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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eaning and Origin of the St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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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탑의 의미와 어원

천 득 염

*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주제어 : 불탑, 탑파, 스투파(Stūpa), 투파(Thūpa), 차이티야, 비하라

1. 서론

1)

한국에 있어서 불탑연구는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비롯되었고 한국인 최초의 미술사학자 고유섭에 의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들에 의한 불탑 관련용어의 시원적 사용은 별 여과 없이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현 재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 다. 즉 이들은 불탑의 본질적인 의미나 용어를 대부분 인도어를 한자로 옮겨왔고 다시 일본인 들에 의하여 다소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한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즉 불탑의 의미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성스러운 무 덤으로 이해되었고, 塔婆라는 용어 역시 인도 의 고대어인 梵語, stūpa와 thūpa에서 유래되 었으나 중국으로 건너와 다른 글자인 한자로 寫音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중에서 불탑자체가 지역을 달리하 면서 변모되고 언어적인 뉘앙스의 차이로 명칭 에 있어서 다소의 오류가 있었다. 즉 탑파에 관한 의미론적 이해나 언어적 고찰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소 즉사적이고 단편적으로 해석된

* 교신저자, 이메일: [email protected]

이 논문은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지원받아 수행된 연구임(지역거점연구단육성사업 / 바이오하우징연구사업단)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건축 역사학계에서 이러한 용어상의 문제점들을 지 적하고 원리적이며 종합적인 불탑연구를 시도 하고 있는 경향들1)이 나타나고 있음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에 더 관심 을 갖고 불탑의 용어를 원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불탑의 의미와 관련 용어를 원론적으로 고찰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 라는 의도로 시도되었다. 특히 근자에 이루어 졌던 불탑용어 관련 선행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토론을 이끌어 가기 위한 點燈으로 ‘불탑의 의 미와 명칭’이라는 가장 원론적인 부분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 것이다. 즉 불탑은 왜 건립되었 고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졌으며 불탑을 부르 는 이름은 불교전래국가에 따라 지역을 달리하 면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피며, 현재 우리 가 부르고 있는 용어와 비교하여 어떤 차별성 을 갖고 있는가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 히 다소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불탑지칭용 어들에 대하여 외피적인 입장에서의 고찰이라 기보다는 불탑에 대한 원리적이고 본질적인 이 1) 이희봉(2010. 8), 김버들, 조정식(2008) 등의 연구를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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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산치 Stupa의 복원도 해의 바탕위에서 용어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

는 의도이다.

이러한 고찰은 그 동안 선학들의 연구결과 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또한 원리적 연구에 보다 충실하여야 할 불탑연구자들에게 불탑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와 식견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2. 塔婆의 意味

불탑이란 부처, 즉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성스러운 무덤이다. 불탑은 불교역사에 서 최초로 등장하는 부처의 상징으로, 지극히 성스러운 건조물이다. 불탑은 불상과 함께 불 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배대상이다. 불탑 이 부처님의 신골(身骨)인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음에 비하여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새긴 상 으로 불교의 조각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불교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중 의 하나이다. 불교는 발상지인 인도 동북부로 부터 아시아동부의 광대한 지역으로 퍼져 나가 면서 모든 중생들의 제도(濟度)를 목표로 하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주었고, 이는 철학과 윤리 를 바탕으로 인류에게 삶의 진리와 지식, 예술 을 널리 전하였다. 또한 불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창의적인 상이한 문 화적 전통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어 거대한 정 신적, 문화적 공동체를2) 형성하였다.

흔히 위대한 성인들의 분묘는 반구(半球)나 원추(圓錐) 피라미드 모습의 방추형(方錐形)과 같은 큰 구조물이거나 입방체(그림 1)로 되어, 성인들의 유물이나 사후세계를 위한 물건들을 매장하고 있는 형식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성자인 부처가 열반(涅槃)

2) Dietrich Seckel 저, 이주형 역, 『불교미술』, 예경, 2002. 8, 7-8쪽

하자 인도의 전통장례풍습에 따라 사체를 화장 하고 수습된 사리, 즉 불신골(佛身骨)을 모신 분묘를 만들었다. 이 기념비적인 분묘를 후세 에 불탑, 즉 스투파(Stupa)라 하였는데 반구 (半球)에 가까운 분묘의 형태가 불탑의 시원적 인 모습으로 후세에까지 자주 사용되었다. 이 처럼 인도에서 불탑을 스투파라고 부르는 것은 부처이전에도 인도에는 이미 고대 아리아인들 의 전통에 따라 위대한 지도자들을 위해 건립 된 탑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 사후에 그의 사 리를 모신 조형물인 스투파와 다른 종교의 기 념물인 탑, 즉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잘 모르는 기념물과 구분하여 이를 스투파라 부르고 지극 히 경배하였던 것 같다.

너무나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렇다면 불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즉 불탑이란 부처가 열반하고 다비(茶毘)한 후 그의 사리를 모아 봉안한 탑이다. 불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이다. 물리적인 덩어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불탑은 열반 을 의미하며, 불탑은 곧 부처를 상징하는 대상 이다. 즉 사리를 모시는 묘이지만 석가 그 자 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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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네팔 산골의 민예적인 불탑

<그림 2> 부다가야의 봉헌 소탑 원한 신체인 사리가 봉안된 곳이면서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가득한 곳이 불탑인 셈이다.

