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The Values, Consumption Culture, and Clothing Attitudes of a Modern New Generation as the Primary Consumer of Modern Korean Culture: From the 1920's to the 1930's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The Values, Consumption Culture, and Clothing Attitudes of a Modern New Generation as the Primary Consumer of Modern Korean Culture: From the 1920's to the 1930's"

Copied!
11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의복 태도 특성: 1920년대∼1930년대를 중심으로*

The Values, Consumption Culture, and Clothing Attitudes of a Modern New Generation as the Primary Consumer of Modern Korean Culture:

From the 1920’s to the 1930’s

오산대학교 패션디자인과 부교수 박 혜 원

Department of Fashion Design, Osan College Associate Professor : Hye Won Park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characterize the new women, modern girls and modern boys from the 1920’s to the 1930’s as a modern new generation, the primary consumer of modern consumption culture, and to examine their values, lifestyles, consumption culture and clothing attitudes. The data were obtained from the magazines and newspapers published from 1920’s to 1930’s and previous literatures, and analyzed by qualitative content analysis.

The results were as follows: A modern new generation meant the new women, modern girls, and modern boys seeking for the western looks and cultural tastes. The values of a new generation people were individualism, materialism, and modernism which was the same as Americanism. They enjoyed western lifestyles and sports and consumed new mass media and popular culture. Their clothing attitudes were fashion orientation, conformity, symbolism, conspicuous consumption, aesthetic value, individuality, and practicality.

주제어(Key Words) : 모던 신세대(a modern new generation), 소비문화(consumption culture), 가치관(values), 의복태도(clothing attitudes)

목 차

Ⅰ. 서 론 Ⅳ. 결 론

Ⅱ. 연구 문제 및 연구 방법 참고문헌

Ⅲ. 연구 결과 및 논의

Corresponding Author : Hye Won Park, Department of Fashion Design, Osan College, 17 Chunghakdong, Osan, 447-749, Kyeonggi-do, Korea Tel: +82-31-370-2803 Fax: +82-31-370-2807 E-mail: [email protected]

* 본 연구는 2010년도 오산대학교 학술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음.

(2)

Ⅰ. 서 론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식민치하 한국 전통 사회에 근대 산업 사회를 출현시켰고 사회, 경제, 문화 전반 에 걸쳐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산업과 자본은 1920년 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서구식 근대 대중문화를 창출하기 시작하였으며, 도시 소비문화를 형성하게 하였다. 국가 전역 이 아닌, 비록 수도 경성만을 중심으로 한 근대 소비문화의 형성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소 비의 주체, ‘누가 소비를 하는가’와 소비의 대상, ‘무엇을 소 비하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도시 소비문화의 주체는 주로 신여성, 모던걸, 모던보이로 불리우는 새로운 젊은 세대였 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소비의 대상은 바로 서 구화된 의복, 구두, 장신구 즉, 패션이었다.

문화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며(Laver, 1982), 패션은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한국 근대 문화 소비 주체로서의 새로운 젊은 세대와 그들이 소비했던 패션 은 근대 문화와 소비자로서 그들의 내면과 외적 행동을 이해 하는 데 핵심이 된다.

따라서 인문사회학 등의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에 관한 연 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의류학 분야에서도 개화기나 근대 초기 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1920~1930년대를 다룬 의류학 분야의 기존 연구들 대부분은 양장의 변천사(남윤숙, 1992; 유수경, 1990) 또는 신여성의 복식 양식(김희정, 2004; 유 정이, 2007)에 연구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에 서는 근대 복식 양식의 이면에 새로운 근대 소비문화가 형성되 고 있었으며, 근대 소비문화를 형성하고 소비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대가 존재하였으며, 소비자로서 그들은 의복 행동과 그들이 착용하는 패션을 통해 그들 내면을 표출하고 있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새로운 세대, 즉 신세대의 패션에 대한 연 구는 1990년대 이후 의류학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사로서, 신세대란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새로운 문화 창조 의 주체자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근대 초기 소비문화의 주체를 세대론의 관점에서 신세대로 이해하여 그들을 탐구하 고, 그들의 의복 행동과 패션 양식를 통해 보여지는 내면적 태 도를 이해하고자 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근대 소비문화를 주체, 선도하는‘새로운 세대’,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 포함한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모던 신세대, 그들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소 비 주체로서 등장한 그들의 의복 행동과 패션 스타일, 그리 고 그것을 통해 보여지는 가치관, 사회 심리적 태도 특성 역 시 연구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1920~1930년대 근대 소비문화의 주 체로서 등장한 젊은 세대를 모던 신세대 소비자로 재조명하

여 그들의 가치관과 소비문화 특성을 파악하는 한편, 그들의 의복 행동과 외적 패션 양식에서 보여지는 신세대의 내면적 태도 특성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패션을 매개로 근대 문화와 그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며, 소비자로서 모던 신세대의 의미를 규명하고 신세 대의 의복 태도 특성을 이해하는 데 기초를 제시할 수 있다.

Ⅱ. 연구 문제 및 연구 방법

1. 연구 문제

연구문제 1. 1920년대~1930년대 모던 신세대의 등장 배경을 고찰한다.

연구문제 2. 모던 신세대의 의미를 규명한다.

연구문제 3. 모던 신세대의 인구통계적 특성을 밝힌다.

연구문제 4. 모던 신세대의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및 소비문 화의 특성을 파악한다.

연구문제 5. 모던 신세대의 의복 행동과 패션 스타일에 나타 난 의복 태도 특성을 고찰한다.

2. 연구 방법

연구의 시대적 범위는 1920년대와 1930년대로 하였다.

자료는 1920~30년대 모던 신세대와 관련된 선행 연구와 문 헌, 신문 및 잡지 자료를 수집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에 발간된 자료로 신문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대일보가, 잡지는 별건곤, 신여성, 삼천리, 동광, 신민, 여성, 신동아, 신 가정이 이용되었다. 연구 분석을 위해 이론적 고찰과 질적 내용 분석을 적용하였다.

Ⅲ. 연구 결과 및 논의

1. 모던 신세대의 등장 배경

쇄국 정책을 표방하던 한국 사회는 1876년 일본과 병자수 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이어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차례로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서구 열강의 출현과 문화의 유입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져 온 전통 사상과 제도 및 풍습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발달한 물질문명의 유입으로 상품 경제가 발전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신분제가 붕괴되어 갔다(박 영은, 1993). 개화기 신분제 붕괴의 사상적 기반은 서구에서 유입된 자유론과 평등론에 입각한 모더니즘이었으며, 그 논 리는 자연스럽게 남녀평등의 사상으로까지 이어졌고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최혜실, 2000). 전국에 걸쳐 수

(3)

