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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yl Churchill의 페미니즘 연극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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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 학 위 논 문

Caryl Churchill의 페미니즘 연극 기법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영문학전공

박 정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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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 학 위 논 문

Caryl Churchill의 페미니즘 연극 기법

지도교수 정 광 숙

이 논문을 영문학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1998년 12월 일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영문학전공

박 정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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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열의 문학 박사 학위 청구 논문을 인준함.

Caryl Churchill의 페미니즘 연극 기법

1998년 12월 일

심사위원장 교수(인) 위 원 교수(인) 위 원 교수(인) 위 원 교수(인) 위 원 교수(인)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4)

목 차

I. 서 론 ---

1-

II. Owners:: 언어 및 성 역할 전복의 구현 ---

18

III. Vinegar Tom: 여성 억압과 역사화 기법 ---

48

IV. Cloud Nine: 역할 교환 기법과 성 해방 ---

88

V. Top Girls: 페미니즘의 새로운 모색과 --- 극 기법의 집대성 ---

126

VI. 결 론 ---

177

Bibliography ---:

184

Abstract ---:

201

(5)

I. 서 론

영국의 극작계는 20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정치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 을 맞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젊은 극작가들은 의사소통의 단절, 고 립과 소외 등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 가치가 상실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같은 병리적 사회 현상은 극작가들로 하여금 사회․정치적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에 따른 상황에서 여러가지 지적 운동1)이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은 새로운 요소들 이 극에 도입되어 수정된 사실주의, 뮤지컬, 부조리주의 등 다양한 양상의 극이 활 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영국의 극계는 오스본(John Osborne)의 성난 얼굴로 돌아 보라 (Look Back In Anger, 1956) 이후 더욱 빠르게 변화하였다. 19세기의

“잘 만들어진 극”(Well-made plays)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 작품은 형식면에서의 참 신함은 없으나 전후세대의 분노와 환멸, 좌절감 등을 생생히 그려 제 2차 대전 후 영국 극계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고, 영국 정치극의 효시가 되었다.

오스본을 필두로 한 영국 극계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극 코리올라누스 (Coriolanus) 가 두 차례에 걸쳐 런던에서 공연되고부터 였다. 브레히트 극의 공연과 그의 서사 극 이론은 아든(John Arden), 웨스커(Arnold Wesker), 본드(Edward Bond) 등의 영 국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70년대에는 사회․정 치극이 영국 극계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 신진 극작가들은 노동자 계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그 안에서 발생되는 인간의 삶을 소재로 한 수정된 사실주의 연극을 주도하였다.2) 주로 전후의 사회 문제를 다루었

1) 영국이 세계 대전 이후로부터 80년대까지 보수당과 노동당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회적 혼란 및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20세기 서양의 중심적인 사상은 바로 실존주의, 마르크스주 의 그리고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된 흐름으로 나타났다. 또한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대 상황은 사람들의 의식에도 반영되어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주의를 만들어 냈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자 하는 사회주의 운동으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2) 수정된 사실주의는 현대 미술의 간결화, 암시, 왜곡 등의 기본적 수법 등을 도입하여 연극성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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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그들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불신과 그에 따른 실망과 좌절을 작품을 통해 표현 하였다. 특히 이 70년대는 극작가 처칠(Caryl Churchill, 1938- )이 전통적인 극적 사실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기법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시기이기도 하다.

처칠을 주축으로 한 브렌튼(Howard Brenton), 그리피스(Trevor R. Griffiths), 스토 파드(Tom Stoppard)와 같은 일군의 야심찬 신진 극작가들은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개념을 도입하고, 비현실적인 무대와 같은 반사실주의적 극 형식에 몰두하였으며, 그 결과 영국 극계에는 정치적 요소와 새로운 무대 기법이 직조되어 조화를 이룬 연극들이 부각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정치극의 확산과 더불어 1970년대부터는 또 다른 양상의 극이 활기를 띠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극이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문제점과 제도적 모순, 계층간의 갈등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결국 사회적 모순의 주요인인 여성문 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페미니스트 극작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은 남성지배 문화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부수적 요소로 여겨지던 여성들의 삶과 심리, 성폭력, 성희롱, 임신, 출산 등과 같은 것들을 문제 의식의 전면에 드러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페미니즘 극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 계층이었음을 자각케 하였으며, 여성들의 참정권과 사회 참여의식의 확대, 더 나아가 여성 자신의 정체성 을 확립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Wandor 89).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우선 전통적인 여성 억압이 가부장제의 성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초래된 점에 주목하고 그 해체적 전략에 주력하게 되었다.3) 따라서 남성

조하고 현실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일을 줄이며 예술과 현실의 차이를 시인한다. 가령 무대장치만 하더라도 시대와 장소는 구체적인 표현 대신에 암시에 의존하고, 극의 구조도 보다 자유로워지고, 장면 수가 늘어나는 반면 막 수는 줄어드는 등 갖가지 연극적 수법들이 실험되고 있다.

3) “가부장적”이란 용어는 “여성의 이익이 남성의 이익에 종속되는 역학 관계”(Weeden 2)를 뜻하는 것이며, 이데올로기는 “개인과 개인의 실제 존재조건과의 가상적인 관계를 표현한 것”(Althusser 162)이다. 이 “가상적 관계”는 자기 신념에 따른 행동의 조건으로서 정당함이라는 자연스러운 반응 을 유도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동시에 세계에 대한 참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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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의 가치관에서 탈피하여 여성의 삶과 경험을 주로 다루는 페미니스트 연극이 이러한 주장을 적절히 표현하는 예술 매체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4)

남녀 불평등 구조의 문제 제시와 그 모순의 해결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코페르니 쿠스적인 발상의 전환과 극작가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극의 새로운 표현 양태 와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극들은 기존의 극과는 다른 창조적인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는데, 우선 관객들의 구태의연한 사고와 감정

계를 은폐하거나 억압한다. 따라서 그런 “세계에 대한 상상의 표현(이데올로기=환상/암시)뒤에 감 춰진 세계라는 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단지 세계관들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이진수 167). 가부 장적 이데올로기에서는 남녀의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기대하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기본인 성별원칙을 야기시킨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것을 단지