중생들의 삶과 애욕이 스며있는 곳이 아니라, 번뇌도 사랑도 태워버려 모든 것이 완전히 소 멸된 열반의 의미가 농축된 곳, 진리 그 자체 인 곳, 불멸의 부처님이 머물고 계신 곳이 바 로 불탑인 것이다. 결국 단순히 부처의 무덤이 라기보다는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완전한 소 멸, 般涅槃(parinirvana)을 달성하고 이른바 영원한 적정의 세계에 도달한 부처의 상징3) 로 간주되었다.

부처가 열반하고 수백 년 동안은 부처처럼 존귀한 분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거나 만들 수 없었다. 즉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회화나 부처 님의 몸을 만든 조각처럼 구체적인 모습으로 위대한 분을 표현한다는 것은 경망한 것으로 인식되어 금기시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처 럼 불상을 만들 수 없었던 무불상(無佛像)시대 에는 부처의 열반을 불탑으로 상징하였고 신자 들은 위대한 성자의 신체가 들어 있는 무덤에 경배를 드렸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어 불탑을 경배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위대한 스승이 생 전에 쓰셨던 집기, 해탈한 보리수, 말씀을 뜻 하는 법륜, 전도를 나타내는 발자국, 하늘로 오르는 길 등 기념이 될 만한 것들을 신성시 3) 미야지 아키라 저, 김향숙․고정은 번역, 『인도미술 사』, 다할미디어, 2006, 38쪽

하였다. 그러나 부처는 열반에 들어가면서 자 신이 아니라 불법을 잘 지키라고 지시하였으므 로 사리가 아니라 경전으로 불탑의 성격이 바 뀐 경우도 많다. 즉 부처 자신이 아니라 부처 가 설파한 진리 자체에 경배의 의미를 둔 것 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부처가 열반하고 200여년이 경과한 아소카왕 시기인 기원전 3 세기경부터서야 불탑에 대한 숭배가 널리 퍼지 기 시작하였다. 20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이나 구체적인 숭배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실 증적인 흔적이 거의 없어 부처님의 몸이라고 인식되는 불탑이 숭배되었던 것이다. 이는 막 연한 말씀보다는 구체적인 모습을 지닌 불탑을 경배하고자 하였을 것이고 보통사람, 在家信者 들로부터 시작되었을 스투파숭배(그림 3)는 점

차 출가 비구 승단도 흡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4) 또한 초기 시원적인 불탑인 스투파의 형식이 분구형(墳丘形)에서 가구적(架構的) 기 단 위에 몸에 해당하는 축부를 갖는 건축형식 으로 변하자 여러 곳에 감실이 생기고 이곳에 조그마한 불상을 안치하게 되어 결국 불탑에는 4) 中村元 저, 金知見 번역, 『불타의 세계』, 김영사, 2005, 356쪽

이희봉, 「탑의 원조 인도스투파의 형태해석」, 건축역 사연구, 제18권 6호, 2009, 9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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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태안사 입구의 돌무더기 造塔 사리, 경전, 불상이 봉안되거나 장식되었다. 불 탑을 장식하는 이들은 형이하학적 물질이지만 강한 신앙적 의미와 상징성을 갖으며 불변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성스러운 존재이다.

부처는 그의 제자인 Ananda와의 대화에서

“그들은 교차로에 王中王의 무덤을 세운다”라 고 하였다.(Digha Nikaya 14, 5.) “그곳에는 화환과 향료와 색칠로 꾸며져 있고 경배를 하 게 하였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즐 거움이 오래 지속된다”라고 하였다. 이런 방법 으로 부처는 불탑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부처는 “탑은 나와 나의 제자들을 위해서 건립 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자들과 그의 제자들 을 위해서 건립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즉 부처 자기를 믿지 말고 佛法과 네 자신을 의 지처로 삼으라는 뜻이다. 따라서 탑은 영웅숭 배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의 상징인 것이다.

깨달음은 광대함에 있어 바다처럼 깊고 계량할 수 없기 때문에 불탑의 우주적 상징성으로 표 현된다. 불탑 안에 우주적 체계와 생명력이 불 어넣어져 있는 것이다. 불탑은 더 이상 영혼의 거처나 선사시대의 신비스러운 실체를 모시는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다. 성인들의 인간성을 다음 세대에 다시 생각나게 하며, 자신과의 내 적 투쟁을 하거나, 그들의 심성을 안정되게 하

고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성인들의 예를 따르 게 하는 기념물인 것이다. 따라서 불탑은 죽음 에 대한 의미에서 탄생과 삶에 대한 의미로 高揚된 것이다. 그 의미는 특별한 유적이나 인 물에 집중되어 남아 있지 않고 성인에 의해 실현되는 보다 높은 실체인 것이다.

결국 불탑은 부처가 열반하고서 남긴 정신 세계를 건조물로서 대신한 것이다. 인간적인 부처를 떠나 법신(法身)으로 향하는, 이상적이 며 절대적인 진리로 향하는 실체인 것이다. 따 라서 중생들은 불탑을 숭배함에 있어 부처에 대한 공양과 동시에 공덕을 쌓고자 한 것이다.

