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의 융합:
E.A.T.의 시대적 배경과 작품 특성을 중심으로
Convergence of Art and Technology:
Based on E.A.T.'s Periodic Background and Characteristics of Works
장정
*
, 엄명용**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
,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Cheng Zhang([email protected])
*
, Myoung-Yong Um([email protected])**
요약
최근 학제 간 융합이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예술과 기술의 학제 간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E.A.T.는 1966년 뉴욕에서 예술가와 공학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본 연구는 E.A.T.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이 융합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과 E.A.T.의 작품 특성을 분석하였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분석결과 5가지 요인들이 E.A.T.가 조직되고 발전되는 데 있어 영향을 미쳤음을 발견하였다. 경제적 요인, 예술적 요인, 기술적 요인, 교육적 요인, 그리고 후원 문화적 요인이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와 공학자가 협업한 E.A.T. 작품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 성, 여러 가지 감각을 활용하는 다감각성, 그리고 환경과 인간에 대한 상호작용성이 E.A.T. 작품에 나타났 다. 본 연구는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예술가와 공학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함의를 제공한다.
■ 중심어 :∣융합∣예술∣기술∣협업∣시대적 배경∣작품 특성∣
Abstract
Recently, interdisciplinary studies have been receiving attention. Interdisciplinary research, especially in arts and technology, is a very interesting issue. E.A.T. was founded in New York in 1966 by artists and engineers. Based on the E.A.T. case, this study analyzed the period background in which art and technology could be converged, and the characteristics of E.A.T.
works. The analysis results of the period background revealed that five factors influenced the organization and development of E.A.T.. Economic factors, artistic factors, technical factors, educational factors, and sponsored cultural factors influenced the convergence of art and technology. E.A.T. works collaborated by artists and engineers generally had three characteristics. Convergence across various fields, multi-sensitivity utilizing different senses, and interaction between the environment and humans appeared in E.A.T. works. This study provides meaningful implications for both artists and engineers who wish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artistic expression and develop new technology.
■ keyword :∣Convergence∣Art∣Technology∣Collaboration∣Periodic Background∣Work Characteristics∣
접수일자 : 2019년 02월 13일 수정일자 : 2019년 04월 05일
심사완료일 : 2019년 04월 05일
교신저자 : 엄명용, e-mail : [email protected]
I. 서 론
산업화 시대를 지나 정보화 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술은 삶의 모든 영역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 등장한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은 가까이로는 인간의 의식주에 영향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멀게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까지 영향을 미 치고 있다. 기술이 가진 영향력은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고, 기존 학문분야를 더욱 깊이 있 게 또는 폭넓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 한 추세는 과거에는 이질적이라고 여겨졌던 인문․사 회 분야와 자연과학․공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서로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1].
특히 예술 분야와 기술 분야에 대한 융합은 매우 관 심을 끄는 주제영역이다. 예술가와 공학자 이외에도 경 영, 심리,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두 분야의 융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2]. 외관상 예술과 기술은 서로 멀게 보이지만, 예술이 가진 감성적 창의성과 과 학기술이 가진 이성적 합리성은 오히려 두 분야를 서로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지금까지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이미 1960년대 예술과 기술의 혁신적 통합을 시도한 단체가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주도한 선도적인 단체이다.
E.A.T.는 예술이 어떻게 기술, 공학, 그리고 과학 분 야와 융합할 수 있는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당대 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공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 된 E.A.T.는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무선통신과 레이저와 같은 첨단기술들을 예술에 접목하였다.
E.A.T.의 참신한 발상과 실험들은 기존 예술 장르의 경 계를 허물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제시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1966년 9월 22일 뉴욕에서 결성된 E.A.T.는 로버트 라우센버그(Rauschenberg)와 로버트 휘트먼(Whitman) 이 예술가를 대표하여, 그리고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벨 연구소(Bell Lab) 소속의 빌리 클뤼버(Kluver)
와 프레드 발트하우어(Waldhauer)가 공학자를 대표하 여 만들어진 비영리조직이다[3]. 조직의 기반을 다지고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여러 E.A.T. 회원들의 노고와 헌신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학자 클뤼버(Kluver)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는 E.A.T.의 초대 대표로서 호혜 적인 협업의 기치를 내걸고 예술가와 공학자를 연결하 는 일을 주도하였다. 그가 내세운 상호 협력적 관계는 예술가와 공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예술가는 기 술에 익숙한 공학자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상적인 아 이디어를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학자는 예술가들의 참신한 생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실용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 었다.
E.A.T.가 사용한 예술가와 공학자 사이의 협업 방식 은 초창기에는 매우 단순했다. 먼저 예술가가 작품에 필요한 기술을 E.A.T.에 문의하면 E.A.T.는 그 문제에 적합한 공학자를 찾아 예술가와 일대일 형식으로 연결 해 주었다. 그러나 점차 예술가들이 원하는 기술적 요 구가 급증하면서 E.A.T.는 공학자에 대한 연결 이외에 도 기술 자체를 소개해 주는 역할도 병행하였다. E.A.T.
