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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인물화(人物畵)에 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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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5 卷 第 2 號 2 0 0 4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15, No. 2, Page 219~227, 2 0 0 4

모딜리아니의 인물화(人物畵)에 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李 炳 郁

*

A Psychoanalytic Comment on Modigliani ’s Portraits

Byung-Wook Lee, M.D.*

머 리 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는 36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한 20세기 서양화단 최대의 이단아였다. 불꽃같은 정열과 방황으로 점철된 그의 짧은 인 생은 오로지 예술적 창조만을 위해 바쳐진 한순간의 폭풍 과도 같은 삶이었다. 오늘날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모딜 리아니의 작품에 열광적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그만의 독창 적인 화풍뿐 아니라 그의 특이한 인물화(人物畵)에서 풍기 는 매우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간이 배제되 어버린 추상적인 현대 회화에서 모딜리아니만큼 사람의 모 습에 집착했던 화가는 그리 흔치가 않다. 인간성 상실의 문 제는 모든 예술 분야에 공통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 한 시대 풍조 속에 무모하리만큼 인물상에 집념을 보였던 모 딜리아니의 존재는 실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 람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의 인물상들이야말로 인간이 소외 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듯하다. 모든 것이 해체되고 파편화되어가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절실해진 인간다움의 상실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통 하여 복원(復原)된다. 고통과 절망의 심연까지 다다른 한 천 재적인 화가의 염원은 진정 인간다움의 복원이었을 것이다.

비록 술과 마약에 찌든 삶 속에서 정신적 방황으로 일관하 긴 했지만 모딜리아니는 그럴수록 더욱 인간적 관계의 회복 을 바라며 자신의 염원을 화폭 속에 투영하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갔던 것이다. 그가 몸담았던 세기말적 냉소주위와 허 무주의적인 불안정한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 는 그러한 시대사조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옹골지게도 자신

만의 독특한 예술정신을 구현시키고자 몸부림치며 살다간 시 대의 이단아였다. 동시대를 살았던 피카소가 세속적인 부귀 영화를 누린 반면에 모딜리아니는 그러한 현실적 타협을 거 부한 채 입체파가 주도한 인간의 해체가 아니라 진정한 인 간성의 복원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바치고자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모딜리아니의 인물화에 나타난 독창적인 모습과 기법을 통 하여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창조적 정신의 본질과 근원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모딜리아니의 생애(生涯)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의 한 작은 항구도시 리보르노에서 세파르디계 유태인의 가정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쪽은 전형적인 유태 계 상인 집안이었으나 어머니는 그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 의 후손이었다.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재능을 일찌감치 감지 하고 키워준 장본인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장남 엠마누엘 은 변호사가 되어 이후에 사회주의 당원으로 의회에도 진 출했으며, 차남 움베르토는 광산 기사가 되었다. 그러나 유 독 막내아들 아메데오는 예술가의 세계를 고집하며 고향을 떠나 파리로 진출했다. 모딜리아니의 어릴 적 별명은 철학 자였다고 한다. 깊은 사색과 시적인 몽상에 몰입하기 일쑤였 던 그가 예술적 향기에 심취하게 된 계기는 소년시절 중병 에 걸려 앓아눕게 된 이후 결핵 요양 차 어머니와 함께 로 마, 피렌체, 베니스 등을 여행하면서 이태리 고전미술을 접 하면서부터였다. 정규교육을 중단하고 미술공부에 전념하게 되면서 그는 이미 뛰어난 데생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모딜리아니 자신은 오로지 조각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며 그러한 소망은 죽을 때까지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집요한 것 이었다. 아버지는 그러한 선택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 어 머니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결국 그는 파리로 진출할 수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Psychiatry, Hallym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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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게 되었다. 약관 22세의 나이에 파리 몽마르뜨에 자리 잡 은 그는 처음에는 매우 산뜻한 출발을 내딛는 듯 했으나 얼 마가지 않아 큰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의 파리 화단을 주도 하던 입체파, 야수파의 생경한 화풍에 그는 당혹하고 말았 던 것이다. 조각가의 꿈을 이루고자했던 그는 현실적인 제 약으로 곧 실의에 빠졌으며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 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번민과 좌절의 늪에 빠진 그는 술과 마약에 손을 댔으며 주위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그러는 가운데 영국의 여류작가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와의 만남은 새로운 창작의욕을 불태 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만의 독창적인 화 풍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시인 막스 자콥과 아폴리네르, 화가 수틴과 키슬링 등과의 교류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헤이스팅스와 결별 후 그는 화가 지망생 잔느 에뷔테른느 를 만나 동거에 들어갔으며 딸 잔느를 얻었다. 그의 딸 잔 느 모딜리아니는 후에 저명한 미술사가가 되었다. 그러나 가 난과 병세의 악화로 갑자기 쓰러진 그는 급히 자선병원에 옮겨졌으나 수 일 만에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 다. 그가 죽고 난 직후 그의 아내 잔느 역시 남편을 따라 만 삭의 몸으로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남편의 시체에서 떨어지 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잔느의 모습은 동료들의 가슴을 아 프게 했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그녀는 남편의 묘에 합장될 수 있었다(Salmon 1957).

