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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화된 자녀’ 경험에 관한 협력적 자문화기술지

남 수 경 김 명 찬* (인제대학교 교육학과)

본 연구는 연구자가 자녀로서 부모를 보살폈던 경험, 즉 부모화된 자녀로서의 개인적 경험을 기술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녀가 부모화 되는 과정과 부모화된 자녀의 심리내적인 경험을 내부자적 관점 에서 심층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협력적 자문화기술지 라는 연구방법을 적용했다. 연구자 개인의 경험을 공동연구자와 함께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을 진행했다. 연구자 개인의 경험을 Boszormenyi-Nagy의 ‘부모화된 자녀’라는 개념과 대상관계이론을 바 탕으로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첫째, 부모화된 자녀의 경험 층위에 따라 소극적인 부모화와 적극적인 부모화로 구분할 수 있다. 둘째, 부모화된 자녀의 결혼 동기와 부부관계, 자녀 양육이 잃어버린 자기 를 되찾고자 하는 무의식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부모화된 자녀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서 그 책임을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내면에 깊은 수치심을 경 험할 수 있다. 넷째, 부모화된 자녀로 살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했지만 이런 선택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부모화된 자녀를 돕기 위한 기초 자료와 가족 치료적 개입방법을 제공할 수 있었다.

주제어 : 부모화된 자녀, 대상관계이론, 협력적 자문화기술지

* 교신저자 : 김명찬 /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조교수 / 경상남도 김해시 인제로 197 Tel: 055-320-3410 / E-mail: vitachan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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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우리나라 사회는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 사 회로서 가족이 가장 중요한 사회의 기본 단위 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족에 소속되고 가족의 이익이나 명예를 지키는 것이 개인의 성공이나 자기실현보다 더 중요하다. 가족이 나 집단에 소속되면 가족 혹은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제일 중요하다. 일단 가족 혹은 집 단에 충성하면 나 개인에 대한 책임은 적당히 넘어가도 된다. 이렇게 보호받는 대신에 치르 는 대가는 나 자신의 상실이다. 나는 사라지 고 남은 것은 집단이나 가족이 원하는 모습이 기 때문이다(김영애, 2012).

특히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강하게 밀착 된 부모-자녀관계에서 효(孝)가 중시된다. ‘효’

라는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자녀는 부모에게 보은하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부모 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중시한다(조은영, 정태연, 2005).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자 녀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고집 을 부리지 않는 이른바 어른스러운 자녀가 되는 것을 바 람직하게 여긴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욕구를 이해하고 이를 배려하는 자녀는 부모에게 믿 음직한 동료나 의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자 녀가 부모의 욕구를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들어 일정부분 자녀와 부모의 역할이 뒤바 뀌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강선모, 임혜경, 2012).

한편 이러한 현상은 연구자인 나(남수경, 이 하 동일)의 개인적 경험과도 맞물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 특히 엄마에게 입댈 것이 없이 자 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척척 잘 하는 딸이었 고, 기대가 큰 딸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반듯하고 착실하다고 인정받았지만 나는 마음 이 막혀있는 듯 답답하고 불편했다.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힘들고 외로웠다. 그 고통의 끝자락에서 만난 것이 상담이었고, 뭔가에 이 끌린 듯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막연 하게 본 연구를 통해 마음속 수수께끼의 답을 찾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과정은 마치 차갑고 어두운 계단으로 내려가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던 지하 창고 문 을 여는 느낌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커 다란 구멍이 난 듯 공허하고 외로웠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웠을까?’라는 의 문을 품고 연구를 진행했다.

본 연구를 통해 전달되는 나의 이야기는 단 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었고, 그 속에서 사 회적․문화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나의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설명해주는 이론이 바로 ‘부모화된 자녀’였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녀가 부모를 보살피는 역할을 맡게 되는 부모-자 녀간의 역할 전이를 ‘부모화된 자녀(parentified children)’라고 일컫는다. 이는 Boszormenyi-Nagy 와 Spark(1973)에 의해 만들어진 맥락가족치료 이론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부모화는 어린 시 절에 수용과 이해 및 지지를 받고 싶은 욕구 를 충족하지 못한 부모가 자녀를 통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조은영, 정태연, 2004). 그리고 부모화는 부모 의 과도한 욕구가 자녀에게 전이되어 나타나 기도 한다. 부모가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 아이를 과대평가하고 과도한 수행을 요구할 경우에도 부모화가 일어날 수 있다(조은영, 2004).

한편, 부모화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시스템 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가족의 구성원들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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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보는 입장에서 는 가족 간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 해 자녀의 부모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조은영, 정태연, 2005). 단기적으로 가족 내 스트레스는 줄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가족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 지를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Davies, 2002).

그동안 부모를 배려하는 자녀의 행동이 피 상적으로 적응적이고 긍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심리적 경 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이 Bowlby(1973)는 ‘역전된 부모-자 녀 관계’의 심각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 녀가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보살피는 행동 을 발달시키면 성인기 대인관계에서 타인을 강박적으로 보살피는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지 적하였다(조은영, 2004).

부모화된 자녀의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이 론 중에 하나가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이다(송은주, 2015). 대상관계이론은 부모 화된 자녀의 개인 심리내적인 측면을 설명하 는 이론이며 이를 통해 질적으로 풍부한 경험 을 탐색할 수 있다.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심리적으로 성장하면서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관계를 내 면화한다(Hamilton, 1996, 김진숙, 김창대, 이지 연, 윤숙경 역, 2008). 여기서 관계란 ‘자기 (self)’와 ‘대상(양육자)’과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Hamilton, 1988, 김진숙, 김창대, 이지연 역, 2007). 즉 대상관계이론에서 인간은 대상과 관 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존재이다. 그 리고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 인가에 대한 느낌, 즉 자기(self)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어릴 때 양육자와 맺은 관계

패턴이 모든 대인관계에서 재현되고 반복된다 고 생각한다.