많은 민간 여학교가 설립하게 되었고, 정규 학교 외에도 강 습회, 야학, 교회 활동 등을 통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었으 며, 여자 외국 유학생이 격증하는 등 여성 교육이 광범위하 고 다양하게 확대해나갔다. 근대식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전 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여성상으로 변모하기 시 작하였다. 특히, 1920년대 이후부터는 일본 유학파 여성이 귀국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여성의 본격적인 사회 진출이 가능해졌다(윤영옥, 2005). 이런 모든 변화들은 사회 구성의 원리를 전환시키는 사회적 힘으로 작용하게 되어, 사회의 일 차적 단위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이라는 개인주의 의식이 자 리잡아갔다(박영은, 1993).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 는 많은 개혁과 변화가 이루어졌다. 1910년대 식민 초기에는 서구에 대한 선망과 동경 속에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급급하였으나, 1920년대에는 새로운 대중 미디어 소비문화 가 확산되면서 도시 경성을 중심으로 일상 문화의 영역까지 도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23년 최초의 무성영화 월하의 맹세 상영이후 할리우드 미국 수입 외화가 급증하여 1925년 경성에는 극장수가 12개에 달하였다. 1926년에는 취 미 독물로서 대중 잡지 별건곤, 신여성 등이 출간되었다. 또 한, 1925년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고, 1926년 이후 대중 음 악시장은 급속히 성장하여 1930년대 초반은 레코드의 홍수, 유성기의 천하로 불릴 만큼 음악 시장이 확대되었다(주창윤, 2008). 한편, 경성의 남촌에는 1921년 조지아 백화점, 1922년 미나카이 백화점, 1926년 히라다 백화점 등이 세워지고 다방 과 카페, 시계점, 화장품점, 양복점과 같은 잡화점들이 1925 년 전후로 급속히 증가했다.

이처럼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는 비록 도시 경성에 국 한된 현상이었지만 대중 미디어 문화가 확산되고 백화점, 카 페, 극장을 중심으로 한 도시 소비문화가 발달하게 되는 등 자본주의 근대 문화의 형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2. 모던 신세대의 의미

칼 만하임은 세대를 단순히 동일 시기에 출생한 사람들로 만 파악하지 않고, 경험의 계층화와 새로운 접촉의 개념을 적 용하여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집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주목 하였다(박재흥, 2001). 상술한 바와 같이 1920년대 한국 사회 는 새로운 외래 문물의 접촉과 경험을 통해 급격한 근대화로 의 변화를 겪고 있었고, 새로운 접촉과 경험에 의한 근대 문화 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주도해 나가는 주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동질적인 집단, 즉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다. 그들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한국의 초기 근대 문화가 형성된 시기에 나타난 신여성, 모던걸, 모던 보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 즉 모던 신세대였다. 주창윤

(2008)과 엄현섭(2009) 역시 1920~1930년대 모던보이와 모던 걸을 한국 근대 이후의 최초의 세대, 모던 세대로 인식하였다.

이들 모던 신세대에 대한 논의는 1920년 신여성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신여성이란 용어는 1920년 발간된 여성지

<신여자>의 <신여자 선언>이란 글에서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 하였다. 신여성은 근대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군을 지칭하는 구여성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됨으로써,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군을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대응, 1976). 신여성은 단순히 새로운 개념으로 여겨진 것 뿐만이 아니라 새 시대의 유일한 선구자, 창작자로서 숭배되 고 찬미되었으며 1920년대 중반에는 찬미가 절정에 이르러 도시의 지식인 사이에서 대중적인 용어가 되었고(김경일, 2004; 주창윤, 2008) 근대화, 서구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는‘모던’과 더불어‘모던 걸, 모던보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고, 1930년대 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전성시대였다. 모던보이와 모던걸 의 의미를 살펴보면, 박영희(1927)는 모던걸, 모던보이란 근 대적 남녀로서, 양장을 하고 화사하며 유탕하고 호사로운 생 활을 하는 유산자 사회의 근대적 퇴폐군이라 하였고, 성서인 (1927)은 모던걸은 양장 차림의 해방된 현대적 색시라 하였 다. 박팔양(1927)은 의복, 언어, 동작, 사고방식이 근대화된 청년군을 모던보이라 하였고, 최학송(1927)은 양풍의 근대 소녀, 소년을 모던걸과 모던보이라 하였다. 이들은 외면적으 로 서양식 특성의 의복 차림을 한 젊은 남녀를 공통적으로 모던보이, 모던걸이라 칭하였다.

이와 같이 보았을 때,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서구적 외양 을 추구하는 젊은 남녀를 지칭하고 있으며, 그들은 앞서 근 대 교육을 받은 선구자적 지식층 집단으로서 제시된 신여성 과는 다른 의미로 설명되고 있다. 모던걸의 용어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신여성보다는 모던걸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 었고, 모던 걸 등장 이후 사용된 신여성이라는 용어 역시 서 구적 외모를 추구하는 모던걸과 같은 의미로 쓰였음을 아래 의 글(로아, 1930; 신불출, 19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즈음 서울의 거리에 신여성의 내왕이 벗적 느럿다. . . . 육 색굽 놉흔 구두. 삐스코-스실크· 스타킹. 두줄로 따어 느린 짤 막한 뒷머리. 뒤통수에 밧작 올녀 딴 흑공단 리본. 암사슴가치 깡충한 두 종아리. 젓가슴에 안은 커다란 핸두빽(로아, 1930).

서양 배우들의 최신유행을 딸른 화장이나 하고 의상을 걸치 고 백화점이나 돈 있는 사람의 사랑채로 놀라 다니면서. . .떠드 는 것만이 신여성이 아닐 것이올시다(신불출, 1936).

따라서 모던 신세대란 근대 문물을 수용하여 서구적인 외 모 특성을 추구한 1920~30년대의 신여성, 모던걸, 모던보이 와 같은 청년 세대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서구적 외모 특성의 추구란 헤어, 의복, 구두, 가방, 장신구, 화장 등

(4)

패션 스타일에 있어 서구적 양식의 특성을 수용한 것을 의미 한다.

3. 모던 신세대의 인구통계적 특성 1) 직업

모던 신세대 여성들은 학생이거나 교원, 기자, 의사, 간호 사 등과 같은 전문직, 은행, 회사의 사무직 또는 도시 신종 서비스직의 여성들이었다(동아일보, 1936. 2. 20). 또한, 서구 적 외양을 추구하는 부잣집 첩도 모던걸로 묘사되어(조선일 보, 1930. 1. 16) 무직의 유한부인들도 있었다. 조선 총독부 통계연보를 근거로 1920년대 여성 취업자 중 교육, 언론, 예 술, 의료 등의 전문직을 가졌던 여성은 극소수인 1%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대다수의 직업여성은 백화점, 양화점, 극 장, 다방, 카페, 바, 버스 등 신종 서비스직에서 매우 적은 임 금을 받고 일했다(서지영, 2006). 여성 신종 서비스직으로는 마네킹걸, 매니큐어걸, 가솔린걸, 버스걸, 엘리베이터걸, 카 페걸, 헬로걸, 티켓걸 등이 있었다. 이 중 백화점 상품판매원 인 숍걸, 데파트걸은 최고의 선망 직업이었다.