모딜리아니의 짧은 생애는 그야말로 비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말대로 굵고 짧게 그러나 강렬하게 살다간 비 극적인 천재 화가였다. 불꽃 튀는 정열과 투혼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난을 뚫고 나가려다 주저앉고만 모딜리아니 의 창조적인 삶은 단순히 마시고 떠들다 죽은 한사람의 화 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의 혼이란 과연 무 엇인지를 우리에게 온몸으로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작품세계(作品世界)

모딜리아니의 가장 독특한 점은 거의 전적으로 인물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른 많은 동시대의 화가들 처럼 파리의 풍경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 전적으로 사람에 만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서양화의 역사 에서 이는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조선미(1995)는 일기 나 자서전 그리고 자화상의 성립 과정을 비교하면서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정리되는 자서전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의 윤색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화가들의 경우에는 즉각적 인 자기와의 대결의식이 요구되는 작업의 특성상 그들의 성 격과 내면적인 심리상태가 더욱 진솔하게 전달된다고 하였

다. 따라서 충동에 의해 떠밀리듯 그려진 자화상이야말로 화 가들의 가장 진지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모 딜리아니 역시 자화상을 남겼지만 뭉크나 반 고흐만큼 여러 작품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연인, 동료 들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만을 대상으로 작품을 남겼다는 점 이 특색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딜리아니의 인물화는 대부분 이 실명을 지닌 대상들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결같이 실내에 다

소곳이 자리 잡고 앉아있으며 소도구나 배경 화면 장식은

과감히 무시되고 있다. 오로지 인간의 얼굴과 상체만이 부

각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모딜리아니 작품의 전

매특허이기도한 갸름한 계란형의 옆으로 약간 기울어진 얼

굴과 역시 계란형의 몸통, 백조처럼 길게 늘어진 목, 아몬

드형의 길게 찢어진 눈매, 동공이 없는 기묘한 눈, 초점을

잃은 채 방향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

고 다소곳하게 맞닿은 손, 전체적으로 무언가 긴장감이 감

도는 분위기, 절묘한 색채의 대비 등은 그만의 독특한 매력

을 발산한다. 장소현(2000)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빠져들

다 보면 어디선가 사과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그것은

매우 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감추기 어려운 사람 냄

새이기도 하며 그 냄새의 바탕은 인간에 대한 진한 사랑이

라는 것이다. 그와 절친했던 리투아니아 출신 유태계 화가인

수틴의 작풍이 매우 격렬하고 야성적인데 반하여 모딜리아

니의 화풍은 섬세하고 우아한 기품에 가득 차있다. 평소에 그

가 보여준 거칠고 제멋대로인 행동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Wer-

ner(1985)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예술가가 현

실생활에서 어떠한 병리학적 특성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가 창조한 작품은 건강한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술친구 위트

릴로가 그린 안정된 구성의 파리 풍경을 보고 그 작가가 술

주정뱅이요 인생의 낙오자였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

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갖는 뛰어난 안

정감과 현실생활의 극심한 불안정 사이의 대조에 놀라곤 한

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내적 고뇌에 비하면 그의 불안정

하고 고통스러운 외적 경험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러한 주

장은 시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모든 창작품이 작가의

정신적 건강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약물에 의한 환각상

태에서 그려진 예술가의 작품 모두가 건강하다고 단언할 수

도 없다. 물론 예술지상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떠한 악도

예술이라는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면 그 모든 죄가 용서될 수

있다고 보겠지만 그것은 종교지상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측

면이 있다. 그러나 예술이든 종교든지 간에 사이비 예술과

사이비 종교는 엄연히 존재한다. 예술이나 종교의 옷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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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고 해서 모든 허물이 탕감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딜

리아니의 회화가 감동을 주는 것은 타락한 심성의 자기합리 화가 아니라 내재된 인간사랑에의 염원을 드러내기 때문이 다. 진한 인간적 사랑의 내음이 그의 모든 작품마다 배어나 오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인간해체가 아니라 인간복원의 희구를 화폭에 담았다.

