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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가리아 정치경제학(2)

불가리아 역사(2)

최조현 교수

최조현 교수

(2)

C o n t e n t s

1

오스만 터키 지배시대(1396~1878)

2

불가리아 자치 공국(1878~1908)

3

불가리아 왕국(1908~1945)

4

공산주의 시대(1945~1989)

5

민주주의 시대(1990~ )

(3)

• 불가리아의 차르 이반 알렉산더(재위:1331~1371)는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과 비잔티움이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 국가 재건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오스만 터키제국이라는 강력한 적에 부딪히게 된다.

• 이반 알렉산더는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두 아들에게 제국을 분할 상속하여 이반 시스만에게는 투르노보(Turnovo) 지역을, 이반 스트라치미르 에게는 비딘(Vidin) 지역을 상속하였다.

• 그러나 오스만 터키제국의 공격으로 투르노보 왕국은 1393년에, 비딘 왕국은 1396년에 멸망하였다.

-1396년 오스만 터키제국의 술탄 Bayezid I세는 불가리아 북부 다뉴브 강의 도시 Nikopo에서 십자군과의 전쟁인 Battle of Nicopolis에서 승리하여 불가리아를 합병하였다.

오스만 터키 지배시대(139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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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알렉산더

Battle of Nicopolis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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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군 : 헝가리, 프랑스, 왈라치아, 폴란드,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베니스 왕국, 제노바 왕국, 구호기사단(Knights Hospitaller) 등

- 이에 앞서 오스만 터키는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를 항복시키고 세르비아 영토를 합병

• 이로 인해 약 500년간의 오스만의 불가리아 지배가 시작되며 오스만은 1453년 비잔티움도 정복,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다.

• 오스만 터키 당국은 반란을 막기 위해 중세 불가리아 성채의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큰 도시와 오스만의 영향력이 큰 지역은 19세기까지 심각하게 인구가 감소하였다.

• 토지는 알라의 지구상에서의 대리인인 술탄에게 법적으로는 귀속되었지만, 정복자들이 토지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 독립되었던 불가리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풀(이스탄불)의 정교회 교구로 합병되었다.

오스만 터키 지배시대(139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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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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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농민들은 회교도보다 많은 세금을 냈고, 무기를 휴대할 수 없었으며, 의복은 회교도의 색갈에 적대되는 색깔의 옷은 입을 수 없었고 교회의 탑은 모스크보다 낮아야 했다.

• 개종한 불가리아들은 Pomaks라고 하며 그들의 언어, 의복 및 관습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주로 Rhodope 산맥에 거주하였다.

• 오스만 제국의 지배기에는 발칸 반도 전반으로 침체되고 발전이 없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발칸 지역은 서구의 자유주의와 산업혁명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했다.

• 80여 가지의 tax중 소위 “fresh blood tax”라는 것은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것이었다. 즉 당국은 주기적으로 건강한 불가리아 남자 어린이를 징발하여 수도 이스탄불로 데려다가 이스람으로 개종시키고 군사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광신적 이스람 정신으로 훈련된 후 젊은이가 된 이들은 소위 janissary 부대에 배치되었다. janissary 부대는 가장 호전적인 제국

군대로서 불가리아와 기독교 유럽에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준 군대이다.

오스만 터키 지배시대(139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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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년 4월 코프리브시트차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오스만 터키는 전례 없이 잔인하게 탄압을 하였고, 전 유럽에 '불가리아에서의 잔악 무도한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15,000명의

불가리아인들이 플로브디브에서 학살 당했고 58개의 마을이 초토화 되었다.

• 1870년대 후반 분노한 유럽 연합국들이 불가리아를 구해 주어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 1877년, 루마니아 공국은 루마니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오스만 터키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불가리아인들은 자치를 요구하며 오스만 터키제국과의 전쟁을 벌였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불가리아 및 여타지역에서 쇠퇴해 가고 있는 오스만

터키제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쟁에 개입하였다.

오스만 터키 지배시대(139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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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7~1878년 2년간의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는

승리하였으나, 러시아 군인200,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결국 불가리아는 러시아에 의해 1878년 오스만 터키로부터 해방되었다.

• 불가리아의 영웅들은 자유를 위하여 투쟁한 사람들로서 혁명가이며 문학가인 Georgy Rakovsky , 자유의 선구자인 Vassil Levski ,

시인이며 투쟁가인 Hristo Botev, 불가리아의 대표적 작가로서 민족해방운동에 투신한 Ivan Vazov 등이 있다.

오스만 터키 지배시대(139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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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터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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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s Who?