“문화와 사회적 기준에 의해 부과된 성 역할과 행동에 대해 사회적으로 구축된 유형”(Moi 122)으 로 본다. 모이(Toril Moi)는 남녀의 생물학적인 성(sex)을 남성(male)과 여성(female)으로 표현하고, 사회문화적인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기대치인 성 역할을 여성성(feminity)과 남성성(masculinity) 으로 분류한다. 다시 말해 여성과 여성성과의 관계와, 남성과 남성성과의 관계가 본질적이 아님에 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하에서 모든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이 다른 면이 여 성성과 남성성으로 나타난다는 견해를 고수한다. 한편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이 “여성성”을 정의하려 하지 않고 “가부장적 상징 질서에 의해 주변으로 처진 것”이라고 하여 위치(position)로 정의했다. 크리스테바의 주장에 의하면, 문화, 사회, 정치에 관한 지적 대화에서 배제되고 있는 여 성들은 아직도 가부장제의 주변 위치에 머물러 있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여자들은 계속해서 지 배적 질서에 따라 정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수스(Hélène Cixous)는 가부장제에 의해 이분법으 로 나누어진 “가부장적 이분법적 사상”을 남성성과 여성성의 뿌리로 보고 이 가부장적 이분법을

“이원적인 사고를 다루는 죽음”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크리스테바는 그 근원이 형이상학이라고 하 여 이를 해체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4) 여성에 관한 극은 고대 연극의 기원부터 존재해 왔지만 여성이 무대 위에서 여성으로 존재하는 데 대해 상당수의 극작가들이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현상이 아니다. 케이사 (Helene Keyssar)는 1968년 가을에 많은 여성 단체들이 가두 연극의 관례를 사용하여 미스 아메리 카 선발대회의 성차별주의를 연극적으로 항의한 것을 사회의 다른 구석에서 연극과 정치가 결합하 는 이벤트로 여겼다. 이것은 또한 여성운동이 중요한 공적인 인정을 처음으로 획득한 것을 의미했 으며, 2년 후에는 영국 여성들이 미스 월드 대회에 항의하기 위해 연극적 시위를 벌였는데 이것을 여성연극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페미니스트 연극은 이제 그것을 지속시킬 대본의 발굴과 이미 존 재하는 것의 재발굴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회적인 반감을 가져왔다. 먼저 페미니스트 연 극이 남성을 혐오하거나 성적으로 변태적인 집단의 작품으로 파악되고 이성간의 사랑이나 남성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으로 쉽게 전락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이래로 약 300편의 여성에 의한 드라마가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이들 중 절반 이 상은 분명한 페미니스트 의식과 자각을 표현하고 있다(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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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일깨우기 위해 충격적인 극 양식을 동원하였다. 즉,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표현양 식을 취하기도 하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기 위해 정치목적극5)의 방법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남성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배우의 연기 훈련 및 작품 분석, 인물 창조와 같은 다각적 방법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재조명된 것이 브레히트 연기법이다.6) 페미니 스트 연극인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브레히트의 극 기법은 관객들로 하여금 주어 진 사회 구조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하는 “소격 효과”(alienation effect) 이다. 이는 배우들이 다양하게 연기하도록 하지만, 실제 상황과 사실적인 인물 묘사 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성 역할의 구분을 해체시킬 수 있는 하나의 장 치로 사용된 것이다.7) 이처럼 페미니즘 극의 연기도 기존의 연극에 대한 새로운 도 전이었다.

페미니즘 연극은 기존의 연극에 대한 도전이요, 해체 작업이다. 이러한 해체 작업 은 시간의 사용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일직선적 구조인 남성적 시간과 역사가

5) 페미니스트적인 시각과 태도는 “여성 문제를 개별적인 개인의 결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지 않 고 전체 여성에게 가해지는 두 성 사이의 불균형에서 기인한 집단적 억압으로 인식함”(Hartman 43)으로써 여성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정치,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분석한다.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문화적, 사회적, 성적, 정치적, 지적인 모든 담화로부터 여성이 배제되어 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그동안 잃었던 목소리를 되찾아 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6) 브레히트는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거리를 두고 연기를 함으로써 관객이 극중 인물에 빠져들 어 가는 것을 막았다. 브레히트는 연극의 목적을 사회적 변화에 두어 관객들이 연극을 보면서 사회 구조의 모순점에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정이입에 의존하는 연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사회적인 행동을 증명할 수 있는 연기 즉 “사회적인 몸 짓”(social gest)(Willet 139)이 담긴 연기를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배우는 반드시 극중 인물의 감 정을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외적 표현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데, 극중 인물의 내부에서 일어나 는 심리까지 표현할 수 있는 행위들이 되면 더욱 바람직하다”(Willett 139)라고 역설하였다.

7) 브레히트의 연기 기법이외에도 공연과 관련하여 성 역할이 활발히 실험되었다. 위트그(Monique Wittig)와 제이그(Sande Zeig)는 “언어의 역동성과 움직임의 기호학”이라는 강의를 통해서 여성과 남성의 움직임의 차이와, 다른 성(sex)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습득하게 함으로써 배우들이 사회적 성 역할에 따른 움직임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움직임에서 스스로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을 발견 하고자 했다(김수기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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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되고, 물리적 시간 개념을 해체시킨 초역사적 시간이 극의 중심을 차지하는 변 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남성중심 극의 플롯은 시작과 중간, 그리고 결말이 매우 합리적인 순서로 짜여져 결국에는 결과만을 받아들이게 해 왔다. 그러나 페미 니스트 작가들은 그러한 선조적 틀을 해체시킴으로써 현존 질서를 거부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찾으려 하였다. 이것은 페미니즘 극이 “연극과 여성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Keyssar 184)으로 삼는 이유이다.

처칠을 비롯한 젬스(Pam Gems), 페이지(Louise Page), 다니엘스(Sarah Daniels), 완더(Michelene Wandor), 외튼베이커(Timberlake Wertenbaker) 등의 여성 극작가 들이 70년대 이후 영국 연극계에 대거 진출하여 페미니즘 연극을 주도해 갔다. 그 들은 페미니즘 의식을 토대로 그들의 생각과 사회 정치적 입장을 신중하게 연결시 켰다. 페미니즘 의식은 여성을 단지 생물학적 차원의 여자로 여기는 전통적 관점에 서 탈피하여 여성을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 동안 남성중심의 규범과 부당한 사회적 편견에 의해 구축되어 온 여성의 이미지를 비판, 해체하고 자율적 존재로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철 저한 페미니스트로 부각된 작가가 바로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여성 극작가 처칠 이다. 처칠은 영국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최근에는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극작가로서 페미니즘 극을 통해 사회에서 여성의 성 역할과 여성 세계의 본질을 탐 색하여 성의 정치화를 표방한다. 뿐만 아니라 처칠의 페미니즘 극은 극의 기능이 직접적인 사회문제와 관련된다고 믿는 영국의 사회극과 그 맥을 같이하여 사회주의 적 성향도 포함하고 있다.8) 영국의 사회 극작가들은 계급과 성의 관계, 생산과 성의 관계, 가부장제도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처칠은

8) 영국의 많은 페미니즘 극작가들은 계급과 성의 관계, 생산과 생식의 관계, 남성이 가하는 여성의 억압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사회주의자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 페미니즘 극작가들은 자신을 사회주 의자와 연결시키지 않으며, 대다수가 심리학적 접근을 취한다. 다시 말해 전자가 여성의 사회적이 고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여성의 심리를 탐색하는 데 몰입하는 입 장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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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영국의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 작가를 대표한다. 그녀는 여성이 겪는 억압을 성, 계급, 인종, 이념의 복합성 속에서 고찰하면서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 가 바뀌어야 함을 강조했다.

