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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 : 이솝우화 , 아이소포스

이솝우화(Aesophica)는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던 이야기꾼 아이소포스 (Aesophos)가 지은 동물 우화를 말한다. 책이 대중 시장에 다시 등장한 것은 1484 년이다. 윌리엄 객스틴이 영역을 최초로 냈고, 1692년 레스토랑지가 당대 영어에 맞도록 고쳤다. 현대 영역은 타운센드(1814∼1900)의 번역이 잘 알려져 있다.

1998년에 올리비아 템플과 로버트 템플이 출판한 The Complete Fables by Aesop는 완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전에 충실한 이솝 우화집으로 손꼽힌다. 사 실, 초기 영역 본들은 당시 역자의 주관에 따라 개작된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점은

이솝 우화가 동양에도 서양에서 번역되었던 시기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동양어 로도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이솝 우화가 최초로 번역된 해가 1593년이고, 제목은

伊僧保物語 (Esopo monogatari)이고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이솝 우화가 중국 에서 출판된 해는 1625년이었다. 예수회 선교사 트리고(Trigault, 1577년∼1628 년)의 구술을 명나라 학자 장갱(張賡)이 받아 적었다. 제목은 이색우언(伊索寓言)

이었다. 어쩌면 이솝 우화가 조선에 더 일찍 들어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조선에 소개된 이솝 우화는 갑오개혁 바로 다음 해에 소개된다. 1895년에 일본인 의 도움으로 만든 최초의 신식교과서 신정심상소학에 처음 등장한다. 7편의 이솝 우화가 "새로운 이약이"라는 표제 아래 소개되었다. 그러다가 이솝 우화는 구한말 에 안국선(安國善, 1878년∼1926년)이 1908년에 출판한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1908년)을 통해서 이른바 조선화(朝鮮化) 혹은 한국화(韓國化)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금수회의록은 이솝 우화의 일본어 저본(底本)인 금수회의인류공격(禽 獸會議人類攻擊, 1904년)을 바탕으로 지어진 텍스트라고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 서 눈 여겨 보아야 할 점은 오히려 이른 바 “역자에 주관에 따라” 텍스트의 내용을 바꾼 장면들일 것이다. 어쩌면 역자의 주관이 가장 창조적으로 반영된 작품이 안국 선의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1908년)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안국선이 시도한 이른바 이솝 우화의 자기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한국화(Coreanatio!)의 한 단 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 하나: 게 이야기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이르기를, 모로 걷거나 젖은 바위에 옆구리를 문지르지 말라 고 말했다. 새끼 게가 말했다. “엄마, 나를 가르치려거든 먼저 엄마부터 똑바로 걸어보 세요. 내가 보고 따라 하게요!” (이솝 151, 천병희 옮김, 숲 출판사: 어미 게와 새끼 게)

게에 대한 이솝의 관찰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가르치는 이부터 모범이 되어 야 한다는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한데 게의 눈을 살펴본 적이 있는가? 게의 눈은

앞에 달려 있다. 그래서인지 보는 것은 올바른 듯하다. 어미 게나 아이 게의 보는 눈은 똑바르기에. 올바로 가라는 어미 게의 훈계와 이에 대한 아이 게의 반박도 틀 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솝도 놓친 사실이 하나 있다. 비록 게가 옆으로 가긴 해도, 제 집은 제대로 찾아간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구한말의 조선인 안국선의 관찰이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1908년, “게, 무장공자(無腸公子)” 편).

우리(아마도 게)는 사람같이 더러운 일은 하지 않소. 사람들도 우리의 행위를 자세히 아는 즉,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아니한다”는 속담이 있소. 우리는 아무리 급 하더라도 들어갈 구멍이라야 들어가지, 부당한 구멍에는 들어가지 않소. 사람들을 보면 부당한 데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소. (중략) 명예 있는 신사라 자칭하고 쓸데없는 돈 내 버리러 기생집에 들어가는 사람, 옳은 길 내버리고 그른 길로 들어가는 사람, (중략), 돌을 안고 못으로 들어가는 사람,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사람, 이루 다 말할 수도 없 소. 들어갈 데와 못 들어갈 데를 분별치 못하고 들어가서 화를 당하고 해를 끼치니 말 이요. (금수회의록, 권영민 옮김, 뿔(웅진-문학-에디션) 2008)

백 년 전의 관찰이다. 예리하다. 다른 사례를 더 살펴보자.

