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존을 보장받고 있는가? 이 시대의 물질적 풍요로 인해 만약 최소한 물리적 의미의 생존은 보장받고 있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행복한, 누릴 만한 가치를 가진 생 존을 보장받고 있는가라고 반문하여야 한다. 단순한 물리적 생존이 아니라 누릴 만한 삶의 보장만이 진정한 인간됨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던 수많은 위험요인들을 극복한 지금 왜 우리는 굶주리 고 병들고 전쟁을 치르던 과거보다 더한 급박한 위험으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가? 기아, 질병, 자연재해 그리고 전쟁의 살육으로 인한 삶의 위협을 다만 역사책의 한 귀퉁이로 떠나보내고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지금,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양상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전지구화의 현실에서 서로 다른 민족과 혈연, 국가 등 다양한 집단이 대표하는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를 만나게 되는 일은 빈번한 일상이 되었지만, 그러한 일상을 받아들 이기에 우리의 행위와 사고는 아직 지구화 이전에 머물러 있다. 인간은 물리적 이동에 는 빠르게 익숙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지역과 혈연, 민족적 공간과 그것이 담보하 는 이념과 가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물리적 이동으로 인해 만나는 이질적 집단과 그 가치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가치와 이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 닥쳐온 새로운 위험이 되었다.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용 납하지 않으려는 배척의 태도, 그리고 ‘자신’만을 고집하며 주장하는 강요의 태도, 양자 는 바로 최근 벌어진 끔찍한 테러와 무고한 희생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이 나 전염병과 같은 이례적인 상황이 아닌 바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 다. 일상의 위협은 예상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는 부조리한 공포 그 자체로 인간의 실 존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상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물리적 수단을 이용한 배척과 폐쇄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해결책을 구하기 이전에 우선 전제해야 할 점은, 지구 화와 노마드적인 전 지구적 이동의 세계인 이 ‘커다란 세계’는 이제 본질적으로 혼종(混 種)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일상의 작은 공간과 작은 공동체는 혈연과 민족을 기 반으로 하는 근대적 개념의 지역공동체를 이미 넘어서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록 좁 거나 작거나 소규모이겠지만, 그 자체로 이미 지구화와 전 지구적 이동의 현실을 고스 란히 담아내고 있는 작은 ‘커다란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커다란 세계’의 현실 속 에서 개인 및 공동체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사고를 재조정하고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커다란 세계’의 요구 앞에 새삼스럽게 반향을 울리는 작품이 표도르 도스토예
14) 이하는 본 연구팀에 자문해주신 차지원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께서 작성해주셨다.
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대작 카라마조프가 의 형제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가 만나고 충돌하는 작은 ‘커다란 세계’의 공동체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880년에 발표되었다. 러시아의 1870년대와 1880년대는 러시아 근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이념적, 사상적 갈등이 러시아 역 사상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 시기이다. 국가 형성 초기부터 다양한 민족과 혈통집단, 그 리고 종교적 공동체를 아울러야 했던 거대한 제국 러시아는 19세기에 가속화된 근대화 와 산업화와 근대화로 엄청난 사회적 격동을 겪어야 했다. 19세기 후반기 러시아는 수 많은 사상, 이념, 가치가, 그리고 여러 사회 집단과 공동체의 충돌과 갈등을 아우르고 넘어설 수 있는 ‘통합’과 ‘연대’의 힘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일상이 이미 한 민족 공동체를 넘어 아시아 공동체로 확대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 크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러한 러시아의 들끊는 사회상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 아 쓰인 소설이다. 작가는 카라마조프가의 삼형제와 그들의 아버지를 둘러싼 가족사 및 주변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범죄를 통해 인간의 서로 다른 본질과 그들이 추구 하는 가치와 이념 간의 충돌과 갈등을 그려낸다. 특히 3부에 이르는 장편소설이 가족과 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일상의 위 협에 관하여 매우 함축적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하는 사상과 이념, 가치 간의 갈등은 무신론자이자 허무 주의자인 지식인 이반이 대표하는 “대심문관”의 이념과 수도원의 구도자 조시마 장로가 설파하는 포용과 긍정, 화합의 종교적 사상 사이에서 일어난다. 