처칠은 기존의 연극계를 가부장적 권력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 남성 사회의 축소 판으로 인식하였으며, 남성 본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처럼 극작가와 연출가가 희곡 작품과 배우에 대해서 행사해 왔던 절대적 권력 체제를 이제는 수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불합리한 사회 권력 구조의 개혁이 연극계의 개혁 요구와 서로 맞물린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처칠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과 해 결 방안을 여타의 서술적 장르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극적 형식을 이용하여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극에 나타난 사상과 기법의 적절한 조화라는 새로운 극적 실험정신이 구현되기에 이르렀다.

처칠의 작품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제는 여성 억압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처칠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남성 대 여성의 구별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성 이데올로기의 해체와 아울러 개인주의적 부르조아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는 그녀의 실험적인 다양한 연극 형식을 통해 구 체화되고 있다. 여성들간의 공동 집단 창작,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무시한 채 자유 로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초역사적인 시간, 성을 바꾼 배역을 통해서 남녀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을 타파해 보려는 시도 등은 기존 연극의 형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법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처칠은 사회, 정치, 경제적 문제 를 언술적 구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무대 관습의 탈피를 통한 연극을 통해서 진지하게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성 차별이 없는 탈권위주의적 사 회에 대한 시각을 갖고서 정치와 일상 생활의 특질,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극 안 에서 보다 분명히 주장하였다. 특히 처칠은 일의 본질과 가치의 문제를 놓고 갈등 하는 극을 많이 썼다.

처칠은 1958년 아래층 (Downstairs)을 발표한 이래 35 년간 40 편 남짓한 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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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텔레비전 극과 무대 극을 썼다. 이것은 그녀가 드라마 대본의 창작을 자신의 생 각을 전달할 필연적 매체로 삼아 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처칠은 극작 활동뿐만 아 니라, 스스로 극단들과 함께 극 활동을 함으로써 이론적 창작의 한계를 넘어선 체 험적 드라마 대본을 썼다. 1972년에 런던의 로열 코트 극장(Royal Court Theatre) 에서 소유주 (Owners)가 공연된 후, 처칠은 조인트 스톡(Joint Stock)이나 몬스트 러스 레지먼트(Monstrous Regiment)와 같은 유명한 페미니스트 극단들과 공동 작 업을 하기도 하였다.9) 1986년의 새가 한 입 가득 (A Mouthful of Birds)은 데이비 드 렌(David Lan)과 공동으로 쓴 작품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극단이나 극작가와 공동 작업을 한 처칠 작품의 특징은 변신 연기와 즉흥 연기를 바탕으로 짧고 간결 하면서 고도의 풍자성을 나타내는 대사의 개발에 있다. 입체적인 극 구조, 초역사적 시간 배치10), 간결한 언어와 지적으로 세련된 대사 구성11), 다중 역할 연기, 변신 연기 및 즉흥 연기법, 개방 기법12) 등 그녀가 주도한 다양한 실험적 구조나 장치들

9) Joint Stock Company는 반체제 정치 노선을 표방하여 대중의 정치의식 고양을 목적으로 1976년에 창설된 극단이며, 1975년에 창설된 Monstrous Regiment는 주로 특수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과거의 여성과 현재의 여성을 대비시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극단으로 평이 나 있다. 이 극단 이름 은 16세기에 John Knox가 쓴 팜플렛 “The First Blast of the Trumpet against the Monstrous Regiment”에서 따온 것이다. 이 극단들 외에 70년대와 80년대에 The Women’s Theatre Group, Red Ladder Theatre, 그리고 Gay Sweatshop 등이 공연을 위한 대본을 스스로 만들었고, 대본 쓰 는 작업을 한 회원에게 맡기기보다는 참가한 모든 사람의 협동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10)크리스테바는 “여성의 시간”을 역사의 시간과 구분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시간 개념을 남성의 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시간의 역사는 과거에서부터 남성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그 시간 안에서 여성은 소외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선적 시간관은 여성을 주체에서 소외시키 는 사실주의 극 형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극적 시간과 행동의 단위에 의해 강요된 직선적 서사구조 속에서는 여성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억압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체험 은 “순환적”인 것으로, 남성의 세계를 이루는 직선적 구조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억압 된 여성의 체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남성적 직선구조는 파괴되는 대신 비사실주의적인 형태가 요구 된다(김미희 9).

11)처칠의 연극의 묘미는 지적으로 세련된 대사이다. 대사가 갖는 뉘앙스를 잘 파악해야 그녀의 희극 의 메시지와 재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된 대사를 통해서는 원작의 의도와 묘미가 다른 종류의 번역극 경우보다도 더 삭감될 우려가 높다(심정순 47).

12)개방기법은 문학작품 일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결말형을 살핀 R. M. Adams의 논의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그는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갈등”을 중시하여 “개방형 결말”을 제시하였다. 개방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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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종래의 전통극과는 달리 치밀하고 정교한 극 세계를 보여 주었다.

