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계 의 도 시 ∙ 8 8 H o n o l u l u
불의 신(神) 펠레(Pele)와 아열대 기후
영종도를 출발한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10시간 남짓 날아가면 푸른 물결 사이로 작은 섬들이 보인 다. 바로 하와이군도(Hawaiian archipelago)라 불 리는 곳이며, 여기에 화려한 대도시 호놀룰루가 있 다. 하와이 군도는 폴리네시아 지역의 북동쪽에 자 리잡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하와이섬(island of Hawaii)에서 니하우(Niihau)섬까지 서북 방향으로 649km에 펼쳐진 8개의 주요 섬들로 구성되어 있 다 . 호 놀 룰 루 는 제 주 도 보 다 약 간 작 은 (1,545.3km2) 오아후(Oahu)섬에 위치해 있다. 하 와이 군도는 용암 분출로 형성되었으며, 태평양 바 다 밑에 그 몸체를 숨기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은 에베레스트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저 를 기준으로 본다면 하와이섬의 최고봉인 마우나 케아(Mauna Kea)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될 것이다. 이 산은 해수면 위의 높이가 4,135m이고 아래가 5,400m다. 마우나케아와 쌍벽을 이루는 마 우나로아(Mauna Loa)산의 동남 사면에서는 지금 도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화산은 간헐적으로 폭발하는데 거대한 용암이 사면을 따라 흐르면서 아열대의 울창한 산림과 도로, 가옥 등 지상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그리고는 태평양에 닿아 거대한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그 자취를 감춘다. 이러한 장 관은 수많은 관광객을 매혹하는 관광상품이지만, 과거에는 불의 신 펠레(Pele)의 노여움으로 인식되 어 원주민들의 두려움을 자아내는 대상이었다.
불의 신 펠레의 도시, 호놀룰루
박규택|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강사
호놀룰루 도시 전경
불의 신 펠레의 도시, 호놀룰루
박규택|경북대학교 지리학과 강사 세 계 의 도 시 ∙ 8 8 H o n o l u l u
오하우섬에서의 화산활동은 오래 전에 멈추었 지만 와이키키해변의 동쪽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헤 드 분화구(Diamond Head Crater),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 는 펀치 볼(Punch Bowl), 섬의 북동 사면을 따라 형성된 가파른 절벽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북 위 21�에 위치한 호놀룰루의 연평균 최저 기온은 21.1�C로 아열대 기후에 속하지만 무역풍의 영향 으로 그늘에서는 시원함을 느끼는 날씨다. 그러나 무역풍이 약해지면 우리나라의 한여름과 같이 무 더운 날씨로 변한다. 바다보다 조금 높은, 해발고 도 3m에 있는 와이키키는 연중 500mm 미만의 비 가 내리는데 비해 주립병원(State Hospital, 해발고 도 60m)이 위치한 곳은 연중 1,500mm 이상의 비 가 내린다. 가까운 두 지역의 강수량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오하우섬을 동서로 가로지르 는 쿨라우산맥(Koolau Mountains)이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을 막기 때문이다. 산맥에 가까운 곳은 비가 많이 내려 울창한 아열대숲을 형성하지 만 바다에 근접한 곳은 비가 적게 내려 건조지형의 식물이 자란다. 와이키키해변이 세계적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면서도 비 는 적고 화창한 날씨를 연중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와이 왕국 멸망과 미국으로 편입
