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2018년 05월 16일 수정▸2018년 05월 29일 채택▸2018년 05월 28일 교신저자▸ 김남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Tel : 02-961-0672 E-mail : [email protected]
醫林撮要 의 醫案에 대한 연구
1구민석, 2김민선, 3김홍균, 4차웅석, 4김남일
1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2경희대학교 대학원 기초한의과학과
3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4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A Study on the Yi’an (醫案) of Uirimchalyo (醫林撮要)
1
Minseok Ku,
2Minseon Kim,
3Hong-Kyoon Kim,
4Wung-Seok Cha,
4Namil Kim
1
De p t .o fKo r e a nMe di c i ne ,Gr a d ua t eS c ho o l ,Ky ungHe eUni v e r s i t y
2
De p t .o fSc i e nc ei nKo r e a nMe di c i ne ,Gr a d ua t eS c ho o l ,Ky ungHe eUni v e r s i t y
3
I ns t i t ut eo fKo r e a nTr a d i t i o na lMe d i c a lHi s t o r y
4
De p t .o fMe d i c a lHi s t o r y ,Co l l e g eo fKo r e a nMe d i c i ne ,Ky ungHe eUni v e r s i t y
Ui r i mc hal y o
(醫林撮要),oneofthemostimportantbooksinthehistoryofKoreanMedicine(KM),hasnotbeenresearchedwithin the frameworkprovided byYi’an (醫案),an EastAsian tradition ofdescribing clinicalencounterswith the therapiesemployed.In moderntimes,thispracticeofYi’anmightbesimilartotheoutlineofasingular“casestudy”.Theauthorsdesignedthestudyto analyzethebasicinformationofYi’anwithintheUi r i mc hal y o
andtocontributetothefoundationsofemployingYi’aninKoreanMedicine. Astandardwasestablished,andthe123Yi’answereextracted,mostofwhichweretakenfrom thechapter,Hi st or i cDoc t or s
(歷代 醫學姓氏).UsingthisinformationandincomparisonwithothermedicalbookssuchasEui bangy ooc hui
(醫方類聚),theauthorslearned thattheYi’ansfrom theJ i ny uansi daj i a
(金元四大家),includingthoseoffoureminentcliniciansinJ i n
(金)andYuan
(元)Dynasty,are excludedfromUi r i mc hal y o
.TheauthorsidentifiedthatYi’ansfrom othermedicalbooks,arecitedinthe
Ui r i mc hal y o
butwithdifferentformat,notwiththe traditionallyunderstoodform ofYi’an.Thisstudyofthe
Ui r i mc hal y o
Yi’anresultedinthreeimportantunderstandingsofYi’an.First,themerenumberofUi r i mc hal y o
Yi’an ismeaningfulinthatitraisedthegenreofYi’antothealevelnotpreviouslyrecognized.Second,inthehistoryofKoreanMedicine, Yi’anisfirstsystematizedintheUi r i mc hal y o
atthechapterofHi st or i cDoc t or s
.Third,Ui r i mc hal y o
raisedtheconceptofusefulnessof Yi’an,tothepracticeofKoreanMedicine.Keywords:Koreanmedicalhistory,Yi’an(醫案),
Ui r i mc hal y o
(醫林撮要),MedicalcasesⅠ. 서론
醫林撮要 는 한국의학사를 대표하는 의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鄭敬先이 原撰하고 楊禮壽가 校正하여 16세기 후 반에 초간되었다가, 東醫寶鑑 의 발간 이후 후인들에 의하 여 17세기 경 엽에 증보되었다.
1)
오늘날 통상적으로 의림촬요 라고 부르는 것은 17세기 경에 증보된 13권본을 지칭 한다. 김홍균은 이 책의 출현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 “실용 성과 종합성을 겸비한 의림촬요 의 출현은 조선중기 의학 에 있어서 실로 새로운 변화이자 도약이라 할 것이다.”
2)
라 고 평가한 바 있다. 또한 의림촬요 가 鄕藥集成方 , 醫 方類聚 와 같은 조선 전기 의서에서 장점을 고루 취하여 이론과 경험을 결합하였고, 이 책을 통해 한국에서 당시 중 국의학을 비로소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3)
1) 선행연구에 따르면 의림촬요 8권본은 1589~1592년 사이 초간되었고, 1608년에 醫林撮要續集 이 등장하였다.(김홍균.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0.) 이후 증보된 13권본은 규장각 소장본(1676년), 고려대 소장본(1635년) 등이 보고된 바 있으나, 명확 한 초판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안상우. 「 의림촬요 의 판본과 최근 연구 성과」.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2004;10(1):31-48.)
2) 김홍균. 상게논문. 97.
3) 맹웅재, 김기욱, 김남일, 김도훈, 김용진, 김홍균 외. 한국의학사 . 고양:대성의학사. 2006:217-218.
은, 이미 한국의학사 연구자들이 널리 공감하는 바이다.