이렇듯 평범한 극작가들과 달리 처칠은 주제 중심의 극 창작에서 벗어나 새로운 극 창작의 기법과 그 전략까지 고안해 내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넘어선 처칠의 극 들은 그 극들 자체로 점점 더 많은 극적인 기대를 표출하며 독특하고 생명력 있는 무대 기법들을 창출해 낸다. 그 결과, 그녀의 극을 관람하는 청중들은 그들이 처음 예상한 것과, 극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처칠의 의도를 비교, 분석하여 극의 의미를 나름대로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것은 처칠이 극단을 통해 실제로 공연되는 극작 기 법과 그 공연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려는 페미니즘 사상을 재치있게 융합해서 생동 감 넘치는 활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58년부터 1972년까지 그녀는 라디오 극을 썼다.13) 처칠은 당시에 아이들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많았다. 따라 서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을 덜 요구하는 라디오 극은 그녀에게 적절했고, 또한 당시 런던 주변의 상황도 소극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주로 라디오 극을 쓰 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라디오 극들을 “변화에 대한 가능성보다는 모든 지겨운 것에 초점을 맞춘 것”(Thurman 54)이며, “우울증에 대한 침울한 극”(Gussow 26)이 라고 부른다. 처칠은 또 가정 생활과 작품 활동 사이에서의 부조화로 인해 갈등과 고통을 느끼며, 자녀의 양육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다. 이처럼 자신의 결혼 생 활을 통해 여성의 제한된 현실을 깨닫게 된 처칠은 아이를 돌보며 집안에서만 창작 활동을 함으로써 느꼈던 고독의 표현14)을 라디오 극본으로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처칠은 극 창작 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여성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끝이 열린 결말이다. 이 개방형 결말기법은 문제의 제시에만 머무르고 그 해결 방향을 보여주지 않 아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법이다(13, 32, 49, 103).

13)처칠의 라디오 극에 대한 언급은 Keyssar 78-80, Itzin 281-82, 그리고 Cousin 63-82를 참조할 것.

14)처칠은 자신의 고독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During that time I felt isolated. I had small children and was having miscarriages. It was an extremely solitary life. What politicized me was being discontent with my own way of life with being a barrister’s wife and just being at home with small children.”(재인용 Trudeau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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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뼈져리게 느꼈고,15) 따라서 자녀의 양육이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도 록 만든 사회 제도에 대해 많은 분노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처칠이 치열 한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지며, 바로 그 자신의 삶의 환원적 형태 로 이해될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은 더욱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처칠의 극들은 사회에서 그녀가 실제로 느낀 여성의 불평등한 입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밑바탕이 된 삶의 집적물들이다.

그 당시에 쓴 라디오 극은 그녀에게 극의 창작 활동에서 언어의 가능성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그 당시에 사건에 대한 관심보다는 언어에 더욱 더 관심을 가졌다고 봐요.”(Fitzsimmons 85)라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처칠은 이 기간에 언어의 명확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의 첫 라디오 극인 개미 들 (The Ants, 1961)에서 우리는 이미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힘있는 언어의 이미지 와 간결한 표현들을 볼 수 있다.16) 이렇게 언어적 국면이 크게 요구되는 라디오의 극본을 쓴 처칠의 초기의 극작 경험은 이후, 극에서 언어를 이용한 새로운 시도와 흥미 유발을 가능케 한 토대가 되었다.

15)1938년 런던에서 중류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처칠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가정과 학교에 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변호사인 남편을 만났고 아들 셋의 출산과 여러 번의 유산 등으로 무대 대본을 쓰지 못한다. 그 대신에 라디오를 위한 극작으로 창작 활동을 국한시켰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세 아이의 엄마 역할과 변호사인 남편의 공적 활동을 보조하 는 데 할애하였다. 이와 같은 제약은 처칠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었다. 더욱이 세 명의 남 자아이를 데리고 글을 쓰기란 어려웠고, 그래서 아이들을 돌보아 줄 보모를 고용했지만 그녀는 심 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처칠은 글을 쓰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로 고 민하였으며, 더구나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돌보는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여성간에도 불평등이 존재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Keyssar 79-80). 모성을 택하느냐 자신의 독립적인 활동을 위해 일을 택 하느냐의 갈등은 처칠의 작품에 중심 테마로 자주 등장한다.

16)The Grandfather’s language reminds us of later Churchill characters such as Joyce in Top Girls and Nell in Fen. For example, he describes the ants by saying: “They’re no imagination, just like people. Have you ever looked at a crowd of people? Run, run, run. Look at them from the top of a tall building some time, just funny patterns of people, or out of an aeroplane, funny little toy towns, coloured targets, and not even people then, just black ant motor cars.”(The Ants, in New British Dramatists 95) and Helen Keyssar said that“The insects in The Ants are a resonant image of the oppressions of the individual in a capitalist society.”(78)

(14)

처칠은 1972년에 라디오 극에서 무대 극으로 영역을 옮겼다. 무대극의 특성인 “농 축성과 압축성”(density and compression)에 그녀는 매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난 극은 시로 소설은 산문으로 생각했죠. . . . 그렇게 하는 건 굉장한 것이었어요.

정말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었죠.”(Gussow 26)라는 처칠의 진술에서 그녀가 얼마나 무대극의 농축성과 압축성에 이끌리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비평가 들은 처칠의 초기 극들이 너무 언어에 의존하여 등장 인물들이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 무렵 처칠 역시 무대에서 언어라는 매체 하나만으로 사상을 전달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액션을 먼저 시작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극은 언어와는 달리 액션이다. 그것이 아마도 여성들이 거 의 극본을 쓰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Fitzsimmons 90)

처칠의 이러한 깨달음은 초기 드라마인 소유주 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 다. 그녀는 소유주 에서 남녀의 성 역할을 적극성(activity)과 수동성(passivity)으 로 각각 구분짓던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문제화한다. 즉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기존의 통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남녀의 성과 그 성 역할간의 관계 를 이중 구조로 만들어 고정관념의 의도적 분열을 노린다. 즉, 마리온과 알렉으로 구성된 한 쌍은 기존의 성 역할을 뒤바꿔 놓고 또 다른 한 쌍인 클렉과 리자는 관 객의 기대를 유지시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 둘을 비교하고 분석하게 하는 것이 다.