모던보이는 대개 자본가의 아들, 부르주아의 후예들로(박 영희, 1927) 직업이 없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다방, 카페, 바를 전전하였다. 모던보이의 아지트였던 카페의 남성 고객 들 신분이 주로 학생들, 샐러리맨, 지식인 문사, 영화업 종사 자 순인 것으로 볼 때(이이화, 2004), 모던 신세대 남성은 부 유한 학생 또는 무직의 유산자, 샐러리맨, 지식인 문인, 문화 예술직 종사자 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열악한 식 민지 시절 근대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해도 형편이 어렵거나, 실업자로 전락한“양복쟁이 룸펜”(조선일보, 1934. 2. 9) 모 던보이도 상당수 존재하였다.

2) 교육, 연령, 결혼 여부

1930년 조선 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전체 여성 인구 중 0.047%, 서울 여성 인구 중 3.7%만 학교 교육을 받았다(주창 윤, 2008). 경성 버스걸의 지원 자격은 16세 이상 20세 미만의 보통학교 졸업 이상 학력의 여성이었고(조선일보, 1931. 10.

5), 전화교환수는 15세에서 20세 이하의 보통학교 졸업이상의 미혼 여성이었다(동아일보, 1936. 2. 20). 숍걸, 데파트 걸 역시 보통학교 졸업 이상의 미혼 여성들이었다(조선일보, 1931. 10.

11). 특히, 백화점에서 일하는 데파트걸은 보통학교를 마치고 고등보통학교나 상업학교에서 전문기술을 배운 후 치열한 경 쟁을 거쳐 채용된 미모와 학력을 갖춘 미혼 여성들이었다. 다 방, 카페, 바의 여급들 또한 보통 학교 이상의 신식 교육을 받 았고 일부 기생도 보통학교 졸업 이상의 여성이었다(손주리내, 백혜련, 이혜숙, 1932). 전문직 취업이 힘들고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한 교육받은 여성들에게 신종 서비스직은 대안적 기회

였다. 이와 같이 여학생, 전문직 여성뿐 아니라 신종 서비스직 여성까지 모던 신세대 여성의 대부분이 근대 교육을 받았다.

이용설(1934)은 파리 일류 사교 연구회에 참여해도 사치 한 맛으로 손색이 없는 신여성으로 점원, 교원, 여급, 학생뿐 아니라 혼인한 젊은 여자를 언급하고 있어, 모던 신세대 여 성의 대다수는 미혼이었으나 기혼 여성도 포함되었으며, 연 령대는 15, 6세 이상에서 20대의 젊은 여성이었다.

모던 신세대 남성 또한 근대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당대 대표적 모던보이라 칭해진 이상, 박태원 등 문인들의 경우 고등보통학교 또는 경성의 전문학교를 졸업하거나 일 본 유학을 다녀온 최고의 근대 교육을 받았던 20대 전후 연 령의 지식인이었고 미혼과 기혼이 혼재하였다(두피디아 두 산백과, 2010; 장석주, 2011).

3) 소득 수준과 사회 계층

모던 신세대의 사회 계층은 대다수는 부르주아 유산 계층 이었으나 일부는 도시 빈민 지식층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소득 유산 계층의 모던걸, 모던보이가 존재하는 이면에 다 쓰러진 초가집에 사는 저소득층의 모던걸(조선일보, 1930. 1.

11)과 나무에 꽃 대신 돈이 피기를 기원할 만큼 가난한 룸펜 모던보이(조선일보, 1934. 4. 23)도 존재하였다.

이와 같이 모던 신세대의 인구통계적 특성을 보았을 때, 모던 신세대의 상당수는 근대 교육을 받은 20대 전후의 유산 계층 지식인이었고, 직업, 소득, 사회 계층에 있어서 차이가 존재하며 미혼과 기혼이 혼재되어 있어 인구통계적 특성상 동질적인 집단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서지영(2006)의 연구에서도 모던걸은 포괄적이고 혼성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하여 본 연구 결과와 부합된다.

4. 모던 신세대의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및 소비문화 특성 1) 모던 신세대의 가치관

(1)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

임인생(1930)은 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즉 아메리카니즘이 라는 경제적 조건하에 생겨난 인간 생활의 이데올로기로, 아 메리카니즘을 모체로 한 소비 계급의 문화적 생활양식이라고 하였다. 오석천(1931)은 모더니즘이란 현대 자본주의와 기계 문명을 근거로 나타나는 양식, 짜스, 땐스, 스피드, 스포츠라 하였고 모더니즘의 구성원은 모던보이, 모던걸 즉 모던 신세 대로서 이들을 지도하는 가치관은 아메리카니즘이라고 하였 다. 재즈, 댄스, 스피드는 기계 문명의 혜택 하에 대량 복제된 축음기와 자동차에 의한 모더니즘의 산물이었으며, 스포츠는 모더니즘 문화의 교양이었다. 모던 신세대가 수용한 모더니 즘의 양식과 표현은 아메리카니즘에 의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던 신세대의 생활양식과 소비문화를 지배하

(5)

는 가치관은 모더니즘이었으며, 모더니즘은 아메리카니즘과 상호불가분의 것으로서 아메리카니즘과 동일시되었다.

(2) 물질주의

1920~30년대 모던 신세대에게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소 비 혹은 소유가 인간의 행복, 또는 삶에 있어 만족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신념(Belk, 1985), 즉 물질주의 가치관이 보여 지며, 특히 이것은 모던 신세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났다.

공부한 여학생들이 대개 첩이나 후취로 가는 것은 당시 조 선의 한 현상으로, 훌륭한 집, 눈에 드는 옷감, 손에 드는 일용 품, 넉넉한 금전, 평안하고 사치스러운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 배금종인 신여성이 돈 있고 첩 있는 부잣집 자식들 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것이 조금도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홍란, 1925). 따라서“『모던 』들의표어는『돈만잇스 면아모라도조타』(조선일보, 1930. 1. 11)라고 풍자될 정도였다.

(3) 개인주의

개인주의란 개인의 절대적 권리를 주장하고 자유 그리고 사회와 국가로부터의 개인의 독립을 인정하는 사상과 행위 를 의미한다(임석진 외, 2009).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자본주 의의 유입은 모던 신세대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가져와 개인 주의적 가치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모던 신세대 여 성의 경제적 독립, 직업여성으로서의 사회 진출, 자유연애와 결혼관이 바로 그것이다.

남편에게 매달린 물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고치기 위 해서(주요한, 1931), 혹은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 이 여성 해방에 유일한 무기임을 깨닫고, 경제적 독립을 위 해 직업여성이 되고자 하는 당시 여학생의 기질(정의순, 1932)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대유행이었던 자동차 드라이브를 하며 러브씬을 연출하거나(조선일보, 1933. 2. 19), 창경원 벤취에 앉아 서구식 데이트를 즐기며 자유 연애를 즐기는 모습(조선일보, 1928. 4.

15)에서도 모던 신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드러난다.

2) 모던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 및 소비문화

모던 생활은 도시의 산출로, 서울 종로 네거리, 진고개 보 도위, 또는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음악회 등의 의자위에서 의 영위되는 것이었다(적라산인, 1930). 서울 남촌의 종로 네거리와 진고개는 모던 신세대의 근대소비문화의 상징적 거리이며, 그 거리에 즐비했던 카페, 레스토랑, 극장, 백화점 등은 근대 소비문화의 핵심 공간이었다. 이는 도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근대소비문화의 출현을 의미하며, 모던 신 세대는 근대 문화생활과 소비의 주체였다.