이태리의 고전미술에 대한 심취로 시작된 모딜리아니의 미 적 안목은 파리에서 세잔느의 그림들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으면서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파리 화 단에 몰아친 입체파, 야수파 등의 혁신적인 운동을 전혀 예 상치 못했던 그로서는 매우 당혹스런 상황을 맞이하여 크나 큰 갈등을 겪어야만 되었다. 이 시기의 모딜리아니는“나의 저주받은 이탈리아의 눈이 파리의 광선에 익숙해지지 않는 다.” 고 하면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실 제로 그는 파리의 광선을 화폭에 담지 않았다. 모딜리아니는 오로지 실내에서만 작업했으며 파리의 거리는 관심 밖이었다.

이처럼 모딜리아니는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처럼 파리의 풍 경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그와 절친 했던 술주정뱅이 친구 위트릴로는 전적으로 인간이 배제된 파리의 풍경만을 그렸지만 모딜리아니는 집요할 정도로 인 물화만을 고집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그토록 절실해서 였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조각에 대한 그의 집념 또한 풍경에 대한 무관심에 일조했을 것 같다. 조각은 풍경을 묘 사할 수 없다.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조각품들은 이스터 섬 의 조각상을 연상시킨다. 독일의 미술사가(美術史家) Sch- malenbach(1990)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면 밀히 조사하는 가운데 조각뿐 아니라 회화에서도 혁신적인 독창성의 부재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딜리아니가 처 한 삶의 조건을 도외시한 채 작품만을 갖고 관찰한 것이기 에 매우 부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조각에 대한 모딜리아니의 열정에도 의문을 표시했지만 모딜리아니는 결 코 자신의 꿈을 포기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돌조각이 그의 건강을 해친다는 점과 비싼 재료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 다는 점, 당시에는 조각품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점 등이 그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회화 방면으로 선회하게 만들었 지만 그것은 단지 생활고를 해결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인물화는 불세출의 걸작으로 길 이 기억될 것이다.

인물화(人物畵)의 특징(特徵)

모딜리아니는 왜 모든 인물들의 목을 길게 늘어뜨려 놓았 을까. 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슬픈 백조의 고독을 읽었는가.

백조의 긴 목처럼 길게 늘어진 사람들의 목덜미는 보는 이 로 하여금 슬픔과 고독,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모딜리아 니는 자신의 감정을 모델에게 투사 및 전치시킨 것인지도 모 른다. 그러나 단지 투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는 모델과 무 언의 감정이입적 교류를 통한 정서적 합일의 경지에서 인간 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근원적인 고독과 슬픔 및 불안 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시인 노천명은‘목이 길어 슬픈 짐 승이여’ 라며 사슴을 노래했지만 길게 늘어진 목은 뭔가 이 루지 못한 꿈을 동경하며 슬픔에 잠겨있는 모습을 연상시킨 다. 모딜리아니 자신 역시 이루지 못한 꿈과 소망에 대한 깊 은 좌절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상적인 어머 니상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루지 못한 조각에의 열정, 세 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실의의 나날들, 지독한 가난과 굶 주림 등이 그의 유독 강한 자존심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었 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그러한 심리적 고통의 근원 과 동일한 것을 그가 접했던 다른 많은 주변 인물들에게서 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실로 그가 보인 심리적 통찰 은 매우 분석적인 것이다. 마치 이스터 섬의 조각상들이 한 결같이 머나먼 바다를 향해 서있는 것과 같이 그리고 하염 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과도 같이 그는 자 신의 꿈과 희망에 대한 미련을 다른 사람들의 내면 속에서 도 읽어냈을 것 같다. 그런 점 때문에 특히 그는 이스터 섬 의 조각상을 닮은 조각품을 남긴 것이 아닐까 한다.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는 또 왜일까. 모딜리아니

는 소년시절에 피렌체에서 목격한 티노 디 카마이노의 조각

품에서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계란형의 얼굴을 한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여인상(女人像)과 천사상(天使像)이

었는데 그는 여기서 무한한 자애로움의 감동에 전율했다. 티

노가 남긴 안토니오 델리 오르시 주교상(主敎像)에서도 마

찬가지의 영감을 느꼈다. 원통형 목 위에 갸우뚱 기울어진

얼굴로 배치시킨 구도와 전체적으로 통합된 장식적 디자인

에서 받은 영감은 모딜리아니의 작품구도에 결정적인 영향

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에서

느껴지는 신비감과 따스한 자애로움은 그 자신의 어머니에

게서 느낀 모성적 따사로움에 대한 깊은 향수와도 관련이 있

을 수 있다. 모딜리아니의 어머니는 1886년 5월 17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895년 여름에 쓴 그녀의 일기에