사례 둘: 억울한 까마귀의 항변

제주도의 옛날 신화에 따르면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지를 적은 장부(赤牌旨)를 인간 세계에 전하는 새가 까마귀였다. 한데 까마귀는 하늘로부터 인간 세상에 오는 중에 이 장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자 까마귀는 자기 멋대로 외쳐댔었 고, 이 때문에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죽는 순서가 뒤바뀌어 사람들이 무질서 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까마귀의 울음 소리를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에 대한 어느 까마귀의 반박 연설이다.

사람들이 까마귀 우리 소리를 흉한 징조라 함은 사람들 마음대로 하는 말이요, 우리 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사람의 일이 흉하든지 길하든지 우리가 울 일이 무엇이겠소? 그 것은 사람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저희들이 좋지 않을 때 흉하게 듣고 하는 말일 뿐 이오. 사람이 염병이니 괴질이니 앓아서 죽게 된 때에 우리가 어찌하여 그 근처에 가서 울면, 사람들은 저희가 약도 잘못 쓰고 위생도 잘못하여 죽는 줄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울어서 죽는 줄로만 알지요. 또 욕설을 할 때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 하니, 사람같이 어 리석은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 요순(堯舜) 적에도 봉황이 나왔고 왕망 때도 봉황 이 나왔으니, 요순 때의 봉황은 상서로운 것이요 왕망 때의 봉황은 흉조처럼 알았던 것 이 아니겠소? 무슨 소리든지 사람이 근심 있을 때에 들으면 흉조로 듣고, 좋은 일 있을 때에 들으면 상서롭게 듣는 것이라,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듣는 저희에게 있는 것이 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요. 그런데 까마귀는 흉한 일이 생길 때에 와서 우는 것 이라 하여 듣기 싫어하니, 사람들은 이렇듯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 책

망하여 무엇 하겠소. 또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여 부모 봉양도 하고,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도 짓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도 잡 아서 하느님 뜻을 받들다가, 저녁이 되면 반드시 내 집으로 돌아가되 나가고 돌아올 때 에 일정한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소. 헌데 사람들은 점심때까지 자빠져 잠을 자며, 한 번 집을 나가면 협잡질하기, 술 마시기, 계집의 집 뒤지기, 노름하기에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저희 부모가 진지를 잡수었는지 처자가 기다리는지를 모르고 쏘다니니 어찌 우 리 까마귀 족속만 하리요. 사람은 일하지 않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기를 좋아하되, 우 리는 제가 벌어 제가 먹는 것이 옳은 줄을 아니, 결단코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는 하지 않소.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우리가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까닭이 없음을 살피시오." (안국선, 금수회의록 까마귀, 반포지효(反哺之孝))

까마귀는 한국인에게 원래 하늘의 뜻을 알려주는 신성한 새였다. 고구려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가 실은 까마귀다. 태양의 정기가 뭉쳐서 생긴 신 비한 새였다. 따라서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나쁜 것은 아닌 것으로 보 인다. 그러면,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까마귀는 어떤 모습일까? 다음은 이솝 이야기 다.

병든 까마귀가 제 어미에게 말했다. “신에게 기도하고 울지 마세요!” 어미가 말했다.

“얘야, 신들 가운데에서 어느 분이 너를 불쌍하게 여기시겠니? 네가 고깃점을 훔쳐 먹 지 않은 신이 있다면 한 분이라도 계시니?” (이솝 168, 병든 까마귀)

이솝 이야기는 까마귀를 신전에 제물로 올린 고깃점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묘사하 고 있다. 그 탓에 병이 들어도 신이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 미있는 점은 까마귀들이 어미 까마귀가 자식 까마귀에게 신전에서 고깃점을 훔친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어미 까마귀는 자식 까마귀에게 병을 감수해야 하고 고 통을 견디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 려 든다는 점에서 까마귀가 어쩌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문명 과 세태를 일갈하는 까마귀가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리스의 까마귀의 이야기가 구 한말 조선에 들어와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임은 틀림없겠다.