는 기존 협업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들을 기반으로 다양 한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술들을 모아 범용적 장 비로 구축하고, 도움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장 비를 사용하도록 조언하거나 제공하는 일을 하였다[4].
Ⅱ. 연구범위 및 방법
E.A.T.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선도하고 현대 예술 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E.A.T.에 대하여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에 본 연구 는 E.A.T.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그림 1]과 같 은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을 기반으로 1) E.A.T.를 통하여 예술가와 공학자들이 협업할 수 있었 던 시대적 배경과 2)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루어낸 E.A.T.의 작품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두 연 구문제에 대한 탐색은 E.A.T.의 조직과 작품에 대한 이 해를 높이고, 어떻게 예술과 기술이 융합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시대적 배경
예술가 E.A.T. 공학자
작품
그림 1. 개념적 틀
본 연구는 앞서 제시한 두 가지 연구문제를 탐색하기 위하여 E.A.T.가 조직된 1960년대 미국의 시대적 상황 에 대한 문헌연구를 수행하였다. 이와 더불어 문헌과 인터넷을 통하여 E.A.T.의 작품 특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첫 번째 연구 문제인 E.A.T.가 조직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기 위 하여 본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의 사 회․경제적 상황을 비교하였다. 또한 1960년대 경제와 문화적 측면에서 뉴욕이 가지는 위상을 분석하였다. 두 번째 연구문제인 E.A.T.의 작품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 여 본 연구는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E.A.T. 작품을 분류 하였다. 또한 기술이 E.A.T. 작품에 어떠한 의도로 선 택되고 활용되는가를 분석하기 위하여 다감각적인 측 면에서 E.A.T. 작품을 비교하였다.
Ⅲ. 시대적 배경
본 연구는 문헌연구를 통하여 E.A.T.가 1960년대 미 국의 뉴욕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발전될 수 있었던 주요 시대적 배경들을 고찰하였다. 분석결과 본 연구는 경제 적 요인, 예술적 요인, 기술적 요인, 교육적 요인, 그리 고 후원 문화적 요인들이 E.A.T.의 설립과 발전에 직간 접적으로 기여했음을 발견하였다.
1. 경제 요인
1960년대 미국에서 E.A.T.가 설립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풍족한 경제적 배경을 들 수 있다. 1945년 종료된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 이외의 승전국들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미국 은 본토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영국이 주도하던 세계경제의 패권을 미국으로 옮겨가 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미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미국의 GDP는 세계 총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미 국경제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5].
1960년대 초부터 미국이 시작한 자유주의 경제 정책 은 예술분야에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지성우[6]
의 연구에 의하면, 자유주의 경제는 일반대중들 뿐만 아니라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상위계층으로 진 입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상 황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경제를 재건해야 했던 유럽 의 상황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줄이자, 많은 재능 있는 유럽의 예술가들이 고향을 떠나 미국으 로 진출하였다.
미국의 풍족한 경제적 여건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기량 있는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원동력 이 되었다. 정영목, 김홍남[7]은 미국의 미술사와 문화 정책을 분석한 연구에서 1960년대부터 미국의 예술 단 체의 수, 예술 지원프로그램의 수, 그리고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관람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 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문화적 관심과 경제적 여건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예술 요인
예술사를 연구하는 대다수의 학자들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예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8]. 백남준, 장 뒤피(Dupuy), 한스 하케(Haacke) 등과 같이 E.A.T.에 소속된 많은 유 능한 유럽 출신의 예술가들은 정치, 경제, 사회적 이유 들로 인하여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 디어를 자유롭게 표출하고 자신의 작품을 받아줄 최적 의 장소로 미국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뉴욕으로 모여들었다. 이와 같이 유럽의 아방가르드(avant-garde) 적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 면서 이전에 유럽을 기점으로 시작된 예술과 삶의 융 합, 예술과 장르 간의 융합, 나아가 예술과 기술의 융합 이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전이되었다.
