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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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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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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sjbae@konkuk.ac.kr)

천사와 시 그리고 베를린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영화와 도시 32

베를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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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위치

이데올로기와 장벽으로 갈린 독일의 대도시 베를린의 하늘에는 천사가 살고 있 다. 다미엘(Damiel)과 카시엘(Cassiel). 이들은 ‘전승기념탑(Siegess ule)’과 ‘기억 의 교회(Ged chtniskirche)’ 위에서 지상의 빌딩 숲과 거리를 내려다본다. 평범 한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천사들은 - 어린이를 제외한 -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 며, 인간사에 간섭할 수도 없다. 이들은 그저 오랜 시간 베를린을 바라보고 보존하 며 경청할 뿐이다. 관객 역시 천사의 눈으로 보고 천사의 귀로 듣는다. 천사의 눈 을 통한 도시 이미지는 일종의 영상시로 제시되며, 천사의 귀를 통해 내레이션으 로 이어지는 대사는 서정성이 가득한 시로 다가온다. 그러나 다미엘은 서커스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 마리온(Marion)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길 원한다. 영생의 삶을 인간의 유한성과 맞바꾸려는 그의 시도는 지상 으로의 추락과 동시에 새로운 존재성의 시작을 의미한다. 베를린의 하늘에서 카시 엘은 인간으로 변모한 다미엘을 내려다보고,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도시의 파노라 마 이미지와 연결한다. 하늘에는 “계속 이어집니다(Fortsetzung folgt)”라는 자막 이 뜨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ber Berlin)’는 실제로 6년이 지난 후 다시 이 어지는데, ‘멀고도 가까운(In weiter Ferne, so nah!)’(1993)이라는 시퀄(sequel)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천사로 남아있던 카시엘 역시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 적 삶의 추악한 모습과 맞닥뜨리는 이야기가 제시된다. 그리고 다시 5년 후 영화 는 배경을 로스앤젤레스(LA)로 옮겨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1998)로 재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스타를 동원한 이 리메이크는 원작이 지닌 도시와 도시성의 상관관계 및 그 영상시적 감수성은 배제한 채, 단순히 천사와 인 간의 도식적인 멜로드라마에 치중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영화적 관심사는 항상 도시였다. 그는 뮌헨의 영화학교(Hochschule f r Film und Fernsehen: HFF) 졸업작품으로 연출한 ‘도 시의 여름(Summer in the City)’(1970)에서부터 도시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겨울의 황량한 뮌헨과 베를린을 잔잔한 롱테이크 로 담아내며 분단된 독일의 암울한 정서를 서정적으로 표출했다. 그의 독특한 로 드무비 ‘도시의 엘리스(Alice in den St dten)’(1974)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제시하며, 함부르크와 뉴욕 그리고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인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1977)에서도 도시는 영화적 중심어로 기능 한다. ‘파리 텍사스(Paris, Texas)’(1984)의 이야기는 LA와 텍사스의 사막을 주요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리스본 스토리(Lisbon Story)’(1994)는 제목 그대로 포

베를린 천사의 시(1987) 감독: 빔 벤더스

출연: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르틴, 오토 샌더 등

GERMANY NETHERLAND

BELGIE

FRANCE

SWISS AUSTRIA ITALY

베를린(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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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투갈의 수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의 유일한 SF영 화 ‘이 세상 끝까지(Bis ans Ende der Welt)’(1991)는 심지 어 여러 대륙에 걸친 도시적 경험을 담고 있다. 벤더스를

‘길 위의 거장’으로 만든 그리고 그의 도시 이야기의 정점 을 장식하는 영화는 바로 ‘베를린 천사의 시’다.

벤더스의 마스터피스(masterpiece)로 칭송받는 이 영화 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다. 독일어 원제목 은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ber Berlin)’이다. 이 제 목은 하늘의 시점으로 내려다본 베를린을 강조하며, 따라 서 도시 베를린과 베를린의 시민 그리고 베를린의 역사를 영화의 본질로 제시한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에서 영화는 각각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Les Ailes du Desir)’

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감독이 직접 선택한 이 제목은 날개를 가진 천사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서사의 중 심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원제목이 제시하는 도시의 공적 인 관점(history)보다는 사적인 이야기(lovestory)를 강조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베를린 천사의 시(ベルリン天使の詩)’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천사를 비롯 한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시적 대사를 영화 미학적 핵심으 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1993년에서야 개봉된 한국은 일본

의 제목을 그대로 번역했으며, 이는 당시의 영화평론들이 일본의 영화매거진을 그대로 번역하던 관행이 있었기 때 문이다.

