는 동과 서를 횡단 하는 여행과 글쓰기를 통해 입양에 관한 선입견이나 환상을 해체 재구성하도 록 이끌며 새로운 담론을 생산한다.
입양인들은 몸과 마음의 불일치를 첨예하게 경험하며 자신의 뿌리나 고향 에 대해서 예민하게 느끼며 집과 고향을 찾는 것이 일종의 삶의 기획 (project)이 되기도 한다. 아스트리드 트롯찌가 주축이 되어서 수많은 한국 태생 입양인들의 수필을 엮어서 출판된 책의 제목은 『제자리로 되돌아오다』
(Hitta hem)388)이다. 이 선집에서 “제자리”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이 책 은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국외입양이나 한국, 스웨덴적 정체성389)에 대해서 직접 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입양인들은 자신의 민족정체성이 입양국에 388) Astrid Trotzig et al, Hitta hem: vuxna adopterade från Korea berättar(제자 리로 되돌아오다: 한국 출신 성인 입양인들이 말하다) (Stockholm : Ordfront förlag, 2003).
389) Judith Lind, 앞의 논문, 91쪽. 카타리나 마트쏜(Katarina Mattsson)은 스웨덴 에서 크게 다섯 가지 특징으로 ‘스웨덴 정체성’이 인정된다고 열거하였다. 다섯 가 지 스웨덴성은 스웨덴 출생, 스웨덴 국적, 문화와 언어,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 계, 즉 스웨덴 혈통의 친부모를 가진 점, 스웨덴적인 외모로 구성되는데, 한국 출 신 입양인들은 이 가운데 1, 4, 5항에 해당하지 않아서 ‘비스웨덴적인’ 존재로 주 변화될 수 있다.
서 존중받지 않다 보면 고향을 동경하기도 하는데 고향이 어디인지가 명확하 지 않을 수 있다. 입양인들에게 고향이 불확실하다는 심정은 영구 정착지에 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관념을 안겨준다. 입양인 문학에서는 한 번 잃 어버린 고향이 원상태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입양인들은 국 외입양으로 떠나온 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쉬워서 정주할 만한 고향으로 받 아들이기 쉽지 않다. 한국 태생 노르웨이 입양인 서니 조(Sunny Jo)는 입양 인들에게 가장 안락한 거주지가 입양국이나 출생국이 아니라 캐나다처럼 비 교적 다민족국가로 거듭난 제3국이라고 지적한다.390) 입양인들 중에서는 지 금 살아가는 장소를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거나 숫제 고향이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여러 입양인 문학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입양인이 출생국에서 겪은 일 화들을 중심으로 서술되며 ‘목표지’가 대체로 입양국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일리아나 킴(Eleana J. Kim)은 마크 오제(Marc Augé)의 ‘무장소 성’(non-places) 개념을 통해서 입양인들이 한국에 방문해서 일시적으로 보 내는 시공간은 실제 삶(real lives)과 괴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391) 여러 입 양인 작가들은 마크 오제가 언급한 바대로 한국에 단기체류나 여행을 한 뒤 작품을 쓰기에 한국사회 재이주 경험을 자세하게 다면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반면, 제인 정 트렌카와 윤주희, 마야 리 랑와드의 작품들에서는 한국에 ‘재 이주’한 경험 속의 환멸과 갈등, 한국에서 ‘한국인’이면서 외국 출신의 이주 노동자가 된 처지, 입양인들을 바라보는 한국의 문제적 태도를 심도 있게 다 루고 있다.
본 장에서는 망설임과 기대가 혼재된 심정으로 한국 방문을 고민하다가 마 침내 한국에 도착한 이후 겪는 입양인들의 몸과 마음의 파장을 비교한다. 이 글에서는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 여행의 의미와 좌절을 살펴보면서, 입양인 들의 한국 방문의 의미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기 힘든 특성을 탐색한다. 입양인 문학에서는 한국에 대한 양가성이 눈에 띄는데 모순적인 서술 속에 잠재된 긍정적 여지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자전적인 서사로 한 국방문 체험을 서술한 입양인 문학과 차별적으로 상상과 분신 창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한국의 가족과 상봉하는 작품도 여타 작품들과 비교하면서 입양 인의 자기 정체성 찾기 노력의 다양한 면면을 살펴본다.
390) Sunny Jo, From Morning Calm to Midnight Sun (Indiana : Truepeny Publishing, 2005), 136쪽.
391) Eleana J. Kim, 앞의 책, 146쪽.