E.A.T.는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사상을 이어주 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9].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예술가들은 E.A.T.에서 로버트 라우센버그 (Rauschenberg), 앤디 워홀(Warhol), 루신다 차일즈 (Childs) 등과 같은 미국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 들이 가진 아방가르드적 사상을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근대 예술의 절대적 아우라(aura)와 보편타당성의 원리(universal validity)를 거부하고 예술의 비결정성(indeterminacy) 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다[10]. 예술의 비결정성이란 예술 작품은 고정된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 화하는 유기적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이러한 열린 생각은 예술의 창작과정에 근본적인 변혁을 몰고 왔다. 누구나 예술의 창작과정에 참여하여 예술적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그 들의 생각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허무는 역할을 하였 다[11]. 예술에 대한 제 3자(참여자)의 개입은 아방가르 드 예술가들이 주장하는 삶과 예술의 통합을 실천적으 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12]. 이러한 E.A.T.에 소속 된 예술가들이 가진 참여예술에 대한 생각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공학자들을 예술의 창작과정에 자연스럽게 합류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3. 기술 요인
미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서도 유럽의 국가들을 추월하기 시작하 였다. 과학 분야에서 미국의 노벨상 수상 횟수는 이러 한 발전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송종국[13]의 연구에 의 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 분야의 세 가지 노벨상 부문(물리학, 화학, 생의학)에서 모두 절대적 우 위를 보여 왔다. 노벨 물리학상을 보면 미국은 1940년 대와 1950년대에 각각 4회 수상을 하였다. 그리고 미국 은 1960년대에는 8회, 1970년대에는 7회의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화학상 분야에서 미국은 1940년대와 1950 년대 각각 2회 만을 수상하였으나, 1960년대는 5회, 1970년대는 4회를 수상하였다. 마지막으로 생의학상을 보면 미국은 1940년대 4회를 수상하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각각 7회, 그리고 1970년대에는 무려 9회를
수상하였다. 이와 같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은 과 학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과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 므로 1960년대 뉴욕에서 설립된 E.A.T.는 미국의 진보 된 과학기술을 가까이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2차 대전 이후 냉전체제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 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 한 관심은 예술가에게도 이어졌다. 비록 1957년 소련이 먼저 무인 우주선인 스푸트닉(sputnik)을 발사하면서 미국은 과학 분야의 주도권을 소련에 내주는 듯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미국은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에 정부의 역량을 집중시키면서 소련을 앞서기 시작하 였다[5]. 특히 우주 개발 분야는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정부적 차원에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과학적 발전은 대중들뿐 만 아니라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관심도 집중시켰다.
예술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를 추구하는 아방 가르드 예술가들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형상화하기 위 하여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비물질화 란 예술작품을 단순히 물리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 니라, 감정을 주고받는 정서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14]. 단순히 눈으로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를 줄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과 같은 감각과 움직임이 요구되었다. 과학기술은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 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뉴욕에 모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E.A.T.를 통해 미국의 선도적 과학기술을 자신들의 창작과정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4. 교육 요인
E.A.T.가 설립되고 발전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 로 미국에서 설립된 예술교육기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여러 예술교육기관들은 유럽의 아방가르 드 예술을 계승하고 이것을 미국의 현지 문화와 연결하 는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뉴욕현대미 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 블랙마운틴칼 리지(Black Mountain College), 그리고 바우하우스 (Bauhaus)를 들 수 있다.
뉴욕현대미술관은 1929년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일 반 대중들에게 친숙하고도 유용한 예술교육을 제공하 고 있다[15]. 뉴욕현대미술관과 미국적 모더니즘 사이 의 관계를 조망한 유재길[16]의 연구에 의하면, 뉴욕현 대미술관의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Barr)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미국의 일반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알프 레드 바는 미술관에 대중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 들고 운영하였다. 지금은 미술관이 대중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는 매 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는 교육을 위한 전임 강사를 미술관에 두었고, 각 전시에 대한 소개 이외에도 토론 및 이벤트를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운영하였다[8].
이러한 노력은 많은 미국 대중들로 하여금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해하고 친숙하게 만드는 긍정적 역할을 하였 다[7]. 이와 같이 미국 대중들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 한 관심은 공학자들이 자발적으로 E.A.T.에 가입하고, 그들이 예술가들과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게 하는 긍 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블랙마운틴칼리지와 바우하우스는 뉴욕현대미술관 과는 달리 일반인이 아닌 예술가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전문학교였다. 블랙마운틴칼리지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융합대학으로 미술, 무용, 문학, 음악, 건축 등과 같은 예술과목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기술을 학 생들에게 가르쳤다[15]. 또한 블랙마운틴칼리지는 E.A.T.의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 E.A.T.의 설립 맴버인 로버트 라우센버그(Rauschenber), 현대 무용의 거장인 머스 커닝햄(Cunningham), 전위 작곡가로 명성 을 얻은 존 케이지(Cage) 등이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 거나 강의를 하였다[17]. 비록 블랙마운틴칼리지가 1956년 폐교되었지만, 이 학교 출신의 많은 예술가들은 과학기술을 예술과 접목시키는 데 있어 편견과 거부감 이 없었다. 그러므로 블랙마운틴칼리지의 많은 동문들 은 E.A.T.의 설립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다.