천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베를린

우선 독일어 원제목이 지시하는 베를린의 장소성을 살펴 보자. 영화 속 현재는 아직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 되어 있던 1987년이다. 이 시기에 장벽을 통해 물리적으 로 분리되어 있던 유일한 도시 베를린은 국가의 상반된 이 데올로기에 의한 전쟁의 상흔이, 그에 따른 번뇌와 고뇌 가 가득한 장소다. 천사 카시엘이 독일의 경제부흥을 상 징하던 딱정벌레 자동차 케퍼(K fer)를 타고 가며 내다보 는 창밖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처참한 장면들이 펼 쳐진다. 삶의 궁극적 아름다움은 그것의 미화가 아닌 일상 적 모습임을 주장하듯, 영화는 매우 정제된 이미지로 베를 린의 어떤 측면도 양식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는 베 를린의 이곳저곳을 때론 부유하듯, 때론 휘젓듯 미끄러져 다닌다. 샤를로텐부르크 궁전(Charlottenburg), 국제콘퍼 런스센터(ICC), 쿠담거리(Kudamm), 지하철 1호선, 포츠 영화와 도시 32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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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광장(Potzdamer Platz), 국립도서관 등등. 이곳은 모 두 독일의 역사성과 베를린의 장소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 는 공간들이다. 각 장소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구조의 틀로 삼아가며, 천사들은 베를린의 과거와 현재를 서로 엮 어 낸다.

특히 호머(Homer)라는 이름의 노인이 국립도서관에 서 역사책을 뒤적이며 꿈꾸는 ‘평화의 서사시(Epos des Friedens)’는 이 도시의 장소성을 환기시킨다. 그가 천사 카시엘을 동반하고 찾아간 포츠담 광장은 그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다. 이곳은 이제 장벽으로 양분되고 산업화 과 정에서 소외되어 황량하게 방치된 공터가 돼버렸다. 이렇 게 호머는, 마치 그리스의 이야기꾼 호메로스(Homeros) 의 영령이 베를린의 하늘을 떠도는 것처럼, 군국주의와 전 쟁 그리고 나치와 이념의 대립이라는 독일의 역사를 오늘 의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이때 삽입되는 다큐멘터리 영상 은 도시의 장소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적 장치일 뿐만 아니라, 베를린을 시공간적으로 관통하는 역사여행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에 대한 우울한 회상에 취해 있지만은 않는다. 역사 적 파편 이외에 천사들의 관찰 대상은 늘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공간적으로 열린 베를린의 하늘 아래 모든 인간들 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 속에서 때로는 외롭 고 고독하지만, 때로는 소원과 비밀 로 가득한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여 기에 서정적 광채를 부여하는 것은 바 로 프랑스의 전설적인 촬영감독 앙리 아르캉(Henri Alekan)의 아련하고 우 수에 찬 흑백영상이다. 장 콕토(Jean Cocteau)의 카메라 조감독이었던 그

는 ‘사물의 상태(Der Stand der Dinge)’(1982)를 찍으며 벤더스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영화는 이렇게 공적인 사 실에 개인적 감정을, 과거의 역사에 현재의 정서를 적절하 게 혼합한다. 따라서 ‘베를린 천사의 시’는 도시를 위한 영 화적 변론이라 할 수도 있다. 도시의 역사적 상처를 아프 게 들춰내지만, 동시에 인지하지 못했던 현실성을 발견하 여 사랑이 넘치는 시선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베를린의 초상은 전적으로 두 수호천사 카시엘 과 다미엘의 눈과 귀를 통해 전달된다. 천사들은 도시의 어디든 존재할 수 있으며, 베를린 장벽 역시 방해물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삶의 중요한 변곡점에 여지없이 등장하여 인간의 내면을, 즉 ‘사고의 목소리(Gedankenstimme)’를 경청한다. 천사들은 때로는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자의 모 든 감각을 위로하고, 때로는 목숨을 끊으려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자의 심정을 안타까워한다. 이때 천사의 관점은 관 객과 일치하며, 따라서 인간의 내적 목소리는 내레이션으 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전지적 발화자의 관점은 본래 전적