(1) 모던 식생활, 의생활 양식과 서구 음식 문화, 의복 문화 소비

모던 신세대는 양요리, 카레라이스, 카스텔라, 비스킷, 슈 크림 같은 서구식 고급 먹을거리의 맛을 알게 되고 서양 요릿 집과 제과점에서 이를 소비하게 되었다. 레모네이드, 켈피스, 소다-수, 밀크세-키, 아이스커피와 같은 서구 음료와 포트톰, 커피, 홍차, 레몬차, 코코아 등의 서양차를 마셨고, 특히 맥주, 커피, 아이스크림, 초콜릿은 모던 신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 다(서울시사편찬위원회, 2002; 조선일보, 1934. 1. 3). 따라서 다방, 카페, 빠는 모던 신세대의 주된 소비 공간이 되었다.

또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지금은 양장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들 눈에 익숙해졌고 풍부해졌다”는 글 (양장시대, 1934 유수경, 1990에서 재인용)에 나타나듯 서구적 의생활 양식으로의 변화로, 이것은 모던 신세대를 상징하고 지 칭하는 대표적 특성이 되었다. 백화점은 서구식 의생활 양식으 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근대 최고의 소비문화 공간이었다.

(2) 백화점 쇼핑과 모던 상품 문화 소비

경성의 상징은 도심에 들어선 외제 물건이 넘쳐나는 고급 백화점들이었다. “모던걸 아가씨들 둥근 종아리 데파트출입 에 굵어만 가고”(고마부, 1938 주창윤, 2008에서 재인용)라 는 당시 대중 가요“뚱딴지 서울”의 한 소절처럼 백화점을 번영하게 만드는 지지자의 절대 다수는 마님들이나 아가씨 들이었다(조선일보, 1935. 3. 17). 모던 신세대 여성들이야말 로 백화점의 절대적인 고객이었고, 백화점 쇼핑은 모던 신세 대 여성의 주요한 취미 활동이었다. 또한, 백화점은 유행 제 조소로서(동아일보, 1937. 6. 3) 모던 신세대의 유행 정보 탐 색을 위한 주요 정보원이었고 모던 신세대를 위한 최고의 상 품 소비 공간이었다. 백화점은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 의 근대 문명의 전시장이었다(장석주, 2011).

(3) 뉴 매스미디어와 대중 문화 소비

모던 신세대들은 서구식 댄스, 음악, 영화에 열광하였고, 라디오, 신문, 잡지, 영화와 같은 뉴 매스미디어를 소비하였 다. 카페나 빠에서 재즈를 듣고 찰스톤, 블루스 춤을 추며,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라도 유성기로 가요를 듣고 불렀 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마이 뿔류-히븐』을 듣고, 취 미 잡지를 읽었으며, 극장에 가서는 헐리우드 서구 영화를 보았다(조선일보, 1929. 7. 27, 1930. 1. 19, 1930. 11. 20, 1934. 7. 23). 특히 서구 영화는 큰 인기를 모았다. 1938년 한 해 경성의 영화관 입장자는 394만 4147명이었는데 총 관객 을 당시 경성부 인구 75만 명으로 나눠보면 남녀노소 불구하 고 전부 일 년에 다섯 번씩을 영화 구경을 한 셈이라고 하였 다(조선일보, 1939. 7. 11).

(6)

(4) 스포츠와 여가 문화 소비

신체의 단련을 위해 혹은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개 념의 스포츠야말로 그 어느 것보다도 근대적 서구 문화의 산 물이었다(김경일, 2001).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스포츠는 국 민 건강과 신체의 단련이라는 차원에서 널리 보급되고 장려되 었으며, 근대적 교양과 근대적 규율을 익히기 위한 수단으로 학교에서는 스포츠 교육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모던 신세대들 사이에서 스포츠는 근대 문화의 필수적 교양으로 유행하게 되 었고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스포츠 참여나 관람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었다(조선일보, 1934. 1. 3). 1920년대에는 축구, 야구, 체조, 테니스, 기타 구기 운동이 유행하였고, 1930년대에는 권 투, 하이킹, 수영, 스케이트, 골프가 유행하여 스포츠는 유한계 층 모던 신세대의 여가 문화생활의 일부가 되기 시작하였다.

5. 모던 신세대의 의복 태도 특성 1) 유행성

1920년대에는 한복 스타일의 근대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양장과 양복 착용 인구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는 양장과 양복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양장과 양복이 일반화되 었다. 양장과 양복 착용이 늘어나자 유행되고 있는 의복의 경향, 해외 유행의 소식 등에 대한 신문, 잡지 지면의 할애도 가 높아졌고, 유행에 대한 관심이 늘어갔다(유수경, 1990).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유행의 속도는 해마다 달마다 바뀌고 비행기를 타고도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조선일보, 1927. 6. 1)며, 매우 스피드 적이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 를 한 바퀴 돌아 뉴욕이나 헐리우드 배우들과 같은 옷차림을 서울에서 볼 수 있을 정도(조선일보, 1932. 1. 20)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유행의 채택과 수용의 주체는 모던 신세대였 다. 그들이 주체가 되어 의복, 구두, 헤어, 화장, 액세서리 등 에 나타난 유행을 적극적이고 빠르게 채택, 수용, 전파하였 다. 그러나 당시 이와 같은 서구식 복식이나 헤어스타일의 유행과 사치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이에 대해 나혜석(1921) 은 인류의 진화적 본능을 무시하는 바라고 하였고(동아일보, 1921. 10. 1), 김활란(1929)은 서구식 단발은 세계의 대세에 순 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남녀논평, 1929), 정순애 (1937)는 구시대의 낡은 전통에서 벗어나 당당히 서구식 양 말과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라고 하였다. 유행 초기 단 계에서 소비자가 자신이 속한 사회 조직 내의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의복이나 제품에 관한 정보나 조언 등의 언 어적 영향력을 주어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 비형식적으로 영 향을 미치는 정도를 유행의견선도력이라고 한다. 또한, 유행 주기의 초기 단계에서 소비자 스스로 새로운 스타일의 의복 이나 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채택하는 정도를 유행 혁신성이 라 한다(Rogers, 1983). 이 두 개념을 합한 유행 선도력

(Rogers, 1983)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서구식 모더니즘을 의 생활 일상에 도입하고자 하였던 모던 신세대의 상당수는 유 행의견선도력과 유행혁신성 모두를 지닌 진정한 유행선도자 로 판단된다. 비록 그들의 일부는 유행의견선도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더라도, 모던 신세대는 한국 근대 사회의 유행혁신 자들이었다.