처칠은 조인트 스톡과 몬스트러스 레지먼트 등의 극단 공동체들과 함께 일을 하 면서 전통적인 극적 구조의 효과가 얼마나 일반 청중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가 에 대해 실험적 검토를 하였다. 또한 사회적 시각이 점점 넓어짐에 따라 그녀는 정 치적, 페미니즘적 표현과 극 활동의 액션과의 새로운 균형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15)

이러한 모색의 일환으로 그녀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차용하여 버킹험셔의 빛나는 빛 (Light Shining in Buckinghamshire, 1976)과 비네거 탐 (Vinegar Tom, 1976) 그리고 클라우드 나인 (Cloud Nine, 1978)에 사용하였다. 가령, 여러 개의 짧은 장면들, 다중 역할의 배우들, 그리고 극에 대해 평하는 노래들은 브레히트로부 터 빌려온 기법들이다. 동시에 극의 구성은 단일한 해답을 위한 결론으로 치닫기보 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평범한 극적 구조에 의도적으로 저항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행동을 통해 여러가지 모색이 가능하며 하나로 단정 지 을 수 없는 열린 결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처칠은 자신의 생각을 전통적인 극의 내용 안에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이 녹아 들어갈 독특한 극적 구조를 창조해내려 했기 때문에 그녀의 극은 복잡한 사고의 과정으로 형성되 었다. 이 때문에 그녀의 극은 때로 그릇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클라우드 나인 과 탑 걸스 (Top Girls, 1980)는 처음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것은 구조 적인 타협을 부정하는 처칠 극의 실험적인 결말 형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야기된 현상이다. 그녀는 클라우드 나인 에서 그녀가 만든 구조적인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Ⅰ막은 실제 사회에서 처럼, 남성에 의해 지배되며, 확고하게 구성 되어 있다. Ⅱ막에서는 여성들과 게이들에게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 막의 자유로운 구조는 보다 여성적이고 덜 권위주의 적인 감각으로 사회의 불확실성과 변화를 반영한다.(Plays: One 246)

극작가로서의 경험은 처칠이 곧바로 정치적 문제와 전통적인 극장의 정치적 결과 에 대한 평가 사이를 연관시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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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걸스 를 쓰기 전에 나는 소수 집단에 속해있는 여성이 성공 하기 위해 남성들을 모방해야만 했던 여성 법정 변호사들에 관해 생각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들이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가만있자, 극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전부 남성들 이 쓴 극을 통해 나온 것이고. . . . 얼마나 내가 그들이 정의한 것 들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가?’를 생각했다.(Betsko and Koenig 76)

이렇게 깨달은 처칠은 기법과 내용면에서 각각 다중적인 양상을 띠는 극을 창작 하기에 이른다. 인물, 구조, 그리고 무대 시간의 처리에서 유연성을 주장하는 그녀 는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을 높인다.”(Worth 17)라고 할 수 있다. 극에 대한 처칠의 창조적 인식은 그녀가 계속해서 실험적인 표현을 하도록 자극했으며, 무대에서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추구하도록 이끌었다. 처칠의 이러한 실험 적 창조 정신에 의해 페미니즘적 사고와 친연성이 있는 명확한 정치적 사고가 맞물 리게 된다.

처칠은 극 기법의 하나로 언어를 자신의 페미니즘 사상과 조화롭게 연관시킨다.

소유주 에서 그녀는 재산(property)과 소유(ownership)에 대한 언어를 사용하여 그 것을 욕망의 표현으로 치환시킴으로써 물질주의의 팽배로 파괴된 인간성을 정치하 게 분석하였다(Gussow 26). 브레이터(Enoch Brater)가 지적한 것처럼 처칠은 그녀 의 “정치적인 입지를 어떤 외부의 조작이나 개입으로가 아니라, 공연 자체를 통해 서 나타내고 있다.”(xiii)  1960년대에 이미 처칠은 정치의식을 내포하는 페미니즘 사상과 극이라는 매체와의 상호 연관성을 발견하여 그것을 자신의 무대극에 나타냄 으로써 자신의 극이 한층 더 가치 있고 평가받을 만한 것이 되도록 발전시켰다.

극작가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우

(17)

리는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이전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해줄 수도 있으며 혹은 그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주제와 새로 운 형식을 의미한다. . .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 은 연극에서 거의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쎄팅, 언어, 그리고 형 식은 모두 극을 나타내는 방식이다.(Fitzsimmons 85)

사실 지금까지 처칠의 작품 분석은 내용과 형식의 총체적 조망에 의거하기보다는 이념적 문제에만 국한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처칠을 다른 여성 작가들과의 관념 형 태와 비교함으로써 비평의 범위를 여성 극작가로서만 한정시켜 보았기 때문에 빚어 진 현상이다. 다시 말해 처칠이 현재 연극계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만 대 부분의 비평가들은 여전히 그녀의 여권 확장론과 사회주의의 관심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서, 처칠의 극들을 주제적으로만 평가하고 있다. 즉, 처칠의 극에 나타난 다 양한 기법보다는 주로 그녀의 정치적인 태도와 여성주의적인 사고에 대한 논의가 평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17)

연극은 관객뿐만 아니라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까지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사고를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며 그 파급 효과가 크다는 특성 때 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연극을 하나의 실험실로 여겼다.18) 페미니스트들은 연극을 통 하여 가부장적 체제의 전유물인 성 차별이라는 매우 억압적인 모순 덩어리를 노출 시켜 제거할 수 있는 실험실을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실험실에서 페미니스

17)다이아몬드(Elin Diamond), 커즌(Geraldine Cousin), 그리고 피츠시몬즈(Linda Fitzsmmons)등의 비 평가들과 우리 나라에서는 이해영, 이희원 교수 등이 처칠 작품을 주로 주제적 측면에서 다루면서 그녀의 정치적 태도와 여성주의적 사고에 관한 가치있는 토론을 제공한다.

18)돌란과 케이스는 이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성의 범주는 해체시킬 수 있다. 우리가 만일 무대를 현실에 대한 거울로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우리는 무대를 전통적 성의 범주로 나누지 않 는, 새로운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실험실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연 극 자체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Dolan 7) “연극을 하는 페미니스트는 가장 효과적인 억압의 방식인 성의 개념을 드러내서 분해하고, 제거할 수 있는 실험실을 만들 수 있다.”(Case 131)

(18)