Winnicott(1992)은 양육자는 유아에게 신체적 인 돌봄과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

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엄마는 유아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공감하고 보듬어 줄 때 유아는 자기 삶의 주체, 즉 온 전한 ‘나’가 되어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즐겁 게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Gomez, 1997, 김창 대, 김진숙, 이지연, 유성경 역, 2007).

대상관계이론으로 부모화된 자녀를 설명하 면, 부모가 자녀의 진짜 욕구와 감정에 반응 하고 공감하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을 때 자녀가 ‘부모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Glickauf-Hughes & Mehlman, 1995).

Kohut(1971)은 부모는 아동과의 관계에서

‘자기대상’으로 존재하고 자녀가 부모를 내면 화하면서 강하고 안정적인 자기감(sense of self) 을 성장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만약 부모 가 자녀의 활동이나 업적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다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상실하게 된다(Burt, 1992). 자녀의 진짜 욕구와 감정에 반응해 주지 않는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의 욕 구를 충족시켜 줄 때에만 자녀에게 반응한다 (Glickauf-Hughes & Mehlman, 1995; Langford Clance, 1993). 이러한 상호작용을 경험한 자녀 는 자신의 진짜 욕구에 반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욕구와 감정은 방어적으 로 억제한다. 부모와 안정적인 상호작용을 유 지하기 위해 거짓 자기표상을 형성하여 부모 의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보살피는 역할을 담 당하게 된다(송은주, 2015). 즉 자신의 내적 욕 구를 무시한 채 진짜 자기를 발달시키지 못하 고, 거짓 자기를 형성한 자녀는 심리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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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부모화된 자녀에 대한 국내 연구 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모화된 자녀는 종종 우울, 불안, 수치심, 죄책감, 자기애 성향, 완벽주의, 자기비난, 소외, 분노, 낮은 대인관 계 수준 등을 경험한다고 보고했다(강선모, 2013; 강원희, 유순화, 윤경미, 2010; 강지희, 최명선, 2009; 공인원, 홍혜영, 2015; 박현정, 천성문, 주동범, 2011; 송은주, 이지연, 2010;

이기학, 신주연, 2003; 최명선, 강지희, 2008;

함광성, 신태섭, 2015). 그리고 부모화된 자녀 는 낮은 자아 분화를 보이며, 부모에 대한 높 은 수준의 정서적 관여를 한다고 보고했다(구 경호, 유순화, 2012; 김경미, 이하나, 정주리, 정현주, 이기학, 2006; 문은미, 최명선, 2008;

이윤주, 2013). 또한 부모화된 자녀는 애착 불 안, 정서표현의 양가성, 낮은 이성 관계 만족 도, 안녕감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문소희, 유순화, 윤경미, 2014; 송은주, 2015;

송은주, 이지연, 2016).

최근 10년간 부모화된 자녀의 심리적 부적 응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는 부모화된 자녀의 현실적이며 기능적인 면에서 어떤 문제를 경험하는지에 대해서 부분만 설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 고 그들의 실제적인 삶의 경험과 고통의 실체 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나 는 부모화된 자녀 경험을 한 입장에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며, 나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부모 화된 자녀의 경험 세계가 심층적으로 반영되 지 않았으며 정서적인 면에서는 나의 경험이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동안 상담연구의 방법론에 그 방향은 주 로 양적 연구에 의존하고 이에 치우쳐 온 것

이 사실이다. 이는 실증주의적 패러다임에 기 초한 과학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인간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탐구해야 한다는 사회 과학 분야의 흐름이 과학자-실무자 모델을 지향하 는 상담학계의 연구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상담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인간의 다양한 문제와 현상이 자 연과학의 대상인 자연현상이나 물질과는 다른 고유하고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상담연구에서 적용되어 온 양적 연구 방법론, 즉 외부로 관찰되는 행위나 태도를 계량화하여 연구하는 실증적 연구방법만 갖고 서는 복잡한 인간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박승민, 2012).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양적 연구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며, ‘자기 연구 (self-study)’인 자문화기술지를 통해서 나의 부 모화된 자녀 경험을 통합적으로 연계하여 기 술하는 데 있다. 즉 내부자적 관점에서 부모 화된 자녀의 경험 세계를 내밀하고 심도 깊게 다루고자 했다. 본 연구의 목적에 따라서 나 의 부모화된 자녀 경험을 기술하고, 그 경험 을 대상관계이론을 바탕으로 부모-자녀 관계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부모화’가 되는지 해석 했다. 그리고 부모화된 자녀의 원가족의 영향 이 현재 가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서도 살폈다. 또한 ‘부모화된 자녀’의 삶에서 경험하는 심리내면을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본 연구는 ‘부모화된 자녀’에 대한 깊고 풍 부한 이해와 실제적이며 임상적인 지식을 제 공한다는 것에 연구의 의의를 둔다.

Ⅱ. 연구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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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력적 자문화기술지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는 사회나 공동 체의 맥락 속 혹은 맥락과 관련된 개인의 경 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질적 연구방법이다 (김영천, 이동성, 2011). 이처럼 연구자의 자기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객관성보다는 연구자의 주관성(subjectivity), 연구자․연구 참여자 상호 주관성(researcher-participant intersubjectivity)에 초 점을 둔다(Chang, Ngunjiri, & Hernandez, 2013).

