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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Road System of Bukseong-ro Eupseongnae, Daegu Built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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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대구읍성내 북성로 가로구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Road System of Bukseong-ro Eupseongnae, Daegu Built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정복임* 김주야** 백영흠***

Jeong, Bog-Im Kim, Joo-Ya Beak, Young-Houm

Abstract

As passing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aegu has been changed into a modern city. In addition, the nature of the city had changed a lot by withdrawal of Eup-sung and the opening of the road and the increase of population in Japan. Of course, the expansion of the city was caused by the increase of the Japanese population. To understand the current city, it is most important to understand the past city's characteristics and especially the formation and change of city must be considered with understanding the situation of city. And now the city reflects the role of the city in the past. In fact, the effect of the street constitution in Daegu Eup-sung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on the present time was very big and continues. Especially, in order to understand the situation of the city and consider the direction in the future, the analysis of the development process has important implications.This study aimed to consider the change of Daegu Eup-sung Street and Formation of Dwelling Site focusing on the Buksung Stree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nature of the city and changing process of the city by the past Buksung street and the current Buksung street as time goes by.

Keywords : Buksung Street, Dwelling Site, Architectural Changes 주 요 어 : 북성로, 주거지, 건축물변화

I. 서 론

1. 연구배경 및 목적

17C 경상감영이 설치되고, 대구읍성이 철거된 1906년부 터 대구는 근대적인 계획도시로 바뀌어간다. 읍성철거와 함께 도로가 개통되고 인구의 증가와 함께 도시의 성격 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본인과 외국인의 인구 증가와 함께 도시가 팽창되었다.

대구와 같은 전통도시의 경우, 현재의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 도시의 특성과 배경을 이 해하는 일이 중요하며, 특히 도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도시의 형성과 변화를 고찰해야 한다. 또 현재 도시는 과 거의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할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 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대구읍성내의 가로구 성이 오늘날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을 뿐만 아니라 지속 적이었다. 특히 대구 도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장래의 방 향을 고찰하기 위해 그 발전과정에 대한 분석은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1)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북성로의 특징과 시간의 흐 름에 따른 현재 북성로의 특징을 통해 건축물과 가로변 화 및 주거지 형성에 관해 북성로를 중심으로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의 범위 및 방법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북성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현재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는 재정비가 이루어진 상태 다. 동성로는 2006년에서 2008년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 이 이루어 졌으며, 남성로는 진골목 개선 사업 및 2008 년에서 현재까지 약전골목 가로 환경 사업이 진행되고 있 다. 하지만 북성로는 보고 즐길 수 있는 건축물이 있는 가운데 한번도 재정비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따라서 과 거의 특성을 되살려 대구 전통 도시를 친숙하고 살고 싶 은 장소가 되는 동시에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며, 북성로 의 거리 재정비를 통해 이용자에게 걷고 즐길 수 있는 근 대 문화 거리의 이미지를 조성 하고자 한다.

시간적 범위는 대구읍성이 헐리고 북성로가 형성된 1906 년부터 현재까지 변천 과정을 파악하고자 한다. 어떠한 변천과정이 나타나는지 알아보고 현재의 북성로와 비교해 본다.

***정회원(주저자), 대구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정회원(교신저자), 김천과학대학 건축인테리어학과 교수

***정회원, 대구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

본 논문은 2010년 한국주거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을 수정·보안한 연구임. 1) 이기조(2005). 일제하 대구부 시가지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계명 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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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방법은 1차적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문헌 연 구는 자료 분석과 함께 대구읍성의 변천을 알아보기 위 한 연대별 지도와 당시의 자료를 이용하였다. 지도는 1903 년 대구시가도, 1907년 대구시전도, 1914-15 시가전도, 1916년경 대구시가지일반도, 1917년 대구부지도, 1926년 대구부지도, 1928년 대구시가지지도, 1930년대 대구부전 도, 1937년 대구부지도, 2010년 현재 지도 등이 활용되었 다. 분석 방법으로는 연도별로 나누는 시계열적 방법과 물리적 변화를 고찰하는 유형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 하였다.