장구한 세월 동안 화산폭발과 동식물의 왕국으로 만 존재하였던 하와이군도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폴리네시아인이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10세기경 폴리네 시아인들이 카누를 타고 태평양의 파도와 싸우면 서 마르케사스군도(Marquesas islands)를 거쳐 무 인도에 도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들은 1778년 쿡(Cook) 선장이‘빅 아일랜드(Big Island)’로 불리는 하와이섬(island of Hawaii)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러 섬들에 독립 왕국을 건설하 여 자신들의 고유한 사회∙문화를 유지하고 있었 다. 이후 무역인, 선교사들이 하와이를 빈번하게 드나들면서 원주민들의 사회와 문화는 빠르게 바 뀌기 시작하였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통치자로 등장한 인물이 카메하메아 대왕 (Kamehamea the Great)이었다. 그는 빅 아일랜드 왕국에 기반을 두고 유럽과의 교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1810년에는 다른 여러 왕국들을 정 복하여 최초로 통일 왕국을 세웠다. 이후 하와이 원주민들은 통일된 언어를 사용하면서 하나의 공 동체를 형성하였다. 1840년 카메하메아 3세 (Kamehamea III)에 이르러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 고, 토지의 사유도 허용하였다. 10년 후 호놀룰루 가 왕국의 수도로 지정되고, 1882년에는 이올라니 궁전(Iolani Palace)이 세워졌다. 그러나 1893년 왕 국의 마지막 여왕인 릴리우오칼라니(Queen Liliuokalani)가 미국에 항복하고 왕위를 포기함에 따라 하와이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900년 미의회의 결의에 따라 하와이는 미국의 영 토로 편입되었고, 1959년 미연방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업, 해군기지
최근 하와이의 사업체는 건설업, 도ㆍ소매업, 교육 과 보건서비스업, 음식과 숙박업, 운수업, 관광업 등으로 다양화되었으며, 70% 이상이 호놀룰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구축된 하와이 경제는 역사적 변화의 산물이다.
쿡 선장이 이끄는 배가 하와이섬에 닻을 내림으
로써 자급자족의 하와이 경제는 개방적 구조로 전 환되었다. 상업적 목적으로 이주해온 유럽인들은 18세기 후반부터 모피와 목재를 외국으로 수출하 였고,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금광이 발굴된 19세기 중반에는 감자, 양파, 호박, 오렌지 등의 농작물을 미국 서부로 수출하였다. 호놀룰루는 태평양 포경 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수백 척의 배가 정박하 기도 하였다. 수출과 포경업을 통해 해외자본이 유 입되면서 자급자족의 경제는 빠르게 해체되고 이 윤추구의 자본주의 경제로 바뀌었다. 이렇게 뿌리 내린 자본주의 경제를 튼튼하게 한 원동력은 사탕 수수와 파인애플을 이용한 재식농업이다.
19세기 중반 포경업의 쇠퇴에 따라 새롭게 모 색한 산업이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이었다. 이 농업은 하와이의 아열대 기후, 유럽인의 자본과 기 술, 미국 본토의 거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수의 기업들이 지배하는 재식 농장의 노동력은 하와이 원주민이 아닌 중국, 일 본, 한국, 필리핀 등에서 공급되었다.
사탕수수는 1830년대부터 상업화되었으며, 1860년대 이후 하와이 경제의 주축이 되었다. 특 히 1876년 하와이 왕국과 미연방 사이에 체결한 무역협정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하였고, 1895년에는 하와이 사탕수수 생산자 협회가 창립되었다. 파인애플 농업은 1900년 돌 (Dole)이 호놀룰루의 외곽인 와히아와(Wahiawa) 지역에 파인애플을 시험 재배하면서 본격화되었 다. 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여 1930년에는 8개의 파인애플 공장에서 9억 개의 통조림을 생산하였으 며, 1960년대에는 세계 파인애플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였다. 1970년대 이후 호놀룰루의 사 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은 농장 노동자의 파업, 임 금인상, 동남아시아 생산지와의 경쟁으로 쇠퇴하
면서 현재 하와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장기간에 걸쳐 일어난 농장 노동자의 파업은 하와이의 정치지형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 한 역할을 하였다. 1900년대 이후 하와이인들은 소수 자본가와 엘리트에 의존하는 공화당을 지지 하였지만 1950년대부터는 중소 자본가와 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으로 지지 기반을 바꾸었다.