사회과학 연구의 한 방법으로서 주관성을 중 시할 수 있는 근거는 자기가 형성되는 과정에 서 문화적 전수를 받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김명찬, 2015b). 즉 자문화기술지는 연구자의 자기 내러티브(self-narrative)를 통해 연구자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연구자가 몸담고 있는 집단의 속성과 특성을 보여주는 연구방법인 것이다(Chang, 2008; 박미옥, 김명찬, 2015, 재 인용). 자문화기술지는 저자 중 한 명(남수경) 의 개인 경험을 통해 일반화 가능한 개인 심 리적 맥락을 드러내고자 하는 연구 목적에 부 합하는 방법론이다. 즉 자문화기술지에서는 스스로의 목소리(일인칭으로 기술)로 자기(self) 와 사회․문화 간의 연계를 관찰하고 성찰 과 정을 겪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작업이다. 인 류학적 측면에서 문화 집단을 형성하는 기본 단위는 개인이고, 그 개인은 사회․문화 집단 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고 볼 때 자신의 정서 적 체험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 은 사회의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적 관점에서 한 사회․문화 집단을 심도 깊게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박순용, 장희원, 조민아, 2010).

최근 상담영역과 관련하여 외상 경험, 상실 등을 경험한 사람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

으로 이런 경험의 사회․문화 이해와 더불어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연구들이 자문화기술지 방법을 활용하여 많이 수행되었다. 또한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기 탐색과 성찰을 통해 자기 이해와 자기 전환을 수반하며 이는 과거의 정서적 고통과 상처 치유를 가지고 온다(박순용 등, 2010).

한편 상담자의 지속적인 자기성찰 과정이 상담자의 전문성 발달이 이루어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성임을 강조한다(이은진, 이문 희, 2015). 즉 상담자가 건강하고 성숙해 있다 면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고, 치료에서 자신을 보고 변화할 수 있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이동식, 2008). 따라서 상담자가 자기 성장을 촉진하고, 전문가로서 발달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로 자문화기술지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 한 점들을 종합하여 볼 때, 자문화기술지가 본 연구 목적에 부합하는 연구방법이라는 결 론을 지었다.

협력적 자문화기술지(collaborative autoethnography)는 자문화기술지를 둘 이상의 연구자가 협력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협력의 방식에 따라서 주제 선정과 자료 수집 및 기술까지 함께 해 나가는 ‘완전협력(full collaboration)’, ‘부분협력(partial collaboration)’ 등 으로 구분된다(박미옥, 김명찬, 2015). 본 연구 는 2인이 수행하는 ‘부분 협력 모델’로서 일차 자료로 나의 경험을 수집했고, 본 연구의 글 쓰기 작업은 내가 단독으로 진행했다. 그 밖 에 주제 선정, 자료 수집 및 분류, 자료 분석 과 이를 위한 이론 선정, 범주의 분석 및 분 류, 연구결과에 대한 제언점 등을 공동연구자 와의 협력과 주기적인 대화를 통해서 구체화 시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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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요약하면, 자문화기술지는 연구자 자 신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사회․문화와 연 결시켜 기술 및 해석하는 연구 방법이다. 자 문화기술지의 글쓰기 과정은 문화적인 관점에 서 보면 자기 발견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기 성찰과 자기 분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박순용 등, 2010). 자문화기술지 중에 하나인 협력적 자문화기술지를 통해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인 공동연구자(김명찬, 이하 동일)와 함께 나의 개인적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 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나는 부 모화된 자녀 경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상관계이론 측면에서 공동연구자가 자기대상(self object)으로서 나를 견뎌주며 담아주는 과정을 기술할 수 있었고, 내 삶의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고 자기의 회복 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2. 자료수집과 분석

협력적 자문화기술지의 주요 자료는 다음과 같다.

나의 개인적 경험을 담고 있는 자료, 즉 기 억 회상 자료, 일기, 자기 분석 일지, 사티어 (Satir) 가족상담가 훈련과정에서 작성한 과제,

인터뷰 전사본 등의 내용들을 공동연구자와 함께 검토하고 분석했다.

나의 자료에 대한 공동 연구자와의 면담 내 용은 녹음을 통해 실시간 수집했다. 상호작용 적 대화는 2015년 7월 중순경부터 2016년 6월 달까지 1∼4주 간격으로 진행됐다. 매회 대화 시간은 최소 15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소요됐 다. 대화 내용을 녹음한 후에 중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사했고, 전사한 내용을 다시 보면 서 ‘자기 분석’을 실시했다. 이렇게 기록한 자 료를 다음 면담 때 공동연구자와 함께 재검 토하면서 추가적인 질문을 통해 대화를 지속 했다.

협력적 자문화기술지는 연구방법론의 특성 상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고 할 수 있다. 자료 특성상 연구자 개인의 회상이나 반성적 기록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 과정에서 자료수집과 분석을

‘동시에’ 진행하거나 ‘순환적’으로 수행했다. 자 료 분석을 위한 코딩은 ‘장기코딩(longitudinal coding)’을 실시하였다. 장기코딩이란 시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수집하고 비교하는 질적 자 료의 변화 과정을 범주화(categorization)하는 것 을 특징으로 한다(김명찬, 2015a).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기(self)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기간 및 수

종류 기간 분석된 자료 수

(A4 기준) 기억 자료 2015. 6. 16-2016. 7. 20 10 자기분석 일지 2012. 10. 27-2013. 9. 8 24 사티어 가족상담가 훈련과정 과제 2013. 5. 15-2015. 12. 6 25 공동연구자와의 인터뷰 전사본 2015. 7. 2-2016. 7. 23 31 일기 2010. 3. 16-2013. 9. 10 27

<표 1> 연구에 사용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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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면서 나의 변화가 어떠한 양상으로 흘 러가는지에 대해 초점을 두고 분석했다.