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데도(아메데오의 애칭)는 늑

막염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나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의 성격은 아직 뭐라고 할 만큼 충

분히 형성된 것은 아니다. 아직 개구쟁이에 불과하지만 지

성이 없는 아이는 아니다. 이 번데기의 내용이 무엇일지 우

리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혹시 예술가?” 이 마지막 구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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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어머니로서 어린 아들의 장래에 대한 기대와 우 려가 함께 녹아있으며 이처럼 자상한 어머니의 반문 속에는 귀여운 아들의 미래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어머니의 미 소와 자애로움이 한껏 스며들어 있다. 인생에 대한 의문, 뜻대 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 현상들 앞에 수줍은 듯 어색한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인 모습은 소극적인 의 문부호와 함께 주저하는 몸짓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특징은 보 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매우 비슷한 그의 누드화 [비너 스]에서도 볼 수 있다. 두 작품 모두에서 비너스는 고개를 살 짝 옆으로 기울이고 선 자세로 오른손으로는 한쪽 젖가슴을 그리고 왼손으로는 자신의 성기 부분을 가리고 있다.

계란형의 몸통도 특이하다. 밋밋한 원주형이 아닌 보다 율 동적이고 관능적인 조형미로 구성된 계란형의 몸통은 몸집 이 큰 서구인들보다는 오히려 날렵한 동양적 여인상에 가깝 다. 육감적이고 풍만한 여인상에 익숙한 서구인들에게는 이 러한 계란형 몸집의 인체 묘사가 매우 신선한 자극으로 전 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타원형이 갖는 부드러운 곡선의 미 묘한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곡선의 배치는 전체적 인 화면의 구성을 매우 안정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그가 이 처럼 계란형 또는 타원형의 묘사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안정적인 듯 보이는 원통형의 무미건조함에 대 한 반발이요 율동적인 조형미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되었다 고 볼 수 있다. 타원형은 얼핏 신경과민적이고 불안정해 보 이지만 정적인 것이 아닌 역동성을 부여해준다. 그것은 영원 한 구원의 여인상인 어머니의 자태에 대한 미묘한 양가적 태 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를 보면 풍요의 상징인 어머니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타원형은 몸통뿐 아니라 눈에도 적용된다. 타원형 으로 길게 찢어진 눈매는 분명 서구적이지 않다. 오히려 극 동 지방의 동양인들 눈매에 가깝다. 이는 동양적 명상과 신 비주의를 지향하는 모딜리아니 자신의 내면적 욕구와 관련 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진정한 뿌리는 동양에 있었다.

영원한 파리의 이방인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고향 이태리에 도 돌아갈 수 없었다. 사실 모딜리아니는 잘생긴 용모뿐 아 니라 매우 아름다운 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 신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인물들의 눈에서 동공을 삭제시키 거나 적당히 얼버무려 놓았다. 마치 외계인의 눈처럼 푸른색 으로 덧칠해버린 경우들이 많다. 모딜리아니는 시선공포증 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기록상에서 살펴보면 그런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동공 자체의 생략이라는 사실이다. 인종의 차이는 동공의 빛깔로 가려진 다. 유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자부심이 매우 강했던 모딜리 아니는 동공의 색으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차별성에 대해 강

한 반발심을 지녔을 수도 있다. 이주헌(2003)은 모딜리아

니의 작풍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잔느 에뷔테른느의 초상

들에서 푸른색으로 처리된 눈동자와 길게 늘어진 목, 옆으로

기울어진 고개 등을 통하여 두 사람 사이에 서로 교감되는

삶에 대한 의문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짧은 기간 동

안에 모딜리아니는 26점에 이르는 잔느의 초상화를 남겼는

데 이 시기에 그는 마약도 끊고 타인들과 다투는 일도 없

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은“천사 같은 잔느가 모딜리아니를 구

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초기에 그려진 잔느의 초상에는 원

래 푸른 눈을 지닌 그녀의 동공이 검게 그려진 점을 볼 때,

모딜리아니는 그러한 인종적 차이를 거부하는 태도가 드러

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동공의 색

깔이 아니라 내면적인 공감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동

공이 없는 인물들의 특징은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화가를 응시하는 것인지 밖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각자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는지 도

저히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의도적인 처리는 모딜리아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몰두했던 그의 행적을 통

하여 짐작해볼 수 있는 점은 의례적인 인간관계보다는 내

면적인 교류, 더 나아가 각자의 내면적 성찰을 강조하기 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딜리아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겉으