3. 근대 시기 구분

근대건축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진전된 기술적, 사회 적, 문화적 변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발전되기 시작 한 건축이다. 우리나라의 근대건축은 개항(1876)이후 근 대사회로서의 기반이나 근대정신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 서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유입 됨으로서 전통건축과의 단절을 초래하게 되고, 그 유입과 정의 복잡성, 재료·기술의 빈약, 비전문가에 의한 유입 등으로 일관된 양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근대건축은 해방과 함께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생 성된 건축물들은 현대건축과 맥이 이어지는 시발점이고, 당대의 문화 역사를 반영하는 결과물로서 근·현대사의 증거이자 지역 환경의 구성요소로서 중요한 문화유산이 다. 따라서 우리의 근대건축은 전 시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과 재료, 시공방법 등이 완전히 구분되는 서구 스타 일의 건축이고, 건립년대는 개항이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건축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합방(1910)에 의해 대한제국은 일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었다. 합방 후 일 본은 총독부 관제에 의하여 행정·사법기구를 식민통치 에 편리하게 재조직하고 지방 말단에 까지 일본인을 관 리로 임용하여 행정력 강화에 주력함으로써 관청·금융 기관·학교 등의 건축물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 에 따라 대구에는 일본인들의 이주가 본격화되고 아울러 일본 도금업자들이 들어오기 시작 하였다. 또한 합일합방 (1910)후 일본인들이 지은 건축물을 보면, 1910년대는 주 로 르네상스 양식의 목조 의양풍(擬洋風)이었으나 1920년 대부터는 벽돌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건축양식은 여 전히 탁지부건축소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 받은 일본 자

체의 절충주의양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절충주의양식은 제 국주의에 알맞은 양식으로 당시 일본에서 유입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이 합방 후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2)

1920년대에는 회사령의 철폐와 일본 내의 경제적 호경기 가 대구에까지 파급되어오고, 서울에 본점을 둔 각 은행 과 금융조합들이 설립되어 일본인들의 상업 활동을 뒷받 침해 주었다. 또한 일제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가장하여 군비와 경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일본의 독점자본을 한 국에 침투시키기 시작 하였으며, 1920년대 후반에는 교육 기관의 설립과 함께 대규모 백화점을 비롯한 중소상설점 포들이 대구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대구의 상권이 경상 북도는 물론 멀리 타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어 개항장을 제 외한 서울, 평양 다음의 무역액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1930 년대 후반부터는 일제가 대륙침략을 넘어 제2차대전으로 까지 전쟁을 확대시키면서 건축 활동은 극도로 침체되었 다.

3)

<표 1>과 같이 선행 연구를 통해 분석 해 본 결과 건축물의 변화를 시대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시대구분에 있 어 본 연구는 연구자 김영태 ‘한국근대건축의 형성배경에 관한 연구의 시기 구분’을 바탕으로 조사 하였다.

3) 대구광역시(2004). 근대문화유산목록화조사보고서. 33-34.

4) 이주형(2005). 한국근대건축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경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1.

2) 대구문화예술회관(2008). 옛사진으로 본 근대 대구. 114.

그림 1. 2010년 대구시지도 그림 2. 읍성철거 사진

표 1. 근대시기구분4)

연구학설 시기구분 내용

(尹一柱)윤일주

‘한국 양식건 축 80년사’

(1965)

① 초기의 양식건축 (1900년 이전)

② 구(舊)한말 말기의 건축(1901-1910)

③ 일제전반기의 건축(1911-1925)

④ 일제후반기의 건축(1926-1945)

⑤ 해방이후의 건축(1945-)

• 구(舊)한국말기의 건축은 전기와 크게 차이가 없으나 서구식 건축 이 계몽된 시기라고 봄.

• 일제전기 관아(官衙)건축물로 양 식(樣式)주의 특히 절충(折衷)주 의 건축을 채택했고 후기에는 일 본의 조류에 따라 근대(近代)주의 적인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고 주 장함.

(金榮泰)김영태

‘한국 근대건 축의 형성배 경에 관한

(1976)연구’

① 근대1기(개화기 이후-한일합방 이전)

② 근대2기(한일합방 이후-해방 이전)

③ 근대3기(해방이후- 5.16혁명 이전)

• 한국 구조의 변화에 따른 구분방 법으로 양식사적(樣式史的)구분 방법보다 시대적(時代的)구분이 타당하다고 주장.

(安在洛)안재락

‘한국 근대건 축의 사적인

(1985)연구’

① 한국근대건축의 태동기(개화기-1905)

② 한국근대건축의 이입기(1906-1927)

③ 한국근대건축의 발전기(1928-1945)

④ 한국근대건축의 정착기(1945-)

• 한국 근대건축사의 시대구분은 한국내의 건축활동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 요인을 고 려해야 하며 동시대의 외국 특 히, 일본의 건축활동이 고려되어 야 한다고 주장.

(金鴻植)김홍식

‘19세기말-20 세기초 한국 근대건축의 성격 규정’

① 제1기

전기: 1790-1880 중기: 1881-1905 후기: 1906-1930

② 제2기

전기: 1931-1945 중기: 1946-1955 후기: 1956-1979

• 근대건축의 시작을 19세기말 서 양건축의 유입이 아니라 건축의 사회적 민중의 운동에 의해 지배 계층의 건축과 민중건축의 2중 구조가 사라짐으로써 이룩 된다고 주장.

