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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丘永言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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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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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靑丘永言序

1)

古之歌者必用詩.

옛날의 노래는 반드시 시를 사용하였다.

歌而文之者爲詩, 詩而被之管絃者爲歌, 歌與詩固一道也.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글로 쓰면 시가 되고 시를 관현악으로 연주하면 노래가 되는 것이기 에 노래와 시는 실로 같은 도리인 것이다.

自三百篇變而爲古詩, 古詩變而爲近體, 歌與詩分爲二.

詩經이 변하여 고시가 되고 고시가 변하여 근체시가 되면서부터 노래와 시는 나뉘어 둘이 되었다.

漢魏以下, 詩之中律者, 號爲樂府. 然未必用之於鄕人邦國.

한나라와 위나라 이후에 시 중에서 율조에 맞는 것을 樂府라 하였다. 그러나 시골사람이나 변방국에서는 악부가 쓰이지 못하였다.

陳隋以後, 又有歌詞別體, 而其傳於世, 不若詩歌之盛.

진나라와 수나라 이후에는 가사와 별체가 있어 세상에 전하였지만 시가[漢詩]만큼은 성행하 지 못하였다.

盖歌詞之作, 非有文章而精聲律, 則不能, 故能詩者, 未必有歌, 爲歌者, 未必有詩.

대체로 가사를 짓는 것은 문장력도 있으면서 성율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를 잘하는 자는 노래가 모자라고 노래를 하는 자는 시가 모자라게 마련이다.

至若國朝, 代不乏人, 而歌詞之作, 絶無而僅有, 有亦不能久傳.

우리 나라에 이르러 대대로 인재가 모자라지 않았으나 가사를 짓는 경우는 전혀 없거나 겨 우 있는 정도였고, 있는 것도 오래도록 전하지 못하였다.

豈以國家, 專尙文學, 而簡於音樂, 故然耶.

어찌 국가에서 오로지 문학만 숭상하고 음악은 간단히 여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南坡金君伯涵, 以善歌鳴一國.

南坡 金君 伯涵[김천택]은 노래를 잘 불러 온 나라에 명성이 났다.

精於聲律, 而兼攻文藝, 旣自製新翻, 畀里巷人習之.

성률에 정통하였고 겸하여 문예에도 뛰어나 이미 스스로 새 노래(新翻)를 지어 마을 사람들 에게 주어 익히게 하였다.

因又蒐取我東方名公碩士之所作, 及閭井歌謠之, 自中音律者, 數百餘闋, 正其訛謬, 裒成一卷, 求 余文爲序.

그리고 우리 나라의 名公과 선비들이 지은 것과 여항의 가요 중에서 음율에 맞는 것 수 백 여 수를 수집하여 잘 못된 것을 바로 잡고 한 권에 모아 나에게 서문을 지으라고 하였다.

思有以廣其傳, 其志勤矣.

그 뜻은 그것을 널리 전하는 데에 그의 의지[목적]가 있는 것이다.

余取以覽焉, 其詞固皆艶麗可玩, 而其旨有和平惟愉者, 又有哀怨悽苦者, 微婉則含警.

내가 취하여 보니 그 가사가 실로 곱고 화려하여 볼 만하였고 그 뜻은 화평하고 즐거웠으며 슬프고 처량한 것도 은근히 깨우침을 함축하고 있었다.

激昻則動人, 有足以懲一代之衰盛, 驗風俗之美惡, 可與詩家表裏, 竝行而不相無矣.

격앙된 것은 사람을 감동시켜 한 시대의 성쇠를 징계하였고 풍속의 아름답고 나쁜 것을 징

1) 鄭來僑(1681-1757), 「金生天澤歌譜序」, 浣岩集 韓國文集叢刊 197, p.546. 분량과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 음.

(2)

험하였으니 시인과 더불어 안팎으로 병행하여 서로 상관이 없지 않았다. [시조 내용과 시조 시인이 서로 상관이 있다.]

嗚呼, 凡爲是詞者, 非惟述其思, 宣其鬱而止爾.

아! 이 가사를 짓는 것은 오직 그 뜻을 서술하는 것만이 아니라 답답함을 풀어주기까지 한 다.

所以使人觀感, 而興起者, 亦寓於其中, 則登諸樂府, 用之鄕人, 亦足爲風化之一助矣.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 느껴 감흥이 일어나게 하는 것도 그 가운데 깃들어 있어, (이를) 악부 에 올려 마을 사람들에게 활용하게 하면 또한 족히 풍속을 교화하는 데에 일조가 될 것이 다.

其詞雖未必盡, 如詩家之巧, 其有益世道, 反有多焉, 則世之君子置而不採, 何哉.

그 가사가 비록 시인의 기교만큼은 못하지만 세도에 유익함이 오히려 많을 것인즉 세상의 군자가 버려 두고 채록하지 않았으니 어찌된 것인가?

豈亦賞音者寡, 而莫之省歟.

어찌하여 소리를 감상하는 자가 과소평가하고 돌보지를 않았는가?

伯涵乃能識此, 於數百載之下, 得之於의(黑+乙)昧湮沒之餘, 欲以表章而傳之.

김천택이 이를 알고 수 백년 동안 전해오는 중에 까마득히 오래서 없어진 나머지를 얻어 드 러내어 전하고자 하였다.

使作者, 有知於泉壤, 其必以伯涵, 爲朝暮之子雲矣.

작자들로 하여금 저승에서 알게 한다면 반드시 김천택을 朝暮의 揚子雲2)(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伯涵旣善歌, 能自爲新聲.

김천택은 이미 노래를 잘 불렀고 스스로 새로운 노래[시조]를 지었다.

又與善琴者全樂師, 托爲峨洋之契, 全師操琴, 伯涵和而歌, 其聲瀏瀏然, 有可以動鬼神 而發陽和.

또한 거문고를 잘 타는 全樂師(全萬齊)3)와 더불어 峨洋의4) 친교를 맺고 전악사가 거문고를 타면 김천택이 맞추어 노래하였는데 그 소리가 맑아 귀신을 감동시켜 和氣를 일으켰다.

二君之技, 可謂妙絶一世矣.

두 사람의 재주는 일세에 절묘했다 할 수 있다

余嘗幽憂有疾, 無可娛懷者, 伯涵其必與全樂師, 來取此詞歌之, 使我一聽, 而得洩其湮鬱也.

내가 일찍이 울화병이 있어 회포를 풀 길이 없었는데 김천택이 전악사와 함께 와 이 가사를 취하여 노래하여 나로 하여금 한번 듣게 하니 그 우울증이 덜어졌다.

歲戊申暮春上浣, 黑窩序.

1728년 3월 상순 鄭來僑(1681-1757)가5) 서문을 쓰다.

2) 한나라 때 남의 저술을 많이 편찬한 것으로 유명한 揚雄.

3) 자는 重齋. 경종 3년(1723)에 악사로 임명된 구왕실 악사. 구왕실 소재 역대 악사 명부 참고.

4) 列子 湯問편에 “伯牙鼓琴, 志在高山, 鍾子期曰, 善哉, 峨峨兮, 若泰山.“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뜻을 고산에 두면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잘하는구나! 높고 높음이여, 태산과 같구나.)

山-峨, 水-洋. ‘아양가’라고도 함. 武漢에 유적 古琴臺가 있음.

5) 자 潤卿, 雲卿. 호 浣岩, 玄窩, 黑窩. 閭巷詩人으로 문집에 浣岩集 이 있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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