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들은 생모와의 분리가 남긴 원초적 상처, ‘비유럽적 신체’로 인한 일 상적 인종주의 피해와 주변화, 입양가정에서 비혈연 자식으로서의 불안함 등 으로 인해 우울해할 수 있다. 본 절에서는 인종 차이와 입양가정에서 입양아 들의 독특한 감정 구조가 입양인에게 우울을 심화하는 양상이 입양인 문학에
서 어떻게 재현되어 있는지 비교한다. 본 절은 제인 정 트렌카와 브륀율프 융 티옌의 작품을 중심으로 입양인들의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상흔을 글쓰기로 승화하는 양상을 연관해서 살펴보는 데 의의를 둔다.
(1) 감정노동으로 인한 우울증
제인 정 트렌카의 작품들은 입양아들이 양부모의 입양 결정이 타당하다는 점을 증명해주기 위한 특수한 성격의 ‘감정노동’으로 인해 우울감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다룬다.
감정노동의 가치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워서 유급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폄하되기 쉽다.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는 감정노동 (affective labour)을 특정한 감정 상태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정의한다.339) 감정노동은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변천을 거치며 서비스업 등에서 개인 의 감정과 정념을 생산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적 노동형태를 가리킨 다. 감정노동은 후기산업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주로 담당해온 가족을 위한 돌봄노동에서 비롯되었다. 감정노동은 안락함, 건강함, 만족, 흥분, 정념, 공동체 소속감 등 대부분 비물질적인 노동 으로 비가시적인 속성이 강해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속성은 감 정노동에 종사하는 주체의 가치를 하향조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자들이나 입양인 연구자들인 데이빗 응과 리네 명340), 일리아나 킴 등에 의해서 백인 양부모와 살아가는 입양아의 삶을 ‘감 정노동’으로 보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유색인종 입양아들이 서구에 서 인종 차이가 ‘색맹’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는 기조에서 인종주의에 대해 서 침묵하도록 유도 받는 점, 양부모의 입양 결정을 인류애를 담은 선행으로 인식하며 자신이 수혜자라는 감사함, 국외입양이나 인종화된 삶에서 불거진 우울함을 양부모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충분히 착한 아이’로 남아야 하는 339) 신경숙, 「공감, 보기, 그리고 감정노동 - 『프랑켄스타인』의 아담 스미스 다시 읽
기」, 『영어영문학』 58권 2호, 2012, 199쪽.
340) 리네 명은 덴마크에서 1970년대 이후 이민이 극도로 제한된 것과 대조적으로 동시기 국외입양이 폭증했다는 점을 대조한다. 명은 서구에서 ‘박애주의적’ 인도주 의로 제3세계 “고아”들의 문제를 걱정했다면, 아이만 선별적으로 ‘도울’ 것이 아니 라 가족 전체가 서구에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Lene Myung, “Magtkamp. Adoption er ikke ’sidste udvej’(권력 투쟁: 입양은 최후의 해결책이 아니다.)” Politiken. 2013년 4월 20일.
중압감, 양부모가 가난한 한국의 친가족 중 어린 자신만을 ‘구원’한 결정을 탓하지 않는 점341)을 감정노동의 일환으로 이해한다. 입양아는 입양된 이후 양부모에게 ‘빚진 삶’을 결초보은하기 위해 감정노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아이는 아시아에서 왔지만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입양과정을 거치며 무마된 다는 점을 증명하며, 입양국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가며 인종 차이가 중요하 지 않다는 관념을 전파해주는 ‘노동’을 담당해야 한다. 데이비드 응이 언급한 친밀성 속의 인종화(racialization of intimacy)는 양부모와 자식 간의 인종 차이를 무시하고 유색인종 입양아를 백인으로 취급하거나, 양부모와 입양아 사이의 다층적 위계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것을 가리킨다.342)
아시아 태생 입양아들의 미국 정착과정은 여타 아시아 이민자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이민정책에 있어서 1882년부터 1943년까지 아시아 이민자 축출 기조를 유지했다. 미국에서는 이후에도 아시아 출신 이주자들의
341) 벨기에에서는 취업이민이나 정치적 난민에 대해서 갈수록 불관용을 띠는 추세 이다. 반면, ‘친족관계’ 관련 이민은 상대적으로 쉽게 허용되어서 가족재결합이나 결혼이민 및 국외입양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디어나 좌우 정치인들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벨기에인들은 국외입양을 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입양아들은 벨기에에 입국하기 전부터 ‘벨기에 시민’으로서 여권을 발급받는다. 일반 이민자들 은 직계가족을 가족재결합절차를 통해서 벨기에에 초청할 수 있지만 ‘이민자’의 일 종인 입양아는 자신의 가족을 벨기에로 입국시키는 것이 불가하다. 벨기에에서 친가 족과 같이 살고자 하는 아이의 소망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는 국외입양에서 아이들 만 선별적으로 ‘돕는다’는 점을 말해준다. Katrien De Graeve, “‘They Have Our Culture’: Negotiating Migration in Belgian–Ethiopian Transnational Adoption,” 6-9쪽.