(3)

II. 대구역 개통과 북성로의 상업지, 주거지 형성 및 필지변화

1. 대구역의 개통

임진왜란 이후 대구는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했 다. 당시 상업적 농업의 발달과 수공업의 발달은 장시(場 市)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상품은 주로 장시를 통 해 유통 되었다. 더구나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대구 는 경상도 지방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변모 하였다. 특 히 대구는 인근의 풍부한 물산이 집결 하면서 점차 상업 도시로 변천하게 되었다.

5)

1905년 경부선 개통은 대구의 지역체계를 크게 변화시 켰다. 대구역을 경유하는 경부선은 경산군 고모역에서 그 대로 남문 밖으로 직행하지 않고 일부러 대구의 동쪽을 크게 돌아 북문 밖에 설치되었다. 이로 인해 대구의 중심 이 남문 방향에서 북문 밖에 설치되어 대구의 중심이 남 문 방향에서 북문방향으로 전환해 나간 계기가 되었다.

6)

이 때문에 예로부터 경부가도로 인해 대구의 중심지였던 남부가 일시에 쇠퇴케 되고, 반면 생활공간으로서 적절치 못했던 북부지역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경부 선 개통과정을 전후하여 대구에 일본인들이 대거 진출하 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대구역 예정지와 시가지 주변의 막대한 토지를 매입하였다. 또한 1904년 1월 대구 북문 밖(현 대구역 자리)에 경부철도 남부건설사무소가 설치되 어 대구 구간의 철도 공사가 본격화 되면서 더욱 많은 일 본인들이 이주했고, 이들은 이후 대구지역의 경제권을 장 악하기 시작하였다. 1905년 1월 대구-부산 간 경부선의 개통은 일본인에 의한 대구 상권의 장악과 대구 농산물 과 원료품의 약탈을 더욱 확대 시켰다.

7)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거 대구로 들어온 일본 인들은 본격적으로 대구 공략에 나서게 되었다. 그들은 대구역과 연결될 수 있는 시가지도로의 개설이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대구읍성이 근대적 도시 발달을 저해하고, 축성한지 오래되어 허물어지는 등 통행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어 철거를 강력히 주장 하였다. 이는 당시 성을 경계로 조선

인들의 상권이 일본 상인들로부터 분리되어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성을 철거한 후 5칸 도로를 가설함으로써 대구의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9)

그중에서도 북성로에 많은 일본인들이 밀 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와 비 교 했을 때, 북성로는 일본인의 상점이 많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으며, 상업이 가장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북성 로는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에 비해 일본인이 많이 거주 했으며, 상점 수 역시 가장 많은 곳으로 상업이 가장 활 발했으며, 일본인들은 북성로의 상권을 제일먼저 장악하 였다.

전국 한국인이 6.3% 상업교통업에 종사하는데 비해, 대 구 한국인은 41.3% 상업교통업에 종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대구거주 한국인이 전국한국인에 비하여 상 업교통업에 있어서 우위에 있었으며, 이것은 상업도시로 서의 대구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10)

8) 임식경(2005). 대구읍성의 철거와 일본인 상권의 변화. 한국교원 대학교 석사학위논문, 32.

9) 대구광역시(2004). 앞의 책. 167-169.

10) 대구시(1973). 대구시사. 340.

5) 대구광역시(2004). 대구의 정신을 찾기 위한 대구향토사조사연구.

101-102.

6) 대구광역시(2004). 앞의 책. 167-169.

7) 대구광역시(2004). 앞의 책. 167-169.

그림 3. 1907년 대구시전도 그림 4. 대구역

표 2. 북성로 주변의상권 (1928년 기준)8) 상품

개수* 총상점

계 비고

상품

개수* 총상점 계 비고

곡물 11 1 12 합자1

석탄 1 1

정미업 1 1 합자1 목탄 1 1

식료품 2 2 제재업 1 1

소금 1 1 목재 1 1

선어 5 5 건축재료 1 1

조수육 1 1 벽돌 1 1

모자 1 1 철공소 1 1

주류 1 1 기계 2 2

음료 1 1 토목건축청부 9 9 합자3

오복상 4 4 비료 1 1

헌옷 1 1 농구 1 1

양복재봉 1 1 중개 1 1

양복판매 2 2 금융업 5 5

서양잡화 8 8 자전차상 2 2

시계·귀금속 1 1 자동차용품 2 2

악기완구 1 1 자동차영업 4 4 합자4

운동구 1 1 인력거 1 1

서적 2 2 운송 2 2 4

지문방구 3 3 창고업 1 1

약종 2 2 고물 1 1

왜나막신 2 2 누더기 1 1

고무신 1 1 총계 38 3 41

전기기구 1 1

총계 53 1 54

*일본인 상점 수: 91개, 조선인 상점 수: 4개, 총 상점 수: 95개

(4)