자문화기술지의 타당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대화를 촉진하는 촉매 로서 그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촉매 타당도 확보를 위해 다음 다섯 가지 평가 준 거를 적용했다(Duncan, 2004; 김명찬, 2015b, 재인용). 첫째, 나는 연구 범위를 자기감(sense of self)과 관련한 나의 개인적 경험과 가족들 (엄마, 남편)로 제한했다. 둘째, 연구주제와 관 련된 가족들에게 본 연구의 주제와 목적을 소 개하고 인터뷰 허락을 받았다. 인터뷰 내용은 본 연구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 해서 동의를 구했다. 엄마와 남편에게 각각 2 차례에 걸쳐 본 연구 초고를 읽어주었다. 사 실과 다른 부분을 확인받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연구에 반영했다. 셋째, 올해 3월 달 에 상담학 및 교육학 박사 과정생 8인과 상담 학 석사 과정생 3인에게 본 연구의 계획서를 발표했다. 7월 달에 세미나를 통해 그들 앞에 서 연구 초고를 발표하고, 연구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넷째, 나의 경험이 공유되는 사회적․문화적 특성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서 Boszormenyi-Nagy의 맥락가족치료이론 중에

‘부모화된 자녀’라는 개념과 대상관계이론을 조사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개인적 경험을 ‘부 모화된 자녀’라는 개념과 대상관계이론 등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나의 이야기를 사회적․문 화적 배경과 그 의미를 연결하고자 했다.

Ⅲ. 자기 회복의 여정

인간 발달론적 관점에서 보면 신생아는 ‘자 기-대상’이 분리되지 않고 엉켜있는 상태이며

이후 성장하면서 ‘자기’는 대상(양육자)을 좋은 혹은 나쁜 부분으로 나누어 인식한다. 이 때 양육자의 ‘충분히’ 좋은 경험이 제공되면 유아 는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전체적으로 통합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자기도 역시 좋은 자기와 나쁜 자기를 통합하며 건강한 자기를 형성한 다(Mahler, 1968).

부모화된 자녀는 양육자로부터 ‘충분히’ 좋 은 경험 즉,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제공받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자기와 나쁜 자기를 통합 하여 건강한 자기를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3장에서는 부모화된 자녀가 성장과정 중에 겪은 좌절 때문에 건강한 자기를 발달시 키지 못했지만 자기대상을 만남으로써 건강한 자기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1. 자기를 잃어버린 삶

부모화된 자녀는 자기의 정체성, 정서, 욕구 등을 상실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자기를 잃어 버린 삶을 살았던 과정에서 부모화된 자녀 경 험의 층위와 수준에 따라 그 경험이 달랐다.

그 경험의 층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 기 하였다.

1) 안길 수 없는, ‘착한’ 아이가 된 나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나와 부드럽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 기 억이 없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멀리 있었고 낯설었다. 그런 엄마 곁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며 우물쭈물했다. 그리 고 엄마 옆에는 연년생인 남동생이 항상 붙어 있었기 때문에 엄마한테 더 다가가지 못했다.

남동생이 엄마한테 매달려 있어서 힘든 엄마 에게 나도 봐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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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힘든 엄마에게 나까지 매달리는 것이 엄마를 더욱 힘겹게 할까 봐, 그래서 엄마가 잘못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초등학생 1학년 때 국제시장의 문구점 에서 동생이 비싸고 큰 장난감을 사달라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썼다. 처음에 부 모는 단호하게 장난감을 사 줄 수 없다고 했지만 동생이 계속 조르자, 결국에는 동 생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줬다.

(사티어 가족상담전문가 훈련과정 과제 중에, 2014. 3. 19)

나는 부모 눈치를 살피며 사고 싶은 장난감 이 있어도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생은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부모에게 며칠 동안 떼를 써서라 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했다. 눈치 없이 행동하는 동생이 미웠다. 나는 부모 눈치를 보며 원하는 것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참았 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엄마의 힘겨움을 덜어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힘든 엄마가 덜 힘들게 되기를 바라서 나의 욕구를 참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의 감정과 욕구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직접적인 처벌 이 기다리는 경험이기도 했다.

“울지 마! 여자가 울면 집안에 복 나 간다.”

(7~8세 기억 회상, 2015. 7. 15)

엄마는 나에게 거부적이며 두려운 대상이었 다. 어릴 때, 큰 소리를 내며 실컷 울지 못했 다. 내가 울면 엄마가 울지 말라며 화를 냈고, 손으로 입이나 등을 때리는 바람에 울음을 꿀

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울 면 혼났기 때문에 우는 것이 두려웠다. 어릴 때부터 너무 슬프면 혼자 방안에서 숨죽이며 눈물만 흘렸다. 어른이 된 후에도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어도 울음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이 아플 정도로 메었고, 가슴이 답 답했다.

게다가 사소한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거나 체벌을 가했다.

어린 나는 ‘실수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과 ‘혼나 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압도됐기 때문에 엄 마 앞에서 항상 긴장했다. 한편으로는 엄마를 화나게 만들고 실수한 ‘나’ 자신이 너무 싫고, 한없이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결국 엄 마에게 ‘나’를 안전하게 드러낼 수 없었기 때 문에 엄마한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다. 나의 진짜 마음은 엄마한 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믿었고, ‘나’는 엄마 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고 엄마 말에 순응 했다.

나는 엄마에의 근접성 획득을 위해 자신의 애착 행동을 억제하였고, 엄마를 보살피는 것을 해결책으로 선택하였다(West & Keller, 1991). 그 어린 시절의 나에게조차도 엄마의 삶이 힘들어 보였기에 나는 나의 욕구를 참고, 엄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욕구를 갖는 것이 엄마를 파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욕구는 그러한 환경 속 에서는 오히려 나에게 위협적인 것이 되었다.