미국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의 정신을 계승한 대학이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예술 과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는 새로운 예술적 교육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치에 의하여 학
교가 문을 닫자 많은 교수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 다. 망명한 교수들은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새로운 바우하우스(New Bauhaus)를 미국에 설립 하였다[18]. 미국의 새로운 바우하우스는 예술과목뿐만 아니라 수학, 물리학, 역학, 화학 등과 같은 과학과목들 을 학생들에게 이수하도록 요구하였다[19]. 이러한 융 합적 커리큘럼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과학기술을 예술 작품의 창작과정에 도입하게 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5. 후원 요인
미국의 후원 문화는 E.A.T.의 성장에 커다란 밑거름 이 되었다. 정영목, 김홍남[7]의 연구에 따르면, 예술 후 원 유형은 크게 정부가 주관하는 연방과 주정부 후원, 비영리 기관이 주관하는 사립재단 후원, 그리고 개인이 주축이 된 개인 후원과 이익집단이 지원하는 기업 후원 이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정부 주도의 예술 후원이 대부분이었으나, 전후 미국의 경제상황이 호전 되고 거대 기업과 독점자본이 등장하면서 대기업들의 후원이 급증하였다[20]. 당시에 거대 기업들은 독점자 본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고, 많은 대중들은 점차 이 러한 기업들의 독점적 행위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기업들이 예술적 후원으로 대중 들로부터 긍정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얻고자하였다.
20세기 후반 미국 미술의 후원문화와 거대 기업 사이 에는 밀접한 관계가 존재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 기업들은 미술품 구입 이른바 ‘기업미술컬렉션’을 통하 여 예술기관이나 예술가를 후원하였다. 김진아의 연구 [21]에 의하면 미국에서 발생된 전문적인 기업미술컬렉 션의 80%는 1960년대 이후에 시작되었다. IBM, 펩시콜 라, 홀마크(Hallmark), MGM, 에보트(Abbott) 등과 같 은 미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1950년대 이전부터 예술후 원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접어들면서 미국 경 제의 부흥과 함께 뉴욕이 국제적인 비즈니스 도시로 거 듭나자, 뉴욕에 기반을 둔 많은 국제적 기업들이 문화 예술에 대한 후원을 크게 확대하였다.
1960년대 중·후반 뉴욕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E.A.T.는 이러한 후원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AT&T, IBM, 펩시콜라, 제록스(Xerox), 오디오복스
(Audiovox), 벨 전화 연구소,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많은 기업들과 연구소 그리고 비영리기관들이 E.A.T.를 후원하였다. 후원 단체들 중 E.A.T.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곳은 펩시콜라였다. E.A.T.는 1970년 펩시콜라의 후원을 받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만국박 람회에 참여하였다. 박람회에서 E.A.T. 소속의 예술가 들과 공학자들은 펩시 파빌리온(Pepsi Pavilion)이라는 예술과 기술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대형 건축물을 창조 하였고, 반응형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이 작품은 많은 관 객들과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22]. 또한 E.A.T.
는 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도 진행하였다. 미국 자동화 및 고용 재단과 여러 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E.A.T.
는 예술과 기술의 입장에서 환경문제를 다루는 “아웃사 이드 아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3].
Ⅳ. E.A.T 작품 특성
예술가와 공학자가 협업하여 이루어낸 E.A.T.의 작 품은 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매우 독특한 예술 형태를 보인다. E.A.T.의 작품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E.A.T.의 창작물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 는 설명하기 어려운 탈장르적이고 융합적인 특징을 가 진다. 둘째, E.A.T. 작품은 기존 회화나 조각에서 보았 던 시각 중심의 단일 감각을 넘어 청각, 촉각, 후각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다감각적인 특징을 보인다. 셋째, E.A.T. 작품은 환경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자극 에 반응하고 이러한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특징을 가진다.
1. 탈장르적 융합성
E.A.T.는 전통예술에서 구분되어 있던 음악, 미술, 무 용 등과 같은 예술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E.A.T.
의 작품은 기술을 매개로 기존 예술을 새로운 형태로 결합시키는 융합 예술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E.A.T. 소 속의 예술가와 공학자는 기존 예술장르에 기술을 접목 하여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 품을 창출해 내었다. 예술가와 공학자 사이의 이러한 협업적 실험은 E.A.T.가 융합 예술의 초석이 되는 중추
적 역할을 하였다.
E.A.T.가 창출해낸 융합 예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는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9 Evenings:
Theatre & Engineering)”이다. 이 이벤트는 1966년 10 월 13일부터 9일 동안 뉴욕의 아모리(현재 이름은 파크 애비뉴 아모리[3])에서 개최되었다. [표 1]에 보듯이 많 은 예술가와 공학자가 협업하여 “신체적인 것”, “풀밭”,
“솔로” 등 10개의 작품이 만들어졌고, 매일 저녁마다 2-3개의 작품이 시리즈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공개된 작품은 모두 음악, 미술, 연극, 미디어 등이 합쳐진 융복 합적인 퍼포먼스의 형식을 가졌다. “아홉 번의 밤: 연극 과 공학”을 통해서 E.A.T.는 어떻게 예술적 아이디어가 기술과 결합되어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표 1]은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에서 발표된 10 개의 작품명, 참여한 예술가와 공학자의 이름, 그리고 사용된 기술 등을 보여준다. 10개의 작품이 모두 융합 예술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 가운데 “변주곡 VII(Variations VII)”은 E.A.T. 작품의 탈장르적이고도 융합적인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존 케이 지(Cage)가 예술분야의 책임자로 그리고 세실 코커 (Coker)와 로버트 무그(Moog)가 공학분야의 책임자로 협업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음악과 무용이 기본적인 예술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여기에 당시에는 첨단이라 할 수 있는 라디오, 전화기, TV 등의 기술이 사용되었다.