의림촬요 에 대한 선행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 까지, 주로 이 책이 갖는 의사학적 의의에 초점을 맞추었 다. 김홍균은 의림촬요 의 전반적인 의사학적 내용을 두루 다룬 것을 시작으로
4)
, 의림촬요 에 실린 「歷代醫學姓氏」에 대한 고찰5)
과, 향약집성방 과 의림촬요 의 관계6)
, 의림 촬요 와 醫林撮要續集 이 동의보감 형성에 미친 영향7)
에 대해서 차례대로 연구하여 발표한 바 있다. 그런가하면 2004년에는 의림촬요 의 판본들이 집약되어 보고되었고,8)
의림촬요 의 「脇痛門」9)
과 「三消門」10)
에 대한 연구와 의 림촬요 의 침구법에 대한 연구11)
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에는 비교적 의림촬요 의 구체적인 내용과 내재된 의 학사상에 접근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한편 필자는 최근 한국의학사에서의 醫案에 대해 관심을 갖던 중 의림촬요 가 한국의학사에서 갖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안’이라는 키워드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의안 즉 한의학 의 치험 사례
12)
는 최근 한의계 뿐 아니라 역사학과 민속학 등 다양한 학제에서 관심 갖는 연구대상인데, 의림촬요 의안에 대한 선행연구가 부재한 것은 의외였다. 이 점에 착 안하여 본고는 의림촬요 의 의안을 전반적으로 다루어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본고는 우선 의 림촬요 에 산재되어 있는 의안을 발굴하여 그것의 배치와 인용문헌 등 외형적 정보를 일차적으로 살피고, 이로써 추 론할 수 있는 의림촬요 의안의 특징과 의의를 차례로 소 개하는 순서로 구성되었다.의안의 발굴은 ‘실제 환자에 대한 서술’이라는 최소의 기
준만을 상정하여, 의림촬요 의 문장 중에서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
13)
을 모두 수작업으로 추출하였다. 원문은 중국 科 學技術文獻出版社에서 출판한 의림촬요14)
를 저본으로 하 였다. 한국의학사에서 의안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소략하고 막연한 현실을 고려할 때, 본고가 ‘한국의학사에서의 의안’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부분적이나마 제공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15)
Ⅱ. 본론
1. 의림촬요 의안의 배치와 출전 1) 의림촬요 의 판본과 구성에 대한 검토
의림촬요 의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의 림촬요 의 판본과 전반적인 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검토하 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의림촬요 는 크게 8권본과 13권 본으로 구분하는데, 본고에서는 증보판인 13권본을 연구대 상으로 하였다. 13권본은 8권본에 비해 내용이 전반적으로 보입되었고, 「역대의학성씨」라는 독특한 편이 새로이 추가 되었으므로 의안 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에 언급되는 의림촬요 는 모두 13권본을 지칭한다.
의림촬요 는 「역대의학성씨」라는 의학인물열전으로 시 작한다. 「역대의학성씨」란 의학에 조예가 깊은 역대 의가들
4) 김홍균. 상게논문.
5) 김홍균. 「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에 대하여」. 한국의사학회지. 2000;13(2):109-129.
6) 김홍균. 「 향약집성방 과 의림촬요 의 비교고찰」. 한국의사학회지. 2001;14(2):3-24.
7) 김홍균. 「 의림촬요 와 의림촬요속집 이 동의보감 의 형성에 끼친 영향 : 인후질환을 중심으로」.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2009;15(2):1-19.
8) 안상우. 상게논문.
9) 김홍균. 「 의림촬요 의 「협통문」에 관한 소고」. 한국의사학회지. 2000;13(2):63-80.
10) 조선영, 차웅석, 김남일, 유원준. 「 의림촬요・삼소문 의 의학적 성취」. 한국의사학회지. 2006;19(1):149-166.
11) 오준호, 서지연, 김태은, 홍세영, 윤성익, 차웅석 외. 「 의림촬요 침구법의 의사학적 고찰」. 대한경락경혈학회지. 2006;23(4):1-14.
12) 의안은 통상 ‘의가들이 질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글로 적은 것’이라고 인식된다.(김남일. 「한국의학사에서의 의안연구의 필요성과 의의」.
한국의사학회지. 2005;18(2):189-195.) 그런가하면 저명한 의안 전문연구서 중 하나인 中國歷代名醫醫案選講 에서는, 의안을 “診治疾病臨床 記錄所形成的文字資料”라고 정의하였다.(胡方林. 中國歷代名醫醫案選講 . 北京:中國中醫藥出版社. 1999.)
13) 본 연구에서는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였다. 이는 때때로 특정 문장을 의안으로 보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14) 鄭敬先. 醫林撮要 . 北京:科學技術文獻出版社. 2006:1-619.
15) 본고는 본고의 작업에 대한 가치 판단이,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 가령 의림촬요 는 다수의 의서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 으므로, 의림촬요 의안들은 이미 다른 의서에서 등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 작업이 이행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 연구자들이 의안을 연구하는 주된 이유는, 일반적인 醫論에서는 파악하기 힘든 ‘당대의 의료 실천’을 엿보기 위함인데, 원출전이 따로 있는 의안이라면 상술한 연구 가치를 상실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본고는 ‘의안이라는 장르’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즉 여기에서는 의림촬요 의안을 통해 당대 의료 실천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의안의 ‘원출전’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필자는 한국의학사에서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의 정보가 소략하고 막연하며, 의안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구성 되거나 기본적인 정보가 보급되지도 않았음에도, 의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본고를 기획하였다.