동시에 나의 감정과 욕구를 소유하는 것은 직 접적인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내 감정 과 욕구가 가진 ‘예상되는 위협’과 ‘직접적인 처벌’은 ‘착한 아이’가 되면 피할 수 있는 경험 이었다. 나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을 무의식 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엄마를 보호하는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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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도 지킬 수 있었다.

2) 떠날지 모르는 엄마의 대리자가 된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원이었던 아버지가 갑 작스러운 배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 사실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얼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엄 마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했다. 하지 만 엄마는 나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장례를 치룬 후에 엄마는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밖으 로만 나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욕지도 외가에 엄마 와 같이 갔다. 엄마는 외가에 도착하자마 자, 통영으로 나가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나를 외가에 남겨두고 훌쩍 떠났다. 외할 머니는 엄마가 어떤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 다. 그곳은 뭍에서 드나드는 배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망부 석’ 같이 엄마가 오는 배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티어 가족상담전문가 훈련과정 과제 중에, 2014. 4. 24)

아버지는 갑자기 나의 곁을 떠났다. 엄마마 저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나의 곁을 떠날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압도했다. 착한 아이가 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더욱 큰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것은 13살 아이 의 ‘생존’과 관련된 절박한 문제였다. 엄마가 나를 떠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야 했다.

착한 딸로 살았던 덕분에 적어도 가정의 울

타리가 안전하게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 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나를 보호해줄 가정의 울타리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한 듯 했다. 엄마가 떠나지 않는 것이 내가 사는 일이라고 여겼던 나는 엄마의 ‘남편’이자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공부 를 열심히 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이어나 갔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가 왔지만 엄마에게 그 흔한 사춘기 반항도 전혀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남동생은 학교에서 소 위 ‘문제아’로 불리며 학교를 자주 가지 않고, 학교 안팎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며 방황을 했었다. 집에서는 엄마와 남동생이 고 래고래 소리 지르며, 비난하고, 욕하며 무섭게 싸웠다. 남동생과 싸워서 슬프고 속상한 엄마 를 위로할 수 사람은 ‘나’뿐이었다.

“같은 여자라고 편먹고…….”

(19살 기억 회상, 2016. 5. 15)

엄마가 남동생과 싸우면 나는 엄마 편에 서 서 남동생과 맞서 싸우곤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34살에 과부가 된 젊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더욱이 집안 의 장남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친가 친척 들은 분노와 슬픔, 절망 등이 뒤범벅되어 서 로에게 그 감정들을 쏟아냈다. 특히 ‘팔자가 세서 남편을 잡아먹었다’, ‘남편 죽으라고 보험 들었다’는 무서운 말들을 엄마에게 쏟아 냈다.

엄마의 위기는 나의 위기였기에 엄마를 지키 기 위해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의 마음 안에는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 불꽃은 엄 마를 부당하게 욕하고 비난하는 외부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었다. 그것은 나의 엄마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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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함으로써 결국 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들에게는 그저 한풀이였을지 모 르는 행동들이 내게는 죽음의 위협처럼 다가 왔다.

엄마를 위기로부터 구함으로써 나를 보호하 려는 삶이 연장될수록 엄마로부터 받는 일보 다 주는 일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을 입 학한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장학금을 받으며 학비를 충당했다. 엄마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않기 위해서 노력했고 20 살 이후에는 엄마에게 돈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20대는 낭만이 넘치는 나이지만 나에 게 20대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 가야 하는 고단한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 대학교 2학년 때, 친구와 함께 00대학교 앞에서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서 휴 대전화 가게에 들렀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후에 직원이 통신회사에 전화를 했다. 전화통 화를 하는 동안 직원의 표정이 이내 굳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 며 나에게 말했다.

“신용불량자라서 휴대전화를 살 수 없 어요.”

(21살 때의 기억회상, 2016. 4. 27)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신용불량자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고,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옆에 있던 친 구도 놀라서 나에게 왜 네가 신용불량자이냐 고 물었다. 나는 순간 짐작되는 곳이 있어서 00캐피탈에 전화를 했다. 나는 00캐피탈에서 대학입학금 50만원을 대출받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는 나와 상의 없이 500만원을

추가로 빌린 것이었다. 게다가 대출 이자가 밀린 탓에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따지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엄마에 게는 상황을 무덤덤하게 말했고 미안하다는 엄마 앞에서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 밀린 이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천천히 갚았다. 대 출원금은 졸업 후에 취직을 해서 1년 동안 힘 들게 갚았다.

엄마를 보호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참아냈다. 살기 위해 서 참았던 삶이기에 억울하긴 했지만 그 때는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엄 마를 보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엄마의 딸로서 살 수 있었던 나에게 그 상황은 모순적이긴 했으나 적어도 엄마가 떠나가지는 않는, 물리 적으로는 엄마에의 근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이었다. 엄마로부터 보호받는 삶은 애초에 포기한 지 오래였다. 단지 엄마가 내 옆에 있 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그만큼 절실하고, 또 그만큼 아팠다.

2. 자기를 되찾으려는 삶

부모화된 자녀의 원가족에서 충족되지 못한 기대와 열망이 결혼동기와 부부관계, 자녀 양 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1) 결국, 홀로 남겨진 ‘나’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마음이 공허했다. 나 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23살에 내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한 남 편을 만났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어느 때 보다 힘든 시기였다.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나 날들을 이어갔다.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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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갈 때 집 주변에 채권자가 있는지 살피고 난 후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밤에는 집에 불을 켜지 못하고 숨을 죽이며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휴학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식당에서 음식을 나를 때, 나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마음이 따뜻하고 나를 살뜰히 챙 겨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견 딜 수 있었다. 남편은 먼저 나에게 다가와 사 랑한다고 말하고,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했 다. 처음에는 그런 그가 낯설고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다. 그때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 ‘희 망’을 품었던 것 같다. 남편에게 엄마한테 받 지 못했던 사랑과 인정을 기대했고 내 곁을 떠난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도 요구 했다.