2. 일본인 증가와 한국인 거주지 변화

<표 4>와 같이 국적별로 확인해 보았을 때, 중국인이나 기타 외국인에 비하여 일본인이 많은 것을 확인 할 수 있 다. 일본인이 25% 내외를 차지하고 있었다. 퍼센트로 확 인을 해 보면 1919년이 30%, 1933년 26%, 1934년 25%, 1935년 25%, 1936년 25%, 1938년 16%, 1942년 10%로 나타나고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로는 한국 인의 수가 급증한 반면에 일본인의 수는 약간 증가하지 만 1942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3. 북성로의 필지변화

필지는 도시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필지의 집합 으로써 가구, 그리고 그 위에서의 건축행위와 직접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도시조직의 세포로 파악할 수 있다. 건 물을 담는 용기로써의 필지는 도시형태 변화의 중요한 요 소이며, 필지의 분합이 도로의 생성 및 소멸과 관련이 있 을 뿐 아니라 도시화라는 사회상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11)

북성로를 필지 지적도가 처음 생겨난 1911년과 1929년, 2010년을 비교해 본 결과 필지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1911 년대의 필지와 현재의 필지를 비교해 보면 변화가 생긴 다. 큰 필지가 나누어져서 여러 개의 필지가 생기는 경우 도 있고, 작은 필지들이 큰 필지도 합쳐지는 경우도 있 다. 필지의 변화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북성로의 필지 변화는 <표 5>에서와 같이 1911년대와 1929년 사이에 많 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북성로의 발전과 관련이 있

다. 지금도 상업이 발달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밀도 가 높게 나타난다. 상업의 발달로 인해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함께 필지에도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최고 의 번화가를 이룬 만큼 이곳 북성로는 상업시설이 밀집 되어 있었고, 현재와 같은 필지 변화가 생겼다. 필지의 변 화가 1911년과 1929년 사이에 많이 있었으며, 2010년 지 도와 비교했을 때, 1929년 지도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현황을 살펴 보면 <표 6>과 같이 1909년 14%의 비율이 나타나며, 1925 년은 23%, 1930년대는 21%, 1935년은 19%, 1940년대는 11%로 1925년이 일본인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읍성내 살고 있던 한국인들은 읍성이 허물어지고 기존 의 읍성내의 주거지를 일본인들에게 수탈당한 뒤 새로운 주거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 서문과 남문 밖 으로 주거지역이 확대 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특 히, 서문 밖 주거지역은 부근의 서문시장과 약령시의 영 향을 받아 그 형성이 더욱 빠르게 진행 되는 특성을 보 였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대구 도시로 밀려드는 인구를 소화할 수 있는 주거지의 확보가 필요한 시기였 기 때문에 대구 도시가 팽창 하였다.

12)

12) 최지애(2009). 대구도심지 전통도시주택의 형성과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 대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8.

11) 장준혁(2007). 도심내 건축행위에 의한 건축물 용도와 도시조직 변화에 관한 연구. 경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6.

표 3. 대구총인구 직업 구성비

농림 목업 공업 상업 교통업 공무 자유업 대구 한국인 19.4% 15.3% 41.3% 12.0%

전국 한국인 82.0% 2.1% 6.3% 2.4%

대구 일본인 5.9% 24.3% 33.3% 34.4%

전국 일본인 8.3% 14.8% 30.2% 34.0%

자료: 대구시사, 1973

표 4. 국적별 인구증가 상황 국적별연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기타

외국인 합계

1919년 28,609 12,603 67 201 41,413 1933년 77,689 27,638 412 58 105,797 1934년 80,557 26,602 448 50 107,657 1935년 79,103 26,150 414 49 105,716 1936년 81,449 26,769 386 65 108,669 1938년 143,816 28,037 135 52 172,040 1942년 189,939 20,682 76 293 210,914 자료: 대구시사, 1973

표 5. 북성로 필지변화

표 6. 일제강점기 대구 거주 일본인(1909-1940) 연도 1909 1925 1930 1935 1940 총인구(명) 27,529 76,534 93,319 107,414 178,923 일본인인구(명) 4,863 17,410 19,426 21,455 20,187

일본인 비율 14% 23% 21% 19% 11%

자료: 대구시, 1966

(5)

III. 건축물의 용도

1. 북성로 건축물 용도

북성로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1층은 주로 상업용도로 이 용되고, 2층은 주거지로 이용되는 주상복합건축물이 발달 한다.