을 모아 전기 형식으로 모은 위인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는 唐代의 의사학자 甘伯宗이 처음 책의 형식으로 만 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역대의학성씨」의 전통이 이어 져 醫方書에 한 부분으로서 등장한 것은 明代의 醫學入門 이 최초이며,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 역시 이를 모태 로 한 것이다.
16)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는 224명의 의가를 上古聖賢, 儒醫, 明醫, 世醫, 德醫, 仙禪道術, 本國明 醫 7부류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역대의학성씨」 이후의 내용은 中風門을 시작으로 痛風門, 傷寒門, 溫疫門 순으로 이어진다. 전체 내용은 外感, 內傷, 瘟病, 婦人, 小兒 순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宋代 陳無擇의 三因極一病證方論 의 病因分類 체계에 영향을 받은 것이 다.
17)
단 8권까지는 ‘口舌病門五十二’, ‘黃疸門六十’과 같이‘門’과 숫자가 짝이 맞지만, 9권부터는 ‘附骨疽方七十’과 같이 門이라는 글자가 빠지고 병증과 숫자를 맞춘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의림촬요 의 13권은 ‘雜方百二十’으로 끝 나지만 마지막 門은 雜方‘門’이 아니라 小兒門이라고 본다.
단 내용의 구성에 있어서는 ‘中風門一’부터 ‘雜方百二十’까지 모두 앞쪽에 醫論을 제시하고, 이후에 관련 治方을 제시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일관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2)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의 의안
이상으로 의림촬요 의 판본과 구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 고, 이제는 의림촬요 의 문장 중에서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 을 수작업으로 추출한 결과를 살펴보기로 한다. 본고에서는 총 123개의 의안을 추출하였는데([부록]), 이 중에서 106개 의 의안이 「역대의학성씨」에 분포되어 있다. 즉 의림촬요 의안 대부분이 「역대의학성씨」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역대의학성씨」에 소개되어 있는 의안부터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의림촬요 는 총 224명의 의가를 7개의 대분류로 구분하였는데, 이중에서 上古聖賢, 仙禪道術, 本國 明醫의 34명의 의가를 설명할 때는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 을 서술하지 않았다. 儒醫, 明醫, 世醫, 德醫의 의가 190명 중에서는, 총 51명의 의가에 대해 106개의 의안을 활용하 여 서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2명의 儒醫에 대 한 설명에서 43개의 의안, 31명의 明醫에 대한 설명에서 48개의 의안, 3명의 世醫에 관한 설명에서 5개의 의안, 5명 의 德醫에 관한 설명에서 10개의 의안을 서술하고 있다. 표 1은 이를 정리한 것이다.
번호 분류 의가 의안수
1
儒醫
徐之才 2
2 狄梁公 1
3 許胤宗 1
4 李杲 2
5 滑壽 8
6 葛乾孫 1
7 呂復 14
8 周眞 2
9 黃子厚 2
10 朱震亨 3
11 汪機 4
12 陳景魁 3
13
名醫
華佗 4
14 紀朋 1
15 範九思 1
16 於法開 1
17 任度 1
18 巢元方 1
19 張文仲 1
20 孫兆 1
21 王纂 1
22 龐時 1
23 朱宏 1
24 吳廷紹 1
25 宋道方 1
26 張銳 2
27 郝允 3
28 王貺 1
29 楊介 2
30 孫琳 1
31 張濟 3
32 唐與正 2
33 潘璟 1
34 僧奉眞 1
35 周順 1
36 趙巒 1
37 石藏用 1
38 趙卿 1
39 項昕 6
40 周漢卿 2
41 錢瑛 1
42 殷傅 2
43 倪維德 1
44
世醫
甄權 1
45 甄立言 1
46 祝仲寧 3
47
德醫
徐文伯 2
48 徐嗣伯 3
49 錢乙 1
50 吳源 1
51 戴原禮 3
합 106
표 1. 醫林撮要 「歷代醫學姓氏」의 의안 분포
16) 김홍균. 「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에 대하여」. 한국의사학회지. 2000;13(2):109-129.
17) 김홍균.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0:67.
특별히 呂復, 滑壽, 項昕 등을 의가를 제외하면 대체로 1, 2건의 의안이 각각의 의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특 히 朱丹溪와 같은 의가는 훨씬 더 많은 의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 텐데도 딱 3건의 의안만을 제시하여 형식적 균형을 의도한 듯하다. 일정한 형식과 균형 잡힌 분포는, 의림촬 요 「역대의학성씨」 내에서 의안이 어느 정도 유용한 수단 으로 인식되어 활용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추론해볼 수 있는데, 이에 관한 것은 3장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기 로 한다.
한편 의림촬요 는 의학입문 의 「역대의학성씨」에서 9명 의 의가를 보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18)
9명은 각각 5인의 明 醫 陳無擇, 宋太宗, 王燾, 李梴, 王璽와 2인의 世醫 龔信, 龔廷賢, 2인의 本國明醫 楊禮壽와 許浚인데, 의림촬요 의「역대의학성씨」에서 이들 9명에 대한 의안은 찾아볼 수 없 었다. 이로써 추론해본다면 의학입문 「역대의학성씨」의 의 안과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의 의안의 수는 차이가 없 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즉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
의 의안은 모두 의학입문 의 「역대의학성씨」를 원출전으 로 한다고 볼 수 있다.