“변주곡 VII”을 통하여 케이지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수집하여 들려주기를 원했다. 일예로 그는 등장하는 무 용수들의 몸에 무선으로 작동되는 마이크를 부착하여 그들의 심장, 위, 폐 등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음악으 로 표현하고자 하였다[23]. 이렇게 일반적으로 들을 수 없는 신체의 소리를 잡아내기 위한 무선시스템 이외에 도, 케이지는 20개의 라디오, 2대의 텔레비전 모니터, 15개의 전화기 등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품 에 사용된 모든 기계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화면은 마치 무용수가 춤을 출 때 사용되는 배경음악과 무대화 면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케이지와 공학자 들은 음악, 미술, 무용, 미디어 등을 융합하여 하나의 작 품으로 승화시키는 탈장르적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2. 다감각성
E.A.T 작품은 전통 예술에서 중시되었던 시각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을 공감각(synesthesia)적으 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전통예술 의 시각중심주의는 눈을 제외한 다른 신체기관들을 상 대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 시 예술가들의 주된 관심사는 작품을 시각적으로 부각 시키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24]. 그러나 대부분 E.A.T. 작품은 이러한 시각중심의 단일 감각이 활용되 지 않았다. 오히려 E.A.T. 작품은 청각, 후각, 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들을 하나의 작품에 아우르는 방법 즉, 공 감각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특징을 가진다.
E.A.T. 작품에 다양한 공감각적인 방법이 사용되었 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가장 두드러진다. 우 선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소 리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기법이다. 다음으 로 앞의 방식과는 반대로 시각을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빛과 같은 시각적인 변화를 소리 로 표현해주는 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청각의 시각화’를 보여 주는 E.A.T. 작품은 대표적으로 “심장 박동 먼지: 원뿔 형의 피라미드(Heart Beats Dust: Cone Pyramid)”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1968년 예술가 장 뒤퓌
작품명 협업자 사용된
기술 및 미디어
예술가 공학자
신체적인 것
책임: 스티브 팩스턴
퍼포머: 카렌 베이컨, 수 하트넷,
마가렛 헥트 등
책임: 딕 울프
도움: 카렌 베이컨, 마가렛 헥트, 토니 홀더
등
폴리에틸렌 소재의 대형 터널
구조물, 소형 수신기, 공연 기록 영상
풀밭
책임: 알레스 헤이
음향: 데이비드 튜더
퍼포머: 스티브 팩스턴, 로버트 라우센버그
책임: 허브 슈나이더,
로버트 키에론스키
도움: 슈웨이버 일렉트로닉스,
시나이 산 연구소, 데이비드
데이비스
이동식 전지 차동 증폭장치, TV 카메라, 스크린, 공연 기록 영상
솔로
책임: 데보라 헤이
음악: 토시 이치야나기의
의상: 레티 루 아이젠하우어
퍼포머: 스티브 팩스턴,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책임: 래리 헤일로스,
비트 비트네베르트
무선 조종 시스템, 조명, 공연 기록 영상
오픈 스코어
책임: 로버트 라우센버그
퍼포머: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500명의 사람들
도어맨: 알렉스 헤이, 데보라 헤이
책임: 짐 맥기
TV 도움: 빌 하팅
카메라: 로버트 보리어, 레스
레빈
편집: 스티트 팩스턴
테니스 라켓, 소형 FM 송신기,
안테나, 마이크, 적외선 카메라, 공연 기록 영상
반도네오!
(계승)
책임: 데이비드 튜더
카트: 데이비드 베어먼, 페르 비오른, 앤서니
그나초
TV 이미지: 로웰 크로스
책임: 프레드 발트하우어
마이크, 스피커, 제어시스템, 조명, 투사식 텔레비전, 공연
기록 영상
분리된 객차
책임: 이본 라이너
퍼포머: 월리엄 데이비드, 스티브
팩스턴 등
책임: 페르 비오른
메이소나이트로 제작된 상자, 수신기, 공연 기록 영상
변주곡 VII
책임: 존 케이지
퍼포머: 데이비드 튜더, 데이비드 베어먼, 앤서니 그나초, 로엘
크로스
책임: 세실 코커, 로버트 무그
광전지, 전화선, 자석 픽업장치, 소리 조작 시스템, 안테나, 무전기, 가이거 계수기, TV 대역,
마이크, 착즙기, 선풍기, 분쇄기, 공연 기록 영상 수레 책임: 루신다 책임: 피터 허쉬 송신기, 70kHz
표 1.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
차일즈출연: 월리엄 데이비스, 알렉스
헤이
도플러 음파 탐지 시스템, 선풍기,
조명, 스크린, 공연 기록 영상
두 개의 물웅덩이-3
책임: 로버트 휘트먼
퍼포머: 맥스 베이커, 길 질러
등
참여: 밥 새비지, 재클린 리비트 등
책임: 로비 로빈슨
광섬유 도움:
플렉스 옵틱스
TV 도움: 빌 하팅
자동차, TV 프로젝터, 카메라, 초소형
마이크, 공연 기록 영상
와인보다 달콤한 키스
책임: 오이빈트 팔스트룀
감독: 소렌 브루네스, 오이빈트 팔스트룀
퍼포머: 로버트 브리어, 프랜시스
브리어 등
책임: 해럴드 호지스
화학제품: 원자력 연구원
소리 나는 베개, 원격조종이 가능한 마일라 미사일, 인공 눈,
스크린, 공연 기록 영상
(Dupuy)와 두 명의 공학자(랠프 마르텔(Martel)과 해 리스 하이먼(Hyman))가 협업하여 완성하였다. 이 작품 은 E.A.T.가 1968년 주최한 예술가와 공학자의 협력을 평가하는 공모전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될 만큼 예 술성과 기술성을 인정받았다[25].