북성로에 위치한 건축물의 용도에 대하여 분석해 보자.

북성로 1가 49개, 북성로 2가 53개 건축물을 대상으로 조 사를 실시하였다. 북성로 1가 49개 건축물과 북성로 2가 53개 건축물 1층은 모두 상가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 사 되었으며, 2층 이상은 주택이나 창고로 이용되거나 비 어 있었다.

<표 7>에서와 같이 북성로 1가는 2층이상 건축물이 37 개(76%), 1층+주차장이 12개(24%)로 조사되었다. 그 중 에서도 상업+주택이 9개(24%), 상업+창고, 비어있는 곳 이 28개(76%)로 나타났다. <표 8>과 같이 북성로 2가 2 층 이상 건축물 22개(42%), 1층+주차장+콘테이너 31개 (58%)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업+주택이 5개(24%), 상업 +창고, 비어있는 곳이 17개(77%)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시대 북성로에 있는 건축물은 주상복합건축 물 이었다. 상업활동이 점점 쇠퇴해짐에 따라 상업 건축 물로 사용되던 건축물들이 현재는 창고나 비어있는 공간

으로 이용되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표 9>를 살 펴보면 북성로변에 위치한 건축물은 주상복합의 형태로 나타나며,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면 한옥에 가까운 주거지 가 나타난다. 건축물의 용도에 있어서 북성로변에는 상업 이 활발하였기 때문에 주상복합의 건축물이 발달했다.

2. 건축물 변화 1) 건축물 층수

대구 읍성 안의 건축물은 모두 2,260개이다. 1층이 828 개, 2층이 720개, 3층 이상이 712개로 나타난다. 대구 읍 성 안의 건축물은 대체적으로 1층 건물이 많은 것으로 조 사되었다. 대구 읍성 전체를 <그림 6>과 같이 3D시뮬레 이션을 통해 건축물의 층수를 확인 해 본 결과 동성로 쪽 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동성로는 최대 의 상업지역으로 건축물의 층수가 대구 읍성 안에서 가 장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표 9. 북성로 1.2가의 주상복합 건축

표 7. 북성로 1가의 주상복합 건축

구분 개수 퍼센트(%)

북성로1가 2층이상

건축물 37개 상업+주택 9개 24%

상업+창고, 空 28개 76% 76%

1층+주차장 12개 24%

합계 49개 100%

표 8. 북성로 2가의 주상복합 건축

구분 개수 퍼센트(%)

북성로2가 2층이상

건축물 22개 상업+주택 5개 23%

상업+창고, 空 17개 77% 42%

1층+주차장+콘테이너 31개 58%

합계 53개 100%

그림 5. 대구의 도시팽창13)

13) 최지애(2009). 앞 논문. 27. 그림 6. 대구읍성 전체 층수

(6)

북성로를 중심으로 건축물의 층수에 대해 조사하면 다 음과 같다. <그림 7>과 같이 북성로 1가 전체 49개 건축 물 중 1층이 7개, 준2층이 3개, 2층이 21개, 3층 이상이 13개, 주차장이 5개로 파악이 되었고, 북성로 2가는 총 53개 건축물 중 1층이 28개, 2층이 20개, 3층 이상이 2 개, 콘테이너 2개, 주차장 1개, 총 53개로 조사되었다. 북 성로 1가는 2층 건물이 많이 나타나는 반면 북성로 2가 는 1층 건물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구역 에서 가까운 북성로 1가, 동성로쪽의 건축물 높이가 더 높게 나타났다. 상업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건축물의 층수 가 높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북성로 1가 총 49개의 건축물 중 북성로 1가 1층이 차 지하는 비율이 14%, 준2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6%, 2층 이 차지하는 비율은 43%이며, 3층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 이 27%, 주차장이 10%로 나타났으며, 북성로 2가의 1층 이 차지하는 비율은 53%, 2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37%, 3층 이상의 건축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4%, 주차장이 2%, 콘테이너가 4%로 나타났다.

층수의 변화에 있어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 되 었다. 또한 북성로 1가 보다 북성로 2가의 변화가 더 적 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또, 북성로 1가에서는 읍성 전체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준2층이라는 건축물이 3군데 존재 한다. 이곳은 창고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으며, 1층 과 2층 사이의 중간형태의 건축물과 가로경관에 있어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2) 건축물 구조

전통 주거에서는 목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건 축물의 구조에 있어서도 새로운 형식이 나타나면서, 북성 로에서도 벽돌조 등 새로운 재료의 건축물을 찾아 볼 수 있다. 북성로 1가는 목조가 19개, 시멘트벽돌조 3개, RC 구조 13개, 벽돌조 6개, 목조+시멘트블럭조 2개, 시멘트 블럭조 1개, 제외건축물(주차장)이 5개로 나타난다. 북성 로 2가는 목조가 37개, RC구조가 6개, 목조+벽돌조 1개, 시멘트블럭조 1개, 블록조 1개, 철골구조 2개, 시멘트벽돌 조 2개, 제외건축물(주차장 1개, 콘테이너 2개)이 3개로

나타난다. 북성로의 건축 구조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북 성로의 건축물 구조 분포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성로 에는 목조 구조가 많이 나타난다.