당시 유행으로 언급되어진 대표적 여성 유행 아이템과 스 타일로는, 1920년대에는 서구식 단발머리, 애교머리, 속이 비치는 옷감, 긴 저고리, 짧은 통치마, 양산, 굽이 높고 볼 좁 은 구두 즉 하이힐, 오페라빽, 부채, 털실로 짠 길고 큰 겨울 목도리 등을 들 수 있다(조선일보, 1929. 7. 27; 조선일보, 1927. 6. 1; 일기자, 1924; 익명, 1925). 새로 유행하는 화장 양 식으로 콧마루를 세우고 눈을 크게 보이게 하며 목을 길게 보 이게 하려는 서양인처럼 화장하는 방법도 나타났다(조선일 보, 1925. 3. 29). 또한 의복에 헤어, 구두, 핸드백, 목도리, 부 채와 같은 패션 액세서리까지 토털 코디네이트하여 스타일을 연출하였다. 1930년대에는 서구식 코트, 팔 다리가 노출되는 스타일, 숏 스커트, 여우털 목도리, 백금 반지, 칠피 구두 등 의 양장 스타일이 유행하였다(조선일보, 1932. 1. 20).

모던 신세대 남성들의 유행 아이템과 스타일로는 싱글 브 레스티드 슈트,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 세비로, 레인코트, 트 렌치코트, 인버니스와 같은 슈트와 코트 스타일이었다. 모던 신세대 남성들은 슈트라는 본질적 틀 안에서 슈트의 색상, 라펠의 폭과 길이, 넥타이, 양복 재킷과 바지의 통이나 길이 등의 유행의 변화를 따랐다(조선일보, 1932. 1. 20). 또한, 기 본 슈트 외에도 스틱이나 다양한 스타일의 모자, 안경 등을 패션 액세서리로 함께 코디네이트하여 패션 스타일을 완성 하였다(시대일보, 1925. 11. 3; 조선일보, 1928. 2. 7).

이와 같이 1920~1930년대 모던 신세대는 한국 근대 사회 의 유행선도자 또는 유행혁신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모던 패 션을 창출하였다.

2) 동조성

1920년대 양장과 단발의 유행은 여학생들 또는 귀국 유학생 들과 같은 신여성들의 영향 때문이었다(유수경, 1990). 무용가 최승희는 일본에서 수업을 마치고 1929년 단발을 하고 귀국했 다. 그녀의 단발은 롱 보브 스타일로 웨이브를 넣지 않고 옆 가 리마를 탄 모습이었다.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는 최승희 머리모 양 따라 하기 붐이 일어났다(이이화, 2004). 남자 양복의 유행 역시 사회경제적으로 상류층이거나 학생들, 서구 문물 경험이 있는 외국 유학생들의 영향을 받았다(이유경,김진구, 1995).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한국의 모던 패션의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서구로부터 수입 된 영화였다. 남녀 모던 신세대들은 서구 영화에 나오는 남

(7)

녀 배우들의 패션과 스타일을 빠르게 모방하였다. 모던보이 들은 스크린의 배우처럼 안경과 모자를 쓰고 나팔바지의 슈 트를 차려입었다. 모던걸들은 프랑스 영화의 여배우를 따라 속살이 비치고 노출이 많은 시스루 패션을 과감히 입었고, 헐리우드 영화 여배우를 쫓아 단발 혹은 단발 퍼머 머리를 하였다. 유행에는 활동사진이 큰 힘을 가졌고, 그것은 학교 의 교육 과정보다, 목사의 설교보다, 어버이의 회초리보다도 강력하였다(조선일보, 1928. 2. 7). 영화는 당대 모든 패션의 원천이었고, 서구 사회를 모방할 수 있는 쇼윈도와 같았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 2005).

최승희와 같은 근대 지식과 문화를 습득한 귀국 유학생, 그리고 특히 서구 영화 속 남녀 배우는 모던 신세대에게 패션 아이콘이자 셀러브리티였다.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의 가 치관, 그리고 신문, 잡지, 영화와 같은 뉴 매스미디어 등의 영 향으로 모던 신세대는 근대적인 서구 문화를 선망하게 되어 서구 영화 속 배우나 서구 문물을 경험하거나 학습한 일부 유 학생, 학생을 동조의 준거 집단으로 삼게 되었으며, 그들의 패션 스타일을 준거 기준으로 삼아 그들로부터 패션 정보를 수용하거나 그들의 패션을 모방함으로써 한국 모던 사회의 유행을 창출하였다.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개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준거 집단과 동일시하기 위하여 그들의 의복을 모방하는 동일시적 의복 동조성과 준거 집단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여 동조하는 정보적 의복 동조성, 근대 문화의 수용자로 인정받고자 준거 집단의 의복 규범을 따르고자 하 는 규범적 의복 동조성(박혜선, 1991)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3) 상징성

1920년대“학교에서 근대 교육을 받는 여학생”이란 모더 니즘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여학생이 입는 교복역시 모더니 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에 여학생은 흰색 긴 저고리와 넓게 주름 잡힌 짧은 검정 통치마를 입고, 양말과 구두를 신 었다. 여학생과 초기 신여성이 입었던 이러한 교복 스타일은 1930년대까지 학생뿐 아니라 일반 여성에게도 크게 유행하 였다. 여학생은 교복을 통해 자신이 근대 지식인이라는 신분 을 상징하고자 하였고, 학생이 아닌 여성들은 근대 지식인인 여학생과 같은 스타일을 착용함으로써 자신도 근대 문물의 수용자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모던 신세대 여성의 단발 또한 여성의 가두 진출과 해방 의 최고의 상징(김기림, 1932), 즉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상징 적 의미였다. 모던 신세대의 근대화된 한복과 양장, 구두, 장 신구, 서구식 화장 모두 같은 의미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 다. 서구식 스포츠 웨어를 착용하고 근대 문화의 교양인 스 포츠를 즐기는 것 역시 모더니즘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들 에게 모더니즘이란 곧 아메리카니즘이었기 때문이다.

“배는곱하도 양복은 만아니라 빗갈, 스타일, 이 것이 현대적이여야만”(조선일보, 1933. 10. 20)이라며 가난한 모던보이가 현대적이여만 하는 양복 구입에 고민하는 모습은 양복이 의미하는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남성의 양복은 공무원, 회사원, 교육자 등 이른바 사회의 근대 교육을 받은 엘리트 계 층이 먼저 착용하였다(금기숙 외, 2002). 따라서 모던보이의 양 복은 근대 지식인 신분의 상징이었다. 양복의 격식과 구색을 갖 출 때 드는 스틱 역시 신분 상징적 수단이었다(김주리, 2005).

따라서 교복스타일, 단발, 양장과 양복, 스포츠웨어, 구두, 서구식 장신구 등의 착용은 모던 신세대의 근대적 상징성을 표출한 것이었다.