너는 왜 나한테 달라고만 해?”

(26살 때의 기억회상, 2016. 3. 8)

나는 내면의 결핍이 많았던 만큼 남편에 대 한 기대가 높았다. 남편은 나의 기대를 맞추 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내가 요구하는 대로 거의 다 맞추어 주는 남편을 보고 신이 났다. 잊었던 나의 감 정과 욕구가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서서히 살 아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가끔 툴툴거렸지만 순순히 나의 뜻을 따라주었다. 그러던 중에 시어머니는 우리의 관계를 탐탁하지 않게 여 겼고, 2년 이상 만나기 시작하자 시어머니는 남편과 헤어질 것을 종용했다. 우리는 몇 차 례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다 결혼하기 직 전에 헤어졌다.

그런데 남편과 헤어진 후에 엄마가 일본 사 람과 재혼을 하여 떠나버리면서 문제가 생겼

다. 2년 전부터 일본에서 일을 했던 엄마는 비자 문제가 걸리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 혼을 선택했다. 엄마가 결혼하기 위해서 출국 하던 날, 우리 남매를 걱정하던 엄마에게 나 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였다. 엄마를 떠나보 낸 후 참았던 슬픔이 차올랐다. 나는 목 놓아 울었다. 결국 엄마가 나를 떠난 것이다. 그동 안 떠날지도 모르는 엄마를 붙잡기 위해서 애 를 쓰며 버텼다. 착한 아이일 뿐만 아니라 엄 마의 보호자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자기 삶을 찾아 떠난 것이다. 나의 삶 은 엉망이 되었다.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 것 같았다. 혼자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그 고통은 극심했다.

착한 아이, 엄마의 보호자라는 정체성으로 살 필요가 없어졌다. 습관처럼 살았던 삶의 의미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공허와 불안, 앞날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이제 어떻게 살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는 자기의 삶을 찾아 떠났는데 허무하게도 엄마가 나를 떠났 다고 해서 내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렇다고 살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삶을 찾아야 했다.

2) 사랑보다는 회복을 위한 결혼

살기 위해서는 남편과의 결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6개월 전에 남편과 헤어졌지만 ‘나’

는 결혼을 강행하였다. 그때 남편은 나와 헤 어진 후에 맞선을 본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었 다. 그 사실을 알고, 더 다급하고 초조했다.

나는 먼저 남편을 찾아가서 다짜고짜 결혼을 하자고 졸랐다. 처음에 남편은 단호하게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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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나 집 앞에 찾아가서 매일 무작 정 그를 기다렸다. 끈질기게 매달리자 마음이 약해진 남편은 나를 받아줬다. 6년 이상 미루 었던 결혼은 단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추진 됐다. 내 삶의 의미였던 엄마라는 자리에 남 편이 들어왔다.

신혼 생활은 불안과 긴장, 고통, 혼돈의 연 속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가정의 울타리 속에 남편은 없다고 느꼈다. 나는 남편을 잔인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떠나간 엄마를 대신하는 남 편은 나의 욕구와 감정을 받아주고 내가 튼튼 해 질 수 있을 때까지 버텨주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원망과 두려움, 분노, 외로움, 불안, 슬픔 등의 감정들을 눈덩이처럼 굴려서 고스 란히 그에게 던졌다. 나는 남편을 잔인하게 다루었다. 나를 사랑해서 수용해 주는 남편이 었기에 아직 자기를 조절할 수 없는 유아처럼 나는 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공격성을 드러 냈다. 나는 전적으로 돌봐주는 남편을 기대하 고 요구했다.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어. 너 하고 부모님 사이에 끼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남편과의 인터뷰 중에, 2016. 7. 8)

온전하게 나의 요구를 받아주기를 바랐기에 시댁 식구들과 남편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내가 마음껏 사용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대상 으로서 남편이 나는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편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시댁 식구들에 대 한 적개심과 분노를 느꼈다. 나는 남편을 독

점하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시댁 식구들 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남편을 독점하고 자 했었기에 이러한 나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시부모와의 갈등이 깊어졌다. 급기야 시 댁 식구들이 결혼 1년 3개월 만에 이혼을 강 요하기에 이르렀고, 우리 부부는 이혼 위기를 맞았다.

나는 남편을 통해 어린 시절에 채우지 못한 안전감, 사랑, 인정 등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를 사랑한 다고 말하고, 내게 친절히 대해 주는 사람에 게 사랑과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전에는 기대 할 수 없는 ‘관계적 환경’이었다. 봇물처럼 터 져 나오는 돌봄에 대한 욕구는 공격성을 띄었 기에 결핍된 나의 열망이 배우자를 통해서 충 족되기란 어려웠다. 엄마를 돌봄으로써 나의 생존을 유지해 오던 삶에서 나를 사랑하는 존 재에게 돌봄을 요구하는 삶은 정말 좋은 것이 었던 만큼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 은 삶이었다.

건강한 자기애는 자기를 돌보는 사람으로부 터 사랑을 받을 때 경험되는 것으로 그 경험 을 바탕으로 타인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만일 돌봄을 주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자기애를 충족시 켜야 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 고,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도 부족하다(Kohut, 2000). 나는 사랑과 돌봄을 받기 보다는 제공 해야 하는 입장으로 살아왔기에 엄마와의 관 계에서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이러한 욕구는 나를 사랑하는 남편에게 과도하게 향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결국 나의 결혼 생활은 남편과 서 로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는 동기보다는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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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결핍된 돌봄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회복에 대한 동기가 우세한 것이었다.

