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문학에서는 국외입양이 전 세계 고아문제를 해결하는 차선책이 아 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입양아들은 마음속에서 고아 의식과 입양가정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품기도 한다. 본 절에서는 『중국남자』와 『마침내 살만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중심으로 불충분한 구원으로 인한 입양 아의 불안이 서술되는 양상을 비교한다.
(1) 입양아의 사회적 죽음과 불충분한 구원
친족관계에서 분리된 아이들은 입양을 통해서 새로운 친족관계에 소속되며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할 기회를 새롭게 얻는다. 그러나 입양인 문학에 서는 입양가정의 보호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생모와의 이별 및 입양 과정의 제반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입양인의 고뇌를 형상화하고 있 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 씨그네 호웰(Signe Howell)은 아이들이 친족관계에서 분리되면 공동체와 시민권, 출생국 언어, 민족정체성으로부터 ‘벌거벗겨 진 다’고 지적한다.292) 일종의 ‘사회적 나체 상태’에 처한 아이(고아)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한다. 아이는 입양되면서 새로운 ‘친족관계’에 편입 되면 ‘사회적으로’ 옷을 입게 되어서 알몸 상태를 탈피한다. 아이는 양부모와 친족관계를 형성하며 새로운 공동체와 시민권, 입양국 언어, 이름을 선사받는 다. 다만, 아이가 사회적으로 옷을 착용하는 대가는 입양 전 타의에 의해 벗 겨진 옷을 다시 입지 않으며 새로운 옷들만 입어야 한다는 규칙을 준수하는
292) Signe Howell, 앞의 책, 4쪽.
것이다. 인류학자 사라 도로우(Sara Dorow)는 아이의 위치를 중심으로 입양 과정을 고찰한다.293) 아이는 원래 있었던 장소에서 존재를 위협당하며 탈구 (dislocation)됨으로써 친부모로부터 완전하게 소외된다. 입양은 아이의 존재 가 소외로 점철될 때 아이를 재배치(relocation)시켜서 친부모로부터 중단된 애정을 새로운 친족관계에서 다시 얻도록 만들어준다.
윌프레드 비온(Wilfred Bion)의 ‘컨테이너 이론’은 아이의 지적 호기심이나 충동이 유아에게 적절하게 반응하는 어머니의 역량에 좌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후 어머니로부터 정서적 지지와 배려를 충분히 받은 아이들은 환경 이나 대상에 지적 역량을 발휘하거나 관심을 보인다. 유아는 부모의 따뜻한 관심이 일종의 ‘컨테이너’가 되어서 순탄하게 성장한다. 반면, 유아는 어머니 가 자신의 투사와 불안 내용을 충분히 컨테이닝하지 못하면 ‘이름 없는 두려 움’에 휩싸여서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심화한다. 이 두려 움은 아이의 불안과 거세공포를 활성화한다.
브륀율프 융 티옌의 『중국남자』에는 입양인의 만성적인 불안이 서술되어 있다. 주인공의 불안은 입양아라는 표식에서 비롯되어 가족행사에서 배제되 는 사건으로 심화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도살당하는 가축들과 입양아인 자신을 동일시하며 ‘착한 아버지’를 이탈한 아버지가 언젠가 돌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한다. 주인공은 이러한 불안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이 불시에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불안은 양가적인 아버지상에 대한 갈등과 온전한 어머니가 부재하다는 관념 속에서 복수 어머니(들)를 두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동시에 주인공은 자기 동일시의 대상이 될 법한 존재들, 즉, E.T.를 비롯해서 주변의 고독한 존재들과 ‘고아 들’, 동물들에게 감정이입하며 외로움을 극복하려 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비 롯해서 ‘고아적 존재들’이 생후 초기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데서 공통점 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입양 체험으로 인한 소외감을 극복할 방안 을 죽음에 둔다. 주인공은 사후 브레께 가문의 영지에 안장됨으로써 노르웨 이의 친족관계를 완성하려는 욕구로 브레께 가문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다.
이 소설에서는 죽음과 삶의 문제의식이 도처에 가득하다. 주인공은 유아일 때 입양되어서 자신의 입양 사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한국의 가족과 헤어졌듯 이 입양가정에서 파양되어서 고아원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우려한다. 주인공 은 친부모에게 버려진 것이 원체험이 되면서 죽음 체험과 유사한 상처를 받
293) Sara K. Dorow, 앞의 책, 5쪽.