또한 탑을 세움으로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해 탈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생들은 부 처라는 위대한 성인이 설법한 진리를 깨닫고자 하였으며 극락세계로 가버린 그를 영원히 기리 고 진리의 상징으로 그의 분묘를 열심히 장엄 하고 많은 탑을 만방에 세워 널리 진리를 편 것이다.

사실 싯다르타라는 한 인간이 출가하고 수 행함으로써 얻은 깨달음은 불교를 이루었고 그 의 가르침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 흔들리 는 삶을 버리고 깨끗하게 살며 자비를 베풀라 는 것이었다. 결국 그를 영원히 기리고 그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널리 쉽게 알리기 위해 불탑과 불상을 비롯하여 불교조각과 불교그림 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고 할 것이다.

3. Stūpa, 불탑의 語源

탑(塔)이란 탑파(塔婆)를 줄인 말이다. 즉 탑파란 원래 인도어인 stūpa와 thūpa를 중국 어인 한자로 옮긴 말인데 이를 약하여 보통 탑이라고 부른다. 또한 부처를 모신 탑이기 때 문에 흔히 불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탑파의 어 원은 고대 인도어인 범어(梵語, Sanskrit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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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ūpa와 팔리어(巴梨語, Pali6))의 thūpa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스리랑카의 거대 종족 인 Sinhala족이 사용하는 싱할라어(Sinhalese) 의 tuba와 tumbc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들은 지금은 사라지고 고대문학에서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7)

이 두 가지 인도 말, 즉 stūpa와 thūpa를 중국인들이 한자로 옮기면서 여러 가지로 표현 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익숙하고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탑파(塔婆)인 것이다. 결국 인도 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오자 스투파 혹은 투파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뜻보다는 음을 빌려 탑파라 한 것이다. 즉 stūpa는 卒都婆, 卒塔婆, 窣堵婆, 素覩波, 藪斗婆, 藪鍮婆, 私 鍮婆, 數斗婆, 私鍮簸 등이라 쓰였고 thūpa는 鍮婆, 兜婆, 塔婆, 塔이라8) 쓰였던 것이다.9) 이 寫音的 문자들은 별다른 의미가 있다거나 상호간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만 고대 인도어인 stūpa와 thūpa를 한자로 옮 기는데 이용된 것에 불과하다.10)

스투파라는 말은 원래 ‘상투’라는 뜻을 지니 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정수리’라는 뜻으로

5) 산스크리트어는 고대인도의 언어로 특히 문장어이며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경전이 이 언어로 되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梵語라고도 한다. 일부 브라만은 산 스크리트어를 모국어라고 하고 있다. 같은 인도유럽어족 인 영어와의 동계어를 예로 들면 mus - mouse, sharkara - sugar, manu - man 등이 있다.

6) 불교원전에 쓰인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계통의 팔리 말, 초기 불교승이 사용한 상용어이다.

7) S. Paranavitana, The Stupa in Ceylon, Memories of the Archeological Survey of Ceylon, volume 5, colombo, 1946, p.1

8) 고유섭, 『한국탑파의 연구』, 동화예술선서, 1975, 35쪽

9) 탑의 어원에 관한 내용은 고유섭, 김희경, 정영호, 임 영배, 장충식, 김창숙, 천득염, 山口弥一郞 등의 책 및 글과 <大正藏>, <大唐西域記> 등의 고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0) 諸稿轍次, 大漢和辭典, 大修館, 1968

변하고 나중에는 ‘정상(頂上)’, 다시 ‘토루(土 壘)’라는 뜻을 갖게 된다.11) 또한 원래의 의미 에는 신골(身骨)을 담고 흙과 돌을 쌓아올린 것, 특히 불사리12)(불신골, 진신사리)를 봉안하 는 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하여 일찍부터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方墳, 圓塚, 高顯處 라고 음역되었다.13) 독일의 미술사학자 디트리 히 제켈에 의하면 스투파는 무덤의 기능을 하 는 토루, 일종의 봉분으로 기원은 선사시대까 지 올라간다. 왕을 매장하며 만든 거대한 봉분 은 반구형을 띠었는데 상당히 이른 시대부터 이런 분묘는 일반적인 기념물로 변화되었으며, 불교도들은 이것을 불교의 주된 상징물이자 종 교건축의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한다.

Stūpa라는 말은 베다(Veda)14)에서 처음 나 타나고 있다. 베다는 네 종류로 되어 있는데, 이들 책 중 가장 오래된 리그베다(Rig Veda, 지식의 시집)는15) 기원전 1500-120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6) 리그베다에 는 스투파의 명칭이 4번 나타나 있다. 여기서 스투파는 각기 宇宙木, 황금의 언덕, 신성한 불꽃의 集積, 천지의 중심축 등을 상징하는 중 요한 뜻을 갖고 있다. 리그베다에서 스투파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지주이며 우주목으로 하

11) Dietrich Secke 저, 이주형 역, 『불교미술』, 예경, 2002. 8,. 139쪽

12) 黃寶瑜, 中國建築史, 53쪽에 의하면 “舍利는 산스크 리트어 Sarira의 음역이다. 이는 원래 身體를 말하는 것 인데, 부처의 遺骨을 사리라 하게 된 것이다.”