<그림 8>에서 알수 있듯이 북성로 1가는 목조가 43%

차지하고 있으며, 북성로 2가는 74%를 차지하고 있다. 건 축물의 구조에 있어 목조구조가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박공의 지붕 형태로 보아 가로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3) 건축물 연대

북성로를 중심으로 북성로 건축물 연대를 2가지 방법으 조사해 보았다. 첫 번째 방법은, 중구청에서 조사된 2009 년도 일반건축물대장을 바탕으로 조사를 하였으며, 두 번 째는 현장조사와 문헌 조사를 바탕으로 실시되었다.

일반건축물대장으로 건축연대를 확인해 본 결과 <그림 9>와 같이 1950년대>알 수 없음>1970년대>1960·1980 년대>1940년대 순서로 나타났으며, 북성로 2가는 알 수 없음>1950년대>1960년대>1970년대>1980년대 순서로 나 타났다. 북성로 1가는 1950년대 건축물이 많이 나타났으 며, 북성로 2가는 알 수 없음이 전체를 자치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으로, 현장조사와 문헌조사를 바탕으로 실 시한 결과 북성로 1가는 1930년대>1950년대>1970년대>

사진 1. 북성로 준2층 정면 사진 2. 북성로 준2층 측면 그림 7. 북성로 층수 분포도

그림 9. 북성로 건축물 건립연대 분포도 그림 8. 북성로 건축물구조 분포도

(7)

1980년대>1940년대>1920년대 순서로 나타났으며, 북성로 2가는 1930년대>1950년대>1940년대>1970년대>1960년대

>1980년대>2000년대 순서로 조사되었다. 북성로 1가와 북 성로 2가 모두 1930년대 건축물이 조사 되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조사 해 본 결과 알 수 없음의 대부분은 1930 년대로 확인 할 수 있다.

3. 북성로의 가로 변화

개항이후 조선의 전통적인 건축생산체제는 서서히 해체 되어갔다. 그리하여 개화기 이후 대구에 유입된 양식 건 축도 훈련된 기술자나 목수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모두 외국인 기사들에게 의해 설계 감독 되었다. 일본인에 의 한 건축은 대부분 총독부 산하의 영선과나 건축과 소속 의 일본인 기술자들에 의해 설계·감독 되었으며, 시공은 주로 1910년대 중반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인 건축업 자들이 담당하였다. 대구에 벽돌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01 년부터였으나 1920년대 초에 와서야 대부분의 건축공사 에 적벽돌이 공급되기 시작하였고, 1920년대 말에는 철근 콘크리트, 1930년대 말에는 지붕트러스에 철골이 사용되 기도 하였다. 한일합방(1910년)후에는 모든 행정, 사법기 관이 식민지 통치에 편리하게 재편성 되고 지방에까지 행 정력의 강화가 이루어짐으로서 대구에도 관청을 비롯한 교통, 통신시설과 학교 등의 건축 수요가 많아지게 되었 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조선회사령의 철폐로 일본자 본의 한국진출이 활발해지고, 일제가 식민지 경제수탈정 책을 강화시켜나감에 따라 서울에 본점을 둔 각 금융기 관들이 중앙통(중앙로)과 본정(서문로), 동성정(동성로) 일 대에 세워지고, 대구역과 서문시장을 연결하는 주요도로 변에서는 부민과 지방 상인들에게 일용품을 도매하는 일 반 상설점포들이 많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 반부터 한국에는 조선회사령 철폐이후 침투해오기 시작한 일본 대자본의 영향으로 미국식 빌딩개념과 더불어 일본 분리파 건축운동의 여파가 전래됨으로서 합리주의적인 건 축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대구에는 금융기관을 비롯한 많은 상사들이 대구역을 중심으로 건 립되면서 빌딩개념의 도입과 함께 철근콘크리트조의 근대 적 건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14)

현재 북성로에 남아 있는 건축물은 1920~1940년대 건 축물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로의 변화를 위해 현 장조사와 문헌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성로에 있는 건축물 을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건축물 변화가 거의 없 는 경우, 둘째 건축물의 지붕이나 재료의 변화 및 간판설 치 등으로 파사드가 변하는 경우, 셋째, 신축된 경우로 나 눌 수 있다.