라코프스키 흐리스토보테프 이반바조프 바실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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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아가 독립의 불을 당긴 것은 1876년에 일어난 코프리브시트 차의 대봉기였다. 터키의 강력한 탄압으로 불가리아에 참사가 일어 나자 남쪽으로의 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러시아는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에 개입하였다.

• 전 근대적이고 낙후적인 군사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 완전히 패했고, 이 전쟁으로 인해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세 르비아가 완전히 독립을 했으며, 불가리아는 동루멜리아와 마케도 니아를 합친 대불가리아 자치 공국이 건립하게 되었다

• * San Stefano조약 : 1878.3.3

• 그러나 러시아의 발칸으로의 세력확장을 견제한 오스트리아 등 열 강들은 San Stefano 조약에 반대하고 베를린에서 회의를 개최

(1878.6.13~7.13)하여 조약을 체결, 불가리아의 영토를 북부지방에 만 한정시켰다.

불가리아 자치 공국(1878~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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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 동루멜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의 조카였던 불가리아의 알렉산더 대공은 불가리아의 영토를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동루멜리아를 합병(1885.9.6), 이로 인해 세르비아와의 전쟁이 일어났으나(불가리아-세르비아 전쟁) 그는 승 리로 이끌었다.

• 그렇지만 친러시아파 장교들의 쿠데타로 그는 퇴위되고, 뒤를 이어 도이칠란트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페르디난드 1세가 즉위 하였다. 페르디난드 1세는 1894년 '불가리아의 비스마르크'라 불리 던 수상 스테판 스탐볼로프를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하 였다.

• * Sachsen-Coburg-Gotha(Saxe-Coburg-Gotha)

• 1908.9.22, 페르디난드 1세는 불가리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 을 선언하였다.

불가리아 자치 공국(1878~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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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디난드 1세가 왕국을 선포한 뒤 1912년 제 1차 발칸 전쟁이 일어났다. 1차 발칸 전쟁에서 승리한 불가리아는 남부 트라키아 지방과 마케도니아의 일부를 얻었으나, 마케도니아 전체를

얻으려는 욕심에 1913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 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 * 제1차 발칸전쟁 : 불가리아+그리스+세르비아+몬테네그로 対 오스만 터키

• * 제2차 발칸전쟁 : 불가리아 対 그리스+세르비아+루마니아+

오스만 터키

• 그러나 루마니아와 터키까지 가세하여 불가리아는 패배하였고,

서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세르비아에게, 동트라키아는 터키에게 할양해야 했다. 결국 이 전쟁은 당시 국제정세와 맞물려 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이 전쟁에서 독일 제국 편에 붙었던 불가리아는 패배하여 페르디난드 1세는 퇴위하고 아들인 보리스 3세가 뒤를 이었다.

불가리아 왕국(190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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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스 3세는 1923년 민주정을 대표하던 농민당의 알렉산더 스탐볼리스키 총리를 암살하고 청년장교들과 경찰들의 도움을 얻어서 독재정치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는 히틀러의 나치와 동맹을 하여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樞軸國, Axis

Powers)편에 섰다.

• 그러나 1943년, 히틀러와 격렬한 논쟁 끝에 불가리아로 돌아가던 보리스 3세는 나치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어린 아들 시메온

2세(1937년생, 6세)가 즉위하였다.

불가리아 왕국(190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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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말기 1944. 9. 5 소련군대는 불가리아에 진입하고, 친소 공산주의자들인 불가리아의 조국전선(Fatherland Front)은 9. 9일 정권을 잡았으며, 이에 따라 불가리아는 소련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 1946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불가리아를 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Bulgaria)이라고 선포하고, 소련의 사주를 받아 왕제를 폐지하였다.

• 이에 따라 왕의 어머니, 어린 왕인 시메온 2세 (1937년생으로 당시 9세) 및 공주 Maria-Louisa는 국외로 추방되었다.

•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조국전선 외의 정당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부동산 및 은행을 수용하여 국유화하였다. 그리고 경작지는 강제적으로 협동농장으로 재편시켰다. 공산주의자 지배아래서 많은 반체제 인사 및 과거 정당의 지도자들이 처형되거나 투옥 또는 추방되었다.

공산주의 시대(1945~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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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불가리아 공산당 제1서기이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1949년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으며, 체르벤코프가 후임에 올랐으나 1954년 토도르 지프코프가 당 제1서기가 되어 실권자가 되었다. 토도르 지브코프는 1962년부터 71년까지

총리직도 겸임했었다. 그는 1965년 군부의 쿠데타를 진압하고

친소노선을 펼쳤다. 그리고 산업화를 서서히 추진하여 1960년대와 70년대에 불가리아의 경제력을 괄목할만하게 향상시켰다.