4) 과시적 소비

과시적 소비란 사용을 통하여 효용을 얻기 위한 목적보다 는 자신의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존에 필요 한 실질적 수준 이상의 소비를 하는 행위(Veblen, 1994), 또 는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자 랑하려는 욕망으로 지위 상징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Mason, 1981).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1920~30년대 모던 신세대 여성들 에게서 뚜렷이 나타난다. 여학생들에게 황금 팔뚝 시계와 보 석 반지가 없으면 수치(조선일보, 1928. 2. 5)이며 여학생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서, 전차안에서 보석 반지와 손목에 찬 십 팔금 완권 시계를 자랑하고자 텅 빈 자리를 두고 팔뚝을 걷어 부치고 팔을 들어 세루로이트 고리를 잡고 서 있던 모습(양백 화, 1927)은 모던 신세대 여성들의 과시성을 확연히 드러낸 다. 비록 구두 한 켤레 값이 벼 두 가마값(김규탁, 1927)과 같 았을지라도 여학생들의 필수품이었던 구두 역시 모던 신세대 여성들의 과시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아래 글의 다 쓰러진 초가집에 살면서도 머리 장식, 치맛감, 화장품 분, 양 말을 사느라 과하게 돈을 쓰며 한껏 치장하고 얼굴을 높게 치 켜들고 활보하는 모던걸의 모습(조선일보, 1930. 4. 8)과 추운 겨울 궁핍한 살림에 배고픔에 떨면서도 값비싼 여우털 목도 리를 목에 둘러야했던 첨단 여성의 모습(조선일보, 1933. 10.

25)에서도 과시적 소비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대표적 도시에굼벵이보금자리가튼 쓰러진초가집이거 지반인데도- 그리고 대학졸업생 거지 반이취직을못하야거리로 방황하는 여긔에녀자들은치마한감에 삼사십원양말한켜레에 삼 사원손가락에 인것만해도 이삼백원머리에 진것만해도 오륙 백원얼골에칠하는것중에분갑만해도아츰분낫분밤분해서 사 오 원 머리만지지는대도일이원이라하고 초가집을나서서는오든길 가고가든길을돌처서서 대활보로거러가는것이 소위요사이 모던 - 이다(조선일보, 1930. 4. 8).

시체녀자의 목아지가무슨갑시잇스리야만은 목도리는 사 오 십원 이상의 노릿내나는 여호털목도리다. . . .겨울이 되여 엄한 에도 배곱하떨면서도 칠피구두와여호털목도리는 놋치앗는 괴이

(8)

한 녀자도 잇지만거처하는곳의 벽마다 빈대피난초그림과 진 장판을 바르지안코 이불요밋헤서 구데기가나도 얼골에분만 바르고 하부다에를 두르고개털목도리라도 두르고 길로나아 오 면 첨단녀성이다(조선일보, 1933. 10. 25).

뿐만 아니라, 모던걸로 불리우던 특히 지식 계급 여성들의 무분별한 수입 의류 소비(이숙종, 1938)에서도 과시성이 나타 난다.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는 수입 브랜드 과시 태도가 보여진다. 양복이나 양장 원단, 패션 관련 상품들의 대부분은 수입품이었다. 각 상품은 그냥 시계 혹은 금시계가 아니라 영 국제 센손, 베넷트, 서서의 파섹크, 인터내슈낼, 론진, 미국의 월삼, 엘진, 하-봐드, 하밀튼(숙녀비망첩, 1933) 등과 같이 구 체적인 브랜드로 등장하였다. 대유행이었던 털실도 영국제와 일본제 비하이부, 국인, 보다니와 같은 수입 브랜드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연구 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팀, 2005).

식민치하의 곤궁했던 사회경제적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와 같은 모던 신세대 여성들의 과시적 소비는 단순한 근대 성의 상징적 표현 이상의 것으로, 자신의 신분이나 부, 모더 니즘을 차별화시키고 극대화시키는 수단으로서, 상징성을 과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는 특히 모던 신세대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

5) 심미성

모던걸은 단발 미인, 양장 미인이라고도 불리웠다(피서 객, 1927). 즉, 실제 미인이 아니어도, 서구식 단발을 하거나 서구식 양장을 하면 미인 칭호가 붙은 것이다.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을 동일시했던 모던 신세대들에게 근대적 미는 서구적 미이며, 따라서 모든 미의 기준을 서구적 미의 기준 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신명직(1993)은 근대 문화란 서구 문화 이며, 서구 백인이 근대적 미의 척도이며, 이러한 인식이 일 상의 모든 미적 기준에 적용되었다고 하였다. 김미선(2005) 또한, 근대적 신여성은 지나 간 날의 부인보다 훨씬 아름답 다고 이전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갖는다고 하였다.

머리가 납풀납풀할 에는 읏전지귀염성잇서보히고 더 앳 고젊어보히고 가무스룸한 머리가 두 을가리울때는혹시광대뼈 나온이는 그것도가려지고 그럿치안은이도 검은것과흰것이대조 로도그러커니와 얼골긔리를중간을타서머리를잘너 내려 리면 엽흐로보기에도그러커니와 압흘보기에도 얼골에모-든구조라는 지 잘정돈된 것 갓고 는 뒤로 보기에도 동자른머리아래로 갸름한목이흘너내려간것은 누구나볼 에 신선한늣김을줌니다 (안석주, 1925).

구쓰, 양말, 복장이 눈이 부시게 하-얀데다가 엇던 선수는 분 까지 발느고 석회백선을 타고 서서 백색나껫으로 백색 넷트를 향하야 백색 뽈을 주고 밧고 하는 것이 엇지도 청쾌한지. 게다가 성공, 실패간에 홍층을 여러 박씨 가튼 하-얀니빨을 관중의 압 헤 자랑하는 것은 더욱 보기 조왓다(일기자, 1927).

위의 첫 번째 글에서 필자는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머리 가 나풀거릴 때 귀엽고 앳되고 젊어 보이고 얼굴의 구조가

정돈된 것 같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고 하며 단발을 통해 얻 어진 근대미에 신선감을 표현하였다. 두 번째 글의 필자 역 시 하얀 구두, 하얀 양말, 하얀 테니스 복을 입고 얼굴에 분 을 바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테니스를 치는 모습이 매우 청쾌하고 보기 좋다고 하여, 서구 스포츠복을 입은 여성의 근대적 미에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미의 기준이 되었던 서구적 미는 성적 매력이기도 하였다. 서구 영화배우의 모습이나 스포츠 등의 모던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모던 신세대 여성의 근대적 아름다움은 서구 적 관능미로 나타났다. 성서인(1927)은 모던 신세대 여성은 양장과 부평초 같은 아주 무정견한 것과 사람 흥분 식힐 미, 즉 성적 관능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고, 김기림(1933) 역시 육 색 스타킹아래 짧은 스커트와 하이힐은 에로티시즘과 흥분 을 농후하게 한다고 하였다(조선일보, 1933. 2. 22). 단발머리 아래로 흘러내리는 갸름한 목의 노출, 비치는 옷감 사이 속 살의 노출, 하이힐과 짧은 치마아래 육색 스타킹안의 종아리 의 노출, 여름철 수영복으로 인한 팔, 다리의 노출 등 모던 신세대 여성들은 의복 착용시 신체 노출을 통해 성적 관능미 를 표현하였다.

따라서 모던 신세대의 서구식 의복과 헤어스타일, 서양인 과 같은 외모로의 화장법, 서구식 외모 표현은 서구적이고 근대적이며 성적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한 심미 지향적 노력 이었고 여기에는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 가치관이 투영되 어 있었다.