3) 그 외의 의안
다음으로 「역대의학성씨」를 제외한 의림촬요 의 본문에 등장하는 의안을 다루기로 한다. 「역대의학성씨」는 의림촬 요 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매우 적은 양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의림촬요 본문은 의론과 치방의 형식으 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의학성씨」와는 달리, 이 부 분에서는 전체 본문의 규모에 비해 매우 드문 17개의 의안 만이 산재되어 있었다. 특히 傷寒門, 咳嗽門, 傷損門, 胎前 門에서 각각 찾은 1건의 의안들을 제외하면, 모든 의안이
‘怪疾百十三’과 ‘雜方百二十’에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傷寒門의 의안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이 의안은 孟詵이라 는 의가의 의안인데, 그는 중국 당나라 때의 의학자이자 食
療本草 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19)
이 의안의 내용은 한 남 자가 병에서 나은 후 교합하여 거의 죽을 뻔한 것을 맹선 이 白馬의 똥으로 치료했다는 경험에 대한 것이다. 의림촬 요 에서는 본 의안에 대한 출전을 밝히고 있지 않으나, 동 의보감 에서 백마의 똥으로 陰陽易을 치료한다는 기록20)
이 있고 출전을 本草 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식료본 초 의 문장을 인용했을 가능성이 높다.21)
두 번째로 咳嗽門에서는 주단계의 의안이 1건 등장한다.
이 의안에서는 주단계가 痰喘으로 인해 눕지 못하는 남자를 椒目 한 돈과 생강 달인 물로 치료했다는 것을 간략하게 소 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丹溪心法 에는 “劫藥以 椒目研極細末一二錢, 生薑湯調下止之, 氣虛不用”
22)
이라고 하 고, 동의보감 에서는 “諸喘不止椒目極細末每一二錢薑湯調服 止之止後因痰治痰因火治火虛弱者勿用”23)
이라고 하면서 丹 心 이라고 출전을 밝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咳嗽門의 의 안은 주단계나 그의 후인이 저술한 一書를 출전으로 하는 것 같다.傷損門의 의안은 이에 반해 回春 이라고 출전을 확실히 밝혔다. 회춘 은 萬病回春 의 약자로, 명대 의사 공정현 의 저술이다. 이 의안은, 화재의 연기로 인해 죽을 뻔한 사 람이 무즙으로 죽음을 면했다는 내용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실제 원출전인 만병회춘 의 내용과는 약간 상이하 다.
24)
다음으로 ‘怪疾百十三’과 ‘雜方百二十’의 의안을 한 번에 살펴본다. ‘怪疾百十三’에는 총 9건의 의안이 있고, ‘雜方百 二十’에는 총 4건의 의안이 있다. 怪疾의 의안들은 모두 酒 癥, 髮瘕와 같은 괴이한 질환에 대한 경험이고, ‘雜方百二十’
의 의안들은 節食을 한 기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은 모두 得效方 , 醫學綱目 등을 출전으로 기재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勞瘵에 관한 득효방 의 의안 1건 과 稽神錄 에 출전을 둔 의안 1건을 제외한 11건은 모두 동의보감 에서도 동일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다.
25)
18) 김홍균. 「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에 대하여」. 한국의사학회지. 2000;13(2):109-129.
19) 동양의학대사전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 서울: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20) “主陰陽易一名馬通”(許浚. 東醫寶鑑 . 서울:남산당. 2014:694.)
21) 식료본초 의 “男子患, 未可及, 新差後, 合陰陽, 垂至死. 取白馬糞五升, 絞取汁, 好器中盛停一宿, 一服三合, 日夜二服.”라는 문장이 이와 연관된 것 같다.(孟詵 撰. 張鼎 增補. 食療本草:考異本 . 合肥:安徽科學技術出版社. 2003:111.)
22) 朱震亨. 「丹溪心法」: 진주표 주석. 金元四大家 醫學全書 下 . 초판. 서울:법인문화사. 2007:278.
23) 許浚. 상게서. 480.
24) 만병회춘 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一居民逃避石室中 賊以煙火薰之欲死 迷悶中摸索得一束 乃是蘿蔔 嚼汁下嚥而又炭煙薰人 往往致死 含蘿蔔一 片 看口中煙起 不能害人 或預曝乾爲末 備用亦可 或新水擂爛乾 蘿蔔飮之亦可”(龔廷賢 撰. 陳柱杓 編譯. 對譯 萬病回春 . 서울:법인문화사.
2007:1066.).
25) 주 26번을 읽은 뒤, 본 주석을 다시 보는 것을 권한다. 의림촬요 의 의안 중 하나가 동의보감 의 것을 그대로 재인용하였다고 추정가능하고,
마지막으로 ‘胎前門百六十’에 등장하는 의안인데, 이는 一方, 즉 어떤 처방의 효능을 드러내기 위해 의안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이 의안에 나오는 환자는 임신 2개월 차의 부 인으로, 惡阻病을 앓아 茯笭湯과 抑靑丸으로 치료되었다.
이 의안의 출전은 단심 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동의보감 에 등장한 단심 의 문장을 재인용한 것으로 보 인다.