논리적이고 합리주의적 인 지식인 이반의 사상은 이 철학적 대논쟁의 소설 그 중심에 있다. 세상에 횡행하는 불합리와 모순, 특히 죄 없는 자의 비극적 희생에 절망하며 이러한 모순이 존재하는 한 신앙을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다는 이반의 사상은 대심문관 장(章)에서 집약적으로 형상화된다. 중세에 지상에 재림한 그리스도를 체포하여 심문하며 세상에 부조리한 고 통을 허락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대심문관의 휴머니즘은 일견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악의 존재를 근거로 도덕적 결정의 자유를 인간으로부터 박탈하면서 나약한 인간은 다만 강력한 힘에 의존해야 하며 물질적 풍요만을 갈망한다 고 주장하는 대심문관은 현재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종교적, 사상적 도그마를 상기시 킨다. 대심문관의 선과 정의는 선(善)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권의 유린, 폭 력, 살인의 위협이 타인의 다른 의견,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으로부터 비롯한 것임을 보여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어떤 점에서 이 오늘날 우리의 가장 일상적인 생존마저도 위협하게 된 가치의 충돌과 배척이라는 상황에 해답을 던져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되는 여러 이념과 가치가 서로 상보적이라는 점에 있다. 대심문 관의 휴머니즘 속에 은폐된 폭력성과 야만성은 맏형 드미트리의 실천적 열정, 막내동생 알료사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화해 등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다른 가치들에 의해 드러난
다. 즉,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변하는 이념과 가치 간의 갈등과 충돌 을 통해 하나의 개별적 가치가 가진 취약점을 내보여준다.
비록 비이성적이고 정념에 휩쓸리는 방탕아이지만 인간에 대한 열정과 희생의 가치를 직접 행동으로 실현하는 맏형 드미트리, 종교적 용서와 종교적 구도의 가치를 대변하는 조시마 장로,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포용, 화해의 가치를 호소하는 막내동생 알료샤 등은 차가운 합리주의적 이성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심판하려 하는 사변적이며 추상적인 이반의 휴머니즘의 약점을 폭로하는 동시에 세계를 이해하는 다양한 보충적인 가치를 제시해준다.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의 특징인 이념적 “다성악”(polyphony, 多聲 樂)은 이념과 가치의 극단적 갈등이 삶의 보편적이고 근본적 가치들을 훼손하는 이 시 대에 특히 유효한 교훈을 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표현하는 다양 한 이념과 가치가 서로 갑론을박하게 하지만 결코 어느 하나의 가치나 이념에 우월한 지위를 내어주지 않는다. 이념들은 한편 서로 충돌하지만 다른 한편 하나의 가치는 다 른 가치의 약점과 부족함을 보여주며 상보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변하는 여러 가치들의 충돌은 이념적 아노미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이념과 가치가 서로를 지지하는 ‘커다란’ 세상을 이룬다.
소설 속 인물들, 아버지 표도르, 아들인 드미트리와 이반, 그리고 알료사 등이 대변하는 삶에 대한 열정과 욕망, 종교적 숭고, 휴머니즘적인 이성과 합리, 윤리적 책임의식과 고 통에 대한 보편적 공감, 사랑과 용서, 무조건적인 화해 등 다양한 가치들은 그 자체로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면서도 나아가 인간의 “행복”과 영혼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목적 을 향해 서로 결합될 수 있는 것임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보여주고 있다.
너와 나의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는 서로를 배제하고 증오할 수밖에 없는가? 현재 우 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이념의 첨예한 다툼과 싸움, 폭력 외에 다른 출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진정으로 그러한가? 우리는 혹시 혈연과 민족에 의존 하던 과거의 존재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도처에 존재하는 “대심문관”의 마법에 홀려 도덕 적 결정과 양심의 판단을 회피하고 독재와 종교적 도그마의 폭력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 가?
도스토예스프키의 이념들의 “다성악”은 그 반대의 가능성이 분명히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이념과 가치는 그 어떤 것도 혼자서 완전할 수 없음을, 그 리고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일상에 본질적으로 혼종적인 이 복잡다단한 ‘커다란’ 세계가 존재하며 그 ‘커다란’ 세계의 문제는 여러 다양한 가치들의 공존과 높은 통합에 의해서 만이 풀어나갈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이제 민족과 혈연 공동체를 넘어선 이러한 새 로운 생존방식을 체득해야만 한다.
우리의 정신 속에 여러 가치를 ‘연대’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문학의 역할은 바 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바로 그러한 문학의 역할에 관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