3) 완벽히 좋은 엄마이고 싶은, ‘아픈’ 나 아이를 낳았을 때 정말 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했을 때부터 육아 서적으로 뒤지 며,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을 공부했다. 아이 가 태어난 후에도 완벽하게 아이를 키우기 위 해서 개월 수에 맞게 아이를 키우는 방법들을 항목으로 정리하며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 는지 하나하나 점검했다. 아이가 커서 나와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나를 키 웠듯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절대 화 를 내지 않고, 상냥한 엄마가 될 것을 다짐했 다. 여유 없는 엄마의 딸로서 사는 것에 대한 고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야말로 아이에 대한 최고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한테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 라는 규칙을 지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화를 꾹꾹 참다가 한꺼번에 터트리 며 일을 반복했다.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화를 못 이겨 아이의 엉덩이나 등을 때렸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보다.”

(일기장 중에, 2012. 12. 14)

아이한테 화를 쏟아낸 후에 이내 죄책감이 올라와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울었다.

나 자신이 미웠다. 무섭고 두려운 엄마처럼 나도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 두려움 안에는 엄마 와의 관계에서 내가 깊게 상처를 받고 고통스 러웠듯이 우리 아이도 나와의 관계에서 상처 를 받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가 아팠던 만큼 아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지 만 나는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에 휩싸여 힘들 었고, 지친 나를 돌볼 수 없었다. 나는 점점 육아가 너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가 커졌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수록 오히려 아이와 멀어졌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아이가 안아달라고 울며 보채도 우는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잔인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욕구를 드러내 본 적이 없는 내게 끈질기게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울며 보채는 아이는 버거웠다.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아 이는 하고 있었다.

3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 는 처음 적응하는 시기에 엄마를 찾지 않고, 아빠를 찾으며 울었다. 그때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는데, 엄마 를 찾지 않고 아침이나 저녁에 잠깐 보는 아 빠를 찾으며 울다니…….’

그런데 나는 단지 아이가 귀찮아서, 아니면 나쁜 엄마여서 우는 아이를 안아줄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울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무의식적으로 떠오 르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기대려 고 할 때마다 거부당하거나 처벌당했던 경험 이 많았기 때문에 울며 보채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거부나 처벌이 예상되는 정서적 경 험을 재현했던 것이다. 아이의 우는 모습을 통해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불안이 촉발되고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안아주거나 진정시킬 수 없었다. 돌봄 받기를 요구하는 아이의 모습은 돌봄 받기를 기대하다 처벌당 했던 나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아이가 싫어서 가 아니라, 요구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거 절당하는 나를 상기시켰으며 이는 끔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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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다. 결국 과거의 거절당했던 공포를 불 러일으키는 ‘우는 아이’를 나의 바람과는 다르 게 강하게 밀어냈다.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 던 의식적인 의지와는 다르게 자동반사적으로 아이를 강하게 거부하고 밀어냈다.

고통 속에 있거나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는 엄마는 유아의 요구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Gomez, 1997; 김창대 등 역, 2014).

내가 고통 속에 있지 않고 마음이 안정됐다면, 아이의 필요나 욕구에 반응하거나 조율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통 속에서 너 무 아팠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이를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가 만성적으로 아이의 고통스러운 정서 를 담아낼 수 없을 때, 아이는 그 정서에 대 한 부모의 전형적인 반응이 내면화된 방식으 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상, 불안정 애 착 유형 부모의 아이들은 그들 부모의 방어를 차용하고, 그래서 부모의 불안정은 종종 아이 에게 유사한 불안정이라는 유산으로 남게 된 다(Wallin, 2007; 김진숙, 이지연, 윤숙경 역, 2010). 도대체 돌봄 받고 싶었던 나의 어린 삶 이 얼마나 아팠으면 그토록 사랑하는 나의 아 이를 밀어내고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를 밀어내는 것은 너무 아프고 무섭고 슬픈 일이었다. 사랑을 요구하 는 아이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너무 아팠던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 주었 다. 아이로 인해 나는 지독하게 아팠던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3. 자기 회복의 시작

지도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진짜 자기를 만나고, ‘괜찮은’ 나로 경험하면서 자기를 회복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와도 열망 차원에 서 사랑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서

‘괜찮은’ 엄마로 경험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 부모화된 자녀들이 자기를 회복하는데 정 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 였다.

1) 안기는 경험, ‘괜찮은’ 나

본 연구 과정을 통해 나를 마주하고 싶었으 며 온전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동안 ‘자기’를 잃어버리며 살아온 나는 어떤 경험을 했는지 탐색하며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기 회복 과 성장을 위해 연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 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차일피일 미루는 나를 보았다. 지난 해 여름방학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상태였다. 멍하게 있 거나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연구과정은 나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잘 정리해서 글로 녹여내야 하는 고된 작업이 었다. 물론 이런 과정이 힘들지만 4개월 넘게 연구에 손을 못 대고 있었던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정 리가 되지 않은 채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에 부담감만 잔뜩 안고, 실제로 그 일들을 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뻗어버린 격이었다. 무감 각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나의 모습을 자주 발 견했다.

2013년,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과 동시에 상 담공부를 시작하면서 Bradshaw(2004)의 『상처 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을 읽었다. 그 때 마음 속 어린 ‘나’의 부분을 만났다.

“나, 너무 외로워.”