26)
이상으로 의림촬요 에 등장하는 의안의 외형적인 모습 을 살폈다. 의림촬요 의 의안은 크게 「역대의학성씨」의 의 안과 그 외 부분의 의안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역대의학 성씨」에 등장하는 의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출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역대의학성씨」의 의안은, 의학입문 의
「역대의학성씨」에 등장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외 의 부분에서는 식료본초 , 단계심법 , 만병회춘 , 의학 입문 , 千金方 , 득효방 , 의학강목 , 계신록 에서 소수 의 의안을 인용하였다.
2. 의림촬요 의안의 특징 1) 金元四大家 의안의 감소
본 절에서는 의림촬요 에서 발굴한 의안의 기초적인 정 보를 토대로,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의림촬요 의안의 특징에 대해 고찰해본다. 먼저 의림촬요 의안의 수와 분 포가 1장에서 밝힌 것과 같은 결과를 지니는 것에 대해 고 찰해보기 위해, 조선 최고의 의학 총서인 의방유취 와 의 림촬요 를 비교해보기로 한다. 의방유취 는 의림촬요 보 다 약 200여 년 전에 간행되었으며 백과전서적 성격을 띠고 있어, 이와 비교한다면 의림촬요 에 어떤 의안이 많이 빠 졌거나 보입되었는 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의방유취 의 의안에 대한 선행연구가 있으므로 이를 중점 적으로 참조하였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의방유취 에는 총 1,000여개의 의안 이 존재하는데, 이중에서 1/4, 즉 250여개의 의안이 金元四 大家인 張子和의 것이다.
27)
250여개의 의안은 治病百法 , 雜記九門 , 十形三療 , 儒門事親 , 즉 장자화의 저서에 산재되어 있다. 이 점을 근거로 선행연구에서는 의방유취 의 간행 이전에 의안이라고 할 만한 글쓰기를 가장 적극적 으로 활용했던 인물을 장자화라고 평가하고 있다.28)
그러나 의림촬요 에는 장자화의 의안이 단지 2개 등장 할 뿐이다. 하나는 ‘怪疾百十三’에서 다룬 酒癥에 대한 의안 이고, 나머지는 胸膈不利한 부인에 대한 의안이다. 그마저 酒癥에 대한 의안은 의학강목 에서 장자화의 의안을 인용 한 것을 재인용한 것이다.
29)
다수의 의가와 그들의 의안을 다룬 「역대의학성씨」에서도 장자화에 대한 항목에서는 간 략한 소개만을 할 뿐, 그의 의안에 관해서는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30)
그런가하면 금원사대가 중 李東垣과 관련된 의안도 적지 않게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의림촬요 에서는 이에 대한 기록도 적다. 특히 羅謙父가 엮고 倪維德이 교정하여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東垣試效方 에는 이동원과 관련된 의안이 다수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의방유취 에 서도 20여건이 넘는 의안이 인용되어 있다. 이에 반해, 의 림촬요 는 「역대의학성씨」에서 이동원을 소개하면서 그와 관련된 傷寒 의안 2건만을 기재할 뿐이다. 의림촬요 에는 주단계의 의안도 종종 소개되어 있긴 하나 소수이고, 劉完 素의 의안도 찾아볼 수 없다.
이상의 검토로 의림촬요 에는 대량의 금원사대가 의안 이 배제되어 있어, 이 책의 의안을 구성하는데 금원사대가 의 영향이 미미하였다고 추론할만하다. 실제로 선행 연구자 인 김홍균은 이 점에 대해, “실제적으로 의림촬요 에서는 금원사대가들의 내용이 충분히 들어와 있지 아니하다. 금원 사대가의 인물인 劉完素, 張從正, 李杲, 朱震亨 등의 저술부 분이 극히 적게 인용되고 있다.”
31)
라고 평가하고 있어, 본동의보감 과 완벽하게 같은 12건의 의안 문장이 의림촬요 에도 등장한다. 즉 ‘怪疾百十三’과 ‘雜方百二十’에 등장하는 의안에 있어서는, 의 림촬요 가 동의보감 의 것을 많이 인용한 것 같다.
26) 이에 대한 근거는 “抑靑丸 [方見<火門>]”이라는 부분에 있다. 억청환이라는 처방은 의림촬요 에서 오직 이 의안에서만 언급되는 것으로 파악 된다. 또한 의림촬요 에는 ‘火門’이 없고 ‘火熱門十一’만 존재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의안은 특정 의서의 문장을 통째로 인용한 것으로 추 정가능하다.
한편 동의보감 「부인문」 중 惡阻에 관한 설명에서 본 의안과 완벽하게 같은 의안이 존재하고, 동의보감 「火門」에는 억청환에 대한 소개가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문장이 동의보감 의 것을 그대로 재인용한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27) 구민석, 변정욱, 차웅석, 김남일. 「 의방유취 의 의안에 대한 연구 - 각 문별 분포와 인용서를 중심으로 -」. 한국의사학회지. 2017;30(1):23-31.
28) 구민석 외. 상게논문. 31.
29) 鄭敬先. 상게서. 445.
30) “字子和, 金之雎州考城人. 精 ≪素≫, ≪難≫, 法宗劉河間, 著 ≪六門三法≫.” (鄭敬先. 상게서. 16.) 31) 김홍균.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0:71.