그래피티와 그림으로 장식된 베를린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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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영화적인 것이긴 하지만, 무수한 인간의 내면을 중첩 된 독백으로 처리한 것은 매우 특별한 시도다. 이로써 일 상적 삶을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제화되기 때 문이다. 특히 천사들이 도서관에서 독서 중인 사람들의 내 적 활동에 동참하는 모습은 영화적으로 매우 특별한 순간 이다. 천사들의 집결장소인 – ‘교회’가 아닌 – 도서관에 서 떠다니는 카메라는 공간에 운동성을 부여하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의 ‘사고의 목소리’를 엿듣는 천사들은 내면의 공간화라는 매력적인 모습을 선사한다. 이때 부유하는 카 메라의 모든 이미지에는 태연함과 침착함이 깔려 있으며, 천사의 세심한 자세는 도시인을 매우 사랑스럽게 표현한 다. 이렇게 아르캉은 도서관의 실내공간을 지적이고 영적 인 공간으로 그리고 시간성이 가득한 공간성으로 치환시 킨다. 이러한 천사의 시선은 감독의 끝없는 노력에 따른 결과였다. “천사의 시선은 과연 어떨지 끊임없이 질문했 다. 수많은 시도 끝에, 세상의 어느 크레인이나 트래킹 쇼 트도 천사의 시선을 묘사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카메라 움직임의 문제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사랑 이 가득한 시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위해 죽음과 시간의 강으로 뛰어들다

사랑으로 가득한 천사의 시선은 영화의 영어·프랑스어 제목인 ‘욕망의 날개’와 얽혀 들어간다. 이 욕망의 이야기 는 천사 다미엘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 는 마치 자신이 천사인 양 날개를 달고 서커스의 공중그 네를 타는 곡예사 마리온(Marion)과 사랑에 빠진다. 그 녀와의 사랑을 현실화하기 위해 다미엘은 영적인 존재로 서 인간사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천사의 자격을 포 기하려 한다. 그의 ‘인간적’ 결심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한때는 천사였지만 지금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선배 천사’ 피터 포크(Peter Falk)다. 현재는 미국의 유 명 배우로서 독일의 나치에 관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한 그는 천사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보 이진 않지만, 거기 있는 거 알아요. 느낄 수 있어요.… 당 신 얼굴을 보고 싶어요. 이곳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말 해주고 싶어요.” 피터와의 만남 이후 다미엘은 인간으로 의 변신을 결정한다. 다미엘은 카시엘에게 자신의 결정을 전달한다. “시간의 강, 죽음의 강으로 뛰어들겠어.… 쳐 영화와 도시 32

국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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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본다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에 서 발생하는 거야.” 그리고 그는 고대 기사의 갑옷을 밑천 으로 세상으로 내려온다. 인간이 되면 일단 “목욕부터 하 고 터키 이발소에서 면도를 받을 거라던” 다미엘, 그가 인

간으로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은 형형색색의 그래피티로 장식된 베를린 장벽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컬러로 변하고, 베를린은 색채를 입는다. 천사에게 베를린은 과거를 상징 하는 혹은 감정이 배제된 흑백이었지만, 인간에게 이 도시 는 역동적이며 찬란한 현실이다. 이 순간은 마치 고전영화 의 시적 리얼리즘과 현대영화의 현란한 판타지의 강렬한 대비처럼 다가온다. 물론 한 번 색채의 베를린에 발을 디 딘 천사는 과거 흑백의 베를린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시가 읽어주는 세상 그리고 영화

마지막으로 한국·일본의 영화제목 ‘베를린 천사의 시’가 반영하는, 즉 시네포임(cin po me)의 측면을 살펴보자.

영화의 운문적 특징은 벤더스와 함께 공동으로 각본을 작 업한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필체에 기인한 다. 한트케가 이 영화를 위해 쓴 대사는 정제된 독일어의 절정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천사의 시(적 대 사)는 인간의 삶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도시 베를린의 장소성으로 치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네포 임으로서의 영화의 정체성은 오프닝에서부터 드러난다.

종이 위에 시를 적어 내려가는 손의 클로즈업이 화면을 가 득 채우는데, 손 안의 만년필이 써내려가는 글은 한트케 의 ‘유년기 노래(Lied vom Kindsein)’다. “아이가 아이였 을 때(Als das Kind Kind war)”로 시작하는 이 시는 천사 다미엘의 서정적이고 회고적인 목소리로 낭독되며 관객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도시 이미지 위주의 영상은 서정시적 감성을 두른다. 시를 써내 려 가는 손의 클로즈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 하며 수미상관의 형식을 취한다. 인간계로 내려와 시간의 유한성 속에 갇힌 삶을 시작한 다미엘이 시의 마지막 구절 을 낭독한다. “난 이제 안다. 어떤 천사도 알지 모르는 사 실을.” 그리고 마침표를 찍는다.

베를린 장벽

베를린 거리 풍경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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