그림 2. 심장 박동 먼지: 원뿔형의 피라미드[26]
이 작품에서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흥미롭고도 다양한 기술과 원리가 활용되었다. 청진기, 증폭기, 조명기 등의 기계 장치가 소리를 수집하고 이 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작품이 동 작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청진기를 사람의 심장 위 에 갖다 대면, 증폭기(amplifier)가 심장의 박동소리를 증폭시킨다. 다음으로 증폭된 에너지(소리)는 먼지가 있는 바닥에 전달되어 먼지를 위아래로 움직이게 한다.
이때 먼지로 사용된 빨간색 안료(red pigment)로 인하 여 [그림 2]와 같이 마치 전체적인 움직임이 심장의 소 리에 맞추어 피가 솟구치는 모습처럼 보이게 된다.
빛의 변화를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시각의 청각화’는 주로 광전지(photocell)가 사용된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전지는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주는 장치이다. 광전지를 이용하면 빛의 변화를 이용하여 특 정 소리를 나게 하거나 나지 않게 할 수 있다. E.A.T.
작품 가운데 광전지가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1989년 공연된 “별의 전이(Astral Convertible)”이다. 이 작품 은 무용가 트리샤 브라운(Brown)이 주축이 되어 만들 어졌다. 무대와 의상은 로버트 라우센버그 (Rauschenberg)가 지원하였고, 음악은 존 케이지 (Cage)가 담당하였다[27]. 그리고 페르 비오른(Biorn)
이 공학자로서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하기 위하여 작품 에 참여하였다.
그림 3. 별의 전이[28]
이 작품에서 빛의 변화가 소리의 변화를 일어나게 하 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그림 3]에서 보듯이, 무용수 주 변에 조명을 걸어 놓은 타워(tower)를 배치한다. 그리 고 조명에서 나오는 빛은 다른 타워에 설치된 광전지를 향하게 한다. 무용수가 타워 사이를 움직일 때마다 빛 이 가려지게 되고, 이러한 빛의 변화는 광전지의 에너 지 변화를 유발한다. 결국 광전지의 반응은 전기에너지 (전류)의 상태를 변화시켜 음악을 나오게 하거나 끄게 하는 역할을 한다.
3. 반응적 상호작용성
E.A.T. 작품은 고정된 회화와 같이 정지된 작품이라 기보다는 특정 대상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역동적 특성을 가진다. 반응적 상호작용은 관객 또는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대상 으로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예술작품은 창작자가 만들어 놓은 모양과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극에 반응하고 대상과 의사소통할 수 없 다. 그러나 E.A.T. 작품은 기술을 기반으로 대상과 반 응하고 상호작용하는 특징을 가진다.
E.A.T. 작품에 나타나는 반응적 상호작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림 4. 안개 조각 #47773[29]
첫째, 환경에 반응하는 상호작용이다. 이 상호작용은 빛, 온도, 습도 등과 같이 주변 환경의 변화에 작품이 반 응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림 4]에서 보듯이 “안개 조각(Fog Sculpture) #47773”을 들 수 있 다. 이 작품은 예술가 후지코 나카야(Nakaya)와 공학자 토머스 미(Mee)가 협업하여 완성한 작품으로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의 펩시 파빌리온 지붕 위에 설치되었다. 작품명에서 암시하듯이 “안개 조각 #47773”은 파빌리온 건물 전체를 안개로 휘덮게 만들어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었다.
파빌리온 지붕에 설치된 2,520개의 스프레이 노즐은 안 개를 만들어 내었고, 날씨와 주변 환경에 따라 안개의 모양이 다양하게 변화하였다[3].
둘째, 공연자(performer)에 반응하는 상호작용이다.