북성로 1가에는 전체 49개 건축물 중 주차장을 제외한 44개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변화가 거의 없는 경우 7개 (14%), 건축물의 지붕이나 재료의 변화 및 간판 설치 등 으로 파사드가 변하는 경우 22개(53%), 신축 15개(33%) 로 나타났다. 북성로 2가는 전체 53개 건축물 중 주차장 과 콘테이너를 제외한 50개 대상으로 건축물의 변화가 거 의 없는 경우 10개(19%), 건축물의 지붕이나 재료의 변 화 및 간판 설치 등으로 파사드가 변하는 경우 31개(58%), 신축 9개(23%)로 나타났다.

<그림 10>은 북성로 1.2가 현재 가로의 건축물 현황이 다. 층수별로 건축물을 정리 하였으며, <사진 3>은 과거 의 북성로 가로이다. 현재가로와 과거의 가로의 변화를 비교해 보면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북성로 1가의 가로변화

1번 성주소방일대 사진은 현 대우빌딩에서 바라본 모습 이다. 일본인 상점이 늘어선 번화가의 모습으로 길 양쪽 으로 늘어선 일본식 주물 가로등과 기린, 삿포르 맥주 간

14) 대구광역시(2004). 앞의 책. 560-561.

표 10. 북성로 1가 건립연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주차장 총합계

1 23 2 7 2 5 4 5 49

2.04% 46.94% 4.08% 14.3% 4.08% 10.20% 8.16% 10.20% 100%

표 11. 북성로 2가 건립연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2000년대 주차장 콘테이너 총합계

20 9 10 3 5 2 1 1 2 53

38% 17% 18% 6% 9% 4% 2% 2% 4% 100%

그림 10. 북성로 층수

사진 3. 1950년대 Life신문

(8)

판이 보인다. 기린맥주 간판은 특히 네온사인이 부착되어 있어 당시 번화가였던 원정의 야경의 짐작해 한다.

15)

2번 덕신도료 사진은 조적조로 만든 건물로 건축물의 개축은 있었으나 현재 코니스 부분의 디자인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번 경일모터 역시 1930년대 자 료로 그 건축물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축물은 철 근콘크리트 구조로 과거의 건축물과 비교 했을 때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 이처럼 과거의 건축물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근대건축과 현대건축의 고리가 되는 셈 이다. 4번 다마구찌 도기점은 앞부분을 개축하였다. 건축 물 내부에는 과거 도자기 모양의 외관 형태가 그대로 남 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5번 얼마나좋길래 건축물은 문헌자료와 비교했을 때, 전봇대 위치와 함께 건축물의 외관 모습이 전체적으로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6번 상 점은 과거 금곡 상회로 곡물을 팔던 곳이다. 지붕의 재료 와 간판 설치 등으로 파사드만 바뀌었을 뿐, 과거의 건축 물과 동일하다. 7번 대우주차장은 현재 주차장으로 이용 되고 있다. 과거 대구 북성로에 위치하고 있던 미나카이 백화점은 일본인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지상 5층, 지하 1

층 규모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었다.

2) 북성로 2가의 가로변화

북성로 2가의 사진자료와 지붕 형태 및 목조 구조로 보 아 일제강점기시대 건축물이다. 현재 건축물 대부분이 목 조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은 박공 구조를 하고 있 다. 또한 사진자료와 문헌자료로 미루어 보아 북성로 2가 의 건축물도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시대의 것이다. 8번 대 지기공 사진 역시 지붕의 형태가 흡사 한 것으로 나타난 다. 9번 대흥장식 역시 동일한 파사드로 나타난다. 10번 동양펌프 건물 역시 외관 재료만 바뀌었을 뿐 사진과 흡 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지붕의 박공 모양 역시 변화가 없다. 11번 북성종합기계공구 건축물은 사진자료와 비교 해 보았을 때, 간판의 설치 및 지붕재료의 변화만 있었을 뿐 건축물 외관이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12번 만물기 공사 역시 간판의 설치와 지붕 재료의 변화만 있었을 뿐 전체적인 형태가 바뀌지 않은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13 번 쌍림수지벨브 건축물은 지붕 재료 변경 및 간판의 설 치로 파사드가 변화 하였지만 목조구조로 되어 있으며, 동일한 파사드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북성로의 건축물 은 일제강점기시대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 건 축물이 현재에 까지 이어지는 과거와 현재의 고리점으로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북성로에 있는 건축물은 지붕의 재료가 기와에서 슬레이트로 바뀌고, 간파의 설치 등으로 인해 조금의 변화가 있었지만 69%는 일제강점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건축물로 나타난다.