로 드러난 외형적 가면들을 모조리 파기하고 진정한 내적

교류를 원한 것일 수도 있다. Werner(1985)는 모딜리아니

의 신경증적 경향을 지적하면서 고통 받는 영혼의 표상물

로 상징되는 그 자신의 자화상을 유독 많이 남겼다는 점에

서 유아론자라고 하였다. 또한 그의 편집증적 자폐성향은 세

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인하여 인물들의 시선이 밖

으로 향하지 못하고 내면으로 향하도록 함으로써 거의 모든

모델들의 형태가 둥근 원주형 몸통과 백조형의 긴 목, 그리

고 타원형으로 찢어진 눈, 또는 눈을 감고 있는 모습으로 묘

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면 좌충우돌하는 것 같

이 보이는 모딜리아니가 실은 매우 인간지향적이었다는 점

이 작품상에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대부분의 인물상

들은 다소 긴장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불안정한 모습보다는

매우 안정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Krus-

zynski(1996)는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이 얼핏 보면 매우 단

조롭고 무미건조해 보여서 지루한 감마저 들기도 하지만 자

세히 음미하면 할수록 그의 독창성이 돋보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모딜리아니는 분명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큐비즘

(Cubism, 立體派)이나 포비즘(fauvisme, 野獸派) 및 미래

파(futurism, 未來派)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점도 이

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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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내면 깊숙이 뿌리내린 르네상스 및 로코코 양식 고

전미술의 영향이 그만큼 강한 인상으로 그를 사로잡고 있었 기 때문이며 그러한 확고한 안정감이 현실생활에서 매우 불 안정하고 돌출적인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화 면을 지탱해주는 강한 원동력이 된 듯 싶다.

모딜리아니의 인물화에 나타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 중 의 하나는 웃음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살짝 웃는 미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삶에 지친 모습이거나 약간 긴장된 분위기 가 감돈다. 분노에 가득 찬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절제된 안정감을 기본으로 하고는 있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들 은 결코 아니다. 심지어 벼락부자가 된 신랑신부를 묘사한 [신랑과 신부]에서도 부부의 모습은 무표정에 가깝다. 모딜 리아니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에서도 그 들의 심연을 꿰뚫어보는 안목으로 그들의 내면적인 공허함 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친구 막스 자콥의 진 술에 의하면 말년의 모딜리아니는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 고 한다. 이처럼 모딜리아니는 표면적인 외형을 단순히 모사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찰 대상의 내면적 상태를 분 석하고 자신의 심리적 상황을 가미하여 복합적으로 묘사해 내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딜리아니의 정신역동(精神力動)

한 예술가의 삶을 추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고 털어놓은 Salmon(1957)은 모딜리아니와 매우 절친한 사 이였다. 그러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록으로 남긴 모 딜리아니의 삶은 가장 신뢰성이 높은 전기로 평가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은 당연히 그 한계를 지니고 있 음을 Freud(1925) 자신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특히 레 오나르도 다 빈치의 아동기 갈등에 대한 연구나 미켈란젤로 의 모세상에 대한 분석에서 보인 프로이트의 접근방법은 매 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러한 프로이트의 방 법론적 한계는 Eissler(1961)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보완 되기는 했지만 분석적 작업의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그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이론이 기존의 학계보다 는 오히려 예술가의 세계에서 더욱 적극적인 수용을 보였 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으로 들린다. 모딜리아니의 사후에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살바도르 달리, 미로, 에른스트 등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을 자신들의 작 품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화가에 대한 정 신분석적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미미한 편이다. 국 내에서는 반 고흐(李武石 1997)를 위시하여 피카소(金惠男 등 1998), 뭉크(李炳郁 1999), 장욱진(김수연과 하지현 2004)

등에 관한 연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에 대한 분 석적 해석은 자칫하면 정신적 산물의 물질화에 따른 가치 의 평가절하로 이끌 수 있는 위험성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 한 역효과 때문에 일찍이 Arnheim(1974)처럼 예술에 대한 분석적 해석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시한 인물들도 많다.

金惠男(1995)도 이에 대한 우려를 이미 표명한 바 있지만, 무분별한 분석과 해체의 작업은 진정한 분석적 태도가 안 될 것이며 반드시 지양되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창조적 원천이 무의식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된지 오래다. 무의식은 비논리의 세계이며 따 라서 예술가에게 논리는 불필요한 것이다. 또한 예술의 목 적은 갈등의 해결과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 이기도 한다. Arieti(1976)는 창조적 작업에 있어서 일차과 정사고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특히 예술적 작업에서는 논리 에서 벗어난 욕망과 환상을 다루는 수가 많기 때문에 무의 식적 사고의 중요성이 그만큼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성의 주체는 건전한 인성과는 무관한 것이며 오 히려 창조적 작업을 통하여 자기치유의 능력을 발휘함으로 써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수가 많다고 하였다. 수많은 전설 적 에피소드를 남긴 모딜리아니의 실체는 자세히 알고 보면 위대한 영웅도 구제불능의 패륜아도 아니다. 그는 단지 열 정과 이상 그리고 냉엄한 현실적 고통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며 살다간 한 무명의 화가였을 뿐이다. 그러나 천부적 인 재능은 자신이 선택한 예술적 창작활동을 통하여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위안은 그림 에 몰두하는 일 이외에 술과 마약, 그리고 헌신적인 한 여 인의 사랑 밖에 없었다. 세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으며 그 로 인한 심리적 상처는 자신이 창조한 화폭 속에서만 치유 될 수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막내아들로서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보호