트들은 과거의 억압에서 해방된 여성 주체를 재현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처칠은 이러한 실험적 연극 매체에 자신의 페미니즘적 사상을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펼 칠 수 있도록 독창적인 극적 스타일을 창조하여 가미시킴으로써 전통적인 극 기술 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처칠의 이러한 극 기법에 주 목하여 극 구조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것이며, 인간 자체를 솔직하게 표 현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매체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희곡 작품은 문학의 중요한 장르이다. 그러나 처칠의 작품들은 문학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공연을 통한 극 기법의 조화로 이룩되는 종합예술로서의 가치 또 한 크다 하겠다. 따라서 본 논문은 페미니즘 사상을 여성적 재현19)으로 독특하게 구현하는 처칠의 페미니즘 극 기법에 초점을 두었다. 그럼으로써 각 작품에서의 기 법이 극의 주제인 페미니즘 사상을 부각시키는 데 어떻게 작용하여 그 의미를 강화 시키는지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즉, 처칠의 작품 중에서 소유주 , 비네거 탐 , 클라우드 나인 , 그리고 탑 걸스 에 나타난 페미니스트로서의 그녀의 사상이 어 떻게 극 기법과 관련되어 무대에서 재현되는지를 중심 과제로 삼아 연구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네 작품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며, 이제까지 우 리가 극에 대해 갖고 있었던 통념을 해체시켜 버린다. 다시 말해 이 작품들은 전통 적인 극들과는 달리, 여성들이 극의 주요 인물이며, 그들로 하여금 가부장제도의 사 회 안에서 여성의 억압된 상황을 인지하고 독립된 한 개체로 자아를 확립하여 자신 의 위치를 찾게 한다. 이것은 페미니스트 극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극의 주체, 극 의 목적, 극의 상황으로 정의한 브라운(Janet Brown)의 개념과 잘 맞아떨어진다. 즉 이 극들은 주된 극의 행위자가 여성이고, 극 행위의 목표가 여성의 자주성 획득이 며, 극 안에서 제시되는 상황이 사회적으로나 성적으로나 부당한 남성중심의 수직

19)연극은 독자와 관객에게 시각적 상상력을 허용하고, 작품 내 의미의 빈 공간과 틈을 메울 수 있도 록 허락한다. 또한 연극은 페미니즘이 문제삼고 있는 억압의 많은 문제들을 분명히 끌어내 보여 줄 수 있는 공연의 기본적 틀을 제공한다. 즉, 연극은 말과 무언의 요소가 동시에 결합하기 때문에, 언 어와 시각적 재현의 문제가 육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동시에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심정순 11).

(19)

적 질서체계에 의한 여성 억압과 관련된다20). 본론에서는 처칠의 페미니즘적 주제 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다양한 실험적 극 기법들, 예컨대 언어적 특성, 성 역할 전복, 초역사적 시간 구성, 초공간 설정, 그리고 다중 역할 배역 등을 중심으로 위 의 작품들을 분석할 것이다.

먼저 제 II장에서는 소유주 에 나타난 성 역할의 전복 양상이 언어적 특성과 함 께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연구할 것이다. 이 작품은 처칠의 사회주의적 관심이 점차 페미니즘쪽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후기의 완숙한 페미니스트 작 품들과 동렬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소유주 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본격적으 로 깨뜨려 나간 그녀의 후기 페미니스트 작품에 끼친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새로 운 언어 차용의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처칠은 사회와 극에서 의 역할과 성 역할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냄으로써 연극의 모습과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21) 처칠이 소유주 에서 고정된 성 역할의 관념을 전복한 것은 기존 의 틀을 깼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후기 작품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연극의 초석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 장에서는 간결하고 힘있는 언어의 사용 기법과 함께 성의 전복 양상을 처칠의 극 기법의 하나로 논의할 것이다.

제 Ⅲ장에서는 브레히트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극으로 스물한 개의 삽화 적 장면과 일곱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비네거 탐 을 페미니즘의 기본 골격인 여성 의 억압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는 여성이라는 이름 위에 쓰여진 굴곡의 껍 질을 벗기는 작업이 될 것이다. 비네거 탐 은 17세기에 마녀사냥이라는 미명하에 여성의 자아 정체성 추구에 대해 기존의 사회체제가 얼마나 박해를 가했으며 여성 의 자아 정체성 추구 자체를 어떻게 왜곡시켜 해석하려 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경

20)If the agent is a woman, her purpose autonomy, and the scene an unjust socio-sexual hierarchy, the play is a feminist drama(16).

21)처칠은 남녀가 서로를 자신의 연장이나 반영으로서가 아니라 타자로서 존중하고 위해 주도록 권유 하고 있는데, 소유주 에서 각 등장인물들을 서로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성이 아니라 인간됨의 기본 적인 상태와 개인의 특성이다. 그리고 소유주 에서 제시하는 비전은 성차별주의의 감옥이 여성만 이 아니라 남성의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해야만 제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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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 행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사실 을 역사에 근거한 서술 기법, 극적인 순간에 상황을 보조하는 노래의 삽입, 성 역할 교환 기법, 그리고 인과의 틀을 부수고 농축된 언어로 이야기를 함축하고 중단시키 는 여러가지 실험 기법을 중심으로 연구해 볼 것이다. 특히 이 장에서 필자는 처칠 의 극작 취지에 따라 극 사이 사이에 삽입되는 노래의 역할을 그 순서에 따르지 않 고 그때의 필요성에 따라 분석하는 브레히트식 삽화 기법을 사용하여 살필 것이다.

또한 비네거 탐 은 여성의 억압을 추동하는 것이 계급문제나 사회제도의 모순뿐만 아니라 종교적, 정치적인 면에서도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점에 관해 서도 논의할 것이다.

제 Ⅳ장에서는 성의 정체성과 성에 대한 억압을 역설한 클라우드 나인 을 중심 으로 다룰 것이다. 처칠은 인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의 경직성을 부각시킬 목적으로 독특한 극작 기법을 사용한다. 그 기법 은 바로 성별에서 남녀간, 인종에서 흑백간의 역할 교환 기법과, 한 배우가 여러 역 을 해내는 다중 배역 기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법들을 중심으로 성 역 할이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어떻게 조작되어 있으며 성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어 떻게 전복시키려 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억압받지 않는 동등 한 관계 형성을 위해 성 해방을 주장하는 처칠의 의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과율의 시간에 맞춰 사건을 전개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시간을 조합시킨 1막과 2 막을 통해 등장인물의 성적 정체성의 획득을 위한 노력과 그 가능성을 분석할 것이 다. 또한 이러한 노력과 가능성의 결실을 관객의 상상에 맡김으로써 관객 개개인이 바로 개혁의 주체임을 확인시켜 주는 처칠의 개방형 결말 기법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의 제 V장에서 다루게 될 탑 걸스 의 경우 처칠은 다시 다 중 배역 기법을 도구로 하여 그녀의 사상을 극화하는데, 특히 남성배역은 완전히 배제한 채 여성배우만을 기용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뒤 엎어 버리는 초역사적 시간 배치라는 극 기법을 통해 가부장제하에서 계속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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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여성 억압적 상황과 오늘의 상황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이것은 새로운 비 전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탑 걸(최고 직업여성)인 말린의 새로운 여성상의 문제점을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탑 걸스 는 최고의 의미인 “탑”(Top)이라는 단어로 계층적인 인간의 문제를 수직적으로, “걸스”(Girls)란 단어를 통해 같은 여성 간의 문제를 수평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처칠은 그 해결을 객관적 인 시각과 개별적인 분석 기법을 통해 관객이 모색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나인 에서처럼 개방적 결말로 처리하고 있다. 결국 처칠은 여성들의 삶이 지닌 특수성을 이전의 작품보다 더 두드러지게 다루면서도 나아가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구별 을 떠나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는 발전된 생각을 관객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처칠의 극 작품이 주제와 기법 양면에서 모두 진지한 성찰과 획기적인 극적 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녀가 페미니즘 극은 물론 연극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작가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확실히 처칠은 페미니즘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극적 효과의 극대화와 그 가능성을 명확하게 인식하였으며, 그러한 생각을 극작의 기법적 혁명을 통하여 처칠식의 독 창적인 “페미니즘 연극”으로 창조해 낸 작가이다. 필자는 이 독특한 재능의 소유자 가 어떻게 남성중심의 극 흐름에 과감히 도전하여 새로운 극 기법을 창조하고, 이 를 바탕으로 여성의 억압된 상황을 재현시켜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현명한 선택 을 하도록 유도하는 페미니스트적 실험을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연 구가 이 시대에 부응하는 극과 그에 따른 극 기법을 창조한 처칠의 극 세계에 대한 신선하고 흥미로운 접근으로 검토되기를 기대한다.