•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공업화, 에너지 분야의 발전, 인프라스트럭처 및 사회적 서비스(의료 및 교육) 확대로서, 실제로 불가리아는 발칸 반도의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한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비교적 온건했던 지프코프의 노선과 소련의 강력한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었다.

공산주의 시대(1945~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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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터전쟁 * 독립기념우표

공산당 마크가 있는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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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는 구 공산당 건물 & 붉은별

(20)

•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국가주도의 사회주의 경제의 잠재력은 소진되었고 경제적 환경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족은 증대되기 시작했고, 민주주의와

정치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게 되었다.

• 이러한 가운데 동구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불가리아를 덮쳤고,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날인 1989.11.10 35년간 불가리아를 지배해온

지프코프가 퇴임하였다.

• 불가리아는 발칸반도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공산주의 붕괴를 맞은 국가이다.

• 지브코프(1911년생)는 자신의 손녀 집에 연금된 상태에서 생활을 하다가 1998년 사망하였다.

공산주의 시대(1945~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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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르 흐리스토프 지프코프

(불가리아어: Toдор Xpиcтoв Живков, 1911년 9월 7일 ~ 1998년 8월 5일)는 불가리아의 지도자로, 1954년부터 공산체제가 무너진 1989년까지 장기 집권했다.

1932년에 공산당에 가입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불가리아가 공산화되어 소련의 위성국이 되자, 1954년 불가리아 공산당 서기에 취임해 공산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는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의 수상에도 올랐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에는 한때

체포되었다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연금(軟禁)이 허락되었다. 1996년

불가리아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고, 1998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정부는 그의 국장(國葬)을 거부했다.

(22)

• 1990.1 공산당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의회는 공산당의 독점과 지도적 역할 삭제, 다당제 실시, 시장경제체제 도입 등 탈공산주의 노선의 개헌안을

승인하였다.,

- 공산당 본부 의회건물로 수용

-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있는 레닌 묘를 본떠 만든 초대 공산당 제1서기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묘를 해체

• 1990.11 국명을 불가리아 공화국으로 개칭하고 1991.7.12 현재의 헌법인 불가리아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였다.

• 지프코프 퇴임후 불가리아 공산당(BCP)은 불가리아 사회당(BSP)으로 개명하고 1990~1991년간 안드레이 루카노프가 총리에 취임했으나 곧 사임하고 디미트르 포포프가 과도 내각을 이끌었다.

민주주의 시대(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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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빨간 별 대신 불가리아 국기가 걸려 나부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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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대선에서 민주세력동맹(UDP)의 젤류 젤레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총선에서도 민주세력동맹(UDP)이 승리하여 필립 디미트로프가 총리에 취임, 불가리아 최초로 비공산주의자인 민주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 * 젤류 젤레프 대통령은 95.4 한국 방문, 한국교포 최동성씨 동행

• 많은 국민이 기대했던 민주세력 출신인 필립 디미트로프가 정권을 잡았으나, 민생경제는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 -1998~2002년 주미대사 역임, 2010.10 그루지아 주재 EU대사 물망

• 그러자 의회는 그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해 1992년 결국 디미트로프는 정권을 잃고, 무당파의 루벤 베로프가 집권하였다.

민주주의 시대(199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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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파의 베로프가 집권하였으나, 그도 어려운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였으며, 1995년 총선에서는 사회당이 승리하여 잔 비데노프가 총리에 취임하였다.

• 대통령선거에서 UDP의 페타르 스토야노프가 승리, 사회당이 패배하고 내각에 대한 불신임이 커지자 비데노프는 사임하였다. 그 뒤 총리직에는 UDP의 이반 코스토프가 취임하여 1997~2001간 집권하였다.

• 2001년 총선에서 전(前)국왕 시메온 2세가 이끄는 시메온 2세 국민운동당 (MNSII)은 승리하여 2005년까지 집권하였다.

• * 현재는 안정과 전진을 위한 국민운동당(NMSP : National Movement for Stability and Progress)으로 개칭

• 2005년 총선에서는 과반수를 득표한 당이 없어 사회당, 시메온 2세 국민운동당, 권리와 자유운동당 등 3당이 연합하여 연립정부를

수립하였으며, 2005.8.17일 사회당의 세르게이 스타니셰프(1966년생)가 총리직을 맡았다.

민주주의 시대(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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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1 공산당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의회는 공산당의 독점과 지도적 역할 삭제, 다당제 실시, 시장경제체제 도입 등 탈공산주의 노선의 개헌안을

승인하였다.,

- 공산당 본부 의회건물로 수용

-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있는 레닌 묘를 본떠 만든 초대 공산당 제1서기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묘를 해체

• 1990.11 국명을 불가리아 공화국으로 개칭하고 1991.7.12 현재의 헌법인 불가리아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였다.