호놀룰루의 사회ㆍ경제를 지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진주만(Pearl Harbor)의 해군기지 다. 19세기 말 이후 미국은 태평양으로 팽창정책을 추진하면서 진주만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였다. 호 놀룰루의 서쪽 외곽에 위치한 진주만은 아메리카 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태평 양함대 사령부가 위치해 있다. 이곳을 유지하기 위 해 연방정부는 수십 억 원의 예산을 지출하고 있으 며, 지역의 많은 인구가 시설관리와 운영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냉전의 절정을 이루었던 1950년대 에서 1970년대까지는 진주만의 시설관리를 위한 연방정부의 지출규모가 증가하였지만 이후 보건, 교육, 복지 부문이 강조되면서 둔화되어 왔다.
하와이의 인구와 민족구성
호놀룰루는 미국의 대도시들과 상이한 인종적 구 성을 보인다. 이들 대도시들은 유럽과 아프리카계 인종이 대다수를 점유하지만 호놀룰루는 유럽과 아시아계 인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 한 세 기 동안 하와이의 총 인구는 15만 4,001명(1900 년)에서 121만 1,537명(2000년)으로 증가하였고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와이의 총 인구 가운데 호놀룰루에 거주하는 인구비율은 1900년에 25.5%, 1950년에 69.0%, 2000년에 91.6%로 증가하였다. 현재 하와이주 거주자 10명
가운데 9명이 호놀룰루에 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0년을 기준으로 하와이에는 순수 아시 아계가 50만 3,868명(41.60%)으로 가장 많고 순 수 유럽계가 29만 4,102명(24.30%)이며 원주민이 11만 3,539명(9.40%)을 구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계는 소수(2만 2,003명, 1.80%)에 속한다. 이러한 인종구성은 유럽인이 하와이섬에 도착한 이후 일 어난 역사적 산물이다.
유럽인과 처음 접촉할 당시 원주민은 대략 100 만 명이었지만 한 세기가 지난 1890년경에는 약 4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인들 을 통해 유입된 질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 주민의 감소로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 할 사람들이 부족해지자 아시아계 이민을 받아들 여 노동인구 감소문제를 해결하였다. 1852년 중국 인이 처음으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주해 왔 으며, 그 뒤를 이어 일본인이 이주했다. 한국인의 이민은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들이 갤릭 (The Gaelic)호를 타고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한 것 이 시초다. 이민 온 동양인들은 강렬한 태양 아래 펼쳐진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서 엄격한 감 시를 받으면서 장시간 고된 노동을 경험하였다. 다 음의 증언은 당시 한인들의 고단했던 삶의 한 단면 을 보여주고 있다.
“농장 노동은 한 달에 26일 기준으로 짜여 있었 다. 하루에 10시간의 노동을 하고 일요일에는 쉬 었다. 하루의 일과는 새벽 4시 30분에 귀가 찢어질 듯한 기상 사이렌으로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하 고 6시에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한인 노동자들은 평평한 기차를 타고 일터로 갔으며 자전거나 말이 있는 사람은 이를 타고 오고 갔다. 쉬는 시간도 없 이 그들은 점심 때까지 일을 하고 단 30분간의 점 심시간을 마친 후 오후 4시 30분까지 계속 일을 해
▲천혜의 해군기지, 진주만
▲기계화된 파인애플 농장
▼폴리네시아인과 전통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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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했다(웨인 패터슨. 정대화 옮김. 2003. 「하와 이 한인 이민 1세」. p41).”현재 호놀룰루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의 후손들은 선조들이 이룩한 업적 을 바탕으로 하와이의 사회∙경제∙정치 등 전 분 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연과 역사ㆍ문화에 기초한 관광산업
최근 관광수입은 하와이의 사회∙경제에 많은 영 향을 끼치고 있다. 관광객들은 호놀룰루, 특히 와 이키키해변과 쇼핑센터 그리고 다양한 음식점을 즐겨 찾는다. 2002년 하와이를 방문한 관광객은 640만 명이며, 이 가운데 370만 명(58%)이 와이키 키를 찾았다. 대부분 일본과 미국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들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아리조 나 기념관(U. S. S. Arizonal Memorial)과 폴리네 시안 문화관(Polynesian Cultural Center)이다. 다른 관광명소로는 와이키키해변과 접해 있는 동물원 (Honolulu Zoo)과 수족관(Waikiki Aquarium), 그 리고 다운타운의 서쪽에 위치한 비숍 박물관 (Bishop Museum)이다. 