고의 추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결론적으로 의림촬요 에서 금원사대가의 저술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부분이 줄어든 것 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의안을 배제하는 결과를 야기하였 고, 이는 의림촬요 의안의 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파악할 수 있다.
2) 기존 의안의 의론화
그런가하면 필자는 기존에 ‘의안’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던 것이, 의림촬요 에서는 ‘의론’
32)
의 형식으로 바뀌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본절에서는 이러한 현상을‘의안의 의론화’라고 명명하고 아래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
의림촬요 ‘胎前門百十六’에 기재되어 있는 子淋에 대한 一法을 살펴보면, 자림이 있는 임신부에 사용하는 여러 가 지 방안을 소개하였는데,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 중 하나이다. 단심 의 문장을 인용한 이 문장은, “一法. 治轉 脬, 尿閉脹急. 令産婆香油塗手, 自産門入, 托起其胎, 則尿出 如注, 脹急卽解.”
33)
라고 되어 있다. 이는 “어떤 방법. 전포 증으로 소변이 막혀 배가 부푼 것을 치료한다. 산파로 하여금 香油를 손에 묻혀 산도에 넣어 胎를 밀어 올리면 오줌이 물 흐르듯이 나오며 脹急한 것이 없어진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그런가하면 비슷한 내용을 동의보감 에서는 의안의 형 식으로 기재하였다. 동의보감 의 문장은 “一孕婦轉脬, 脈細 氣弱, 胎壓膀胱下口, 用補藥, 恐加急滿. 令産婆以香油抹手, 入産門托起其胎, 尿出如注.”이다. 이는 “어떤 임신부가 전포 증으로 맥이 세(細)하고 기가 약하며 태(胎)가 방광의 아래 입구를 눌렀다. 보하는 약을 쓸 경우 당기고 그득한 것이 더 심해질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산파를 시켜 참기름을 손에 발라 산도로 넣어 태를 밀어 올리니 소변이 물 흐르듯이
나왔다.”라고 해석된다.
34)
두 의서 모두 전포증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産婆가 香 油 바른 손으로 태아를 밀어 올린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 지만, 형식은 상이하다. 동의보감 에서는 비록 익명이라도 실제 환자, 즉 ‘一孕婦’와 ‘産婆’를 등장시켜 이 방법이 실제 경험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의안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다.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의림촬요 는 실 제 환자를 등장시키는 이야기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환자 를 치료하는 방법에만 초점을 맞춰서 소개하고 있다.
한편 두 문장은 모두 단심 을 인용출처라고 밝히고 있 지만, 단계심법 , 丹溪心法附餘 , 丹溪治法心要 등의 책 에서는 이와 연관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단 동의보감 을 해설한 한 출판사에 따르면, 동의보감 의 이 문장은 의학 강목 에서 인용된 것이라고 밝히고, “원문과 들고남이 있 다.”고 설명하고 있다.
35)
실제로 이 해설서의 지시대로 의 학강목 을 살펴보니, 이 문장과 유사한 기록이 있으므로,36)
일차적으로 동의보감 의 문장은 의학강목 에서 유래한 것 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그런가하면 본고 주석 25번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13권 본 의림촬요 는 동의보감 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구 성되기도 한다. 더욱이 의학강목 에서 인용한 것을 두 책 모두 단심 이라고 誤記한 정황은, 이와 같은 추측에 더욱 힘을 싣는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의림촬요 의 문장이 동 의보감 의 의학강목 문장을 재인용하면서, 동의보감 에 서는 의안 형식이었던 것을 의림촬요 에는 의론의 형식으 로 바꾸어서 기재하였다고 추측한다.
37)
그러나 인용관계를 배제하더라도, 다른 의서에서는 의안의 형식으로 되어 있던 것이, 의림촬요 에서는 의론이나 치방 의 형식으로 변환되어 기재되어 있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 다.
38)
가령 만병회춘 원문에는 다수의 의안이 인용되어32) 본고에서 의론은, 의서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보편적인 문장들을 포괄하여 지시하는 것이다. 이는 의안이라는 특별한 글쓰기 형식과 구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33) 鄭敬先. 상게서. 492.
34) 본 해석은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인용한 것이다.
동의보감 . 한의학고전DB [homepage on the Internet]. 한국한의학연구원; 2015 [cited 14 May 2018]. Available from: https://mediclassics.kr/
books/8/volume/4#content_114
35) “ 醫學綱目 卷之十四 閉癃遺溺 「胎前淋閉」. 원문과 들고남이 있다.”(허준 편. 동의과학연구소 역. 東醫寶鑑 제1권 內景篇. 서울:휴머니스트.
2002:1560.)
36) 이와 관련한 의학강목 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一婦人, 妊娠七八個月, 患小便不通, 百醫不能利, 轉加急脹. 診其脈細弱, 予意其血氣虛弱, 不然, 水載其胎, 故胎重墜下, 壓住膀胱下口, 因此溺不得 出. 若服補藥升扶, 胎起則自下, 藥力未至, 愈加急滿.遂令一老婦, 用香油塗手自產門入, 托起其胎, 溺出如注, 脹急頓解. 一面卻以人參, 黃, 升麻, 大 劑煮服, 或少有急滿, 仍用手托放取溺, 如此三日後, 胎漸起, 小便如故.”(樓英 編撰. 陳柱杓 註釋. 註釋 醫學綱目 . 서울:법인문화사. 2010:340.) 37) 단 두 책이 저술될 당시의 단심 이라는 책에 대해 정확하게 고증하기 어려우므로, 본고에서 내린 결론은 수정될 수 있음을 밝힌다.
