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되고, 북한 대표단에 분야별 전문가와 실무자의 참가가 늘어나고 있다. 북측은 또한 개성과 금강산 등 평양 이외의 지역을 회담장소로 개방하였다. 최근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와 다자협상에서도 남북한간의 접촉이 빈번해졌다.
요약하면,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과거의 공세적이고 파행적인 남북대화 방식에서 탈피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남북협상의 탈정
치화, 협상창구와 의제의 다원화, 합의의 이행, 남북대화의 제도화 등
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의미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바꾸는 노력은 국가·기업·개인 차원에서 상당한 ‘성장통’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에는 개혁개방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었듯이 국가배급제에서 제외되었으나 새로운 생산유통 방식에는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새로운 도시빈민계층으로 전락한다 고 한다. 경제개혁의 피해 계층과 수혜 계층간 갈등도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북 정책은 6·15 남북정상회담이후 급 격히 진행된 북한의 변화를 활용하여, 변화로 인한 부작용을 극소화하 는 동시에 북한의 개혁개방을 더욱 촉진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제고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 사 회: 문정인(연세대)
◈ 발 표:
◎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평가와 과제
···박종철(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변화
···전봉근(통일부 장관정책보좌관)
◈ 토 론:
◎ 백학순(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남성욱(고려대학교)
토 론
백학순
박종철 실장의 발표내용에 동의하는 바이다. 덧붙여서 두 가지 말 씀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공동선언 2항의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 은 단계 연방제에 관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연방제를 중심축으로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남한의 연합제안과 공통요소가 많다. 향후 정책추진 방향과 관련해서 북핵문제해결과 남북문제 해결을 병행해야 한다.
현정부는 외교안보분야에 있어서 북핵문제 해결을 가장 긴급한 문 제로 설정하고, 지금까지 많은 희생을 치러 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북핵문제의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북미 양자를 중심으로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북한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속도로 문제가 진행되다 보니 큰 틀에서 보면 미국 내부 사정에 따라 북핵문제가 방 치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11월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우리가 바라는 방향대로 북핵문 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겠는가? 부시가 자기 방식대로만 문제를 이 끌어 간다면 나중에 우리로서는 불만과 후회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생
각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북핵문제에 관한한 남북 당사자적 입장을 강
력히 천명하여 보다 적극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봉근 박사의 발표를 접하면서 북한의 변화에 대한 해석적 차이를 실감하였다. 북한의 변화는 1990년대 중반의 대규모 기아사태를 거쳐 1998년 헌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김 대중 대통령의 정책은 이러한 변화를 잘 이용한 것이었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당시 아무도 북한의 변화를 기정사실화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많은 북한연구학자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북한의 변화를 예견하고 있었다.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정치·군사적 이데올로기의 변화라고 규정하
였는데, 이는 사실 주변국과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의 정치·군사적 변화는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
해할 수 있겠으나, 경제·사회적 변화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 니라 체제내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경제·사회 적 변화를 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박사께서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의미 있는 변화를 넘어서) 근본적인 변화조치로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본인은 이 조치를 통해 근본적인 변화로 들어섰다고 해석하고자 한다. 북한이 처해있는 여러 가지 현실은 베트남이나 중국 등의 경험사례를 바탕으로 부작용 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남성욱
“2003년 3월말부터는 평양에서도 각 구역마다 있는 ‘농민시장’을 ‘시 장’으로 부르게 되었다. 농산물만이 아니라 각종 공업제품도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이름을 고친 셈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시장
(Market)에 대한 사회주의의 관점을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명칭의 변
경은 시장이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공간으로써 기능하도록 나라가 보다 적극적인 관리정책을 실시해 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라고 북 한의 2002년 7월 경제계획을 입안한 국가계획위원회 최홍규 국장은
‘7·1 경제관리개선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특성을 이와 같이 설명했다.