비숍 박물관은 1889년에 건립되었으며, 하와이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 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호눌룰루 도심을 벗어나 북 서쪽으로 가면 한인 이민자들의 고단했던 삶이 간 직된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농장이 있고, 이들은 남 국의 낭만을 느끼게 하는 관광지로 더 유명해지고 있다. 하와이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와이 키키다. 이곳은 아열대 기후, 태평양의 파도, 야자 수가 늘어진 백사장, 초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선 세 계적인 휴양지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까지만 해도 해안가의 저습지였으며, 원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곳이었다. 1920년대 알라 와이 운하(Ala Wai Canal)가 건설되면서 이곳의
▲ 펀치볼에 위치한 국립묘지
▲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아리조나 기념관
▼ 국제장터의 카트숍(판잣집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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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은 사라지고 현대화되었다. 최근 와이키키 를 관통하는 칼라카우아거리(Kalakaua Avenue)를 따라 세워진 상점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소유하 고 있다. 이들 상점 앞에서 유럽계 사람들이 일본 어로 호객하는 장면은 호놀룰루에서 일본인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곳의 한쪽 에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국제장터(International Market Place)가 있는데, 하와이를 비롯한 여러 나 라의 토산품을 살 수 있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특히 판자로 만들어진 작은 가게에서는 가지각색 의 값싼 보석세공품을 진열해놓고 관광객을 유혹 하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한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호롤룰루의 대도시화와 토지소유
1905년에 하와이 영토를 확정하는 법률이 제정됨 에 따라 하와이는 5개의 군, 즉 카우아이(Kauai County), 오아후(Oahu County), 마우이(Maui County), 하와이(Hawaii County), 칼라와오 (Kalawao County)로 구성되었다. 1907년에 오아 후군은 호눌룰루시와 군(the City and County of Honolulu)으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카메하메아 대왕이 통일왕조를 수립한 이래 모 든 토지는 왕과 왕족에게 귀속되었다. 1848년부터 사유가 허용되었지만 토지의 대부분은 소수의 권 력자와 자본가들이 소유함에 따라 일반 주민들이 가진 것은 거의 없다. 더욱이 외국인들의 부동산 소유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본인 들이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캐나다 인과 홍콩인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부동산 소유는 그리 많지 않다.
다운타운과 와이키키를 중심으로 형성된 호놀
룰루는 동쪽의 코코 헤드(Koko Head)와 서쪽의 펄 시티(Pearl City) 교외지역으로 팽창하여 대도시화 되었다. 현재 도시화의 영향은 쿨라우산맥을 넘어 카네오헤(Kaneohe)와 카일루아(Kailua)지역까지 미쳐 섬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대도시로 변하고 있 다. 호놀룰루는 쿨라우산맥과 태평양으로 인해 좁 고 긴 형태로 발달하였다. 여기에 많은 인구와 자 동차 그리고 다양한 사회∙경제∙관광활동으로 인 구밀집, 교통체증, 토지와 주택부족, 높은 물가 등 으로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다운타운 호놀룰루는 행정지구, 상업지구, 수변 (waterfront)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행정지구에는 연방∙주∙시행정 관련 시설들이 모여 있고, 수변 지구는 바닷가에 접한 지역으로 호놀룰루를 상징 하는 알로하 타워(Aloha Tower)가 자리잡고 있다.
이 탑은 1926년에 완공된 것으로 당시에는 호놀룰 루에서 가장 높은 10층 건물이었다. 다운타운의 낮과 밤은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낮에는 외곽에 거 주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생동감이 넘치지만 밤이면 인적이 드물고 가끔 걸인들만이 눈에 뛸 뿐 이다.
하와이 사회∙경제의 중심지인 호놀룰루는 자 연과 기술문명, 동서양과 폴리네시아 문화가 결합 하여 이루어진 작품이다. 여기에는 아름다움과 어 둠이 공존하고 있다.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더욱 빛 나게 하고 어둠을 밝음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호놀룰루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다양한 민족이 차별받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대도시로 발 전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 하나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