(1) 고향상실자의 ‘고향’에서의 소외
제인 정 트렌카의 자서전 『덧없는 환영들』은 작가 자신을 비롯한 한국 거 주 입양인들이 한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겪는 우여곡절을 사실적으로 전개 한다. 이는 이 작품이 입양인 문학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 기도 하다.392) 트렌카의 작품들에서는 ‘집 - 집 밖 - 집’을 순회하는 이동경 로가 입양인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추출되는 경로와 상이하게 나타난다. 입양 인 작가들은 보통 입양국으로 설정된 ‘집’을 떠나서 ‘집 밖’인 한국에 단기체 류로 방문해서 유의미한 체험을 한 뒤 한결 완숙해진 자아를 구성해서 ‘집(입 양국)’으로 되돌아가는 전개방식을 취한다. 반면, 트렌카의 작품들에서는 한 국이라는 집을 ‘타의’로 떠나서 집 밖인 미국에서 오래도록 살다가 고난을 겪 은 후 한국이라는 ‘집’에 ‘자의’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취한다. 『덧없는 환영 들』은 작가의 장기 체류를 통해서 창작된 만큼 귀환 과정에서 입양인들이 겪 는 다양한 면모가 담겨있다. 트렌카의 작품에는 입양인들에게 ‘한국인 되기’
압력이 주는 부담감과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를 맴도는 입양인의 삶, 인종적 소수자로 살다가 인종적 다수자로서 다른 ‘내부 이방인들393)’을 보는 안타까 움, 입양인 인권운동을 통해 개인적인 체험을 확장하는 움직임이 담겨있다.
고향을 되찾으려는 입양인들의 노력은 한국으로 회귀하는 결과로 실현된 다. 트렌카의 작품들에서는 거창한 당위성이 없어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입양인들을 보여준다. 트렌카의 작품들에서는 입양인들이 연어와 나비로 비 유되는데, 태어난 장소로 반드시 귀환하는 연어의 역동적인 귀소본능은 일부
392) Kim Su Rasmussen et al, “The Temporality of the Late Arrival: Fanon, Trenka, and the Question of Returning,” 315쪽.
393) 원래 “내부 이방인”이라는 표현은 흑인 페미니즘에서 인종적 소수자이자 성소 수자인 흑인여성의 박해받는 삶을 가리키며 사용되었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 가정부는 내부의 외부인이라는 흥미로운 사회적 위치에 처하며, 내부의 외부인 위치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흑인여성 고유의 관점을 가지게 한 특수적 주변적 위치”라고 강조하며, 흑인여성이 자신들의 비판적인 입장을 형성하게 된 배경이 ‘내부의 외부인’이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흑인여성들은 자신들과 같은 종속집단이 지니는 지식을 억압하는 지배집단의 힘을 공개할뿐더러, 어떻게 억압 된 구조를 새롭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내부의 외부인이라는 위 치는 자신의 억압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약자들이 겪은 억압을 통해서 사회를 새 롭게 볼 수 있는 지평을 안겨준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박미선 외 옮김, 여이연, 2009, 184쪽.
입양인들이 기어코 한국을 방문하는 현실을 가리킨다.
연어에 관한 시를 읽는다. 그것들이 분투하는 모습, 몸의 껍질을 뜯겨가면서까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 굶주린 것도 아니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왔던 곳 으로 되돌아간다. 굶주린 것도 아닌데.394)
I read a poem about salmon, the way they struggle, the way their skin tears as they leap upstream, the way they go back for no apparent reason, they are not even starving. They are not even starving.395)
왕나비는 철따라 이주한다.
나비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Monarchs migrate.
No one knows how they can find their way.396)
위의 인용문에서 트렌카는 연어가 세찬 물결을 헤치고 역류해 고향으로 돌 아가는 것을 기적으로 그린다. 연어는 먹을 것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이동해 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힘을 내서 헤엄을 치는 귀소본능 을 갖는다. 한국 거주 입양인들 역시 물질적으로 풍족한 입양국을 떠나서 가 난한 친부모가 살아가는 한국으로 귀환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버터플라이.” 단어를 보고서 내가 말한다.
“아, 버-터-프라이!” 언니가 따라한다. “한복이 버터프라이 같아!”
그 순간 우리를 둘러싼 선반 가득 한 무리 나비 떼가 차례로 날아오르려고 이제 막 날갯짓을 터뜨릴 것만 같다.397)
“Butterfly,” I say.
“Oh, but-ter-ply!” Eun-Mi says back. “Hanbok is like butterfly.”
Suddenly, it seems that we are surrounded by shelves full of butterfly wings, all waiting their turn to fly.398)
『피의 언어』에서 발췌한 위의 인용문에서는 나비의 계절이동을 예로 들며 자신의 길을 찾아 의연하게 떠나는 입양인의 역동적인 이동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언니 면전에서 한복의 맵시를 선보이며 흡사 나비
394) 제인 정 트렌카, 『덧없는 환영들』, 23쪽.
395) Jane Jeong Trenka, Fugitive Visions: An Adoptee's Return To Korea, 13쪽.
396) Jane Jeong Trenka, The Language of Blood, 37쪽.
397) 제인 정 트렌카, 『피의 언어』, 170쪽.
398) Jane Jeong Trenka, The Language of Blood, 130-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