(22)

II. 소유주 : 언어 및 성 역할 전복의 구현

처칠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중요한 발판이 된 무대극, 소유주 1)는 1972년에 런던 의 로열 코트 극장(Royal Court Theatre Upstairs)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지금 까지 전반적으로 주제 면에서만 연구가 되었을 뿐2) 극작 기법이나 형식은 소홀하게 다뤄져 왔다. 그러나 소유주 는 후기 작품들이 성 역할 전복의 개념을 실제로 무 대위로 옮김으로써, 등장인물간의 직접적인 성 역할 교환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본 논의에서는 소유주 의 남성과 여성간에 나타난 전복된 언어의 사용에 초점을 맞추어 주제 면에서의 “소유” 뿐만 아니라 소유로 인하여 펼쳐지는 성 역할의 전복 현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극에 서 성 역할 교환은 시각화되어 무대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적 차원에 서 성 역할 교환을 전복된 언어사용을 통해 처칠이 의도한 하나의 기법으로 살펴 논의할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인식해 왔던 성 역할이 얼마나 가부장적 사회에 의해 고정된 이분법적인 관념에 기반하고 있었는가를 확인시켜 주는 페미니 즘적 작업이 될 것이다.

소유주 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소유, 즉 소유의 힘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단 순히 주제적인 소유에서 벗어나 극을 이끌어 가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또 하나의 기 법으로 나타난다. 각 인물들은 소유물과 얽혀 그것을 통제하려 한다. 소규모 사업을 하다 실패한 클렉(Clegg)은 가족을 부양하는 그의 아내 마리온(Marion)을 통제하길

1) 처칠은 보통 집안일과 아이 양육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글을 빨리 썼다. 이 작품은 사흘만에 쓰여 졌다. 그녀는 당시 유산을 겪은 후 병원에서 막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었던 때였다. 이런 상황 하에서 처칠은 소유주 속에 처음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쌓여왔던 많은 것들, 개인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태도까지도 쏟아 부었다(재인용 Keyssar 80).

2) 완더(Michelene Wandor)는 남성들을 무력화시키고 억압하는 “실존여성”(Look Back in Gender 119-25)의 관점에서 이 극의 여주인공 마리온과 탑 걸스 의 여주인공 말린(Marlene)을 함께 다루 고 있다. 그리고 머릴(Lisa Merrill)은 마리온의 강한 소유욕과 성 역할의 전복에, 브라운(Mark Thacker Brown)은 알렉(Alec)의 무소유와 동양의 선사상의 연관성에 각기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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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 그녀는 자신이 필요한 힘을 가졌고, 소유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성공적인 부동산 사업가이다. 마리온의 고용인인 워슬리(Worsley)는 이 극에서 내 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계속적인 자살의 실패는 무척 우스꽝스럽지만 그가 자살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자못 심각하다. 그가 “생명은 토 지 임차권이에요. 그것은 전지전능한 지주인 신에 속해 있어요.”(Life is a lease hold. It belongs to God the almighty landlord)3)라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생명이 신의 재산이라면 자살은 세상에 있는 자신의 유일한 소유권으로 본다.

리자(Lisa)는 마리온으로부터 그녀의 집을, 후에는 자신의 새로 태어난 아기를 지 키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아내이자 어머니 의 모습에서 찾는다. 마리온은 리자의 남편이자 자신의 전애인이었던 알렉(Alec)을 소유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리자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을 빼앗으려 애쓴다. 그러나 막상 알렉에게서는 이 모든 광란적인 행동들과는 정반대의 모습만 보인다. 그는 욕 망이나 야망을 포기한 상태이다. 그는 어떤 것을 바라지도 않고 어느 것을 하기도 원하지 않는 무소유의 상태에 있는 인물이다. 마리온과 알렉을 통해서 처칠은 “전 진하는 기독교 병사”(Onward Christian Soldier)의 태도를 취하는 능동적인 인물과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sitting quietly, doing nothing)4) 수동적 태도의 인물을 함께 등장시킨다. 이것은 서구의 기독교적이고 전진적인 정 신에 마리온의 성격을, 동양 불교의 조용한 태도인 선사상을 알렉의 성격에 비유시

3) Caryl Churchill, “Owners” in Plays: One(London: Methuen, 1985), p.35. 이후의 작품 인용은 괄호 안에 그 쪽수만을 명기하겠다.

4) Owners의 서문에 명시된 원전은 다음과 같다.

Onward Christian Soldiers, Marching as to war.

Chirstian hymn Sitting quietly, doing nothing.

Spring comes and the grass grows by itself.

Zen poe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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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으로써 진취적인 서구의 사상 체계와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에서의 이분법적인 남 녀의 성 역할5)을 전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남성성의 사고방식인 강한 소 유욕을 가진 마리온과 수동적인 침묵으로 가장으로서나 사회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알렉의 대비는 처칠의 작품 서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계속 강조되어 나타난다.

