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밀공파 문충공 양촌의 3자 로서 태종의 부마인 제간공(齊 簡公) 규(B: 1 7世) 묘역이 마침 내 경기도 기념물 제2 1 3호로 지정되었다. 지난 6월 3 0일 경 기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 정에 이어 경기도의 결재가 7 월 2 1일자로 났다. 제간공 묘 소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덕 평리 덕실(德室)의 강금산(剛金 山)에 있다.
이 일은 2 0 0 4년도 여주군의 일괄 문화재 신청에 포함된 이
래 제간공종중에서 적극 노력 하여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 이다. 당시 권영한(權寧漢) 회 장은 제간공과 경안궁주의 묘 역을 문화재로 지정 추진하기 로 결정하고 모든 실무 책임을 필자에게 맡겨 항구 보존과 묘 역 성역화의 기반을 마련하였 다. 이후 자료 수집과 문안 작 성을 비롯한 실무를 맡게 된 필 자는 남강(南岡) 권상(權常)선 생 묘역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남강공종회 권
진택(權晋澤) 도유사의 경험을 자문받으며 여주군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였다. 금년 한식절의 총회에서 새로이 문 중의 최고 어른인 권영한 전임 회장이 명예회장, 제간공의 권 용정(權容丁) 대종손은 상임고 문으로 위촉하고 회장에 권영 상(權寧常) 부회장이 선출되고 부회장에 권오석(權五石)ㆍ권 대길(權大吉), 감사에 권종배 (權鍾培)ㆍ필자(權容根)가, 권 처은(權處殷)ㆍ권혁찬(權赫璨) ㆍ권형대(權滎大)ㆍ권무형(權 武亨)ㆍ권혁남(權赫男)ㆍ권재 희(權在熙)ㆍ권영환(權寧煥)ㆍ 권영국(權寧國)ㆍ권용남(權龍 南)ㆍ권혁대(權赫大)씨가 종무 위원으로 선출되고 권영준(權 榮俊) 전총무가 고문에 권순백 (權純白) 감사가 총무에 선임되 었다. 또한 종약을 개정하여 종 무위원회 구성과 문화재 지정 을 위한 종중 차원에서의 추진 을 열어 놓았다. 현재 후손은 2 ~ 3만에 이르고 있는데 충남 연기군 전동면의 종손가를 비 롯하여 여주ㆍ이천ㆍ철원ㆍ양
구ㆍ춘천ㆍ공주ㆍ선산ㆍ밀양 ㆍ강진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 다. 막중한 책임을 띠고 문화재 에 관련한 실무 책임을 맡으며 2 0차례가 넘는 현지 출장과 관 련자료 수집 작성에 어언 2년 여의 세월이 흘러 문화재 지정 의 최종결정을 앞두고 있던 차 에 낭보(朗報)가 날아든 것이 다.
여주는 영릉과 여흥민씨의 발상지로 제간공과 깊은 관련
여주군은 세종대왕의 영릉 (英陵)과 여흥민씨(驪興閔氏)의 발상지(發祥地)로 세종이 가장 경애한 손위누이 경안궁주 내 외와 뗄 수 없는 지역이다. 특 히 돈녕공ㆍ영정공과 내외종 사이가 되는 세조의 능침으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차마 고 모의 묘역를 침훼할 수는 없었 을 것이다. 태종이 애중하던 경 안궁주가 2 3세로 1 4 1 5년에 졸 하자 광주고을 남쪽의 추령〔楸 嶺:현재 광주시 오포면 문형산 일대, 경안천(慶安川)과 경안 (慶安→京安 1 9 3 3년)이라는 지 명 등장〕에 국장(國葬)으로 장 사지냈으며 6년 뒤인 1 4 2 1년 에 부군 제간공이 졸하자 인근 에 예장(禮葬)으로 장사지냈다.
2 0년 뒤에 합폄하려 하니 수기 (水氣)가 보여 제간공의 사패지 인 여주 강금산 자락으로 1 4 4 2 년에 이장 합폄하였다.
1 4 3 6년을 전후하여 졸한 장 자 돈녕공(敦寧公:聃)을 대신하 여 아우 영정공(靈靖公:聰)은 늘 부모를 그리워하며 사친정 (事親亭)을 세우고 강금산(剛金 山)의 묘소를 찾았다. 이곳의 지명인 덕실(德谷)은 제간공 집 에 유하던 선비가 쌀을 훔치자 하인들이 붙잡아 소란이 이니 제간공이 듣고는 가난한 선비 가 쌀을 훔칠 지경이라면 빈한 한 가정이라 여기고 오히려 쌀 을 보태 주었다. 이말을 전해들 은 사람들이 덕있는 사람의 유 택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실
로 불리게 되었다. 덕실에서 비 롯된 덕평리는 청미천과 아우 러진 강금산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과 인심이 후한 마을로 기 름진 청미평야를 이루고 있다.
용인시를 거쳐 광주시를 관 통하는 경안천(慶安川)은 경안 궁주가 졸하자 그 묘소를 광주 고을 남쪽에 두면서 경안이라 는 지명이 생겼다. 현재 경안이 라는 지명은 경안천과 경안리 로 남아 있다. 제간공 묘역 동 편에 있던 신도비는 실전하여 찾지 못하다가 경지정리사업 중에 기석(基石)과 개석(蓋石) 이 발견되어 묘역 앞에 있다.
비신(碑身) 역시 묘소 앞의 연 못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 고 있다. 덕평지(德坪池)는 풍 수지리사상에 입각하여 재물 을 상징하는 물이 부족하여 인 위적으로 조성한 연못이다. 제 간공의 차자인 영정공이 3살에 모친 경안궁주를 9살에 부친인 제간공을 잃어 외조부인 태종 의 슬하에서 자랐다.덕실의 옛 재실 앞에 건립한 사친정은 영 정공이 일찍 졸한 부모를 그리 며 강금산 자락의 선영을 찾으 며 시름를 달래며 찾기 위해서 세운 곳이다. 본래 광주시 오포 읍 추현에 있던 묘소에 수기가 있어 여주 강금산에 이장하려 고 땅을 파니 오색빛의 영롱한 무지개흙이었다. 이말을 들은 외숙인 세종은‘너의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감동한 모양 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같은 묘역의 조성 유래와 역사적 의의에 주안을 두어 문 안을 작성하고 특히 제간공의 부장인 장천공(長川公) 이종무 (李從茂)의 대마도 정벌은 태종 의 신임이 두터운 제간공에 기 인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였다.
경안궁주와의 혼사는 태종과 양촌의 만남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은 몽 고 원명 교체기에 홍건적과 왜 구의 침입을 격퇴하면서 성장
2 第93號 陰曆 丙戌年 윤7月 9日 癸巳
태종부마齊簡公묘역경기도 문화재지정
경기도기념물제2 1 3호로2 0 0 6년 6월3 0일
기념관재실을겸한慶安宮ㆍ事親亭등 복원과제로
▲제간공경안궁주묘소앞에종회임원들
▲후면에서바라본묘역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