사례 셋: 맑고 맑은 파리의 눈에 비친 인간은 거꾸로 어떤 모습일까?

파리는 문학과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파리가 처음 등장하는 문학 작품 이 이솝 우화일 것이다.

광에서 꿀이 쏟아지자 파리들이 날아와 먹기 시작했다. 먹어보니 하도 맛있어서 파리 들은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발이 꿀에 달라붙어 날아오를 수 없게 되자 파리들 은 숨을 거두며 말했다. “우리야말로 어리석구나. 순간의 달콤함 때문에 이렇게 죽어가

고 있으니!” (이솝 239, 파리들)

이솝 이야기가 항상 그렇듯이, 그래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항상 마지막에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한 소리를 하고 죽는데, 파리도 교훈을 남기고 있다. “순간의 달콤 함” 때문에 죽는다는 말을 하고 파리는 죽는다. 물론 많은 파리들이 이렇게 실제로 죽는 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파리도 많다. 최근에 밝혀진 연구에 따르면, 사람 주변의 깨끗 하지 않은 환경에서 흔히 보이는 파리들과는 달리 주로 산에서 볼 수 있으며, 꽃의 꿀 을 먹으며 사는 파리가 발견되었다. 이름은 기생파리다. 특히 유충시기에는 다른 곤충들 의 몸속에서 그 곤충을 먹으며 살다가, 성숙하면 그 먹이곤충을 죽이고 나와서 성충이 되는 특이한 생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기생파리들은 생 태계에서 특정 곤충집단이 비이상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조절하는 곤충집단 조절인자 역 할을 하기도 한다. 먹이가 되는 곤충들은 나방, 딱정벌레, 노린재 등 다양하며 특히 농 산물과 산림에 큰 피해를 주는 해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기생파리는 해충 방제에 활용하여 농약사용량을 줄이게 된다면, 농산물의 잔류농약을 줄여 안전한 먹거리를 만 들 수 있으며, 또한 산림에 유익한 곤충도 늘려 건강한 숲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 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볼 때에, 따라서 “파리”가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인간만 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름에 장티푸스와 전염병을 옮기고 다니 는 파리들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집파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은 똥파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파리를 지저분한 곤충으로 여기는 것도 실은 똥파리라는 이름 때문 이다. 물론 사람들이 보기에 지저분한 곳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파리가 얼마나 깨끗한 곤충인 줄을 안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두 팔로 얼굴의 대부분을 다 차지하고 있는 눈을 닦는다. 파리의 눈은 여러 개의 눈이 합쳐진 겹눈이다. 겹쳐진 눈에 먼지라도 앉으면 눈 앞의 먹이거리나 자기를 죽이려는 적들의 모습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인다. 그렇기 때문 에 많은 눈을 티 없이 깨끗하고 반들반들하게 열심히 닦아야 한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 해서 열심히 눈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동물 중에서 눈이 가장 맑은 곤충은 파리다. 그러면 이렇게 맑은 파리의 눈에 비친 인간은 거꾸로 어떤 모습일 까? 파리의 연설을 들어보자.

나는 파리올시다. 사람들이 우리 파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파리는 간사한 소인이라' 하니, 사람이라 하는 것들을 제 흉은 모르고 남의 말만 잘하는 것들이오. 간사한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가진 것들은 우리가 아니라 사람들이오. (중략) 지금은 도덕이 떨어지고 효박(淆薄; 인정과 풍속이 각박함)한 풍기를 보면 온 세계가 다 조조 같은 소인이오.

이러하니 웃음 속에 칼이 있고 말 속에 총이 있어 친구라고 사귀다가 저 잘 되면 차 버 리기, 동지라고 상종타가 남 죽이고 저 잘 되기, 빈천지교(貧賤之交)를 저버리고 조강지 처 내쫓기, 뜻있는 이를 고발하여 감옥소에 몰아넣고 저 잘되기를 희망하니, 그것도 사 람인가? 쓸개에 가 붙고 간에 가 붙어 요리조리 알씬알씬하는 사람들 정말 밉기도 밉습 니다. 또 우리는 먹을 것을 보면 혼자 먹는 법 없소. 여러 족속을 청하고 여러 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