6) 개성

남성의 단발이 강제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여성의 단발과 근대화된 복식, 양장과 양복의 착용은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복식과 두발은 개인 정체성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옷은 그 사람의 표현으로, 옷에 그 사람의 무상식과 유식, 생활 전반, 단정함, 경중과 마음씨가 모두 옷으로 드러난다(안석주, 1924)고 하였으며, 인텔리 모던보이는 넥타이를 통해 자신의 품격과 취미의 정(조선일보, 1934. 5. 13) 즉,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였다. 모던걸은 단발머리, 의복 스타일, 화장을 통해 자신의 정체감과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모던 신세대의 의복과 구두, 머리 스타일과 장신 구, 화장 등은 기존의 전통적 남성상, 여성상과는 확연히 구 별되고, 남들과 다른 개성과 자아정체성을 표출하고자 하는 자아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개성은 모던 신세대 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7) 실용성

박희도(1928)는 조선인의 의복은 착용 시간보다 옷을 만드 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며, 입는 남자도 불편함이 한두 가지

(9)

가 아니나, 재봉하는 여자의 고난은 실로 입으로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전통적인 한복은 빈번한 세탁의 필요성이 있 었고, 세탁할 때마다 완성된 의복의 형을 해체, 세탁, 봉제하 는 일련의 과정을 매번 반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남윤 숙, 1992). 또한, 여성의 가슴을 동여매어 건강상 좋지 않으며 치마 길이가 길어 활동상 불편함이 있었다(동아일보, 1921. 9.

10). 속옷 역시 속적삼, 단속곳, 바지, 속속곳, 너른바지 등 복 잡한 전통 속옷들을 여러 개를 겹쳐 입어 활동에 불편하였다.

따라서 합리주의와 기능주의라는 모더니즘 사고에 입각하여 1920년대부터 신여성들은 치마의 조끼허리를 달고 길이가 짧아진 통치마를 착용하여 활동성과 기능성을 보완하였다.

속옷의 경우도 겹겹이 속옷을 입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 고 간편화된 속옷을 착용함으로써 편의성을 추구하였다.

한편, 양장이나 양복의 구입비가 고가라 대중화에 어려움 이 있었으나 신문, 잡지 등 대중 매체의 정보, 강습을 통한 재봉기술 습득을 통해 양복 제작의 기술적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시킴으로서 간편하고 활동적인 양장과 양복을 착용하였 다(남윤숙, 1992).

또한, 1920~1930년대 근대 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모던 신 세대 남녀 모두 스포츠 웨어를 착용하게 되었다. 테니스복, 야구복, 기계체조복, 수영복 등의 스포츠 웨어를 입었는데 이들은 기능성과 활동성이 강조된 서구식 운동복이었다. 하 이킹과 등산도 유행하였는데, 여성들의 등산을 위해 바지는 남자 바지 비슷한 것을 넓게 해서 입고 블라우스는 앞이 쭉 찢어진 와이셔츠 형으로 입되, 절대 비단을 입지 말 것이며, 굽 높은 구두로 등산하지 말라(조순영, 1936)며 활동성과 기 능성이 강조된 실용성 있는 의복 착용을 조언하기도 하였다.

단발에 대해서도 역시 선도적으로 단발을 한 신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단발의 편리성, 위생성, 경제성과 같은 실용성을 주장하였다(여자단발, 1929; 주세죽, 1925).

모던 신세대의 근대화된 한복과 속옷, 양장과 양복, 단발, 스포츠 웨어 등은 근대 상징성, 심미성 등의 다차원적 의미 가 내포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통 한복과 비교시 우수한 실용성 역시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였으며, 이는 합리 성과 기능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가치관에 의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던 신세대의 모든 의복 태도 특성에는 그들 의 모더니즘, 아메리카니즘, 물질주의, 개인주의 가치관이 투영되어 나타났다.

Ⅳ. 결 론

본 연구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등장한 신여성, 모던 걸, 모던보이와 같은 새로운 젊은 세대를 모던 신세대로 규

정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 근대 문화의 소비주체로서 그들 의 인구통계적 특성,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및 소비문화, 의 복 태도 특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모던 신세대의 등장 배경으로 1920~1930년대는 서 구 근대 사상과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도시 경성에 국한되긴 하였지만, 대중 미디어 문화가 확산되고 백화점, 까페, 극장 을 중심으로 한 도시소비문화가 발달하는 등 자본주의 근대 도시문화가 형성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둘째, 모던 신세대는 서구적인 외모 특성을 추구하였던 1920~1930년대의 새로운 젊은 세대, 즉 신여성, 모던걸, 모 던보이를 포괄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서구적 외모 특성의 추 구란 헤어, 의복, 구두, 가방, 장신구, 화장 등 패션 스타일에 있어 서구적 복식 양식 특성을 수용한 것을 의미한다.

셋째, 모던 신세대의 인구통계적 특성으로 모던 신세대의 상당수는 근대 교육을 받은 20대 전후의 유산계층 지식인이 었고, 직업, 소득 수준, 사회 계층에 있어서 차이가 존재하며 미혼과 기혼이 혼재되어 인구통계적 특성상 동질적인 집단 은 아니었다.

넷째, 모던 신세대의 가치관은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 물질주의, 개인주의로 설명된다.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은 모던 신세대에게는 동일시되어 모더니즘 양식의 표현이 곧 아메리카니즘이었다. 물질주의 가치관은 특히 모던 신세대 여성에게서 많이 보여졌다. 개인주의 가치관은 여성의 경제 적 독립이나 사회 진출, 자유연애와 결혼관 등을 통해 나타났 다. 모던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근대적이며 서구적인 식 생활, 의생활 양식으로 전환되었고, 그들은 백화점 쇼핑과, 신문, 잡지, 라디오, 영화, 대중가요, 재즈, 댄스, 영화 등의 뉴 매스미디어 문화생활과 소비에 심취하였다. 카페, 백화점, 극 장은 모던 신세대의 상징적 소비 장소였다. 또한, 근대 문화 의 교양인 스포츠는 모던 신세대의 여가 문화의 일부가 되었 다. 모던 신세대는 도시 근대 문화생활과 소비의 주체였다.

다섯째, 모던 신세대의 의복 행동과 패션 스타일에 나타 난 의복 태도 특성은 유행성, 동조성, 상징성, 과시성, 심미 성, 개성, 실용성이었다. 모던 신세대는 당대의 유행혁신자 들로서, 그들 중 일부는 유행혁신성과 유행의견선도력을 지 닌 진정한 유행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지식층 학생, 귀국 유학생, 특히, 서구 영화 속 남녀 배우의 패션 스 타일을 모방하는 동조성을 보였다. 또한, 여학생의 교복이나 신여성의 복식, 서구 영화배우의 스타일과 같은 패션스타일 의 착용함으로써 자신도 모더니즘의 수용자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상징적 표현은 자신의 신분이나 부, 모더니 즘을 극대화시키고 차별화시키기 위한 수단인 과시적 소비 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이 서구적 패션을 착용한

(10)

것은 그들의 지배적 가치관인 모더니즘과 아메리카니즘으로 서구적 미를 보편적 미의 기준으로 삼아 심미적 욕구를 충족 하기 위함이었고, 의복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서구식 패션 스타일과 단발은 간소하고 기능적이며 활동적 인 것으로 한국 전통의 것보다 더 실용적이었다. 이와 같은 모던 신세대의 의복 태도에는 그들의 모더니즘, 아메리카니 즘, 물질주의, 개인주의 가치관이 모두 투영되어 있었다.