는다. 주인공에게 입양은 ‘원초적 상처(The Primal Wound)’294)를 치유하는 삶의 구제 수단이 된다. 주인공은 영아 유기나 고아원 성장, 입양되지 않고 한국에서 고아로 성장해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삶을 죽음에 근접한 것들 로 인식한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입양은 죽음과 가까운 세계에 위치해 있어서 긍정적인 의미만을 띠지 않는다. 주인공은 죽음과 삶 사이에서 일상적인 불안과 공포 를 느끼며 불시에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춘기에 들어설 때까지 부 모와 같이 잔다. 주인공은 어두움에서부터 천둥번개, 피오르드에 위치한 광활 한 자연, 박쥐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거의 모든 것들을 두려워한다. 주인 공이 공포에 전율하며 유년기를 보내는 이유는 입양 전 겪었던 상처가 기억 에 남아서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어린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폈 어야 할 존재와 헤어진 이후 입양가정의 자식으로 남는다는 점을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항상 어두움을 두려워했다.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만 들었지만 상상하도록 만들었다. (중략) 나에게 어두움에 대한 공포는 집에 있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중략) 내가 집에 혼자 있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Jeg har alltid vært redd for mørket. Jeg har alltid vært redd for det jeg ikke kan se, men bare innbille meg. (중략) Denne redselen for mørket gjorde meg også husredd. (중략) Det gikk mange år før jeg turte å være hjemme alene.295)
『중국남자』에서는 죽음의 이미지가 소설 전체에 주제의식을 제공하며 주인 공은 죽음을 실제적 차원에서 의식한다. 이 소설에서는 고양이들이 죽는 것 으로 시작해서 수많은 인물들이 다양한 사유로 죽는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 들은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뿐만 아니라 사고사를 당하거나 살해당한 다. 주인공은 자신이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죽음들 가운데 상당수를 자신과 연관 지어서 사고한다. 주인공은 자신도 우발적으로 죽거나 살해당할 수 있 다고 염려한다. 주인공에게 인도 출신 입양아로 살다가 인종주의 공격으로 숨진 아르베 베하임 칼슨(Arve Beheim Karlsen)의 죽음은 소수인종에 대한 혐오가 폭력과 살의로 비화될 수 있음을 각인시켜준다. 주인공은 노르웨이에
294) 낸시 뉴턴 베리어, 앞의 책 참조.
295) Brynjulf Jung Tjønn, 앞의 책, 179쪽.
서 입양아가 인종주의 성향의 괴한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서 사망한 실제 사 건을 소설을 통해 고발한다.296)
주인공은 아래 인용문처럼 잔인한 범죄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실망한다. 주인공은 동물을 무참히 도살하 는 피오르드에 위치한 전원 마을의 은폐된 폭력성을 간파한다. 이 소설에서 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연중 방문하는 전원풍경을 자랑하는 한적하고 평온한 마을에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고양이들과 병이 들어서 도살당하는 양 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주인공은 한 생명이 죽은 대가로 얻어진 양털로 짠 스웨터를 입지 않거나 고향과 거리를 두며 강인한 동물들로 가득 찬 고향 에서 탈피하려 한다.
내가 송엔달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 원인은 이 고을에서 젊은 유색인종 소년이 나처럼 다르게 보인다는 점만으로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Der og da følte jeg at Sogndal hadde forandret seg: Jeg tenkte at her kan unge, mørkhudede gutter dø fordi de ser annerledes ut. Akkurat som meg.297)
주인공은 삶과 죽음이 우연으로 결정된다고 판단하며 자신의 죽음을 냉소 적으로 예견한다. 주인공은 노르웨이의 브레께 농가에 입양된 것부터 우연이 며 누군가 살고 죽는 것도 우연으로 결정된다고 이해한다. 주인공은 한국행 비행기에서 옆에 앉은 승객이 비만 때문에 가쁘게 숨을 쉬며 잠자는 것을 심 장마비로 죽어가는 단말마의 고통으로 착각할 만큼 죽음에 과민하다.
주인공은 브레께 가문의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중시한다.298) 입양인들은 가 족의 의미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두기도 한다. 입양인들의 가족에 대한 애착 은 친부모와 양부모로 시작되어서 결혼한 이후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사랑으 로 이어지기도 한다. 입양이라는 비혈연 친족관계에서 살아온 입양인들은 부
296) 노르웨이에서는 브륀율프 융 티옌보다 한 살 어린 19세의 입양소년 아르베 베 하임 칼슨과 가나계 노르웨이인(비입양인) 벤야민 하르만슨(Benjamin Hermansen)이 각각 인종주의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서 사망하였다. 노르웨이 의 극우 인종주의자 약 에릭 큐우스(Jack-Erik Kjuus)는 모든 유색인종 입양인 들에게 단종수술을 시켜서 ‘인종 오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97) Brynjulf Jung Tjønn, 앞의 책, 40쪽.
298)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입양아들은 비입양아들에 비해서 조부모와 함께 시간 을 더욱 많이 보낸다고 보고된다. 이는 친족관계를 강화하려는 양부모와 입양아의 공통된 의도가 담긴 결정이다. Signe Howell, 앞의 책,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