342)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주는 예는 디앤 볼쉐이 림(Deann Borshay Liem)의 자전 적 다큐멘터리 영화 『일인칭 복수』(First Person Plural, 2000)이다. 디앤은 유 복한 가정에 입양된 이후 성장 기간 내내 입양한 딸의 일상을 촬영하는 데 열중 인 아버지의 영상에서 유복한 백인중산층 소녀의 일상을 즐기며 크는 것처럼 보 인다. 디앤은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어린 시절 식당에서 가족과 외식할 때 주변사 람들이 가족 일행을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것에 양부모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 에 관해 질문한다. 디앤은 당시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만찬을 즐기는 양부모 의 대응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행동으로 인식되었다고 양부모에게 고백한다. 또 한, 한국인의 얼굴을 간직한 디앤의 혼종성은 삶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디앤은 백 인가족과 백인 인형에 둘러싸인 삶에서 인종적 우울증에 걸린다. 디앤에게는 행복 하고 풍족해 보이는 입양아의 성장과정을 카메라에 지속적으로 담아내는 양아버 지의 취미가 이국적인 인형을 다른 백인들에게 과시하는 행위로 비친다. 디앤은 영화감독이 되어서 자신의 양부모와 오누이, 그리고 자신의 한국 가족의 얼굴을 카메라로 찍는다. 이것은 카메라 촬영(글쓰기)의 서사화 힘을 보여준다. 이 점에 서 입양인들의 글쓰기(및 영화촬영)는 수동적으로 해석되던 입양인이 자신을 둘 러싼 사람들과 세상을 능동적으로 관찰하며 입장을 갖는다는 전복적인 서사화를 보여준다.
이민 신청을 불허하는 반아시아 이민정책이 뒤따랐다. 반면, 미국에 입양되는 아시아 아이들(특히 여아들)은 “특권을 소유한 이민자”343)로서 미국 영주권을 쉽게 취득하며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된다.344) 입양아들이 유색인종 이주자들 중에서 예외적으로 쉽게 시민권을 취득하는 일은 이민 허가가 엄격한 덴마크 나 호주, 스위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입양인들의 삶이 모든 점 에서 특권적인 것은 아니다.
앤린 쳉(Anne Anlin Cheng)은 『인종의 우울함: 심리분석, 동화와 숨겨진 슬픔』(The Melancholy of Race: Psychoanalysis, Assimilation, and Hidden Grief)에서 아시아 출신 이주자들이 서구에서 인종적 우울함을 느끼 기 쉽다고 지적한다. 쳉은 아시아 이주자들은 서구에서 인종주의자들의 폭력 과 무지를 부단히 용서해야 하는 압박과 일상적 인종주의가 상존하는 사회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무력감으로 인해 우울해지기 쉽다고 분석한다.345) 특이한 점은 인종차별 문제의식이 투철한 아시아 이주자들보다, 인종 문제를 외면하 는 아시아 이민자나 입양인에게서 인종적 우울함이 더욱 자주 나타난다는 점 이다. 쳉은 아시아 이주자들이 인종주의를 과도하게 부인하는 과정에서 우울 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346)
데이빗 응 역시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과 입양인들은 공히 인종적 우울증 (racial melancholia)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347)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 는 서구에서 아시아 디아스포라들은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애조를 띤 감정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아시아 문명에서 벗어나는 파격적인 이주 과정과 서구 에 적응해야 하는 생존본능, 그리고 인종적 소수자로서 백인 중심 사회에서 인종화되는 일상은 아시아 이주자들의 삶의 만족도를 감퇴시켜서 신경정신 질환을 유도할 수 있다. 이민자들은 가족 단위로 이주해왔기에 인종적 우울
343) David L. Eng, “Transnational Adoption and Queer Diasporas,” Social Text 21-3 (2003): 7.