본 연구는 문화 형성과 소비문화의 주도자로서 간주되어온 신세대의 역할 기능을 근대문화 형성기에 적용하여, 서구적 외모 특성을 추구하는 근대 소비문화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1920~1930년대의 모던 신세대는 동질적 소비자 집단이었음 을 밝혔다. 또한, 외적으로 보여지는 의복 행동과 패션 스타일 을 통해 모던 신세대의 내면적인 태도 특성을 밝혀 모던 신세 대의 의복 태도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그 리고 모던 신세대의 패션을 매개로 당대의 시대정신과 소비문 화의 특성을 파악하고 문화와 패션과의 관계를 재조명하였다.

그러나 일제식민치하의 1920~1930년대 한국 근대소비문 화는 국가 전역에 걸친 보편적 문화가 아닌 경성이라는 특정 지역 내의 소비문화였고, 그 소비문화의 주체였던 모던 신세 대 역시 경성내의 일부 특정 집단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참고문헌

금기숙, 김민자, 김영인, 김윤희, 박명희, 박민여 외(2002).

현대대 패패션션 110000년년.. 서울: 교문사.

김경일(2001). 1920-30년대 신여성의 신체와 근대성. 정정신신문

화연연구구,, 2244(3), 185-207.

김경일(2004). 여여성성의의 근근대대,, 근근대대의의 여여성성.. 서울: 푸른 역사.

김규탁(1927. 12. 20). 깃도구두 한켜레=벼두섬, 용맹스러운 아가씨. 별별건건곤곤,, 1100, 92.

김기림(1932. 9. 1). 단발과 조선 녀성, 『미쓰. 코리아』여 단발 하시오. 동동광광,, 3377, 62.

김미선(2005). 1920-30년대 신식화장담론이 구성한 소비주 체로서 신여성. 여여성성학학논논집집,, 2222(2), 145-182.

김주리(2005). 모모던던걸걸,, 여여우우 목목도도리리를를 버버려려라라. 파주: 살림.

김희정(2004). 별건곤을 중심으로 본 신여성의 복장에 관한 연구. 복복식식문문화화연연구구,, 1122(2), 13-25.

남녀논평 여자단발이 가한가 부한가(1929. 1. 1). 별별건건곤곤,, 1188, 128-129.

남윤숙(1992). 한일 여성복의 양장화에 관한 비교연구. 복복식식,, 1199, 41-51.

동아일보(1921. 9. 10). 부인 의복 개량에 관한 의견. p. 3.

동아일보(1921. 10. 1). 부인 의복 개량문제 (4). p. 3.

동아일보(1936. 2. 20). 여성과 직업. p. 3.

동아일보(1937. 6. 3). 유행게를 찾아서, 유행을 누가 지어내 냐?. p. 4.

두피디아 두산 백과(2010). 서울: 두산동아 출판사.

로아(1930. 11. 1). 가을거리의 남녀풍경, 새로운 경향의 여인 점경. 별별건건곤곤,, 3344, 91.

박영은(1993). 한말에 있어서 신분제의 붕괴와 정치논리의 갈등. 사회민속 연구실(편.), 한한국국의의 사사회회와와 문문화화,, 2200 (pp. 139-176). 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영희(1927. 12. 20). 유산자사회의 소위『근대녀』, 『근대남』

의 특징, 모-던껄· 모-던뽀-이 대논평. 별별건건곤곤,, 1100, 114-116.

박재흥(2001). 세대 연구의 이론적 방법론적 쟁점. 한한국국인인구

학,, 2244(2), 47-78.

박팔양(1927. 12. 20). 모-던뽀이 촌감, 모-던껄·모-던뽀- 이 대논평. 별별건건곤곤,, 1100, 116.

박혜선(1991). 의복 동조의 개념적 구조. 한한국국의의류류학학회회지지,, 1155(3), 63-70.

박희도(1928. 12. 1). 현하문제 명사의견, 생활개선안 제의. 별

건곤곤,, 116·1177, 22-30.

서울시사편찬위원회(2002). 일일제제침침략략아아래래서서의의 서서울울. 서울:

큰 기획.

서지영(2006). 식민지 조선의 모던걸: 1920-30년대 경성거 리의 여성 산책자. 한한국국여여성성학학,, 2222(3), 199-228.

석왕사 약수의 하기경과 니약이, 피서객도 가지가지(1927.

10. 1). 별별건건곤곤,, 99, 120-121.

성서인(1927. 12. 20). 현대적(모-던) 처녀, 모-던껄·모-던 뽀-이 대논평. 별별건건곤곤,, 1100, 117.

손주리내, 백혜련, 이혜숙(1932. 5. 15). 인텔리 여성의 비극, 그 여자는 여자 보고를 졸업하고 엇재서 기생과 여급 이 되었나?. 삼삼천천리리,, 44(5), 29-31.

숙녀비망첩(1933. 7). 신신여여성성,, 77(7), 76-77.

시대일보(1925. 11. 3). 만화로 본 경성. p. 2.

신명직(1993). 모모던던뽀뽀이이 경경성성을을 거거닐닐다다.. 서울: 현실문화연구.

신불출(1936. 2. 1). 신구여성좌담회풍경. 삼삼천천리리,, 88(2), 105-111.

안석주(1924. 11). 미관상으로 보아서- 의복 문제. 신신여여성성,, 2

2(11), 8-9.

안석주(1925. 8). 단발을 햇스면. 신신여여성성,, 33(8), 48-49.

양백화(1927. 12. 20). 여학생과 금시계, 수감수상, 요새 이때 에 생각되는 일. 별별건건곤곤,, 1100, 79.

엄현섭(2009). 근대 대중 문예를 통해 본 모던세대론 연구.

인문문과과학학,, 4433, 5-28.

참조

관련 문서

“The Chinese Values and The Search for Culture- Free Dimensions of Culture: The Chinese Culture Connection,”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18(2), June,

According to the modern aspect, korean food and fest consumed at Chosun Yori-Ok had formed the speciality having the character of public and private..

웹 표준을 지원하는 플랫폼에서 큰 수정없이 실행 가능함 패키징을 통해 다양한 기기를 위한 앱을 작성할 수 있음 네이티브 앱과

_____ culture appears to be attractive (도시의) to the

The “Asset Allocation” portfolio assumes the following weights: 25% in the S&amp;P 500, 10% in the Russell 2000, 15% in the MSCI EAFE, 5% in the MSCI EME, 25% in the

1 John Owen,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in The Works of John Owen, ed. John Bolt, trans. Scott Clark, &#34;Do This and Live: Christ's Active Obedience as the

The dance department of lo cal universities was the birthplace of modern dance culture in each regi on, and dance groups composed of local university

-The square module stands free in the garden of the house as a canopy -consisted of a thin shell supported at each of its corners by equally thin reinforced concrete pi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