13) 김희경, 『한국의 탑』, 열화당, 2005, 11쪽 14) 이란지역에서 인도로 들어 온 인도유럽어족사이에 서 유명한 성스러운 찬가, 또는 시.

15) 리그베다는 산스크리트어로 만들어진 1,017개의 시 가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은 아리아인들이 여러 신들 에게 축복과 은혜를 간구하며 기도할 때 함께 낭독하는 찬송들이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 유럽언어로 기록된 문헌이다.

16) M. Winternitz, Geschichte der indscken Literatur, Bd.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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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에 우뚝 서 있고, 지상에서 밝은 불꽃으로 타오른 다음 태양광선으로 대지를 감싸는 황금 의 빛과 관련된 어휘로 사용되었다.

후기 베다시대 말기에 불탑을 스투파라 칭 하게 된 이유는 아직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불교가 독자적으로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 아 니고 리그베다의 어휘를 불교에서 채용한 것이 라 생각된다.17) 이렇게 보면 스투파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 한 것은 적어도 서기전 15세기 경으로 석가모니 이전부터 이미 쓰여 지고 있 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18)

또한 중국에서 탑이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法顯傳(405-412)과 大唐西域記 (629-645)19)에서인데, 4세기 전후부터 8세기 전반에 걸쳐 인도로 구법(求法)여행을 떠난 승 려의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미 널 리 사용하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stūpa라는 말은 ‘혼의 퇴적’, ‘응고(凝固)’,

‘응집(凝集)’, ‘건립(建立)’, ‘적중(積重)’과 같은 의미이고20), thūpa는 묘(墓)의 뜻을 갖는 영어 의 tomb과 관계가 있는 단어로 Asoka왕의 비 문에도 ‘tube’(thubo)라고 되어 있다.21)

그러나 우리가 통칭하여 탑이라고 부르는 17) 衫本卓洲, インド佛塔の硏究, 平樂寺書店, 1993, p.

61-67

18) 尹昌淑, 「韓國塔婆 相輪部에 관한 硏究」, 단국대 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3, 6쪽

19) 인도에 들어가 17년 동안 유학을 하고 돌아와 法相 宗을 확립한 玄奘이 貞觀20년(646년)에 쓴 일종의 여행 기. 중국에서 구법을 위하여 인도로 떠난 이는 수백명에 이르렀으나 인도여행기를 남겨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자는 겨우 수명에 불과하다. 法顯의 佛國 記 1권, 현장의 대당서역기 12권, 義淨의 南海寄歸內法 傳 4권 등이 대표적인 여행기로서 당시 서역, 인도, 남 해의 사정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 Sir M. Monier-Williams, A Sanskrit-English Dictionary, Oxford, 1956, p. 1260

21) J. Bloch, Les inscriptions d'Asoka, Paris, 1950, p.158

이 내용은 윤창숙의 『문화재해설, 탑파』, 자유출판사, 1991, 5쪽에서 재인용함

말은 불교가 전래된 여러 나라에서 의미는 같 지만 각기 다른 형태로 부른다. 현재 미얀마에 서는 탑을 pagoda라고 부르며22) 영어에서도 역시 파고다라고 하는데, 원래 이 말은 버마 (현재 미얀마) 언어인 paya와 스리랑카 언어 인 dagoba의 혼합어이다. 영어에서의 tope란 23)도 thūpa에 어원을 둔 것이다.

또한 스리랑카에서는 사리봉안의 장소로서 탑을 싱할라어(Sinhalese)로 dagaba 또는 dagoba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Dhatugarba에 서 온 것으로 사리봉장의 장소라는 말을 약하 여 부르는 것이다. 이는 ‘Dhatu(불사리, relics) Garbha(용기, womb, chamber, receptacle)’ 곧 ‘사리봉안의 장소’라는 말을 줄 여 부르는 데서 비롯되었다.24) 특히 스리랑카 에서는 스투파를 vehera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의 사원(monastery, temple)을 의미하는 vihara에서 유래된 말이다.25) 즉 이 는 스투파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미얀마에서는 실제로 스투파에 국한되지 않고 사원의 경우에 도 사용되는 예가 많다.26) 그 외의 지역인 타 일랜드에서는 Phra, 네팔에서는 Chaitya, 특히 티벳에서는 쵸르텐Mchodrten, 미얀마에서는 Paya 또는 Zedi라고도 부른다.27)

또한 영어식 표현인 pagoda는28) 포르투갈

22) 村田治郞, 東洋建築史, 建築學大系4, 彰國社, 1980 23) 특히 James Fergusson은 대부분 tope라고 부르고 있다.