38) ‘蔘朮飮’이라는 처방의 예도 참고할 만하다. 동의보감 에서는 ‘삼출음’을 소개하면서 주단계의 의안을 함께 소개하지만, 의림촬요 에서는 삼출 음의 주치와 구성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소개한다. 삼출음의 주치와 조성에 대한 설명은 두 의서에서 동일하다.
단 이 정보만으로 ‘의안이 의론화’ 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8권본 의림촬요 , 동의보감 , 13권본 의림촬요 의 원문대조가 되지 않았
있는데, 의림촬요 에서는 만병회춘 을 인용하면서도 그러 한 의안들은 기재하지 않은 것도, ‘의안의 의론화’와 연관되 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전술한 내용은 의림촬요 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고 확대해석할 수 없으며, 보다 엄밀한 문헌적 고증을 거친 후 에야 신뢰할 수 있다. 단 본고는 의림촬요 에서 의안이 많 이 기재되어 있는 의서를 인용했음에도, 의안의 수가 인용 의서만큼은 많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그 이유에 대한 가능 성을 제시해 본 것이다. 관련된 내용은 추후에 상세히 다루 어질 필요가 있다.
한편 ‘의안의 의론화’나 ‘의론의 의안화’와 같은 개념은,
“과연 ‘의안’이라는 장르의 설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야기한다. 주지하다시피 ‘의안’이 특 별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의안이 당대의 의료실천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실증적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의안과 의론이 서로 호환적이라고 한다면, ‘의안’이 갖는다고 여겼던 사료적 장점은 상실될 수 있다. 이 점은 논지에서 벗어나므로 본고 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추후에 충분히 연구될 필요가 있 다. 특히 의림촬요 에 등장하는 다수의 ‘一方’과 ‘經驗方’,
‘의안의 의론화’ 등에 대한 내용은 중요한 논쟁 지점이다.
3. 의림촬요 의안의 의의
마지막으로 의림촬요 의안이 갖는 의의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비록 17세기 조선에서 의안이라는 장르가 널 리 인식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의림촬요 의 저자 역시 의 안이라는 것을 특별히 인식하여 의도적으로 배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오늘날에 의안의 역사를 구성하는 입장에 서 바라본다면, 상술한 작업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 였다. 또한 의림촬요 에 등장한 의안은 필연적으로 그 이 전의 문헌들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미미하게나마 이 책 이후에 등장하는 의안들에 영감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본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의림촬요 의 의
안이 갖는 의사학적 의미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의림촬요 의안이 가지는 의사학적 의미는, 규모의 측면 에서나 참신성의 측면에서나 「역대의학성씨」의 의안이 등 장한 것을 위주로 다루어야 한다. 즉 의림촬요 의안의 의 의는, 사실상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의 의안이 갖는 의 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에 본 장에서는 의안의 측면에 서, 의림촬요 에 「역대의학성씨」가 보입된 것이 역사적으 로 주목할 만한 일임을, 세 가지 근거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의학사에서 100여건이 넘는 의안이 한 의서에 서 소개된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다수의 의안 연구자들 이 지적했듯이 한국에서는 의안기록자체가 드물고, 거질의 의방유취 조차도 그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수의 의 안을 수록하고 있다. 조선의 의안을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한다고 가정한다면,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에 등 장한 100여개의 의안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둘째,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를 통해서 비로소 의안의 개념이 형성되어 가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지 하다시피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가 등장하기 전 한국 의학사에서는,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의서 곳곳에 불규 칙적으로 산재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의방유취 나 동의 보감 이 그러한데, 이로써 당대의 저자들이 의안에 대한 개 념을 확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고 보기에는 무 리가 있다. 한국의학사에서의 이러한 초기적인 형태의 의안 인식과 비교해볼 때,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에서 의안 이 群集化 되어 등장한 것은, 의안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주 목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할만하다.
39)
셋째,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에서 의안을 활용하여 의가의 권위를 확보한 방식은, 후대의 의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는 점이다. 「역대의학성씨」는 본래 ‘후학으로 하여금 보고 느낀 바를 알게 하기 위해 저술된 것’
40)
인데, 의안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이다. 즉 의안을 통해 선현 의 가들에 대한 권위(authority)와 신임(credentials)이 효과적 으로 확보될 수 있었다.41)
기 때문이다. 또한 단계심법 , 단계심법부여 , 의학강목 과 같은 책의 문장과도 대조하여 선후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의론이
‘의안화’ 된 것 일수도 있고, 의안이 ‘의론화’된 것일 수도 있으며, 의론과 의안이 합쳐져 있는 문장에서 의림촬요 는 의론만 추출하는 형식으 로 구성하였을 수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본고는 의안과 의론이 서로 호환적일 수 있으며, 그것이 의림촬요 의안의 전체 수와도 연관될 수 있음을 드러내 고자 한 것이다.