속에 성장했다. 자상하고 사색적인 어머니의 존재는 그에게

무한한 힘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뿐 아니라 방대하고도

깊이 있는 교양적 소양에 대한 교육 및 데생에 대한 조숙한

소질의 개발에도 어머니의 격려와 후원이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했다(Brenot 1997). 그러나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

시키기 위해 파리로 떠나게 되는 순간 그는 근원적인 이별

불안을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파리 시절 그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방황은 그러한 이별과 분리에 따른 우울반응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딜리아니는 그러한 딜레마에서 벗어

나기 위해 술과 마약, 교우관계, 이성관계의 추구 등으로 탈

피하고자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심신의 피로

가 한계에 달했을 때마다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원기를 회

복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어머니의

(6)

모딜리아니의 인물화(人物畵)에 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224

곁으로 돌아가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소 신경질적이었던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와의 만남은 영 원한 모성적 자애로움을 추구하는 그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제공하지는 못하였다. 모딜리아니가 남긴 베아트리스의 아 름다운 초상들은 다소 신경질적이며 경쟁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다분히 도발적인 그녀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오 히려 두 번째 여인 잔느가 오히려 그에게는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극진한 사랑은 어머니 의 사랑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지독한 가난과 병세의 와중 에서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그를 따라 아파트 6층에 서 뛰어내려 투신자살할 정도로 그를 끔찍이 사랑했던 잔느 의 행동에서 우리는 모성적 본능의 위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진실한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실로 그리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Rose(1991)는 모딜리아니의 연인 베아트리스 헤이스팅 스와 동성애 시인 막스 자콥과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언급하 면서 모딜리아니의 특이한 양성적 성향에 주목하였다. 그러 나 모딜리아니를 진정한 보헤미안으로 간주했다는 점은 다 소 본질에서 벗어난 느낌이 든다. 모딜리아니보다 좀 더 오 래 살았던 친구 막스 자콥은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1944년 나치의 한 수용소에서 굶어 죽었다. 모딜리아니 역시 36세 라는 젊은 나이로 일찍 요절하지 않고 그처럼 좀 더 오래 살 았다 하더라도 나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딜리아니는 막스 자콥의 초상을 여러 점 남겼는데 우수에 가득 찬 그의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막 스 자콥과의 친교는 신비주의적인 철학적 공감대의 형성 및 외로운 이방인으로서의 동류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 일부 평 자들이 말하는 단순한 동성애적 관계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모딜리아니가 속한 에콜 드 파리의 멤버들은 그처럼 외부에 서 흘러든 소외된 이방인들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동병상린 의 입장에서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이다. 특히 화가 위트릴로와 시인 아폴리네르는 모딜리아니 와 자주 어울린 술친구였다. 그들은 술로 인한 마법의 세계 에서 현실적 고통을 잊고자 했다. Lacroix(2001)는 맬컴 라 우리의 소설 [화산 아래에서]가 보여주는 술주정뱅이 주인 공의 파멸과정을 프로이트가 말한 도덕적 피학증에 견주었 다. 도망갈 여유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장 강도들에게 붙들려 무참하게 살해된다. 그는 매우 자조적인 음성으로 투덜거리면서 죽어간다. 이러한 자학과 자기파괴 적 충동은 술과 마약에 빠져든 모딜리아니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침울하고 어둡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구도의 그림을 그려나갔다는 사 실이 의외라면 의외겠다. 그런 점에서 Roy(1985)가 모딜