24) James Fergusson, History of Indian and Eastern Architecture, Vol.1, 2. Delhi India, 1876

25) S. Paranavitana, 위의 책, p.1

26) 村田治郞, 東洋建築史, 建築學大系4, 彰國社, 1980, p.199, p.225

27) 林永培, 「韓國塔婆建築의 造形特性에 관한 硏究」, 홍익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1, 19쪽

28) 강우방, 신용철, 『탑, 한국미의 재발견5』, 솔, 14쪽 에 의하면 파고다라는 어원이 범어의 바가바트 (Bhagavat, 성스러운 자, 신) 또는 페르시아어 부트카다

(7)

<그림 6> 케사리아 발우탑

<그림 5> 법륭사 5중탑 인들이 만든 말로 알려져 있는데 포르투갈어 빠고데pagod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5세기 이후 신대륙 발견을 위하여 동양으로 그 세력 을 확장하던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 출하여 독특한 건축물인 탑을 보고 이러한 명 칭을 붙인 것으로 여겨진다.29) 이 때문에 지금 도 서양인들은 동양의 탑을 지칭할 때 파고다 라고 부른다. 인도의 것을 스투파로, 동아시아 의 것을 파고다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 나 건축적 조형물에서 흔히 가늘고 긴 고층조 형물을 탑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이는 Tower이지 Pagoda는 아닌 것이다. 회교사원 에 미나렛이 있고, 기독교에서도 종탑이 있듯 이 여느 종교집단에서나 대부분 높고 지성스러 운 탑을 만들기 마련이다.

특히 일본의 廣辭苑이라는 字典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탑을 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 부처나 阿羅漢 등 의 기념표식으로서 사리, 持物, 머리카락 등을 묻고 또 성지 표시로 금석, 토목 등으로 土饅 頭形을 만든

것. 그 정상이 나 주위에 여 러 종류의 표 식을 한다. 중 국이나 일본 에 있어서 가 람의 장엄으 로서 세운 3, 5층의 탑은 그 변형이다.

(그림 5)

둘; 供養追善을 위해서 묘에 세운 상부의 (But-Kadah, 신이 사는 집)에서 변하여 된 것이라는 설 도 있으나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29) 강우방, 신용철, 『탑, 한국미의 재발견5』, 솔, 2003, 13쪽

탑형을 한 細長한 板. 梵字나 經文, 戒名 등 을 기록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 이외에도 불탑을 지칭하는 용어 가 또 있다. 팔리어 자타카Jataka에 전하는

‘칼링가보디자타카Kalingabodhi-jataka’에 의 하면 부처의 侍者인 아난은 부처에게 그가 안 계실 때 어떤 것들에 참배할 수 있는지 묻는 다. 이 물음에 대해 부처는 사리리카‘saririka’, 파리보기카‘paribhogika’, ‘웃데시카’uddsika'의 세가지 cetiya(성소, 혹은 성물, 산스크리트어 caitya)가 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saririka’

는 붓다가 열반에 드신 뒤에나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붓다 재세시에는 참배할 수 없 고 ‘uddsika’는 상상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며 붓다가 사용하던 보리수, 즉

‘paribhogika’만은 붓다 재세시에나 열반에 드 신 뒤에나 참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 다.30) 사실 원래 스투파는 부처님, 아라한, 과 거칠불의 유해를 모신 실제 분묘였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스투파를 ‘사리리카saririka’라31) 불렀다. 반면 부처님이 남긴 발우(鉢) 같은 물 건을 봉안해 스투파(그림 6)를 세우는 경우도

30) 이주형, 「인도초기불교미술의 불상관」, 미술사학 15, 2001, 90-93쪽에서 재인용함. 특히 이주형은 그가 아 는 한 팔리어문헌에는 이 세 가지를 스투파라 하지 않 고 차이티야라고 부른다 함.

31) 이주형에 의하면 원문에는 산스크리트식으로 샤리 라카sariraka라고 되어 있다고 함.

(8)

<그림 7> 마하보디 보리수 있었다. 이를 ‘파리보기카paribhogika’로 명명 했다. 특히 성스러운 장소를 기념해 세운 건축 물은 ‘웃데시카uddsika’라고 했으며, 웃데시카 는 부처님 일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유 적지에 세워졌다. 이에 대해 이주형은 ‘팔리어 문헌에서 파리보기카는 보리수(그림 7)와 같이 부처님이 생전

에 사용하던 물 건을 가리키고, 웃데시카는 정 확한 정의가 없 으나 마음의 기 억에 의존하는 상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었다’라고 하며 따라서 파리보 기카와 웃데시 카는 마치 차이 티야와 같은 의

미이지 일반적인 의미의 스투파에 적용되는 개 념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한다.

위에서와 같이 불교가 전래된 여러 나라에 서는 각기 자기의 언어로 불탑을 부르고 있는 데, 후대에 들어와서 스투파와 의미가 혼용되 어 사용되는 어휘들이 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이는 Buddha와 caitya32)라는 말이다.

<불교대사전>에서는 Buddha의 한자식 표 현인 浮屠, 浮圖, 蒲圖, 佛圖 역시 탑이라는 말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고유섭은 이는 사음 기법으로 舊譯家는 불타의 전음이라 한데 대 하여 新譯家는 이것마저 탑의 轉音이라 한다 고 하였다.33) <대당서역기 1>에 의하면 ‘솔도 32) chaitya, 혹은 catiya라고 한다. 성전 또는 성소라는 의미의 sanctuary, holystead, shrine 이라 할 수 있겠다.

제항리(制恒里) 이외에도 制恒羅, 制底耶, 制底, 制體, 制 多, 支提, 斯底, 支帝, 支徵, 脂帝, 只底柯 등의 유사한 사음기법을 갖고 있다.