• 지프코프 퇴임후 불가리아 공산당(BCP)은 불가리아 사회당(BSP)으로 개명하고 1990~1991년간 안드레이 루카노프가 총리에 취임했으나 곧 사임하고 디미트르 포포프가 과도 내각을 이끌었다.

민주주의 시대(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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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2011년에는 사회당의 게오르기 파르바노프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GERB출신의 Rosen Plevneliev가 2012.1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파르바노프 대통령은 2009.10월 한국 국빈방문

• 불가리아는 2004년 나토의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2007.1.1 루마니아와 함께 EU의 정회원국으로 가입했다.

• 2009. 6.7일 EU의회 선거 실시(의원 수 736명, 27개국, 유권자 3억7,500만명), 17명의 의원이 탄생했다.

• 2009.7.5 총선을 실시, GERB(“불가리아의 유럽발전을 위한 시민당”

Citizens for European Development of Bulgaria)이 제1당이 되어

집권하였으며, 소피아 시장이던 동 당의 Boyko Borissov(1959.6.13일생)가 총리가 되었다.

• -

민주주의 시대(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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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Borisov총리는 임기가2013,7월까지였으나, 높은 전기료, 낮은 임금 및 부패 등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 발생으로 2013.2.20 내각 총사퇴, 사회당은 이를 계기로 GERB(“불가리아의 유럽발전을 위한

시민당” Citizens for European Development of Bulgaria)의 실정에 대한 공세 강화

• 0 2013.5.12 총선에서 240석 중 GERB 97석, 사회당 84 석, 권리와 자유운동당 36석, 아타카 당 23석을 차지

• 0 GERB당은 제1당의 기반을 확보했으나, 과반수 부족으 로 정권 재창출 실패, 제2당인 사회당은 권리와 자유운 동당과 연정 구성, 5년 만에 재집권

• 총리 Plamen Oresharski 민주주의 시대(199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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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27번째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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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아는 2011년 상반기에 쉥겐지역(Schengen zone) 편입을 위해 적극 외교활동 전개했으나, 실패하였으며 2012년 가을에는 가입될 것으로

예상하여 왔으나, 네델란드가 반대하고 있어 금년내 가입이 어려워지고 있다.

• 불가리아는 2013년 Euro Zone에 가입하기 위해 레바화의 유로화에 대한 pegged-exchange rates system 지속 유지, 재정지출 20% 삭감 등 적극 노력하고 있으나, 최근의 그리스 사태 등 유럽의 경제위기 증폭으로

2013년 Euro Zone 가입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주의 시대(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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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메온 보리소프 삭스코부르고츠키(불가리아어: Симеон Борисов

Сакскобургготски, 1937년 6월 16일 ~ 현재)는 불가리아의 국왕(Царь 차르)인 시메온 2세(Симеон II, 재위 1943년-1946년)이자 공화국의 전(前) 총리 (재임 2001년-2005년)이다.

• 1943년에 부왕(父王)이었던 보리스 3세(Борис III)가 나치의 당원들로부터 암살당하자 6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재위 기간은 3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 실권은 조국전선(Fatherland Front)이 행사하였다. 시메온 2세는 1946년, 소련의 압력으로 폐위되었다.

• 망명 이후 스페인에서 사업가 생활을 하였고, 불가리아가 민주화된 1990년대에 일시 귀국하였다가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2001년 귀국, 신당을 창설하여 총선에서 승리, 총리가 되어 2005년까지 재임하였다.

• 1962년, 망명지에서 결혼하여 4남 1녀를 두었다.

시메온 2세(Simeon Saxe-Coburg-Gotha)

*

(32)
(33)

Q & A

5

참조

관련 문서

지도 교수

오스만 터키 건축술에 따른

• 불가리아의 소피아 대학교 한국어과는 이미 설립되어 있으나, 벨리코 떠르노보 대학교 한국어 과정이 운영중이고 바르나 자유대학교에도 한국어과가 생길 예정.

• Khan Asparukh가 이끄는 원 불가리아인들은 다뉴브 강을 건너 현 재의 불가리아 땅에 들어 왔으며 지금의 Shumen 가까이에 있는 Pliska에 수도를 정하고 비잔틴과 전쟁 후

Development of Bulgaria Граждани за европейско развитие на България.. Rosen Asenov Plevneliev

동결방지 조치를 취하여 등을 사용하여 적절한 우려가 있는 곳은 보온재 드레인 호스 설치시 동결.

[r]

동 기한내 위반사항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사회적기업 육성법」제18조의 규정에 따라 사회적기업 인증이 취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동