이 상호작용은 공연자의 몸짓이나 행동이 작품에 직간 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작품으 로 “오픈 스코어(Open Score)”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술가 로버트 라우센버그(Rauschenberg)와 공학자 짐 맥기(McGee)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졌다. ‘테니 스 게임’을 모티브로 작품 속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는데 특히 테니스 라켓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 다. [그림 5]와 같이 마이크(microphone)와 FM 송신기 (transmitter)가 테니스 라켓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공 연자가 공을 치게 되면 라켓의 진동소리가 마이크로 인 해 증폭되었다. 그리고 이 소리는 일종의 자극이 되어 무대에 설치된 조명을 점멸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라켓에서 나오는 소리는 FM 송신기(transmitter)를 통 해서 무선으로 천장에 달려 있는 스피커로 전달되었다.
그림 5. 오픈 스코어에 사용된 테니스 라켓[30]
셋째, 관람자에 반응하는 상호작용이다. 이 상호작용 은 작품 밖에 존재하던 관람자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 는 역할을 한다. 관람자의 행동은 자극이 되어 작품의 반응을 유도하고, 이러한 관람자의 개입은 작품의 내용 뿐만 아니라 구성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작품은 예술가 이리나 나호바(Nakhova)와 공학자 페르 비오른(Biorn) 등이 협업하여 발표한 “친구와 이웃 (Friends and Neighbors)”이다. 이 작품은 관람자의 자 극에 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형태도 바뀐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다. 관람자가 [그림 6]에서 보이는 마네킹 작품에 다가가면 마네킹의 몸이 팽창하여 부풀어 오르 고, 옷을 만지면 다양한 소리(울부짖는 소리, 모욕하는 말, 화내는 말 등)가 재생된다. 결과적으로 관람자는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에 개입하게 되어 작품의 일부 가 된다.
그림 6. 친구와 이웃[30]
[표 2]는 주요 E.A.T. 작품에 등장하는 세 가지 상호 작용을 보여준다. [표 2]에서 보듯이 상호작용이 단일
형태로 존재하는 작품(예 : 아이스 테이블, 안개 조각
#47773 등)도 있으나,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상호작용이 동시에 나타나는 작품(예 : 오픈 스코어, 변주곡 VII 등) 도 존재한다. 주로 이벤트 형식의 공연에서 두 개 이상 의 상호작용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E.A.T. 작품 상호작용 대상
환경 공연자 관람자
오픈 스코어 √ √
변주곡 VII √ √ √
아이스 테이블 √
사운딩스 √
자석TV √
심장 박동 먼지: 원뿔형의 피라미드 √
열대우림 √ √
떠다니는 것들 √
안개 조각 #47773 √
텔렉스: Q&A √
별의 전이 √
친구와 이웃 √
서울-뉴욕 아이들 지역 보고서 √
표 2. 주요 E.A.T. 작품과 상호작용
Ⅴ. 결론 및 함의
E.A.T.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 였다. 예술가와 공학자는 E.A.T.를 기반으로 협업하였 고,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는 독자적으로 이루어 내기 어려운 창의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었다. 두 집단 간 협업은 예술의 범위를 넓히고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였다. 또한 협업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아이디어는 공학적 지식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합하게 하였고, 나아 가 이를 응용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도 기여하 였다. 그러므로 E.A.T.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대중들 에게 선보임으로써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 는가를 보여주는 데 공헌하였다.
E.A.T.가 등장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연구 결과 및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풍족한 경제적 여건은 E.A.T.를 조직하 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 2차 대전 직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예술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끊었으나, 미국은 오히려 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예술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 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풍요함은 E.A.T.가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 실험을 수행하는 데 있 어 실패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둘째,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경제적 번영뿐만 아니 라 예술의 번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방가르드 를 표방하는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이주 또 는 망명하면서 미국은 문화적으로 번성할 수 있는 기틀 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누구나 예술의 창작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들은 E.A.T.를 통해서 공학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 였다.
셋째, 미국이 보유한 첨단 기술은 E.A.T. 예술가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E.A.T.에 소속된 아방가르 드적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을 물리적 대상 이 아닌 감정과 정서를 주고받는 비물질적 대상으로 보 았다. 그들은 인간과 유사한 감정과 느낌을 작품에 표 출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서는 공학자들의 지식이 필 요하였다.
넷째, 뉴욕현대미술관, 블랙마운틴칼리지, 그리고 바 우하우스와 같이 미국에 설립된 예술교육기관들은 E.A.T.를 조직하고 운영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 였다. 뉴욕현대미술관의 예술교육프로그램은 대중들이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 었다. 블랙마운틴칼리지는 많은 E.A.T. 예술가들을 배 출하였고, 바우하우스와 더불어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다섯째, 1960년대 뉴욕에 기반을 둔 거대 기업들은 독점자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문화예 술에 대한 후원을 늘리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뉴 욕에서 설립된 E.A.T.는 이러한 분위기에 어렵지 않게 편승할 수 있었다. 또한 E.A.T.는 연구소와 비영리기관 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다양한 실험들을 지속할 수 있었다.