리아니를 자기파괴적인 어두운 영혼의 소유자로 본 것은 적 절한 지적이다. 다만 그러한 자기파괴적인 거친 행동은 자 신의 부르조아 출신 배경을 거부하고 벗어나려는 몸부림인 동시에 자신의 조각에 대한 열망을 이루지 못한 초조감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모딜리아니 자신의 나르시시즘적 욕구의 좌절로 인한 심리적 상처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실제로 모딜리아니의 외모는 역 대 화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용모를 지녔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닐 정도로 그는 잘 생겼다. 어떤 여성들이 보더라도 그 의 외모에 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정말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현실생활에서 받은 그의 나르시시즘적 상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파괴적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술과 마약 에 탐닉한 것이 그러한 반증이 된다. 우리는 그가 남긴 수많 은 인물화를 통해서도 그의 내면에 숨겼음직한 분노나 적개 심을 읽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체념에 가까운 자기 침잠 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에렌부르그는 모딜리아 니가 처한 시대적 배경에서 그의 우울 성향을 읽어내고자 했다. 모딜리아니의 비극을 이해하려면 마약이 아니라 독가 스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세기말적 몰락 의 징조에서 그리고 독가스 전쟁으로 얼룩진 제 1 차 세계 대전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서 그의 비극적 삶을 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언급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 어나 너무도 막연하고도 애매모호한 일반화의 함정으로 이 끌기 쉽다. 자신이 속한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데 거의 관심 을 보이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로서는 그러한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모딜리아니의 파리시절을 다룬 Jac- ques Becker(1957)의 영화 [몽파르나스의 등불]은 모딜 리아니역의 제라르 필립이 보여준 호연에도 불구하고 리노 벤튜라가 열연했던 악덕 화상 모렐과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묘사함으로써 진정한 모딜리아니의 내적 고뇌 및 창조적 열 정은 제대로 다루지 못한 감이 있으며 오히려 그의 삶을 몹 시 왜곡했다는 악평도 듣는다. 또한 막스 자콥 등 모딜리아 니의 삶에서 중요한 핵심 인물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 다는 점도 약점이다.

그의 성격상의 상호모순된 양면성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기질과 거칠고 난폭한 공격적인 기질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

등을 겪게끔 만들었다. 모딜리아니의 공격성은 그 기원이 어

머니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어머니를 독점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반항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모딜

리아니에 있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확실치가 않다. 그의 아

버지는 사업에만 열중하는 스타일로 가족의 일상적인 삶에

는 그다지 관여한 흔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모딜리

(7)

李 炳 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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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의 예술가적 진로에 대해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던 점

만은 분명한 듯 하다. 또한 모자간의 밀착된 정서적 관계에 대해서도 뚜렷한 개입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 머니를 독점하고 싶은 아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강력하고 두려운 경쟁상대로 각인되었을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세상과의 세속적인 타협에 그토록 거부적인 태도를 보 인 점으로 보아 모딜리아니의 다소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태 도는 이러한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모딜 리아니의 정신적 뿌리는 오로지 어머니의 존재와 맞닿아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모딜리아니에게 깊은 인 상을 안겨준 세잔느에 대한 Andre Beetschen의 결론은 매 우 시사적인데 그에 주장에 의하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세잔느의 일차적 동기는 결국 신비적인 어머니의 신체를 바 라보고 더듬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유명한 세잔느 효과라는 것도 그러한 원초적 쾌락과 도덕적 금지 사이에 조성된 긴장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Rizzuto 2002). 모딜리아니 역시 자신의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모 성적 세계에 대한 향수와 염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그러한 좌절과 실망은 창조적인 인물화 작업을 통해 위안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유태적 기원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의 인종적 뿌리에 대해서도 그는 매우 양가적인 태도를 지녔을 수 있다. 세속적인 상인 집안으로서의 아버지상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유태인상과 철학적인 지성의 면모를 이어 받은 어머니상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유태인상 사이에서 그 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수 있다. 그러한 혼란은 열등감 과 자부심이라는 상호모순된 태도로 나타난다. 그와 동시대 에 파리에서 활동한 수틴, 샤갈 등도 같은 유태계 화가였지 만 모딜리아니만큼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련의 작가 에렌부르그는 자 신의 회상록에서 모딜리아니가 보여준 격렬한 감정 폭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카페 옆자리에서 술 마시며 카드놀 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모딜리아니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흥분된 목소리로“닥쳐! 나도 유태인이야!”

라고 고함을 질러댔다고 한다. 대다수의 평자들이 모딜리아 니의 삶을 보헤미안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실제로 그는 여 기저기를 떠돌아다닌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파리의 술집 과 아틀리에 사이만을 오가며 작업에 몰두한 인물이었다. 물 론 그는 매우 극심한 정신적 방황을 겪으며 살다갔지만 대 부분의 예술가들이 그와 같은 방황 속에 고뇌하며 자신들의 삶을 꾸려갔다고 본다면 모든 예술가들이 보헤미안에 속한 다고 봐야한다. 또한 어느 특정한 그룹에 속하지 않고 홀로