파는 곧 옛날의 부도를 이른다’라고 하였으며, 梵語雜名에 의하면 ‘부도는 소도파이고, 탑은 제항리(制恒里)이다’ 라 하였다. 여기에서 탑의 또 다른 이름인 제항리, 즉 차이티야caitya가 나타난다. 이 내용에 의하면 탑은 Buddha(浮 屠, 浮圖, 蒲圖, 佛圖)이기도 하고 caitya(制恒 里)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처럼 중국의 기 록에서는 스투파를 5세기 초의 법현전이나 7 세기의 대당서역기 등에서 차이티야, 즉 지제 (支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chaitya차이티야와 스 투파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유골의 유무와 관계없이 “장례용 기둥”, “쌓 아놓은 기념물”이라는 원뜻을 지닌34) 차이티 야는 성스러운 장소에 세운 불탑 그 자체나 그 장소, 불탑 대신 사리가 없는 기념비적 조 형물, 혹은 불탑이 그 안에 있는 정사를 의미 한다. 특히 차이티야와 스투파는 후세에는 같 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의미가 다른 별 개의 용어로서 차이티야란 신의 대리물인 성스 러운 나무나 壇을 가리켰던 것이라고35) 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고유섭은 스투파 그 자체의 원래 뜻에 신골을 담고 토석을 누적한 것이라 는 의미가 있고 차이티야에는 積聚의 뜻이 있 다하여 일찍부터 스투파에 대하여서는 方墳, 圓塚, 高顯處 등의 의역이 있고 차이티아에는 靈廟, 淨處, 福聚, 生淨信處, 可供養處 등의 의역이 있어 구별이 내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36) 곧 차이티야는 靈場 고적을 표시하

33) 고유섭, 『조선탑파의 연구 上』, 열화당, 2010, 167

34) 逸見梅榮, 印度佛敎美術考-建築篇, 甲子社, 1929, p.89

Fergussion, History of Indian and Eastern Architecture, 1920/2006, p.56

이희봉, 위의 논문, 104쪽에서 재인용

35) 衫本卓州, caitya及stupa崇拜の 形態と展開, 東北福 祉大學論叢 第9, 11卷

(9)

<그림 10> 카를리석굴의 차이티야 스투파

<그림 8> 엘로라 비하라석굴

<그림 9> 죽림정사 전경 는 기념탑으로서 의미를 갖고 탑파는 불신골

봉안의 묘소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한편 인도에서는 차이티야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인도의 초기석굴은 탑이 있는 동굴사원, 즉 chaitya와 스님들의 거처가 집합 되어 있는 동굴승원, 즉 vihara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그림 8) 이 차이티야는 불탑을

그 중심에 모시는 불전으로 흔히 주변에 비하 라와 함께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비하라는 일 반적으로 승원 또는 불전, 정사(精舍)를 일컫 는 말로 탑이 아닌 승원으로 그 안에 탑이 없 다.

무더운 인도에서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더위와 맹수와 독충을 피하여 그들이 안전하고 시원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였는데 이 공간이 바로 승원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비하라이다. 인도 최초의 사원이라고 할 수 있 는 기원정사나 죽림정사가 지상에 있는 최초의 승원이라 할 수 있고, 엘로라석굴이나 아잔타 석굴 내부에도 더운 날씨를 피해 쉬고 수행하 기에 편한 석굴승원인 비하라가 있다. 즉 부처 님이 살아계시던 시절부터 부처님을 따르던 무 리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승원, 즉 비하라의 출발이 되었고 이 비하라는 나중에 부처님이

36) 고유섭, 『조선탑파의 연구 上』, 열화당, 2010, 169

열반하시고 나서 발생한 불탑, 그리고 부처님 의 형상인 불상을 모시는 전각과 함께 불교사 원인 가람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 는 것이다.

또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과는 달리 부처의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사리대신 넣어 부처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 깨달음을 얻은 성도지成道地 부다가야 Buddhagaya,(그림 9) 맨 처음 불법 말씀을 전 한 곳인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 사르나트 Sarnath, 돌아가신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Kusinagara 등의 4대성지에 탑을 건립했는데 이것을 caitya, 즉 지제라 부르며 불사리를 봉 안한 탑과 구별하기도 한다.(그림 10) 그러니 까 차이티야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없고 스

(10)