(자기 분석 일지 중에, 201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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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는 깜깜한 세상에 혼자 남았고, 세 상과 단절하듯이 투명한 막 안에 웅크리고 있 었다.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동안 엄마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서 몸부 림 쳤다. 엄마의 기대가 부담스럽고 힘들었지 만 엄마가 나를 거부하지 않도록 엄마의 기대 를 완벽하게 채워야만 했다. 역설적으로, 엄마 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나의 진짜 ‘자기’와 단 절해야만 했다. 그동안 자기를 돌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있는 줄조차 모르고 살았 기 때문에 나는 너무 외로웠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 이지 못하면서 과도한 순응을 요구할 때, 아 이는 진정한 친밀감에 대해 단념하고 가까워 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순응적인 거짓 자 기를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아이 는 꾸며 낸 모습에 만족하는 대가로 애착을 얻는다. 화나고 외로운 진짜 자기는 내면으로, 무의식 물러난다(Winnicott, 1992).

자기와 연결되지 못했던 나는 사랑받고 인 정받기 위해 나를 더욱 비난하고 질책했다.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과도한 죄책감과 분노, 우울, 불안 등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진 짜 자기는 위축됐다. 심지어 나는 무가치감, 무력감, 황량함의 상태에 놓였다.

지도교수: 선생님은 힘들고 고통스러웠 겠네요. 누가 옆에서 내 힘듦을 알아봐주 고, 옆에서 견뎌주는 사람이 있을 때 고통 을 견딜 수 있어요.

(지도교수와의 면담 중에, 2015. 12. 18)

지도교수는 ‘담아내기(Bion, 1962)’를 통해서 나의 불안에 대해 공감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변형시킨 후에 의미를 부여하여 나에게 돌려

주었다. 힘든 것을 힘들다고 말해주는 존재와 의 만남을 통해 나는 위로를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고, 힘들 때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 한 것임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도교수: 사랑은 부모가 그냥 주는 것 이지, 노력을 해서 받는 것이 아니에요. 그 책임을 선생님에게 돌리고 있으니까 얼마 나 힘들게 살았을까요?

(지도교수와의 면담 중에, 2015. 10. 7)

지도교수의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원 래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그 자격을 얻 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고된 연구과정에서 지지부진한 내 모습은 사 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작고 초라한 모 습이었다. 위축된 내 모습이 수치스러웠다.

자기대상(양육자)이 공감적인 환경을 제공하 고 아기의 필요와 소망에 적절한 반응을 해 줄 때, 아기는 건강하고 응집적인 자기(self)가 형성된다(최영민, 2013). 그러나 자기대상의 적 절한 공감과 반응의 경험이 실패하면, ‘심리적 산소’ 결핍을 초래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텅 빈 자기를 경험하게 한다(김영애, 2008). 자기 대상이 되어줘야 했던 엄마는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없고, 아이의 욕구에 제대로 반 응하기 힘들다. 아이의 욕구가 무시되면 생명 력이 저하되면서 활력이 떨어진다. 자기가 가 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사라지게 되며, 내면은 텅 빈 것처럼 느낀다. 이런 과정이 반 복되면서 진짜 자기는 숨어들고 그 대신 아이 는 가짜 자기를 내세워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 기 시작한다(Winnicott,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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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공감과 이해를 받지 못했고, 조율 된 경험이 없던 나는 엄마가 필요로 하는 딸, 가짜 자기로서 존재해야 했기 때문에 자기가 든든하지 않았다. 즉 나는 자기대상의 결여로 건강한 자기를 형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 구과정에서 지도교수는 ‘자기대상’으로서 나의 정서적인 경험을 공감하고 이해해줬으며 진짜 자기의 공감적 조율을 통해 나를 담아주었다.

나는 순응적인 거짓 자기가 아닌 진짜 자기를 만나는 경험과 동시에 ‘괜찮은 나’로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

2) 안길 수 있는, ‘괜찮은’ 엄마

아픈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픈 내 가 점차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아플 만해 서 아픈 것이니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는 사실 이 안심이 됐고 좋았다. 아픈 나 자신과 아프 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조금씩 받아들여지면 서 아픈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그 믿음 의 출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픈 것이 잘못된 것, 나쁜 것이라는 믿음 은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체득된 것이었다. 아프다고 말할 때 나를 처벌했던 엄마는 실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엄마 역시도 아픈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믿음 을 갖고 있어서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도교수: 아프다고 말하는 게 처벌되는 경험이었다면 선생님이 얼마나 아팠을까 요? 또 선생님에게 그렇게 말했던 엄마 역 시 아픈 것을 나쁜 것으로 알고 살아가느 라 아프지 않았을까요?

(지도교수와의 면담 중에, 2015. 9. 23)

엄마 역시 아픈 것을 나쁜 것이라고 오해 하며, 살아오느라 나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내 삶이 안쓰러운 만큼 엄마 역시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비로소 느끼게 된 나 의 타당한 아픔의 크기만큼 엄마도 아팠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고 말할 수 없 었던 엄마는 자신을 위로할 수도 없었고, 동 시에 나를 위로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나의 삶도, 엄마의 삶도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졌다.

이런 앎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 어졌다. 내 아픔이 느껴지자 엄마의 아픔이 느껴졌고, 나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자, 엄마 에 대한 연민과 사랑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도교수는 내가 알게 된 엄마에 대한 사랑 과 연민을 엄마에게 표현해 보는 숙제를 주었 다. 나에게도 절실했지만 숙제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다는 상상만 해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 오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는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 하는 내 마음 안에는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두려움과 고통이 자 리 잡고 있었다. 이제 막 확인한 엄마에 대한 사랑이 전달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난 5월 달에 엄마가 한국에 와서 한 달 정도 지냈다. 이번에는 꼭 엄마에게 나의 이 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어느 때 보다 간절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엄마가 일본으 로 돌아가는 전날이 되었다.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저녁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 냈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할 말이 있다 고 말하자 엄마는 긴장하는 것 같았다. 낯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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