소외된 가운데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보헤미안 적이라고 간주한다면 그 또한 적절치 않은 표현이 될 것이 다. 오히려 보헤미안이기 보다는 유태적인 특성으로 보는 것 이 더욱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만의 독특한 자부심 때 문에 무분별한 동화를 거부하면서도 예술적 성취와 현실적 성공에 대해 불타오르는 내면적 욕구를 물리칠 수도 없는 상 호모순된 상황 속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매우 유태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Klein 등(2004)은 모딜리아니에 대 한 전통적인 해석, 즉 반지성적이며 보헤미안적인 특성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뛰어넘어 유태계로서의 인종적 자부심 및 영적인 관심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그의 초기작에 속하는 1908년 작 [유태 여인]에서 이미 그러한 특성을 감지할 수 있다. 파리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모딜리아니 는 한 유태인 여성의 초상을 통하여 가까이 할 수 없는 어 머니에 대한 향수를 달랬는지도 모르겠다. 풍요로운 어머니 의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염원은 낙원에서 추방된 모든 이 들의 슬픔과 시련을 대변한다.

맺 음 말

화가는 눈과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육안 적인 관찰 대상은 화가 자신의 심안을 통해서 붓으로 전달 된다. 따라서 단순히 인식론적 관점에서 화가의 작품을 이해 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에 나타난 독특한 인물상들의 모습은 화가 자신의 내면적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모자 관계의 경험, 그리고 소년시절에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이태리 고전 조각상에서 받은 깊은 인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시를 사랑하고 철학적인 사색을 즐겼던 모딜리아 니는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한 열정으로 평면 적 회화보다는 공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조형물의 창작에 전 념하기를 원하였지만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 러나 그러한 조형미에 대한 추구는 모딜리아니의 인물화에 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사실적인 인물 묘사가 아니 라 인간적 교류를 통한 내면적 실상을 포착하는데 더욱 주 력하고 이를 형상화시켰다. 따라서 모딜리아니의 인물화에 서 느끼는 사람다움의 냄새는 지극히 자연스런 반응이다.

인간해체, 인간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회화에서 유독

모딜리아니의 존재가 돋보이는 이유는 오로지 인간에 관심

을 기울이고 살아 숨쉬는 구체적인 사람만을 그렸다는 점

에서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 관계를 사랑하고 열망했던가 하

는 사실을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

는데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그의 창조적인 도전정신

(8)

모딜리아니의 인물화(人物畵)에 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226

과 비타협적인 태도는 모딜리아니의 삶을 더욱 고통에 빠트 리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인물상에 그토록 집념을 보인 그의 독특한 개성은 인간 소외의 현대사회에 그 어떤 경종을 울리는 예언자적 면모를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간적 삶에 대한 그의 희구는 결국 모성적 사랑에 대 한 갈구이기도 하며 내면적 진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적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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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李 炳 郁

227 ABSTRACT

A Psychoanalytic Comment on Modigliani’s Portraits

Byung-Wook Lee, M.D.

Amedeo Modigliani(1884-1920) is a famous great Italian painter of the twentieth century. His beautiful drawings and primitivistic sculptures have been admired for decades but he abandoned his career as a sculptor for purely economic reasons.

His many incisive portraits reveal idiosyncratic figures that are skittle-shaped, swan-necked, and almond-eyed.

The eyes have no pupils. Especially, his portraits of women have a wistful loneliness, and he captures many moods and attitudes.

This paper studies the peculiar figures in Modigliani’s portraits by means of psychoanalytic understanding and methodology. This study is based on his life history and works.

The results are as follows:

1) Modigliani’s adherence to the portrait and neglect of the landscape represent repulsion of the contemporary artistic trend of dehumanization and disorganization, and the aspiration for the reconstruction of humanity.

His candid exclusion of the landscape reveals denial of and resistance against the external world.

2) The swan-like lengthened neck in his portraits means sorrow and yearning. It is a signal of ardent waiting and watching for the lost maternal world. The tilting head and neck is a basic question mark about the social absurdities around him. This position reveals the influence of Italian Renaissance paintings and sculptures.

3) The skittle-shaped face and body reveals the artist’s ambivalent attitude toward mother with denial of the aff- luent and plump maternal world, but his hidden yearning for mother comes to light in his nude paintings.

4) The oval, almond-shaped eyes without pupils have various meanings such as identity confusion related to his own Jewish roots in spite of his conscious pride of being a Sephardic Jew, and denial or undoing of racial discrimi- nation, and his inclination for non-westernized exoticism and primitivism and oriental mysticism as a lonely alien in Paris. The lack of gaze does not reveal disconnected communication, but the need for introspection.

KEY WORDS

: Modigliani·Portraits·Psychodynamic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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