344) 호주의 백호주의 이민정책(The White Australian Policy)은 1901년에 제정돼 서 1975년에 폐지됐다. 호주에서는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의 호주 정착이 어려웠 던 데 반해서 한국이나 베트남 출신의 입양아들은 비교적 순조롭게 호주에 정착 할 수 있었다. Kim Gray, “Vietnamese and Korean Adoptee Experiences in Australia,” in International Korean Adoption (New York : The Haworth Press, 2007), 243쪽.
345) Anne Anlin Cheng, The Melancholy of Race: Psychoanalysis, Assimilation, and Hidden Grief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참조.
346) Kim Ja Park Nelson, 앞의 논문, 283-284쪽.
347) David L. Eng, 앞의 책, 150-151쪽.
증을 가족과 함께 극복한다는 이점을 갖는다. 반면, 백인가정에 혈혈단신 입 양된 아이는 고독하게 침묵 속에서 인종적 우울증을 감내해야 하므로 우울 증세를 방치하기 쉽다.
끌라우디아 까스따녜다(Claudia Castañeda)에 의하면, 잠재적 양부모들은 아이를 입양할 때 오늘날처럼 국내입양보다 국외입양의 수요가 높은 상황에 서 아이의 인종적 타자성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348) 양부모 는 외국인처럼 생긴 인종적 타자를 사랑스러운 자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우 므로 아이에게 자의적이고 개인적인 인종을 부여한다.349) 유색인종 아이들이 초국적으로 이주하면서 백인가정에서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이주과정 은 ‘초인종적 입양’의 성격이 무시된 채 ‘국외입양’에 국한되어서 이해된다.
까스따녜다는 ‘모핑(morphing)’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백인 양부모들이 형 태가 서서히 바뀌어서 다른 형태로 탈바꿈되듯이 아이의 인종이 색깔처럼 인 위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양부모가 아이의 인종 을 ‘흰 색’으로 상상하는 것은 부모가 자의적으로 부여한 ‘선택에 의한 색깔 로서의 인종’이기에 집 밖에서 거의 인정(recognition)을 받지 못한다는 한계 를 갖는다. 마크 제룽(Mark C. Jerng)은 입양아들이 입양 전후 수차례 ‘승 인’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한다.350) 문제는 사람들마다 제각각 아이들을 다르게 승인하거나 오인하므로 아이를 둘러싼 정체성이나 명명의 경합이 지 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유색인종 입양아는 ‘백인 가정’에서 인종 성 형수술을 받지 않은 채 양부모에 의해서 상상적으로 백인이 되는 환각적인 경험을 한다.
양부모들은 아이의 비백인성을 접하며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예 컨대, 적잖은 양부모들은 아이를 상징적인 백인으로 키우면서 ‘다인종가정’이 된 입양가정의 특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데이빗 커크(David Kirk) 는 ‘입양의 3주체’(양부모, 친부모, 입양아)가 직면하는 역할 장애를 분석하였 다.351) 아이가 없는 커플이 입양 이후 겪는 역할장애(role handicap)는 다른
348) Claudia Castañeda, Figurations : Child, Bodies, Worlds (Durham : Duke University Press, 2002), 91쪽.
349) 입양아의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는 친족관계의 선행조건이다. 아이는 이 방인적인 외국 아이에서 흡사 백인으로 보이는 파격적인 변화를 수행해야 새로운 친족관계의 사랑스러운 구성원이 될 수 있다. Signe Howell, 앞의 책, 68쪽.
350) Mark C. Jerng, 앞의 책, 186쪽.
351) Mia Tuan et al, Choosing Ethnicity, Negotiating Race, Korean Adoptees in America (New York : Russell Sage Foundation, 2011),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