한 인물은 “전진하는 기독교 병사들”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것을 가진 역할로, 또 다른 인물은 선시적 태도로 “조용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이 적극적인 인물은 여성 이, 수동적인 인물은 남성이 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태도를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행동으로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믿고 있 었던 것으로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마리온과 알렉이 이 러한 취지로부터 발전되었다.(4)

소유주 는 쉽게 간과해 버릴 수 없는 세련된 블랙 코미디이다. 위에 언급한 마리 온과 알렉에 대해 대비되는 언급은 두 인물이 작품의 극적 세계에 각각 동등하게 등장하는 세력이며, 반면에 서로 대립되는 역할이라는 것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 다. 공격성과 소극성, 기독교적 직업윤리와 불교적 평안함, 파괴와 창조가 같은 지 역을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처칠이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극적 세계에서

5) 이분법적인 성 역할 사고는 가부장 제도와 말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 가부장제와 소유권의 개 념은 역사적으로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남성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 든 권력을 차지하고 여성은 부권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가부장제도는 여성의 역할을 가사일과 육 아 문제에 국한시켜서 남성의 권한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남성은 여성의 능력을 축소시키 고 부권제에 대한 도전을 예방하기 위해 여성에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교육시킨다. 이러한 부권을 강화하기 위한 특권 중의 하나가 곧 “소유권”이다. 남성은 가부장의 권한을 내세워 여성을 소유하려 한다. 여성에 대한 소유권은 여성의 성, 행동, 그리고 사고방식까지도 모두 통제하고 조 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성은 늘 독립적, 경쟁적, 모험적이고 야망이 크고 소유욕이 강해야 하며, 반면에 여성은 늘 의존적, 수동적, 비경쟁적이고 야망이나 소유욕이 없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이 뿌리깊게 자리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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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소유주 에서는 우리가 보통 서로 다르거나 반대 명제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 험의 양태가 하나의 틀 속에서 만난다(Keyssar 80).

그렇다고 소유주 가 단순한 흑백논리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솔로몬(Alicia Solomon)은 이 극의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비록 이 작품이 자연주의적인 멜로드라마의 형식상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관습은 마치 처칠의 비관습적인 생각들을 전혀 포함할 수 없는 것처럼 극도로 긴장되어 있으며 시험되고 있다.(50)

이처럼 처칠은 이 극의 구조로 멜로드라마적인 평면적 유형을 사용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의도적인 것이다. 관객에게 이 극의 경험은 단순한 조작을 통해 얻어지는 것 이상이다. 극의 첫 번째 장면에서부터 마지막 대사까지 처칠은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고정된 인식과 실제 사이의 간격을 꼬집어 낸다. 그리하여 이제껏 우리가 당 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던 성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게 한다. 그렇다고 획 기적인 방법으로 문제점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역시 자연스레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적 구조를 이용한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일명 얕은 비극으로서 그 특징 중 하나가 사실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과장해서 표 현하는데 있다.

처칠은 소유주 에서 감정적인 면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케이사(Helene Keyssar) 가 지적하듯 처칠은 일하는 계층의 인물이나 여성에 대해 감상적인 감정이입을 느 낄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의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는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등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한다.

이 극에서는 여성들이나 혹은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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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감정이입이 끼어들 틈이 없다. . . . 소유주 는 등장인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남자나 여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혹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남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등에 대해서 우리의 제한적이고 각인 되어 있는 기대에 의존하고 있다 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다.(Keyssar 83-84)

또한 처칠은 관객이 배우들의 행동에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서 있다. 이 것은 특히 성과 사회적인 정치성을 드러내는 극에서 적절한 선택이다. 관객은 내적 으로 동기를 부여받은 인물들의 외면적으로 나타난 행동들 간에 적절한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 케이사는 처칠이 “내면과 외부의 행위들 사이의 차별을 피하기 위해 서 ‘심리적인’ 갈등과 ‘사회적’ 갈등을 동등하게 나란히 펼쳐 보인다.”(94)라고 언급 한다. 이런 식으로 처칠은 친숙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각 인물들로 하여금 관객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고정적이고 관념적인 기질을 보이게 하지 않고 이와는 반대되 는 사고와 행위를 보여주게 함으로써 관객을 당황케 만든다.

그리고 처칠은 관객이 연극적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범한 도구에 의거해 작품을 평가하는 것을 떨쳐버리도록 한다. 그리고 극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6) 그 대신 소유에 대한 욕망을 언어적 측면 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현대 문화 속에 어떻게 파고들어 갔는지를 인식시켜 주려 한다. 소유주 에서 소유에 관한 언어는 감정적인 반응의 언어로 대체된다. 이러한 대체는 잠정적으로 평면적인 멜로드라마 극에 힘을 주면서 동시에 직접적인 표현을 비껴가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과 상황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기 대를 방해하는 수단이 된다.

6) 처칠은 사람들이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우 리가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을 처칠이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또 한 아이러니나 서스펜스와 같은 친숙한 극적 관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주의를 기울 이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Keyssa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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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이 사용하는 언어는 극 중 인물들의 소유욕을 극명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소 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이 극에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갈등과 단단히 묶여져 있 으며, 소유욕으로 인하여 인물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고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극에 서 성과 계급의 카테고리는 소유권을 위한 욕망으로 인해 이미 부서져 있다. 이것 은 클렉의 정육점 장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대사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이웃에 새 로 개업한 셍즈베리(Sainsbery)가게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이날은 그 가 마지막으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날이다. 클렉은 여성 고객의 환심을 구하려고 애 쓴다.

아주 좋은 날씨네요, 부인. 공원에서 해를 쪼이며 앉아 계셨나 봐 요? 전 당신네, 부인들을 잘 알아요. 얇게 저민고기 12온스라. 또 다른거는요? 스테이크용으로 맛있는 엉덩이 살은 어떠세요, 부인?

다진 고기요리만 가지고는 남자를 붙잡아 둘 수는 없잖아요? 그 렇죠? 20펜스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조심해서 가세요.

Lovely day dear. Been sitting in the park in the sun? I know you ladies. Twelve ounces of mince. And what else? Some nice rump steak dear? You don’t keep a man with mince. No?

Twenty P, thank you very much. Bye-bye dear, mind how you go.(7)

위에 언급한 클렉의 말투는 사실 흔히 인식되어온 여성적 말투다. 여기서 사회 언 어학적 접근에 의하면 언어와 개인의 관계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로 이해될 수 있 다. 클렉의 사회적 신분이 여성 고객에게 잘 보여 매상을 좀 더 올려야 하는 위치 에 있기 때문에 그의 말투는 여성적이다. 그러나 클렉은 정육점 주인으로서 그것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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