<그림 11> 쿠시나가르 열반당 투파는 사리가 있는 것이다. 즉 스투파는 사리

를 봉안한 일종의 묘소로서 이를 방분(方墳), 원총(圓塚)이라함에 비하여 차이티야는 사리를 봉안하지 않더라도 부처님과 직접 관계되는 기 념물적인 고적이나 신령스런 장소의 의미가 더 욱 부각되고 있으므로 이를 영묘(靈廟), 정처 (淨處)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부처님의 사후 불교가 인도의 전역에 널리 퍼지고 부처님의 상징적 존재로서 새로운 탑의 건립이 각지에서 널리 요구됨에 따라 극히 한 정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로는 수많은 신자들 의 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자 석가모니의 머 리카락(佛髮), 손톱(佛爪), 이(佛齒) 등을 봉안 하여 예배하거나 석가모니의 옷(衣鉢)이나 좌 구座具 등을 유물로 여기며 석가모니를 상징 하는 본존本尊으로 공양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부처를 따르던 제자들이 서운하여 스승이 앉았던 빈 의자, 해탈한 보리 수(즉 우주목 생명나무), 말씀의 법륜, 전도를 나타내는 발자국, 하늘로 오르는 길 등 기념이 될 만한 형상(form, 色)을 통하여 형상 없는 (formless, 無色) 말씀을 믿고 실천하며 전하 고자 하였다.37) 이는 힌두신상을 이해하는 인 도철학의 기본처럼 형상을 통하여 형상 없음을 추구하는 변증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는 이것마저도 그 진위를 가 려낼 수 없게 되자 절대로 변함이 없는 석가 모니의 유적지인 탄생지, 깨달음을 얻은 성도 지, 맨 처음 불법 말씀을 전한 곳인 초전법륜 지, 돌아가신 열반지(그림 11) 등의 4대성지38) 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그곳에 불탑을 건립 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와 같이 신령스러운 옛

37) 이희봉, 위의 논문, 104쪽

38) 4대성지 이외에도 성지로 숭앙되는 곳은 給孤獨長 者가 세워 석가모니가 오랫동안 머물었다는 祇園 (Jetavana), 부처가 보살 때 병든자를 고쳤다는 楗陀衛 國(Kandahra), 竺刹尸羅(Taxila) 등이 있다.

터를 표시하는 기념탑적인 것을 지제, 즉 Caitya라고 하여 불사리를 봉안하는 탑과 구 별하게 되었다. 어떤 경전에는 ‘사리가 있는

것을 탑이라 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 하여’ 구분하였지만39) 후세에 이르러 사리의 있고 없음을 외관상으로 구별하기가 어려워 오 늘날 불교국가에서는 탑과 지제를 동의어로 사 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40)

<불교용어사전>41)에 의하면 “차이티야, 즉 지제란 부처의 유골을 묻지 않고 특별한 영지 靈地임을 표시하거나 그 덕을 앙모仰慕하여 은혜를 갚고 공양하고자 세운 것으로 석존의 사리가 없다”라고 하였다. 즉 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은 탑, 부처가 아닌 고승의 사리를 모 시거나 부처와 관련된 형상사적을 표시한 공작 물은 지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42) 또한 경전상 에도43) 制底, 支提, 質底라 하여 탑과 판연히 구별하고 있으나 후대에는 사리가 있고 없음을 외관상으로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정 의는 해석에 불과할 뿐 탑과 지제를 거의 같

39) 僧祇律, ‘有舍利名塔婆 無舍利名支提’

40) 김희경, 『한국의 미술, 탑』, 열화당, 2005, 14쪽 41) http://ebit.dongguk.ac.kr

42) 김버들, 조정식, 「경전속에 나타난 탑의 건축적 요 소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계획계 통권 232호, 2008년 2월, 168쪽

43) 摩訶僧祇律

(11)

은 뜻으로 사용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지 제의 범위는 매우 넓어졌으며 殿堂, 廟宇까지 도 포함하게 되었다.44)

4. 결어

- 불탑이란 부처가 열반하고 다비한 후 그 의 사리를 모아 봉안한 탑으로 부처의 무덤이 다. 사리를 모시는 성스러운 묘로서 부처 그 자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물리적인 덩어리로 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열반을 의미하며, 부 처를 상징하는 대상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영원한 신체이며 부처의 말씀과 가르침이 가득 한 곳이 불탑인 셈이다. 중생들의 번뇌도 사랑 도 완전히 소멸된 열반의 의미가 농축된 곳, 진리 그 자체인 곳, 불멸의 부처가 머물고 있 는 곳이 바로 불탑인 것이다. 결국 부처의 무 덤이라기보다는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완전한 소멸, 般涅槃(parinirvana)을 달성하고 이른바 영원한 적정의 세계에 이른 부처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에서는 경배의 대상 으로서 부처의 육신과 같은 사리를 모시는 stūpa 혹은 thūpa, 즉 불탑을 자연스럽게 건립 하게 되었다. 불탑은 이미 부처가 세상에 태어 나기 전부터 성스러운 지도자들의 묘로서 건립 되었고 이를 부르는 스투파, 혹은 투파라는 이 름도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로 불리고 있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탑의 명 칭은 세일론, 티벳, 네팔, 미얀마, 태국, 중국 등 불교전래국가에서 각기 자기언어로 명명되 었고 각국의 조형양식에 따라 약간씩 변모된 양식으로 조성되었는데 결국 그 본래적인 의미 와 형태를 함유하고 있다. 가장 공통된 형식은 그 내부에는 불교신앙의 결정체인 사리를 모시 44) 김버들, 조정식, 위의 논문.

고 영원토록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 스투파라는 말은 원래 ‘상투’라는 뜻을 지 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정수리’라는 뜻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頂上’, 다시 ‘土壘’라는 뜻을 갖게 된다. 또한 원래의 의미에는 身骨을 담고 흙과 돌을 쌓아올린 것, 특히 불사리를 봉안하 는 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하여 일찍부터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方墳, 圓塚, 高顯處 라고 음역되었다. 제켈에 의하면 스투파는 무 덤의 기능을 하는 토루, 일종의 봉분으로 기원 은 선사시대까지 올라간다. 왕을 매장하며 만 든 거대한 봉분은 반구형을 띠었는데 상당히 이른 시대부터 이런 분묘는 일반적인 기념물로 변화되었으며, 불교도들은 이것을 불교의 주된 상징물이자 종교건축의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한다.