표 13. 북성로 2가 가로의 변화

*1950년대 사진자료: life 신문 표 12. 북성로 1가 가로의 변화

*1950년대 사진자료: life 신문

15) 대구문화예술회관향토역사관(2008). 앞의 책. 28.

(9)

IV. 결 론

본 연구에서는 대구 읍성 북성로를 중심으로 조사 분 석하였다. 북성로는 일제강점기시대 상업지역의 중심지로 다양한 종류의 용도가 나타나고 있다. 장신구점, 주점, 곡 물회사, 석유점, 철물점, 양복점, 목재점, 목욕탕, 백화점 이 있던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다. 또한 근대건축물이 많 이 남아 있으며, 현재 일제강점기시대의 목조 건축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건축물 건립연대에 있어서 도 사진자료와 문헌자료를 참고한 결과 건축물의 건립연 대를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업이 발달한 북성로에서 상가로 이용되던 건축 물이 상업의 쇠퇴로 1층은 여전히 상가로 이용되고 있으 나, 2층은 주택이나 창고 및 비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북성로 1가는 상업+주택이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업 +창고, 비어있는 곳이 76%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성로 2 가는 상업+주택이 23%, 상업+창고, 비어있는 곳이 77%

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북성로 1가는 2층 건축물이 많 으며, 북성로 2가는 1층 건축물이 많이 나타난다. 북성로 1가는 49개 건축물 중 2층이 43%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 성로 2가는 1층이 53%를 차지하고 있다. 건축물의 층수 변화가 적은 것으로 보아 가로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 로 확인 할 수 있다. 셋째, 건축물 구조에 있어서 목조 구조가 많이 조사되었다. 북성로 1가는 목조가 43%를 차 지하고 있으며, 북성로 2가는 74%로 나타나고 있다. 건 축물의 구조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 라서 건축물 변화가 거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북성로의 건축물 건립연대를 조사한 결과, 북성로 1가는 1930년대>1950년대>1970년대>1980년대>1940년대>1920년 대>순서로 나타났으며, 북성로 2가는 1930년대>1950년대

>1940년대>1970년대>1960년대>1980년대>2000년대 순서 로 조사되었다. 문헌자료와 사진자료를 통해 북성로에 있 는 건축물은 일제강점기시대의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지 붕이나 재료의 변화 및 간판설치 등으로 파사드가 변하 는 경우가 있었지만, 1920~1940년대 건축물이 많으며, 건 축물의 지붕과 간판 등 재정비시 역사적인 근대건축물 거 리가 될 수 있다.

한편, 대구시의 근대건축물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문화시간과 여가시간의 증가로 사람들은 걷고 즐길 수 있는 도시 만

들기를 원한다. 테마가 있는 거리로 북촌 한옥마을은 외 국관광객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전주 한옥 마을과 하회마을, 양동마을 등은 한옥과 함께 건축물의 특성을 살려 음식점이나 찻집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되고 있으며 외국의 경우를 보면 전통 건축을 그대로 보 존하면서 공연장이나 기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 지역 경제에 보탬을 주기도 한다. 북성로의 활성화와 걷 고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창고나 비어 있 는 곳에 대한 방안을 모색이 필요하며, 가로의 변화가 적 은 북성로를 근대 문화 거리의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현 재 남아 있는 건축물들을 전시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 공간으로 사용을 제안 할 수 있다. 또한 건축물의 변화가 거의 없는 북성로를 근대 문화 거리의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건축물의 재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본 연구를 통해 대구읍성의 학문적 자료를 갖추게 된 것으 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대구 의 근대 건축물들이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데 보탬이 되 고 나아가서 전통 문화 거리 및 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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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일(2010. 11. 26)

수정일(1차: 2011. 1. 3)

게재확정일(2011. 1. 28)

참조

관련 문서

Modern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International Edition,

③ A student who attended Korean course at KNU Korean Language Program and holds TOPIK Level 3 or a student who completed Korean course Level 4 at the KNU Korean Language

Five days later, on 15 January 1975, the Portuguese government signed an agreement with the MPLA, FNLA and UNITA providing for Angola to receive its independence on 11

· 50% exemption from tuition fee Ⅱ for the student with a TOPIK score of level 3 or higher or completion of level 4 or higher class of the Korean language program at the

Ross: As my lawfully wedded wife, in sickness and in health, until

웹 표준을 지원하는 플랫폼에서 큰 수정없이 실행 가능함 패키징을 통해 다양한 기기를 위한 앱을 작성할 수 있음 네이티브 앱과

_____ culture appears to be attractive (도시의) to the

각 브랜드의 강점과 약점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 각 브랜드에 있어서 어떤 속 성의 약점을 다른 속성의 강점에 의해 보완하여 전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