39) 「역대의학성씨」는 후대에 간행된 晉陽神方 이라는 책의 부록에서, 「歷代名醫經驗方」이라는 제목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책은 「역대의학성씨」의 의안을 선별하여, 傷寒, 婦人方, 腹脇痛, 小兒, 기타 질환으로 재분류하였다. 이는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가, 의안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의 미 있음을 예시하는 것이다. 진양신방 에 관한 내용은 다음에서 참고하였다.(안상우. 「고의서산책」. 민족의학신문 기획기사. Available from:
https://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11) 40) “俾後學知所觀感雲.”(鄭敬先. 상게서. 1.)
41) 실제로 의사학자 Cullen은, 16C 明代에 의안 장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현상을, 의사의 권위(authority), 신임(credentials) 확보와 연관
한국의학사에서 의서를 검토하다보면, 의서의 편제와 구 성에 상관없이 뜬금없이 의안을 소개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 할 수 있다. 黃度淵의 醫宗損益
42)
과 申晩의 舟村新方43)
등에서 그 구체적인 예를 볼 수 있다. 의서에서 편제와 구 성에서 벗어나, 본인의 경험, 즉 의안을 소개하는 것에 대 해, 기존 연구자들은 특별히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다. 만 약 이를 의사의 권위(authority), 신임(credentials) 확보의 관점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면, 「역대의학성씨」는 이러한 방 식의 발원이라고 평가할만하다.Ⅲ. 결론
본 연구는 한국의학사를 대표하는 의서 중 하나인 의림 촬요 의 의안에 대한 연구이다. 다수의 연구자들이 의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여기지만, 정 작 한국의학사에서 의안에 대한 정보는 소략하고 막연하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본고는 의림촬요 의 의안에 대한 기초 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한국의학사에서의 의안에 대한 구체 적인 모습을 형성하는 데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의림촬요 의 의안은 총 123개로 집계되었다. 그 중에서 106개는 의학인물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역대의학성씨」에 기재되어 있다. 「역대의학성씨」는 明代 의가 李梴의 의학 입문 에서 유래한 것인데, 의림촬요 의 「역대의학성씨」는 의학입문 의 것에 비해 9명의 의가가 보입되어 있다. 단 보입된 9명의 의가에 대한 의안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 로써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의 의안은 의학입문 의 것 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의림촬요 에서는 「역대의학성씨」의 의안 외 에도 17건의 의안을 추가로 찾을 수 있었다. 특히 ‘怪疾百 十三’과 ‘雜方百二十’에 총 13건의 의안이 집중적으로 분포 되어 있었다. 이 의안들을 인용한 출처는 식료본초 , 단 계심법 , 만병회춘 , 의학입문 , 천금방 , 득효방 , 의
학강목 , 계신록 등으로 다양하였다.
또한 본고는 의림촬요 의안의 외형적인 정보를 토대로, 의림촬요 의안의 특징을 살폈다. 특별히 의림촬요 의 의 안을 의방유취 의 것과 비교하였는데, 그 결과 의림촬요 의 의안에는 다수의 金元四大家 의안이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런가하면 의림촬요 는 다른 의서에 서 의안 형식으로 적어 둔 것을 의론처럼 바꾸어 수록하기 도 하였는데, 전술한 점들이 의림촬요 의안의 전체 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파악하였다.
본고는 의림촬요 의 의안이 갖는 의의를 크게 세 가지 로 평가한다. 첫째는 100여건이 넘는 다수의 의안을 한국 의학사에 제시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초기적인 형태의 의안 인식에서 벗어나 「역대의학성씨」와 같이, 비로소 의안이 군 집화 되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의림 촬요 「역대의학성씨」에서 의안을 활용하여 의가의 권위와 신임을 확보한 방식이, 후대의 의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는 점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의림촬요 의안의 발굴을 위주로 다루 었지만, 발굴 그 자체가 의안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 국의학사에서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어떠한 변천을 겪었는지 살펴보는 것, 즉 의안의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의안에 대한 정의나 의 미, 활용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단 이와 같은 목표를 위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한국의학사에서 의안이라고 할 만한 것의 전모를 평가하는 것, 즉 의안의 역사를 상세히 살펴보는 일이며, 본고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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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었다. 즉 당대의 지식수준 향상과 인구 증가 등의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의료인들은 그들의 권위와 신뢰성을 스스로 확보해야 했고, 의안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용한 장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역대의학성씨」에 적용시켜 본다면, 후인들은 「역대의학성씨」를 보고 의안의 효 용성에 대한 암묵적인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Christopher Cullen. 「Yi’an(case statements): the origins of a genre of Chinese medical literature」: Elizabeth Hsu ed. Innovation in Chinese Medicine . Cambridge: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297-323.)
42) 황도연은 그의 저서 의종손익 에서 ‘增’이라는 표시를 붙여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의종손익 에서 ‘增’의 표시는 총 55군데 있는데, 이 중 6군데에서 황도연의 치험례, 즉 의안이 등장한다. 필자는 이를 지칭한 것이다.(이진철. 「 의종손익 을 통해 살펴본 황도연의 의학사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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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주촌신방 연활자본에서는 신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의안이 3건이 등장한다.(황지혜. 「 주촌신방 에 대한 의사학적 연구 : 연활자본 소아편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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