- stūpa라는 말은 베다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 이들 책 중 가장 오래된 리그베다에는 스투파의 명칭이 4번 나타나 있다. 여기서 스 투파는 각기 宇宙木, 황금의 언덕, 신성한 불 꽃의 集積, 천지의 중심축 등을 상징하는 중요 한 뜻을 갖고 있다. 리그베다에서 스투파는 하 늘과 땅을 연결하는 지주이며 우주목으로 하늘 에 우뚝 서 있고, 지상에서 밝은 불꽃으로 타 오른 다음 태양광선으로 대지를 감싸는 황금의 빛과 관련된 어휘로 사용되었다.

후기 베다시대 말기에 불탑을 스투파라 칭 하게 된 이유는 아직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불교가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리그 베다의 어휘를 불교에서 채용한 것이라 생각된 다. 이렇게 보면 스투파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 작 한 것은 적어도 서기전 15세기경으로 불교 이전부터 이미 쓰여 지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부처의 열반 후 그의 사리를 모시는 불탑

(12)

은 8만4천탑이라고 할 정도로 그 수효도 많고 그 진위를 가려낼 수 없게 되자 절대로 변함 이 없는 부처의 탄생지, 깨달음을 얻은 곳, 최 초로 말씀을 전한 곳, 열반지 등의 4대성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그곳에 불탑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와 같이 신령스러운 옛터를 표시하는 기념탑적인 것을 일반적인 탑과 달리 지제, 즉 Caitya라고 하여 불사리를 봉안하는 탑과 구별하게 되었다. 경전에는 ‘사리가 있는 것을 탑이라 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 하여’ 구분하였지만 후세에 이르러 사리의 있 고 없음을 외관상으로 구별하기가 어려워 오늘 날 불교국가에서는 탑과 지제를 동의어로 사용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차이티야는 불탑을 그 중심에 모시는 불전으로 흔히 주변에 비하 라와 함께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비하라는 일 반적으로 승원 또는 불전, 정사(精舍)를 일컫 는 말로 탑이 아닌 승원으로 그 안에 탑이 없 다.

- 부처가 열반하고 오랫동안은 존귀한 부처 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거나 만들 수 없었다.

즉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회화나 부처님의 몸 을 만든 조각처럼 구체적인 모습으로 위대한 분을 표현한다는 것은 경망한 것이라 생각하고 금하였다. 따라서 불상을 만들 수 없었던 시기 에는 부처의 열반을 불탑으로 상징하였고, 구 체적인 대상이 없어 위대한 성자의 신체가 들 어 있는 무덤에 경배를 드렸다. 한편으로는 위 대한 성자가 생전에 쓰던 집기, 해탈한 보리수, 말씀을 뜻하는 법륜, 전도를 나타내는 발자국, 하늘로 오르는 길 등 기념이 될 만한 것들을 신성시하였다.

그러나 부처는 자신이 아니라 불법을 잘 지 키라고 지시하였으므로 사리가 아니라 경전으 로 불탑의 성격이 바뀐 경우도 많다. 즉 부처 자신이 아니라 부처가 설파한 진리 자체에 경

배의 의미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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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2011. 8. 14) 수정(1차: 2011. 10. 17) 게재확정(2011. 10. 17)

(14)

A Meaning and Origin of the Stupa

Cheon, Deuk-Youm

(Professor, Chonnam National University)

Abstract

Buddhism that has arisen in India began to build the Stupa to enshrine body and Sari of Buddha as an object of worship. The stupa existed as a tome of holy leaders even before the birth of Buddha, which was called stupa or tupa in the Sanskrit and the Pali, the ancient language of India. The stupa was renamed accordingly in each Buddhism transmitted countries such as Ceylon, Tibet, Nepal, Myanmar, Thailand and China and also reshaped according to their own formative style. But its original meaning and type are kept unchanged.

The stupa was established in the 4 holy places including the birth place of Buddha, the place where Buddha found enlightenment, the place where Buddha preached for the first time, and the place where Buddha died. Thus, a pagoda to commemorate holy ancient places is called Chaitya, which became differentiated from the stupa in which Sari is enshrined.

The stupa means Nirvana, the eternal body of Buddha, and also a place filled with teaching and preaching of Buddhism. It signifies the symbol of Buddha who escaped from the death and rebirth, to achieve complete extinction, i.e. parinirvana, and to reach ultimate eternal world, rather than simply means death.

During the non-statue of th Buddha period, people built the stupa to embody Nirvana of the Buddha, and worshipped the tomb where body of holy saints was enshrined. On the other hand, they also sanctified memorial things such as tools that holy saints used, the Bo tree under which one achieved Nirvana, Dharma cakra that implied words, footprint that carried out mission work, and a way to reach to heaven.

Keywords : Stūpa, Thūpa, Chaitya, Vihara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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