북한은 2003년 6월 최초로 경제관리개선조치라는 용어대신에 그간
기피해오던 경제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북측이 보다 본질적인 경제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대폭적인 경제관리 제도에 대 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1995년 이후 최악의 경제 3난(식량난, 외화 난, 에너지난)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고수해오 던 북한이 경제회복을 위해 실리적이고 분권적인 계획경제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 종합적인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선택했다. 그것은 향후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와 진로를 전망하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2003년 북한경제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July Economic Management Improvement Measure)가 시행된 후 경제개혁 (Economic Reform)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2002년 7·1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만해도 이 조치가 과연 어떤 성격의 조치였는가에 초점 이 모아졌다. 본격적인 시장개혁을 위한 신호탄이냐 혹은 사회주의 내 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일시적인 과도기 조치인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24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전반적 인 정책 평가를 내리기에는 다소 시기상조이다. 다만 북한이 추진한 일련의 경제정책들은 본격적인 시장개혁이냐 혹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내부에서 효율성 제고를 위한 보완적 조치인가라는 의문에서 양측의 성격을 혼합한 중간적 정도의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잠정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소유제 개혁 등 보다 본질적인 후속 조치들이 시행되지 않 고 있으므로 아직 본격적인 시장개혁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한 종합상 설시장의 육성 등 다소 급진적이고 시장개혁적인 내용들이 포함되고 있으므로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고수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이 조치가 1946 년 토지개혁에 해당하는 사회·경제적 파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종합시장 육성, 인민생활공채 발행 등 사경제를 국가의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조치들이 효과를 거두게 될지, 아니면 국가통제를 벗어나 경제개혁으로 나아갈지 미지수이나 북한이 개혁을 위한 첫발 을 디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2003~2004년 들어 ‘경제개선’이라는 소극적인 표현 대신 북한이 그간 기피하던 ‘경제개혁’이란 용어까지 구사하며 7·1 경제관 리개선조치로 명명된 경제실험의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 당국은 7·1 조치가 북한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를 구축한 ‘토지개혁’에 비유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이러한 비유는 현실로 나타 나면서 57년 동안 사회주의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삶을 바닥부터 변화 시키고 있다. 우선 주민들이 ‘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는 것
이다. 물가가 평균 18배 올랐기 때문에 직종별로 차등 인상된 임금으
로 합리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과거와는 다른 자본주의 적 경제 마인드를 일부라도 가져야 한다.
또한 주민들은 이제 매일 정치학습 이외에 사적으로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경제 학습을 하고 있다. 종전의 식비는 월급의 3.5%에 불과 했으나 이제는 최소 30% 이상 급증하여 ‘먹는 문제’ 해결이 국가의 손을 떠나 개인들의 책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당국이 직장 퇴근 후의 부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등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가 계 재정을 개인이 완전하게 책임지게 되었다.
둘째,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수요자(Buyer)와 공급자(Seller)가 만나는 시장(市場)이 평양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도입되었다. 종래 계획경제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성격의 농민시장이 아니라 농산품 이 외에 공산품까지 공급하는 종합시장이 개설된 것이다. 국정가격과 농 민시장의 가격차를 줄이고 종래의 배급제 상품 배분을 본격적으로 시 장에 맡김으로써 시장의 효율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국가
계획경제와 사경제를 병존시키는 조치로써 시장경제로 가는 토대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셋째, 기업소와 국가 재정의 건전화가 시도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2003년 신(新)회계법 발표를 계기로 기업소의 부채를 탕감한 후 새 롭게 시작하여 흑자를 내는 기업은 상여금을 받으나 적자 기업은 지배 인이 책임을 지는 등 기업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더 이상 분 배의 평균주의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명실상부한 독립채산제가 도 입됨으로써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가 축소되고 있다. 곡물가격을 농민 시장 가격 수준으로 인상함으로써 수십 년간 북한 당국을 곤란하게 한 만성적인 양곡 적자가 부분적으로 해소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의식주의 배급제는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당국은 더 이상 인민을 책임 지지 못하는 정부의 한계를 인정하고, 재정적자를 축소하면서 축소한 정부 재정을 경제 건설에 투입할 여력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개혁은 분명히 명암이 있다. 경제 주체인 가계·기업·정 부가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대담한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중국 이 개혁·개방 당시 10년에 걸쳐 물가를 인상한 데 비해 북한은 일시에 물가를 올림으로써 급격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물자 공급이 부족 한 가운데 급속한 통화량 팽창은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경제주체들의 경제회복 노력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는 부정적 측면이 강 하지만 사회주의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플레는 역설적으로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인플레이션 발생은 가격변화를 통해 북한에서 암 묵적으로 시장개혁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가격 결정권이 국가 통제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장악력이 떨 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소유제 변화 개혁을 제외하고는 시장경제의 전반적인 작동 원리가 도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추진하면서 자본주의를 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