E.A.T.의 작품 특성에 대한 연구결과 및 함의는 다음 과 같다.
첫째, E.A.T. 작품은 전통적 예술장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탈장르적이고 융합적인 특징을 보인다.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은 이러한 특징을 잘 반영한다.
E.A.T.에 소속된 예술가와 공학자는 9일 간의 이벤트를 통하여 미술, 음악, 무용 등과 같은 예술분야와 무선 시 스템, 프로젝터, 레이저 등과 같은 첨단 기술이 결합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관객들에게 소개된 10개의 작품들은 모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낯설고도 신기한 것들이었다.
둘째, E.A.T. 작품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이 어 우러진 다감각적인 특징을 가진다. 소리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청각의 시각화’와 움직임을 소리로 표현하는
‘시각의 청각화’가 많은 E.A.T. 작품에 사용되었다. 소 리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하여 공학자들은 수(송)신기, 증폭기, 마이크, 전화기 등의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하거 나 필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 내었다. 또한 시각적인 움직임의 변화(빛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하여 공학자들 은 주로 광전지를 활용하였다. 빛의 변화를 전기 에너 지로 변화시키는 광전지의 특성은 다양한 E.A.T. 작품 에 활용되었다.
셋째, E.A.T. 작품은 능동적이고 반응적인 상호작용 을 하는 특징을 가진다. 상호작용 대상은 주로 환경과 인간이었다.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다시 공연자와 관람 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작용으로 나누어진다. 한 가지 형태의 상호작용을 활용하는 E.A.T. 작품도 있으나, 공 연의 형식을 가지는 E.A.T. 작품은 일반적으로 두 개 이상의 상호작용이 사용되었다. E.A.T. 작품이 가지는 상호작용은 예술작품을 유기적인 감각과 정서를 가지 는 비물질적 대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므로 환경과 인간의 개입은 예술작품을 더욱 인간적이고 친숙한 존 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의 힘이 필요했다.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E.A.T. 활동이 최근 학제 간 융합에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과 산업에서 전문가들 사이의 교류의 장이 요구된다. 근래에 이루어지고 있는 융합관련 학회의 출현은 이러한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E.A.T.의 사례에서 보듯이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아이디
어와 지식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활동은 성공적인 융합 을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국가적인 차원에서 학제 간 융합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 후원하는 다양한 융합 관련 프로젝트의 도입도 요구된다. 지속적이고도 안정 적인 융합 연구와 활동을 위해서는 E.A.T.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와 기업의 경제적 지원이 필수불가결하다.
셋째, 다양한 학문분야 이외에도 이들 사이의 융합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이 요구된다.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 을 창출하고 필요한 곳에 창출된 지식을 응용할 수 있 는 능력은 한 사람이 개별적으로 획득하기 어렵다. 많 은 E.A.T.의 예술가들이 블랙마운틴칼리지와 바우하우 스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 의 지식을 습득했듯이,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기관 에서는 다양하고도 융합적인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새로운 시도와 낯선 결과물에 대한 사회적 용 인이 필요하다. E.A.T.의 사례에서 보듯이 융합의 과정 과 결과물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러므로 편견과 고 정관념 없이 융합의 과정과 결과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요구된다. 융합에 대한 이러한 유연한 태도와 인식은 융합 활동과 연구를 위축시키지 않고 오히려 촉 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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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https://www.rauschenbergfoundation.org/art/ar chive/91v03901, 2019.2.10.
[28] https://aaa4d999f049e3e9d584-80bb401d6112e88 e05e8490cbc72229b.ssl.cf1.rackcdn.com/TRISHA BROWN_BER0305-copy1.jpg, 2019.2.10.
[29] http://www.ideologic.org/media/filter/l/img/259 7-1.jpg, 2019.2.10.
[30] http://www.fondation-langlois.org/media/activi tes/lacerte/raquettes.jpg, 2019.2.10.
[31] http://conceptualism.letov.ru/NAKHOVA/slide s/FRNCRN.jpg, 2019.2.10.
저 자 소 개
장 정(Cheng Zhang) 정회원
▪2016년 8월 : 성균관대학교 경영 학과(경영학사), 글로컬문화콘텐 츠전공(문학사)
▪2018년 8월 : 성균관대학교 일반 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예술학 석사)
▪2018년 9월 ~ 현재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 학협동과정(박사과정)
<관심분야> : 예술경영, 공연예술, 예술철학
엄 명 용(Myoung-Yong Um) 정회원
▪2002년 2월 : 성균관대학교 수학 교육과, 컴퓨터교육과(이학사)
▪2004년 2월 : 고려대학교 컴퓨터 교육과(교육학석사)
▪2006년 8월 : 성균관대학교 경영 학과(경영학박사)
▪2008년 12월 : University of London (Post-Doc)
▪2012년 2월 :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BK21 연구교수
▪2013년 3월 ~ 현재 :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초빙교수
<관심분야> : Arts Management, Creative Industry, Supply Chain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